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화
나와 클로에가, 검을 쥔 채 녀석에게 향했다.
“가장 뛰어난 전사라.”
카루토스 타카운에게로 향한 것은 우리 둘뿐이 아니라, 미로스도 포함되어 있었다. 기사단장이라. 엔더슨이 자신의 저택에서 뿜어냈던 힘은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다.
― 그래, 너희들이 올 것이라 생각했다, 너희들이어야만 했겠지.
휘둘러진 글레이브가 가장 먼저 나를 노렸다.
“커흡…….”
휘둘러진 글레이브를 막아내자 눈앞이 띵해지며 몸이 뒤로 쫙 밀려난다. 올라오는 토악질을 참으며 손등을 확인했다. 헤로스가 남긴 흉터는 빛을 흘리며 자신의 역할을 다하고 있다.
“약해진 게 저 정도라고?”
이 새끼, 군대는 뭐하러 여기로 불러들인 거야. 헤로스의 흉터가 없었으면 혼자서 여기 모인 병력을 다 찜 쪄 먹을 수도 있었을 것 같은데!
나를 공격한 틈에 미로스와 클로에가 카루토스 타카운을 노리고 쇄도한다. 녀석의 손에 들려있던 글레이브가 한 쌍의 검으로 변해, 각각 클로에의 레이피어와 미로스의 버디슈를 향해 휘둘러진다. 클로에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리고, 순간적으로 눈의 초점이 흐려진 채 몸을 비틀거린다. 미로스의 몸은 나와 마찬가지로 뒤로 쭉 밀려났다.
“아…… 아아!”
클로에의 레이피어가 다소 불안한 궤도를 그리며 내질러진다. 카루토스 타카운이 쌍검을 교차해 클로에의 공격을 막아냈다. 그 순간, 레이피어에서 폭발하는 것 같은 충격이 뿜어져 나온다.
― 흠.
카루토스 타카운이 뒤로 밀려나며 쥐고 있던 쌍검을 놓자 두 자루의 검이 다시 액체로 변하더니, 카루토스 타카운의 손을 휘감는 한 쌍의 건틀렛이 된다.
여전히 제대로 몸을 가누지 못하고 휘청거리는 클로에를 향해, 카루토스 타카운의 건틀릿이 휘둘러진다.
“야, 정신 차려!”
나는 분신을 만들어내 클로에의 가슴팍을 발로 찼다. 클로에의 몸이 뒤로 확 떠밀리고, 카루토스 타카운이 휘두른 건틀릿이 맨땅을 내려찍는다. 퍼억 하고 땅을 뒤덮은 진흙이 솟구쳐 흙기둥을 만들었다 가라앉는다.
“죄송해요. 한 번에 이렇게 많은 힘을 받아내 본 적이 없어서…… 계속하다 보면 적응할 수 있을 거예요. 아니, 그래야겠죠.”
말을 마친 클로에가 입가에 흘러내린 침을 소매로 훔친 다음 다시 레이피어를 손에 쥐었다.
“굉장하군.”
미로스는 그렇게 중얼거리고 버디슈를 다시 거머쥐고 카루토스 타카운을 향해 달려들었다. 카루토스 타카운의 양손을 감싼 건틀릿이 활과 화살통으로 변하고, 달려드는 미로스를 향해 화살을 쏘아낸다. 쿠쿠쿵, 하는 소리와 함께 미로스가 날아오는 화살들을 전부 튕겨내고 녀석의 앞에 도착한다.
“먼저 움직였어.”
건틀릿이 활로 변하기도 전에 미로스의 몸이 먼저 움직여 화살이 날아오는 경로를 막았다. 예지 같은 건가?
― 예지라. 그럼 한번 이렇게 어울려보자꾸나.
카루토스 타카운도 그걸 보고 대충 상황을 눈치챈 모양이다. 그리고는 갑자기 레이피어를 한 자루 꺼내 들더니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 속도로 미로스를 향해 폭풍처럼 공격을 쏟아낸다. 처음에 공격을 막아내던 미로스가 결국 가깝게 따라붙는 걸 멈추고 낮은 신음과 함께 뒤로 빠진다.
― 어딜 가느냐, 아직 전투 중이니 이리 오라. 어명이다!
레이피어가 채찍으로 변해 미로스의 가슴팍을 노리고 휘둘러진다. 나는 급하게 미로스와 카루토스 사이로 끼어들어 그 공격을 막아내며 카루토스의 뒤편에 분신을 만들었다.
쫘악, 하고 채찍이 검을 때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처음 견뎌냈던 글레이브만큼의 충격은 아니다. 무기에 따라 무게도 변하는 모양이다.
내가 분신은 카루토스의 건틀릿에 머리통이 잡혀 빠개졌다.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내 두개골이 시려온다.
“무식한 새끼.”
내 검과 녀석의 검이 서로 부딪친다. 마력을 돌리고 상상외의 충격에 대비했던 몸은 최초의 충돌처럼 멀리 밀려나지는 않았다. 카루토스 타카운의 검이 허공을 향해 내려 찍힌다.
“……이건.”
휘둘러진 검이 순식간에 녀석의 손안에서 글레이브로 변하고, 약간 뒤로 밀려나 검의 사정거리를 벗어난 내 머리 위로 떨어져 내린다. 휘둘러진 글레이브를 막기 위해 검을 들어 올렸다.
녀석의 손에 들려있던 글레이브가 내 검과 마주치기 직전, 다시 검의 형태를 취한다. 사거리가 줄어든 녀석의 무기가 허공에 휘둘러진다. 그러다 내 가슴팍 정도 왔을 때, 다시 글레이브로 변한다.
“크흐…….”
급하게 허리를 틀어 옆으로 피하자, 글레이브의 날이 내 가슴을 살짝 스쳤다.
망할, 저걸 맞았으면 산 채로 머리통만 멀쩡한 채 가슴부터 세로로 쪼개질 뻔했다. 소풍 도시락에 들어가는 문어 모양 소시지처럼!
“세 번이라니.”
무슨 경기장에서 애국기 휘두르는 것도 아니고, 사람을 죽이려고 휘두른 살벌한 공격이었는데. 그 짧은 틈 사이에 세 번이나 모습을 바꾸다니. 미로스와 클로에, 나까지 세 명을 상대로 카루토스 타카운은 전혀 밀리는 기색이 없어 보인다.
미로스가 틈을 노려 녀석이 내뻗은 글레이브를 발로 밟으려고 했지만, 곧바로 글레이브가 단검의 형태로 변하며 미로스의 발은 맨땅을 찍었다. 곧이어 카루토스의 단검이 미로스의 목덜미를 노린다.
“미로스 기사단장님!”
클로에가 레이피어의 끝으로 그동안 쌓아놓은 힘을 쏟아내자 순간적으로 카루토스의 몸이 휘청하고, 미로스가 뒤로 빠진다.
“로니세라 경, 고맙다.”
그 사이 미로스의 자리는 내가 대신해서 메꾸고, 검을 휘둘러 두 사람이 정비할 시간을 벌었다. 3대 1의 싸움은, 길항하며 이어지고 있었다.
“이대로는 사흘 밤낮도 싸워도 부족 할 것 같은데.”
― 그거 듣기 좋은 소리로군!
“닥쳐.”
살아 움직이는 썩은 시체랑 그 긴긴 시간을 치고받는다니. 생각만 해도 끔찍하네. 카루토스 타카운이 3미터는 될 것 같은 거대한 메이스를 어깨에 척 하니 짊어지고 나를 향해 쇄도한다.
당하지 않아도 확실하다. 저걸 막으려 들면 군화로 밟은 맛스타 깡통처럼 납작해질 거다. 옆으로 뛰어 피하는 동시에 카루토스 타카운의 돌격 속도를 조금이라도 늦추기 위해 분신을 연달아 쏟아냈다.
“허어.”
피하는 건 성공했지만, 땅을 내려찍은 철퇴에서 귀가 먹먹해지는 굉음과 함께 땅을 타고 퍼지는 지진 같은 충격에 머리가 띵해지고 몸이 휘청인다.
“저런 걸 어깨에 짊어지고 돌진하다 내려찍었는데 골격이 멀쩡하다니.”
끼니마다 아가리에 커다란 깔때기를 쑤셔 박고 트럭 단위로 멸치를 때려 박았나? 저게 어딜 봐서 4000년 묵은 시체의 내구도냐.
“저건 안될 것 같은데요.”
클로에가 긴장한 표정으로 휘둘러지는 철퇴를 피한다. 아무래도 저 철퇴가 가하는 힘을 전부 흡수할 수는 없는 모양이다. 스펀지도 용량이라는 게 있는 법이니까.
“공격 느려졌다고 방심하지마.”
저 묵직한 철퇴가 언제 또 레이피어나 단검 같은 가벼운 무기로 변할지 모른다. 봐, 또 창으로 바뀌었잖아.
세 명이라는 장점은 서로의 역할을 나눌 수 있다는 거다. 내질러지는 창을 피하며 한 번 반격을 쏟아낸 다음 뒤로 빠지며 헤로스의 머리통이 어디에 떠 있는지 확인했다.
적진에 떠 있던 헤로스의 머리통은 우리 진영으로 옮겨간 다음, 거의 5분 동안 변하지 않고 있었다. 이대로 싸우면 우리가 진다는 뜻이다. 변화가 필요하다.
“여기는 나와 클로에가 어떻게든 막아볼 테니. 미로스 경은 물러나서 다른 곳에 신경 써주시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
이건 결투가 아니라 전쟁이다. 전쟁에서 개인의 힘으로 바꿀 수 있는 범위에는 분명한 한계가 존재한다.
“괜찮겠나?”
“사실 괜찮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3대 1로 격돌해도 길항을 유지하는 게 고작이다. 여기에서 미로스가 빠져나가 2대 1의 상황이 되면 나와 클로에는 카루토스 타카운에게 흠씬 두들겨 맞을 확률이 높다.
“버텨봐야죠.”
미로스가 빠져나가야 한다. 미로스는 기사단장이자 지휘관이다. 그가 카루토스 타카운과의 싸움에서 벗어나 지원과 지휘를 담당하면 아군이 유리해진다.
물론, 나와 클로에가 카루토스 타카운을 이 자리에 묶어두는 데 성공한다는 전제하에 가능한 일이다.
“위험이 크다. 잘못하면 각개격파와 다를 것 없어.”
미로스의 판단도 틀리지는 않다.
우리가 실패해 카루토스 타카운의 손에 죽어버리면, 이후 미로스는 졸지에 저 괴물 같은 시체와 1대 1을 강요받게 된다.
“어차피 이대로 있어도 패배합니다.”
헤로스의 머리통이 저기에 떠 있으니까. 이대로 3대 1을 유지한다고 해도 패배하는 결과는 변하지 않는다. 내 말에 카루토스 타카운의 공세를 피하고 반격하며 억지로 주변을 살피던 미로스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다. 버텨다오.”
말을 마친 미로스가 카루토스 타카운과의 전투에서 이탈했다.
― 둘? 그걸로 충분할 거라 생각하느냐. 노리는 바는 대충이나마 알겠다만.
말을 마친 카루토스 타카운은 들고 있던 무기를 방금 봤던 거대한 메이스로 바꾼 다음 나를 향해 내려찍었다.
“우욱.”
메이스는 내가 서 있던 땅에 때려 박혔다. 방금 경험했던 그 충격이 다시 한번 나를 휩쓸었다.
땅을 내려찍은 카루토스 타카운이 다시 횡으로 크게 메이스를 휘둘렀다. 후웅, 하는 소리와 함께 밀려난 공기가 태풍처럼 내 몸을 휩쓸고 지나간다.
메이스는 휘둘러지는 도중 갑자기 활로 변해 나와 클로에를 노리고 화살을 연신 쏘아낸다.
“쫄지 마.”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고 나서 급하게 화살을 피하며 녀석에게 달려들었다. 활이 검으로 변해 내 검을 막아낸다.
― 네 녀석들이 노리는 바를 내가 모른다고 생각하지는 않겠지.
말을 마친 녀석이 나를 향해 발을 올려붙인다. 분신이 양팔을 겹쳐 그 공격을 막아내고 사라진다. 그 사이, 나는 왼쪽으로 도는 환상을 만들고 곧바로 검을 내질렀다.
카루토스 타카운은 별다른 고민 없이 소태도를 닮은 쌍검을 뽑아 들고 옆으로 도는 분신을 베고, 가슴을 노린 나의 찌르기를 막아냈다. 공격을 막아낸 카루토스는 주변을 훑어보고는 무기를 들고 다른 곳으로 이동하려 든다. 전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명확하게 인지하고 있는 모양이다.
미로스가 돌아다니면서 강력한 언데드를 제압하고, 마법사를 압박하는 언데드들을 정리하며 병력을 지휘하기 시작했다. 엘렌을 비롯한 마법사들이 전장에 쏟아내는 마법이 그만큼 안정을 되찾고, 안정을 되찾은 만큼 위력도 강해진다.
“그러지 말고, 놀다 가.”
다른 곳으로 향하는 카루토스에게 클로에가 따라붙어 레이피어를 내지르고 충격파를 터뜨린다. 카루토스가 슥 시선을 돌려 클로에를 확인하고는 소태도를 대검으로 바꿔 그녀를 향해 휘두른다.
나는 가죽끈으로 손과 검을 함께 동여매고 다시 달려들어 대검을 막아내며 억지로 웃음을 띠었다.
“그래 새끼야. 조금 더 놀다 가.”
그냥 놓아주려고 미로스를 뺀 게 아니란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