072화
물론 그런 식으로 접근한다면…….
“이 친구도 마찬가지로 수상해.”
검은사자 기사단장 엔더슨 하이빌.
“매일 일리온 교단의 교회에서 새벽 기도와 심야 기도를 빼놓지 않네요.”
“그래, 심지어 기도실을 이용하지.”
내 말에 클로에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게 생각한다면 왕도의 기사단장 정도 되는 사람이면 조용히 기도에 집중하기 힘들잖아요?”
그래. 일부러 심야와 새벽 같은 사람이 드문 시간에, 일부러 기도실까지 요청하는 성실한 신도라고 생각할 수 있다.
“나쁘게 생각하면?”
“주기적으로 몰래 연락하기에는 심야와 새벽의 기도실만 한 곳이 없긴 하겠죠.”
하지만, 한편으로는 교회에서 수상한 마법을 사용한다면 들키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이 의문에 대해서는 엘렌의 조언이 필요할 것 같다.
나는 엔더슨과 미로스의 이름에 체크를 해둔 다음 커튼을 살짝 열어 밖을 확인했다. 벌써 해가 저물어가고 있다.
그러고 보니, 엘렌은 먹을 걸 가져온다더니 밭에 밀이라도 심고 있는 건가.
내가 그런 생각을 하기가 무섭게 문이 열리고 엘렌에 음식을 담은 그릇을 챙겨 방 안으로 들어왔다.
“미안, 조금 늦었네.”
“조금?”
해 떠 있을 때 나가더니 해 다 저문 다음 돌아와 놓고서는 조금 늦었다니. 얼굴이 조금 두꺼운 모양이다.
“늦은 이유가 있겠지?”
“레드우드 부인의 일을 조금 도왔지. 만남 약속이 하나 잡혔어.
나는 그 말에 작게 휘파람을 불었다. 그런 일을 해내고 오는 길이라면야 음식 같은 거 챙기지 않고 빈손으로 왔어도 괜찮았는데.
“누군데?”
“모리스 핀들턴 경과는 면식이 있거든. 잠깐 찾아가서 이야기를 나눴어. 이미 레드우드 부인에게서 연락을 받고 고민 중이셨던 모양이더라.”
나는 그 말에 약간 놀랐다. 만남 약속이 잡힐 가능성이 가장 낮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모리스 핀들턴은 왕실의 기사단장이다. 기사단장들 사이에 서열이 있다면 아마 왕실을 수호하는 기사단장인 모리스 핀들턴 경이 가장 높을 거다.
“좋은데. 고생했다.”
“레드우드 부인이 마련한 음식을 접시에 옮겼을 뿐이야. 가서 만나보니, 이미 한번 만나보겠다는 쪽으로 생각이 기울어 있으셨거든. 다만…….”
내가 수상하게 생각했던 기사단장 중 하나인 미로스는 만남에 대해 거절 의사를 표시한 모양이다.
“그 사람은 상관없어.”
어차피 그 친구는 뒷조사를 한번 해볼 생각이었으니까. 조금 더 세심하게 조사를 하면 될 일이지.
“아, 그리고 뭐 좀 물어보자.”
“듣고 있어.”
나는 엘렌에게 궁금했던 질문을 던졌다. 이전에 다나 힐베른이 사용했던 흉측한 통신기구를 교회 안에서 사용해도 문제가 없는가?
그리고, 내 질문에 대한 엘렌의 대답은 굉장히 빨랐다.
“충분히 가능해. 정해진 시간이 아닐 때 외부인이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서 경보 마법 같은 건 설치되어있지만, 안에서 마법의 구사는 자유로워.”
마법과 종교는 관련이 없다고 한다. 이 세상에서 종교는, 진짜로 내가 알고 있는 21세기의 종교와 유사했다. 신앙을 설파하고, 믿는 신도를 늘려 교세를 확장한다.
각 교단에서 모시는 신의 말씀에 따라 대중을 교화시킨다. 단지 그것뿐이다. 다친 사람들이 돈주머니 들고 사제에게 호다닥 달려가 치료받는 경우는 없다고 한다.
“그렇군, 대답 고마워.”
질문에 대한 대답을 들은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곧바로 클로에가 나를 바라본다.
“주무시게요?”
시간이 몇 시인데 벌써 자겠냐. 나는 벽에 붙어있는 미로스의 이름을 툭 하고 쳤다. 뒷조사해야지.
“아, 직접 한번 가보시게요? 좋은 시간 되세요.”
“뭔 소리야. 너도 따라붙어야지.”
내 말에 클로에가 다소 어색한 미소를 지은 채 나를 바라봤다.
“따라붙으라고 말씀하신 의도가 궁금한데요. 거기는 여자와 함께 가기에는 영 좋지 않은 장소에요.”
“우리의 적은 왕도에 머무르고 있을 거야. 근데 나 혼자 밤거리를 걸어 다니라고?”
나는 적색의 정체를 모르지만 녀석은 내 정체를 안다. 내가 밤거리를 혼자 싸돌아다니는 중이라는 이야기를 듣는 순간 그 녀석은 생일 선물이라도 받은 것처럼 기뻐할걸.
“그렇네요.”
클로에가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에서 일어나 레이피어를 허리춤에 찬다.
“뭐야, 먹을 거 전달해주는 걸로 내 할 일은 끝난 거야?”
“내 어머니를 도와서 자리 마련해 줬잖아. 돌아가서 쉬고 있어.”
엘렌은 이 저택에서 머무는 사람이 아니니까. 오래 붙잡아 놓을 수는 없다. 장비를 챙긴 나는 창문을 열었다. 나가서 일하기 전에 먼저 환기부터 좀 시켜야겠다.
창문을 열자 순식간에 겨울의 서늘한 공기가 방 안을 가득 채운다. 갑작스럽게 찬바람을 얻어맞은 클로에가 몸을 살짝 떤다.
“춥지도 않으세요?”
“내가 어디에서 놀다가 왕도로 오게 된 건지 알잖아?”
쿠르스트 산맥이 딱 이 정도로만 따뜻해도 소원이 없었겠는걸.
잠깐 멍하니 밖을 바라보는 사이, 클로에가 신발의 끈을 꽉 묶으며 입을 열었다.
“계획은?”
“먼저 카페에 들른 다음, 이후 일리온 교단의 기도실.”
미로스를 조사한 다음, 가능하면 엔더슨까지 한 큐에 확인을 마칠 거다. 클로에가 내 말에 어깨를 으쓱했다.
“홍등가 다음 교회라. 아무래도 털어놓을 죄가 좀 있으시겠네요.”
“죄는 개뿔. 좋은 곳을 발견하면 사제님께 추천이라도 해줄까?”
말을 마친 나는 창밖에 펼쳐진 왕도의 바닥에 깔린 무수한 조명들을 바라보다가 후드가 달린 코트를 꺼내 살피다가, 달린 단추를 전부 뜯어낸 다음, 챙겨 입고 밖으로 나섰다.
얼마 걷지 않아서 나는 퍼시발 스트리트에 도착했다. 붉은빛이 도는 조명이 주렁주렁 달린 건물과, 닫힌 문 사이로 흘러나오는 여자와 남자들의 웃음소리.
잔이 부딪치는 소리와 지나가는 사람들을 붙잡고 호객행위를 하는 장사꾼들까지.
“어때요? 감상을 들어보고 싶은데요.”
뒤따르는 클로에의 한마디에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감상은 무슨.”
동전이 가득한 무거운 주머니를 들고 와서 다 털어낸 다음 가벼운 주머니로 나가는 곳.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내가 가야 하는 곳은 정해져 있다. 미로스 제커빌이 거의 매일같이 들르는 카페의 이름은 마르멜로다.
“여기네.”
화려한 건물 주변에 세워져 있는 마차들, 그리고 부드러운 천을 덧댄 간판 위에 큼지막하게 써진 '마르멜로'라는 연한 분홍빛 문자.
“안 들어가세요?”
“꼭 들어가야 하는 건 아니야. 그럴 생각도 없고.”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고 나서 팔을 꼰 채 밖에 서서 건물을 살피기 시작했다. 입구를 지키고 있는 근육 덩어리 두 명이 보인다.
남자 한 명이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자 뭐라고 말하더니, 이내 길을 막아선다. 회원제 같은 식으로 운영하는 모양이지.
그렇다면 아마 여기를 이용하는 사람들은 가명을 사용할 것이다. 자기 이름 대문짝만하게 박아넣고 자랑스럽게 들어갈 만한 장소는 아니니까.
“저기…… 방해가 되지 않으신다면 지금 뭘 하고 계신 건지 알 수 있을까요?”
그렇게 한 시간 정도 지나자 클로에가 내 눈치를 슬쩍슬쩍 보기 시작한다. 나는 계속 저 건물을 드나드는 사람들을 살피다가 입을 열었다.
“미안하지만, 방해되니까 질문하지 말고 있어 봐.”
내 말에 클로에가 다시 입을 다물었다. 중산모를 눌러 쓴 남자 한 명이 안에 있던 사람의 인사를 받으며 밖으로 나왔다.
남자는 나오자마자 주머니에서 회중시계를 꺼내 태엽을 감기 시작한다. 은으로 장식된 꽤 고급품이다.
태엽을 다 감은 남자는 코트를 털기도 하고, 입 주변을 엄지로 문지르기도 하며 길을 걸어가기 시작했다.
입고 있는 검은 모피 코트의 단추는 은과 호박으로 장식되어있다.
“잠깐 여기 있어.”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고 나서 막 밖으로 나온 남자 쪽으로 걸어갔다. 녀석이 잠깐 나를 보고 흠칫한다.
후드를 쓰고 자신 쪽으로 걸어오는 남자가 있다면 아무래도 그럴 수밖에 없지.
구겨진 옷 약간의 분가루. 젖어있는 왼쪽 양말에서는 희미하게 김이 올라온다.
나는 태연하게 녀석을 스쳐 지나갔다. 귀밑에 남은 립스틱 자국이 눈에 들어왔다.
긴장하고 있던 남자가 한숨을 내쉬는 소리가 들린다. 나는 다시 길을 건너 클로에의 옆에 섰다.
“뭐 하신 거예요?”
“방금 전에 내가 스쳐 지나간 친구가 미로스 제커빌이다.”
내 말에 클로에가 눈썹을 모으고 나를 바라봤다.
“확신하세요?”
“입에 월계수를 물고 있는 물고기.”
내 말에 클로에가 나를 바라봤다.
“미로스 제커빌 경의 가문 문장이죠.”
“코트의 단추 장식이 제커빌 가문의 문장이더군.”
나는 말을 마치고 나서 주머니 안에 들어있던 단추를 클로에에게 보여주었다. 저택을 나서기 전에 코트에서 뜯어낸 단추들이다.
선명하게 박혀 있는 레드우드 가문의 인장. 코트 단추에 인장 박아넣는 게 요즘 최신 패션인가 보지?
클로에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단지 그것만으로는…… 제커빌 가문의 다른 사람이 들른 걸 수도 있잖아요?”
나는 혀를 한 번 차고 클로에를 바라봤다.
“발달한 상완근과 대흉근. 내가 녀석에게 다가가자 잠깐이지만 흠칫하면서, 본능적으로 자기 손을 바라봤어.”
도움을 줄 사람을 찾는 대신 싸울 준비를 했다. 쌈박질에 자신이 있다는 뜻이지.
그리고, 자기 손을 바라봤다. 허리춤에 차는 무기를 주로 쓰는 사람이 아니다. 그랬다면 손을 바라보는 게 아니라, 허리로 손이 갔겠지. 마찬가지로 등에 짊어지는 무기도 아니다. 휴대하지 않고 손에 들고 다니는 무기. 창이나 폴암 같은 것.
“게다가 왼손잡이야.”
회중시계의 태엽을 왼손으로 감았으니까. 미로스 제커빌은 왼손잡이에, 주로 사용하는 무기는 버디슈다. 그뿐 아니라, 첩보부가 보내준 정보에 나온 키와, 방금 남자의 키는 일치한다.
즉, 내가 스쳐 지나간 남자는 미로스 제커빌이 맞다.
말을 마친 나는 후우, 하고 숨을 내쉬고는 포장된 도로를 발로 한 번 툭 찼다.
“시간 낭비한 것 같은데.”
“미로스 제커빌은 아니라는 건가요?”
“옷이 구겨져 있었어. 안에서는 벗고 있다가 나올 시간이 되자 다시 입은 거지. 거기에 더해 귀밑에 남아있는 립스틱 자국과 얼굴에 희미하게 남은 분가루 같은 걸 보면 안에서 거사를 치른 게 확실해.”
미로스가 이 카페를 주기적으로 오는 이유는 그냥 저 카페에 엄청 마음에 드는 여자가 있기 때문이다. 내 말에 클로에가 질문을 던졌다.
“혹시, 여자를 불러서 거사를 치른 다음에 연락을 한 건 아닐까요?”
“왼쪽 양말이 젖어있었는데, 아직 따뜻해서 김이 올라오고 있었어.”
찻물이 아직 뜨겁다는 건 저 안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지 않았다는 뜻이고, 그걸 엎질렀다는 건 엄청 급하게 나왔다는 소리다.
“차가 식으면 물을 바꿔줄 수도 있잖아요?”
나는 클로에의 지적에 코웃음을 쳤다.
“이 친구야. 저기가 차 마시러 가는 곳이냐.”
의도 자체가 불순한 가게다. 여자 끼고 뭘 하려고 하는데 누가 찻물 갈아주겠답시고 들락날락하면서 분위기를 깨면 손님들이 화낼걸.
“그렇군요. 그럼 미로스 제커빌은 아니겠네요.”
“최소한, 가능성은 많이 낮아졌지.”
바닥에 침을 뱉은 나는 클로에와 함께 퍼시발 스트리트를 벗어났다. 거리를 벗어나자마자 뒤집어쓴 후드를 벗고 크게 한 번 호흡한 클로에가 나를 바라봤다.
“교회로?”
“그래, 교회로.”
다음은 검은사자 기사단장 엔더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