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화
황금으로 번쩍이는 해골이 곧바로 나에게 활을 겨누고 굉장한 속도로 화살을 쏘아붙이기 시작했다.
나를 노리고 날아오는 화살들을 피하니, 땅에 퍼퍼퍽, 하는 소리와 함께 지름 30cm 정도의 크레이터가 생겨난다.
“폭탄이냐 무슨?!”
뭘 던져서 터뜨리는 녀석은 이전에도 본 적이 있다. 그 녀석은 단검을 던졌었지. 하지만 그건 발현점을 통해 던진 단검을 폭발시키는 거였잖아.
저건 그런 게 아니라 그냥 화살에 담긴 힘이 저 정도라는 거다. 못 막아낼 정도는 아니다. 녀석이 쏘아붙인 화살들을 분신과 함께 검으로 쳐내면서 나는 서서히 녀석과의 거리를 좁히기 시작했다.
― 으흐흥, 전신의 가호라. 과연 예사 힘이 아니구나!
황금 해골이 황금 이빨을 달그락거리며 웃음을 터뜨리더니, 계속해서 나를 향해 화살을 쏴붙인다.
“내가 알고 있는 상식을 벗어나는데.”
녀석에게 바짝 붙어서 검을 휘두르기 시작하면 어떻게든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 자식은 활을 참 기괴하게 운용한다. 단순히 활대를 이용해 공격을 막아내는 정도를 넘어서, 거리를 벌리는 동시에 기괴한 자세로 활을 쏘아붙인다.
― 궁도의 극의에 달한 나에게, 거리는 의미가 없다. 네놈이 알고 있는 알량한 궁술의 한계로 나를 가늠하지 말아라!
활시위를 손으로 잡고 활대를 발로 밀면서 화살을 날리는 건 예사고, 심지어 허공에 뛰어오른 상태로 손을 쓰지 않고 양발을 이용해서 화살을 날리기까지 한다.
저건 총이 아니니까 건카타는 아니겠지, 그럼 활카타라고 불러야 하나. 녀석이 쏘아붙인 화살들이 내 허상을 스치고 지나가 뒤땅을 마구 갈아엎는다.
― 흠? 아, 그렇군.
황금 해골은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자세를 약간 낮춘 채 주변을 살피기 시작했다. 녀석의 코앞에 나타난 분신이 녀석을 향해 검을 휘두른다. 깡, 하는 소리와 함께 녀석이 들고 있는 활이 검을 막아내며, 활시위를 당겨 분신의 머리통을 날려버린 다음 다시 훌쩍 뛰어 거리를 벌린다.
― 까다로운 녀석이로다. 허나, 모름지기 사냥은 이래야 하는 법이지.
그런 중얼거림과 함께, 내 왼쪽에 나를 비추는 거울 같은 판이 하나 나타났다.
“이건 뭐…….”
화살이 날아왔다. 조준한 건 내가 아니다. 나는 수상하다는 생각과 함께 브레이서에 마력을 불어넣었다.
황금 해골이 쏘아붙인 화살은 거울을 한 번 때리고, 그대로 반사되어 내 쪽으로 날아왔다. 어떻게든 거울을 맞고 튕겨 나온 화살을 피하는 데 성공했지만, 피한 머리통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거울이 다시 나타난다.
“망할.”
화살이 거울을 때리고 튕겨 나와 내 뺨을 스치고 지나갔다. 화악, 하는 느낌과 함께 스치고 지나간 뺨을 타고 얼얼한 기분이 퍼져나가며 서서히 뺨 언저리의 감각이 둔해진다.
마비독 같은 걸 바른 건가?! 진짜 더럽게 비겁하네!
튕겨 나온 화살인데도 불구하고 전혀 그 힘을 잃지 않은 것 같다. 심지어, 화살의 모습까지 완벽하게 멀쩡하다.
저건 반사판 같은 건가?
“미친 새끼.”
― 내 작은 재주지. 마음에 드나?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세 개의 반사판이 내 몸 근처에 떠올랐다.
활로 건카타 하는 걸로는 모자라서 도탄 사격까지 하는 거냐. 활 한 자루 들고 당당하게 검을 든 녀석과 치고받겠다는 생각을 한 이유가 있었네. 반사판을 향해 검을 휘두르자, 검이 그대로 반사판을 통과한다.
“망할 거, 때려 부수지도 못하네.”
녀석이 쏘아낸 화살들이 이리저리 각도와 위치를 바꾸는 반사판을 타고 마구 튕겨 다니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갑작스럽게 각도를 바꿔 나를 노린다. 정확히 말하면, 내가 아니라 내가 만들어낸 허상이다. 화살이 허상을 통과해 바닥에 박혔다.
― 귀찮은 능력이군.
“남이사, 개새끼야.”
누가 누구한테 귀찮은 능력이라고 하는 거야. 이걸 처리하려면, 단순히 피하고 있는 걸로는 부족하다. 뒤통수를 노리고 튕겨 나온 화살과 검이 서로 부딪쳤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화살이 바닥으로 툭 떨어진다.
저건 이제 다시 사용할 수 없다. 물론 반사판을 가져가면야 낙차 높이만큼 다시 튀어 오르기는 하겠지만…… 그걸로는 지금 입고 있는 장비를 뚫을 힘이 없을 테니까.
“별로 마음에 안 들어.”
이런 식으로 막아내려면 심지어 나를 조준하고 있지 않은 화살까지도 다 검으로 막아내야 한다.
가장 좋은 방법은 아예 활을 쏠 수 없도록 막아버리는 거겠지만, 방금 저 녀석은 근접한 거리에서도 틈틈이 화살을 쏴붙였다.
나는 슬쩍 브레이서를 살피고는 심호흡을 했다. 답이 없으면 뒈지는 게 인생살이라지만, 뒈지기 전까지는 계속해서 방법을 찾아봐야지. 날아오는 화살을 몇 번의 실수와 함께 막아내고 있던 나는 이내 뭔가 아이디어를 하나 떠올렸다.
“그래, 그 수가 있었지.”
몇 번 튕기는 건 어쩔 수 없지만. 나를 노리고 쏘아지는 화살을 확인한 나는 곧바로 브레이서에 마력을 불어넣었다.
내 몸 주변에 만들어진 방벽이 화살과 부딪치고, 출렁거리는 소리와 함께 화살이 보호막을 뚫고 들어온다.
하지만, 화살이 날아오는 힘은 분명히 줄어들었다. 자리를 움직여 피하자, 뒤편에 자리한 반사판이 각도를 조정해 내 쪽으로 다시 화살을 튕겨낸다.
다시 한번 브레이서가 만들어낸 보호막이 화살의 힘을 줄였다. 그리고 그다음.
화살은 입고 있는 갑옷에 깡, 하는 소리를 내며 부딪친 다음 바닥으로 떨어졌다.
“세 번이군.”
방어막을 두 번 뚫고 난 다음, 세 번째 방어막에 닿으면 뚫지 못하고 막힌다. 세 번이라, 딱 좋은 숫자군.
내 주변에 부유하는 반사판을 살피고, 화살이 닿으면 어디로 튕겨 나갈지 예상한다. 그리고, 현재 내 몸 주변을 감싸고 있는 보호막을 화살이 지나갈 경로에 걸친다.
그러면 화살은 방어막에 두 번 부딪히게 된다. 방어막을 뚫고 들어 올 때 한 번, 뚫고 나갈 때 한 번. 거기까지 끝낸 화살은 힘이 약해져서, 보호막을 뚫지 못한다.
해법은 찾은 것 같은데…….
“싸우는데 머리 쓰게 하는 자식들이 싫어.”
공사 현장 나가서 일하는데 미적분 풀라고 하는 거랑 뭐가 달라 이게. 근육에 쥐 나는 걸로는 모자라서 머리통에도 쥐가 나게 만들다니.
방어막이 출렁거리며 화살들이 하나씩 바닥에 떨어지고, 나는 녀석의 코앞까지 다가가는 데 성공했다.
“이리와. 이 새끼야.”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녀석을 향해 검을 내려찍었다. 빠각, 하는 소리와 함께 활과 검이 서로 부딪친다.
어떻게든 칼이 닿는 간격 안에 녀석을 넣는 데 성공하면 그다음에는 싸워서 이길 수 있다. 녀석도 나와 근거리에서 싸우는 건 꽤 부담이 될 테니까.
― 변하는 건 없다!
녀석이 검을 막은 상태로 허공을 향해 화살을 날렸다. 너무 뻔하잖아. 뒤에 반사판이 있겠지. 분신이 나타나 쏘아진 화살을 쳐내고 다시 사라진다.
“없긴 뭐가 없어.”
알몸으로 싸돌아다니는 거 보니 수치심은 없겠네.
다시 거리를 벌리기 전에 해결해야 한다. 반사판은 귀찮은 성능을 가지고 있지만, 가까이 붙어 있다면 반사판을 활용하는 데에는 한계가 생긴다.
물론, 반사판을 제대로 사용할 수 없다고 해서 이 녀석이 수월한 상대라는 뜻은 아니지만, 이 거리에서 치고받는다면 그래도 내가 확실히 유리하다.
― 크……!
다시 한번 쏘아진 화살. 내가 머리를 옆으로 치우며 주변을 감싸고 있던 보호막을 일시적으로 거두자, 화살은 힘을 보존한 채로 황금 해골의 머리통 바로 옆을 스치고 지나간다.
심지어, 반사판도 함부로 활용하기 어렵겠지. 튕겨 나간 화살의 경로에 자기가 있으면 자해를 하는 꼴이니까.
화살이 지나갈 수 없는 경로가 생겼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도움이 된다.
“좀!”
나는 그런 외침과 함께 검을 힘껏 내려찍었다. 빠각, 하는 소리가 들린다. 하늘에서 떨어진 분신이 내 검 위로 다시 검을 휘두르고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쿵, 쿵 하는 소리와 함께 활로 검을 막아내고 있던 황금 해골이 크게 한 번 휘청이며 억지로 화살을 서너 발 쏴붙인다.
화살은 나를 노리고 있다. 나는 팔을 들어 올려 브레이서로 화살을 막아내고 녀석을 향해 달려들었다. 휘청거리던 녀석이 내가 달려든 힘을 받고 그대로 뒤로 넘어지고, 나는 녀석 위에 올라타는 데 성공했다.
“이리 와, 새끼야!”
그런 외침과 함께 검을 들어 올려 녀석의 머리통에 박아넣은 다음, 팔을 크게 휘둘러 검 손잡이를 팔뚝에 찬 브레이서로 내려찍었다. 뻐걱, 하는 소리와 함께 검이 완전히 해골의 두개골을 뚫고 땅에 박힌다.
끄어어어어어어어, 하는 숨넘어가는 소리와 함께 해골의 텅 빈 눈구멍에 일렁이던 안광이 흐려지다 이내 꺼진다.
금색으로 빛나는 뼈다귀를 한곳에 붙들어 두고 있던 힘이 사라졌는지, 해골의 뼈가 마치 먹다 버린 닭 뼈처럼 바닥에 후드득 쏟아진다.
“쓰읍…….”
마비독에 스친 뺨 때문에 흘러내리는 침을 훔친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주변을 살폈다. 아직 싸움이 끝난 건 아니지만…… 이 주변의 언데드를 통제하고 있었던 건 분명히 이 황금 해골이었을 것이다.
“지휘관을 죽였다!”
그 말을 들은 미로스가 상대하고 있던 언데드에게 버디슈를 크게 휘둘러 녀석을 뒤로 밀어냈다.
“마틴 레드우드가 적장을 죽였다! 전 병력, 진형을 재정비해라!”
미로스의 외침을 병사들이 복창하면서 재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미로스와 싸우고 있던 언데드가 크흐, 하는 소리를 내고는 뒤로 물러나기 시작한다.
아무래도, 미로스가 상대하고 있던 것도 내가 상대한 것과 같은 지휘관급인 모양이다.
“나보다 훨씬 낫군그래.”
“그런 게 아닙니다. 말하자면 조금 복잡하긴 합니다만.”
나와 황금 해골이 싸웠던 자리는 그래도 땅의 형태가 어느 정도 남아있다. 하지만, 미로스와 언데드의 또 다른 지휘관이 싸우던 자리는 원래 땅의 형태는 찾아볼 수도 없게 개박살이 나 있었다.
헤로스의 문양이 언데드의 힘을 억누르지 않았다면, 나는 그 반짝이는 누런 해골 놈과 싸우다가 치명상을 입었을 거다.
“상관없어, 중요한 건 적 지휘관 하나가 죽었고, 하나는 후퇴 중이라는 거지.”
전선에 구멍이 뚫린 거다. 병사들이 어느 정도 진형을 재편성하자, 그가 뒤를 향해 크게 외쳤다.
“우리는 적진으로 진입한다! 후속대를 향해 나팔을 불고 북을 울려라!”
나팔소리와 북소리가 울려 퍼지고, 후방에서 대기하고 있던 병력들이 우리가 있는 장소로 밀려들기 시작한다.
“좋아, 이 기세를 타고 앞으로 나가라. 부탁한다!”
미로스를 비롯한 기사단 중 상당수는 후속대가 모두 뚫린 전선을 통해 적진 안으로 들어가기 전까지 여기에 머물러야 한다.
적의 집 안으로 들어가는 문이 열렸지만, 잘못해서 너무 빨리 열린 문이 닫히면 우리의 예상보다 훨씬 적은 숫자의 아군으로 언데드의 포위를 버텨야 하니까.
“그럼, 나중에 정글에서 뵙겠습니다.”
말을 마친 나는 후퇴하는 언데드의 뒤를 추격하며 병력들과 함께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도망치는 병력은 그 뒤를 추격하는 기마병에 대항할 방법이 없다. 그건 언데드라고 예외가 되는 건 아니다.
“어딜.”
뒤를 쫓는 우리를 향해 마법이 쏟아지지만, 엘렌을 비롯한 마법사들이 병력을 향해 날아오는 마법을 요격하고, 막아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의 희생을 완전히 막을 수는 없었지만, 적의 피해가 우리보다 크다는 건 자명하다.
“이 자식들, 적절하게 속도를 조절하고 있어.”
내 말에 옆을 달리던 클로에가 고개를 끄덕였다.
“유인하는 거예요. 언데드니까 가능한 수작이겠죠.”
자신들에게 큰 피해를 입힐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서, 병력을 희생하며 우리를 더 깊은 곳으로 끌어들이려 하는 거다. 사람을 부리는 지휘관이라면 어지간한 상황이 아니라면 감히 시도할 수도 없는 전략이다.
아군을 던져가면서 적군을 더 깊은 곳으로 끌어들인다니, 죽고 싶어 하지 않는 병사들이 그딴 지시를 따를 리가 없지.
“당해주자고. 어차피 그건 우리가 원하는 바야.”
우리는 깊게 들어갈 것이다. 미로스도 미리 배정해놓은 만큼의 병력이 전선을 뚫는 데 성공하면, 미련 없이 내가 향하고 있는 그린모스 늪지대로 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