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드우드-73화 (73/275)

073화

“교회도 밖에서 기다리실 생각이세요?”

나는 후드를 벗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

방금과는 다르게, 이건 들킨다고 문제 될 행동이 전혀 아니잖아. 당당하게 문 열고 들어가서 기도 좀 하게 기도실 좀 쓰게 해달라고 하면 될 일이다.

“죄송하지만, 기도실은 일정량 이상의 헌금을 하신 분에 한해서만 제공해드리고 있습니다.”

“네?”

교회 앞에 도착해서 들은 사제의 대답이었다. 나도 모르게 몸이 살짝 떨리고, 입에서 쌍욕이 튀어나올 뻔했다. 니들 양아치니? 사이비야?

믿음을 돈 주고 사는 시대가 되려면 이 세상의 문명이 조금 더 발전해야 하지 않나? 그건 21세기 지구 정도는 되어야 튀어나오는 개념인 줄 알았는데.

“그 일정량 이상의 헌금이라는 게…… 구체적으로 얼마 정도의 헌금일까요?”

나는 그렇게 말하면서 사제 뒤편에 보이는 교회를 바라봤다. 굉장한 규모다. 이 정도로 화려한 교회라면 믿는 신이 뭐 하는 친구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찾아왔다가 부담돼서 돌아가 버릴 것 같은데.

이렇게 근사한 교회를 가지고 있는 녀석들이 일정량 이상의 헌금이라는 단어를 언급했다면, 분명히 적은 돈이 아닐 것이다. 얼마나 되려나 한 500론도 정도는 헌금해야 하는 건가? 그 정도라면…….

“1500론도 이상입니다.”

나는 그 말에 눈을 질끈 감고 양 주먹을 꽉 쥐었다. 예상한 금액보다 세 배 많다. 론도 더미로 머리통을 후려맞은 기분이다.

이 미친놈들. 1500론도를 채워 넣은 가죽 자루로 대가리를 후려쳐버릴까?

참자, 세상에 저질렀다가는 두고두고 입에 오를만한 행위들이 몇 개 있는데, 그중 하나가 종교인을 구타하는 거다.

나는 약간의 희망을 가지고 사제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럼, 안에 들어가 볼 수는 있겠습니까?”

내 말에 사제는 고개를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기도실을 사용하는 게 아니라면 이 시간에는 아예 교회에 출입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사제가 돌아가고, 나는 멍하니 교회를 바라보고 있었다.

“열불나네.”

그렇게 중얼거린 나는 그대로 뒤돌았다.

“포기하시는 거예요?”

“어쩔 수 없잖아.”

엘렌은 교회에 경보 마법이 설치되어있다고 했다. 몰래 들어가는 건 성공할 가능성이 너무 낮고, 걸리면 문제가 이만저만이 아닐 것이다.

사람은 원래 이미지 관리를 해야 하지만, 지금 나에게는 그 중요성이 배는 더 크게 다가오고 있다.

쿠르스트 산맥에서 큰 공을 세워 수도로 왔는데 교회에 몰래 들어가려 시도하다가 걸렸다? 그럼 그냥 내 이미지는 바닥에 처박힌다.

이미지가 바닥에 처박히면 감사청에 들어가겠다는 계획도 박살 나고, 국왕과 독대에서 무슨 요청을 할 수도 없게 될 거다. 잃는 게 너무 많다.

결국, 나와 클로에는 그 길로 알버트가 마련해준 저택에 돌아가야 했다.

억울해서 잠도 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밤을 새우면서 서류 더미에 파묻혀 있었던 덕분인지, 기절하듯 쓰러진 내가 다시 눈을 뜬 건 대충 오후 네 시 정도 된 시점이었다.

“…….”

멍하니 창밖을 보던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눈을 비볐다. 몇 시간을 잔 거야. 계산을 마친 나는 인상을 팍 썼다.

“무슨 신생아냐?”

곧바로 씻고 간단하게 식사를 마친 나는 지나가는 하인을 보고 말했다.

“클로에는?”

“그…… 깨우면 죽여버리겠다는 식으로 말씀하셔서.”

뭐야 그건 또. 그 인간도 참 가지가지 한다. 하인의 대답을 들은 나는 클로에의 숙소에 가서 문을 두들겼다.

“이런 씨, 알아서 일어난다고 했잖아!”

문 너머에서 들리는 살벌한 외침은 클로에가 맞다. 그 대답을 들은 나는 문을 열고 안에 들어갔다.

“크허어억…… 끄어어억…….”

저게 지금 자면서 내는 소리 맞나. 죽어가면서 낼 법한 소리잖아.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잔에 물을 채워 클로에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곧장 얼굴에 물을 쏟았다.

“흐푸으읍?! 어떤 새끼가……!”

그 말이 끝나자마자 내 얼굴을 노리고 주먹이 휘둘러진다. 나는 그 주먹을 손으로 받아내고는 클로에를 바라봤다. 잠에서 덜 깬 눈으로, 클로에가 나를 바라본다.

“나란 새끼다. 이 새끼야. 안 일어나?”

서로 담당한 역할이 거꾸로라고 생각하는데. 니가 날 깨우는 그림이 서열이라는 개념이 보시기 합당한 그림 아니냐?

그녀가 잠에서 깬 것을 확인한 나는 곧바로 그 방을 나와 지나가는 하녀에게 마차를 부르도록 지시했다.

약 1시간 뒤 마차 안에서, 클로에가 내 눈치를 보다가 사과한다.

“죄송합니다.”

“됐어. 어차피 나도 막 일어난 참이었으니까. 신경 쓰지 말고 앞으로 할 일에 집중해.”

그래도 너무 많이 잔 건 아니라서 다행이다. 마차가 핀들턴 경의 저택에 도착하면 15분 정도 여유가 있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마틴 레드우드 님. 아직 시간이 조금 남아있으니, 그전까지는 응접실로 모시겠습니다.”

저택 앞에 마차를 멈추자, 장작불을 쬐고 있던 문지기 중 하나가 곧바로 어딘가로 달려갔다.

“마틴 레드우드 님,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잠시 뒤 집사장이 나와 클로에를 응접실로 안내했다. 차를 마시며 방 안을 살핀 지 얼마나 지났을까, 문이 열리고 누군가 안으로 들어왔다.

“얼굴을 보는 건 처음이군. 마틴 레드우드, 맞나?”

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모리스 핀들턴 기사단장님,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내 말에 모리스가 픽 웃고는 손을 휘휘 저었다.

“거 쓸데없는 인사 집어치우자고. 보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잖나.”

희끗거리는 수염이 덥수룩한 아저씨다. 과장 약간 보태면 얼굴 면적 중에 85% 정도는 털 같은데. 게다가 몸무게가…… 모르겠다.

저 정도면 100kg 정도 나갈 것 같은데. 몸의 형태를 저 몸무게의 대부분이 다 근육이다. 주로 사용하는 무기가 사람만 한 크기의 워해머였지?

내 맞은편 소파에 그가 털썩 앉자 쿵, 하는 소리가 났다.

“차라.”

그는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솥뚜껑만 한 손으로 조막만 한 잔을 들어 이리저리 보더니 호주머니에서 작은 통을 꺼내서 찻잔에 쏟아 넣는다. 술인 모양이네.

“크으.”

그대로 쭉 차를 들이키고 입가를 슥 훔친 모리스가 나를 슥 훑어봤다.

“어때, 싸움은 좀 하나?”

자기소개 끝나고 나서는 바로 그것부터 물어보는 거냐.

“부족한 실력입니다.”

“옘병, 겸손 같은 거 집어치우고 당당하게 말해 이 친구야. 저기 궁 안에서 비실거리는 잡것들처럼 눈치 살살 보지 말고 딱 대답해.”

아, 그런 거 좋아하시는구나? 막상 시키는 대로 했는데 나중에 딴말하기만 해봐.

“실력이 부족하면 여기 앉아있을 리가 없지 않습니까?”

내 말에 녀석이 웃음을 터뜨리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아까보다 훨씬 나은 대답이군.”

말을 마친 그는 턱을 쓰다듬나 싶더니 입을 열었다.

“어디 보자, 온 김에 이 늙탱이랑 한번 몸이나 풀어 볼 테냐?”

늙탱이 같은 소리 하네. 떡대를 보면 콘크리트 덩어리도 비스킷처럼 씹어먹을 것 같은데.

“감사히 가르침을 받겠습니다.”

물론 쥐어터질 것이다. 하지만 내 입장에서는 쥐어터질 것이 빤히 보여도 거절할 이유가 없다.

기사단장한테 쥐어터지는 건 나름대로 경험이 될 테고, 도대체 이 인간들이 얼마나 강한지도 알아볼 수 있을 테지.

“좋아.”

말을 마친 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밖을 향해 외쳤다.

“정원으로, 해머를 가져와라!”

순간적으로 귀가 멍해질 정도로 거대한 외침이었다. 모리스가 나를 보고 히죽 웃으며 말했다.

“따라오게.”

나는 모리스와 함께 정원으로 나갔다. 하인 두 명이 말이 안 나올 정도로 거대한 워해머를 낑낑거리며 가져오자, 모리스가 그 해머를 한 손으로 번쩍 들었다.

그 모습을 확인한 나도 허리춤에 차고 있던 검을 뽑아 들었다. 내 무기를 확인한 모리스가 입을 열었다.

“꽤 좋은 검이군.”

“우연히 얻게 되었습니다.”

물론 저 워해머는 살벌해 보이지만, 그래도 내 검은 버텨 줄 것이다.

“시작하자고. 전력으로 덤비는 게 좋을 거야, 젊은 친구.”

그럼 내가 기사단장이라는 사람을 앞에 두고 힘을 아끼겠냐? 그의 말이 끝나가 무섭게 나는 심장의 마력을 몸에 풀어놓으며 달려들어 검을 휘둘렀다.

순식간에 들어 올려진 해머가 공격을 막아낸다. 쿠웅, 하는 소리와 함께 공기를 타고 퍼져나가는 충격파에 온몸이 찌릿거린다.

“흐랴앗!”

그런 소리와 함께 모리스가 힘을 주자 내 몸이 살짝 뒤로 밀려난다. 자세를 약간 낮춘 채 그 힘을 견뎌낸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진짜 워해머였습니까?”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아니, 휘두르는 꼴을 보니 수수깡 같은 걸로 만든 가짜가 아닌가 싶어서 말이야. 저런 무식한 무기를 왜 저렇게 가볍게 다루는 거야.

물리 엔진에 오류가 난 건가. 휘릭, 하고 망치를 고쳐잡자, 망치 머리가 휙 돌아가며 곡괭이처럼 생긴 살벌한 뒤통수를 보여준다.

“좀 제대로 해보라고.”

내려 찍히는 해머를 바라보던 나는 허상을 남기고 옆으로 빠졌다. 망치가 허상을 후려쳤다. 곧바로 모리스의 얼굴이 내 쪽을 향한다.

“으하핫! 요거 잔재주 봐라?”

“즐거우시다니 다행입니다.”

말을 마친 나는 다시 모리스를 향해 달려들었다. 쿠쿠쿠쿠쿵, 하는 벼락 쏟아지는 소리와 함게 내 검과 모리스의 망치가 쉬지 않고 서로 부딪쳤다.

쉬지 않고 터지는 충격파에 정원의 나무와 풀이 이리저리 흔들린다. 분신을 만들고, 허상을 만든다. 모리스는 분신과 허상, 나를 구분하지 않고 공평하게 두들겨 팬다.

“크으.”

시간이 얼마 지난 것 같지도 않은데, 검을 쥔 손바닥이 찢어져 피가 흐른다.

“손에서 피 나는데, 괜찮나? 그만할까?”

“안 괜찮습니다. 계속하고 싶습니다.”

말을 마친 나는 다시 자세를 바로잡았다. 모리스가 그런 나를 보고 픽 웃고는 망치를 들어 올렸다.

“나으리.”

막 다시 튀어 나가려고 하는 와중에, 하녀 하나가 모리스를 불렀다.

“뭐냐. 이제 조금 재미있어지려고 하는데.”

“손님이……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 말을 듣고 나서 모리스가 인상을 팍 썼다.

“누군데?”

“엔더슨 하이빌 경입니다.”

잠깐, 검은사자 기사단장? 이거 운이 좋은데.

“망할 새끼, 이제 막 재미있어지려고 하는데 식초를 쏟아 넣는군.”

그렇게 구시렁거린 모리스가 들고 있던 워해머를 휙 하고 바닥에 던졌다.

“감사했습니다, 핀들턴 경.”

인사를 마친 나도 허리춤에 다시 검을 끼웠다. 모리스가 잠깐 내 눈치를 보더니 입을 연다.

“엔더슨 녀석이 약속도 없이 찾아왔다면 꽤 중요한 이야기 같은데…….”

그래, 기사단장 사이에서 오가는 이야기 같은 건 관련 분야 종사자가 아닌 내가 들으면 곤란하겠지. 나는 시원스러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야, 역시 대단하시네요. 몸이 확 뜨거워져 그런지 정원에서 잠깐 바람을 쐬며 땀을 식혀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 주게.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것이니.”

말을 마친 모리스가 바로 저택으로 걸음을 서두른다. 그때였다. 갑자기 저 멀리에서 아련하게 울려 퍼지는 웅장한 음악.

걸음을 서두르던 모리스가 갑자기 딱 멈추더니 왕궁이 있는 방향을 향해 몸을 돌리고 부동자세를 취한다.

그 모습을 본 나도 마찬가지로 왕궁을 향해 몸을 돌린 채 같은 자세를 취했다. 울려 퍼지던 연주가 끝나자, 다시 모리스는 걸음을 서둘러 저택 안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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