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드우드-115화 (115/275)

115화

목걸이? 나는 내가 제대로 들은 게 맞는지 의심하면서 대답을 돌려주었다.

“갑자기 뭔 소리를 하는 거야.”

내 말에 올리비에가 자기 입술을 혀로 핥았다. 뱀이 혀를 날름거리는 것 같은 모습에, 얼굴은 살짝 상기되어있는 꼴이 보고 있기 적당히 무서운데.

“싫어해? 그럼 지금부터 미리 좋아하도록 노력해두는 편이 좋아.”

무슨 이야기를 하나 했더니. 목걸이 채워놓고 개처럼 짖게 만들겠다는 야망이 있는 모양인데. 내가 아무리 그래도 거기까지 말리지는 않을 것 같다.

자기 할 말을 마친 올리비에는 기지개를 켰다.

“이제 크로케는 질렸어. 어차피 내가 이겼으니까 그만하자.”

“그거 좋네. 나도 질 게임 계속하는 건 싫으니까.”

올리비에는 곧바로 저 멀리 사라지기 시작한다.

“관심은 확실히 끌었군.”

저 여자는 이제 더 위험해질 거다. 위험해진 만큼, 판돈으로 스스로를 올리기까지의 시간도 단축되겠지.

“최소한 크로스 카운터.”

가장 좋은 건 올리비에는 책을 가져가지 못하고, 나는 루크 발리아노를 죽이는 거지만, 그게 어렵다면 올리비에가 책을 가져가고 나도 루크 발리아노를 죽이는 데 성공하거나…….

아니면 올리비에와 내가 둘 다 목적을 달성하는 데 실패해야 한다.

“정리는 대충 끝난 것 같네.”

“아, 크로케는 이기셨어요?”

클로에의 방으로 향하자, 서류를 정리하고 있던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난다.

바로 옆에 엘렌의 방이 있고, 나는 올리비에가 머무르는 방 바로 옆에 머무르게 된다. 필요한 자료들을 모아놓는 곳은 자연스럽게 클로에의 방으로 정해졌다.

“당연히 졌지.”

“당연히 진 건가요……. 아, 엔리코라고 하는 상인, 오늘 저녁에 만나 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나는 그 말에 대답했다.

“연빈관에서 만날 수는 없어.”

내 말에 클로에가 자랑스럽게 가슴을 약간 펴며 대답했다.

“엔리코의 저택에서 보기로 했어요. 따로 장소를 마련해봤자 어차피 귀에 들어갈 것 같았거든요.”

“잘했네.”

거기라면 확실히 방해받을 가능성이 가장 낮은 곳이다. 갑작스럽게 엔리코의 저택에 새로 고용한 하녀 같은 게 있을 리도 없으니까.

“연빈관을 지키던 호위 병력의 절반 정도가 인근에서 대기하는 걸로 변경되었으니까, 엔리코의 저택에 찾아가실 때 그들을 활용하면 좋을 것 같아서 세자 저하께 청을 올렸는데…….”

“갑자기 왜 일을 잘하는 거야, 무섭게.”

안 그래도 그건 내가 그녀에게 말하려고 했던 제안이다. 클로에가 나름대로 이런저런 고민을 했었던 모양이다.

“너무하네요, 제가 뭐 평상시에는 일을 못했던 것처럼 들리잖아요.”

“그런 건 아니고.”

저녁이라. 그럼 그사이에는 항구를 한번 가보는 편이 좋겠는데. 옷장을 살피던 나는 고개를 돌려 클로에를 바라봤다.

“이렇게 좋은 옷 말고, 좀 후진 옷이 필요한데.”

내 말에 클로에가 네? 하는 소리를 내고는 잠깐 고민하다 싶더니 대답했다.

“하인 중 체형이 비슷한 사람을 찾아내서 옷을 좀 빌릴까요.”

“그래 줘.”

잠시만요, 라는 말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난 클로에가 문을 나섰다. 그리고 다시 돌아왔을 때는 손에 옷을 한 벌 들고 있었다. 스웨터 비슷한 걸로 보이는데.

“세상에, 이거 몇 번이나 재생시킨 거야.”

이 스웨터에 사용된 양털은 나보다 더 나이를 많이 먹은 것 같다. 입어보니 촉감이 환상적이군.

“그나마 이것도 하인으로 일하고 있으니까 얻어 입을 수 있었을걸요.”

그래, 뭐…… 귀족과 다른 계층 사이의 넘을 수 없는 벽이라는 걸 옷에서 느끼게 될 줄은 몰랐다. 나는 잠깐 그 스웨터를 비롯한 복장을 이리저리 살펴본 다음 클로에를 바라봤다.

“옷 갈아입고 싶은데, 설마 구경하고 싶은 건 아니지?”

내 말에 클로에가 입을 쩍 벌렸다.

“그걸 입으시게요?”

“못 입을 건 뭔데. 필요한 일이야.”

나는 그렇게 대답하고 나서 손을 휘휘 저었다. 옷 갈아입는 동안은 방해하지 말고 나가 있어.

“저도 준비할까요?”

나는 클로에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이번에는 괜찮아.”

내 말에 클로에가 눈을 가늘게 떴다.

“테네스 공국도 칠색 내각의 손아귀 안에 들어있다고 할 수 있는데, 일신의 안전을 위해서는 제가 따라붙는 편이 좋지 않을까요.”

“지금 하려는 건 혼자 돌아다니는 편이 좋아. 엔리코의 저택으로 가기 전까지는 돌아오마.”

내 대답을 들은 클로에가 잠깐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이고 문을 나갔다. 나는 옷을 갈아입고 낡아빠진 모자를 눌러 쓴 다음 불이 꺼진 벽난로 쪽으로 가서 얼굴에 검댕을 이리저리 발랐다.

“좋아, 적당히 꼬질하구만.”

거울로 모습을 확인한 나는 곧장 은신을 사용한 채 연빈관을 나섰다. 목적지는 글림하트에 위치한 항구들이다. 각자의 용도는 다르지만, 결국 수입품을 내리고, 수출품을 싣는다는 점은 같다.

“항구라.”

바닷바람을 타고 밀려오는 비릿한 냄새, 파놓은 도랑 아래로 흘러내려 가는 물고기 대가리나 잔뼈 따위들, 저 멀리에 걸려서 해체를 기다리고 있는 커다란 고래 시체 따위들이 눈을 어지럽힌다.

저 멀리 모여 있는 때가 묻은 형형색색의 천이 걸린 건물들은 딱 봐도 오랜 기간 항해를 한 다음 돌아온 선원들의 몸과 돈을 품어줄 여자들이 머무는 곳이다.

“그 와중에 고아원이라.”

필로스케 사립 고아원, 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건물이 저 멀리 보인다. 나라에서 보조금 타내려고 대충 지은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시선을 고아원에서 다른 쪽으로 돌리자, 낡은 간판이 삐걱거리는 술집의 스윙도어 너머에는 문신을 팔뚝에 박아넣은 남자들이 독주를 들이켜고 있다. 저 안에 들어있는 사람들 중 몇 명은 땅보다는 바다 위에서 더 오랜 시간을 보내는 것이 분명해 보인다.

“여기가 좋겠네.”

모자를 한 번 고쳐 쓴 나는 스윙도어를 밀고 술집 안으로 들어갔다.

“…….”

가게 주인으로 보이는 중년이 다소 퉁명스러운 얼굴로 나를 바라본다. 바 테이블에 앉은 나는 다른 사람들을 잠깐 살피다가 같은 테이블에서 약간 떨어져 앉아있는 남자에게 시선이 멈췄다.

입고 있는 옷은 더럽지만, 헤진 부분은 보이지 않는다. 옷 여기저기 엉겨 붙어있는 하얀 가루는 바닷물이 말라서 그런 모양이다. 옷 등짝에 보이는 그물 자국, 해먹에서 잠을 자 버릇해서 생긴 흔적이다.

가만히 있는데도 불구하고 몸이 이리저리 흔들리는 중이다.

저건 술을 많이 마셔서 그런 게 아니라, 땅멀미다. 항구에서 짐을 나르는 일꾼은 절대 아니다. 옷 상태를 봐서는 그냥 배에서 막일하는 선원으로 보이지도 않고.

씹는 담배를 입에 넣고 질겅거리던 녀석이 바로 옆에 놓인 통에 침을 뱉고는 나를 슥 훑어본다.

“꼬맹아, 뭘 보냐?”

나는 그 말에 웃으면서 점장을 보고 말했다.

“저 아저씨가 먹는 걸로 한 잔 주세요.”

내 앞에 술잔이 놓이자, 담배를 씹고 있던 녀석이 히죽 웃었다.

“아가야, 시작부터 이걸 먹으면 다른 건 맛없어서 못 먹어.”

나는 그 말에 아하, 하는 소리를 냈다.

“역시. 술을 잘 아실 것 같은 느낌이었거든요.”

“당돌한 새끼.”

내 말에 녀석이 픽 웃었다.

“선원이신가요?”

내 말에 녀석이 어깨를 으쓱했다.

“선원이라니, 아가야. 이 몸은 갑판장이시다.”

“아, 저 알아요. 갑판장이면 그거잖아요. 선원들의 왕.”

내 말에 녀석이 히죽거린다.

“왕은 무슨. 띄워주기는.”

녀석이 그렇게 말하는 사이 나는 슬쩍 자리에서 일어나 녀석의 옆으로 다가갔다. 일단, 이 술집 안에 있는 녀석들 중 가치 있는 이야기를 가장 많이 할 만한 녀석이라는 판단이 섰으니까.

내가 옆으로 오는 것에 대해서 별다른 말이 없는 걸 보니, 허락이라고 봐도 되겠지. 자리를 옮긴 나는 술을 한 모금 마시고는 몸을 한 번 부르르 떨었다.

“와, 강하네요.”

내 말에 녀석이 쯔쯔, 하고 혀를 찬 다음 자기 잔에 있는 술을 싹 비웠다.

“고작 이런 걸 독하다고 해? 고추 떼버려라 인마.”

나는 그 말에 하하하, 하고 웃으며 머리를 긁었다.

“저도 더 자라면 선생님처럼 될 수 있을까요?”

내 말에 녀석이 나를 슥 훑어보고는 헹, 하는 소리를 냈다.

“배 생활은 할수록 느는 거야.”

“그렇겠죠, 선생님은 얼마나 배를 타셨는지…….”

내 말에 녀석이 대답했다.

“햇수로는 18년이다. 너만 할 때 배에 올랐어.”

나는 그 말에 눈을 빛내며 감탄했다.

“18년씩이나…… 굉장히 위험한 일일 텐데.”

녀석은 내 이야기를 들으며 빈 술잔으로 손을 가져가다가 멈췄다.

“아, 여기 선생님한테 한 잔 더 주세요.”

재빠르게 가게 주인으로 보이는 남자에게 말하자, 술이 다시 채워진다.

“제가 살게요. 우연히 돈푼을 주울 기회가 있었거든요.”

내 말에 녀석이 하! 하는 소리를 내고 나를 바라봤다.

“아서라, 애새끼 돈으로 술 먹다가는 바다 나가서 폭풍을 만나.”

“그런가요. 저기, 배를 그렇게 오래 타셨으면 바다 너머의 땅도 가보신 적이 있겠네요.”

내 말에 녀석이 흠, 하는 소리를 내고 턱을 괸 채 나를 바라봤다.

“뭐야, 그런 게 궁금했던 거냐.”

“지금은 상황이 안 좋아서 힘들지만, 꼭 배를 탈 생각이거든요. 먼저 성공하신 선원…… 아니지, 갑판장님을 만난 김에 조금 여쭤볼까 해서…… 안 될까요?”

내 말에 녀석이 팍 하고 내 등짝을 손등으로 때렸다.

“뭐, 언제나처럼 술 한잔하고 여자 주무르러 가는 것도 좋지만 가끔은 너 같은 당돌한 꼬맹이한테 옛날이야기 해주는 것도 재미있겠지!”

그리고 녀석은 자기가 알고 있는 것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원래 자랑을 좋아한다.

나는 슬쩍슬쩍 내가 원하는 이야기가 나오도록 추임새를 넣어가며 이름 모를 갑판장이 풀어놓는 썰을 듣기 시작했다.

“좋은 질문이구만! 그 이야기를 하려면 우선 내가 5년 전 배를 타고 카모스 섬으로 향했던 때의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겠는데…….”

이야, 이건 내 예상과는 상당히 다른 느낌인데. 내가 뭐 하나 툭 하고 던져주면 저쪽에서 그걸 가지고 10분이고 20분이고 쉬지 않고 이야기를 쏟아내기 시작한다.

세상에, 이 정도면 같이 배에 탄 선원들이 이야기를 듣다가 바다로 뛰어내리는 경우도 있지 않았을까?

약 30분에 걸쳐 이어지던 이야기는 마침내 익다 못해 물러터질 정도로 깊어지기 시작했다.

“물도 부족하고 먹을 것도 거의 다 떨어져서 갑판청소 할 때 바르는 기름이라도 먹어야 할 지경이었단 말이지. 선원들은 굶어서 빼짝 꼴았고, 항해사는 허둥지둥 어쩔 줄 몰라 하고, 선장은 그냥 멍하니 시퍼렇게 질린 바다를 바라보고만 있었어. 정말 나도 하늘이 노랗게 보일 정도로 지쳐가는데, 정말 이대로 내 배 생활은 종 치는구나 하는 생각부터, 이럴수록 내가 정신을 차리고 선원들을 다독여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의무감이 하루에도 수십 번 내 몸을 뒤흔들었지. 갑판장이라면 대다수가 나와 같은 생각을 할 거야. 그래서 말이지…….”

와 진짜 미친 건가? 나는 듣고 있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 같은 무수한 수다의 폭풍을 견디고 있었다. 지금은 내가 제대로 된 판단을 했다는 확신이 들지 않는다.

“그렇게 몇 날 며칠을 고생하다가 마침내 섬을 하나 발견했단 말이지. 그때 항해사가 외쳤던 말이 아직도 생생해. 젠장, 저긴 리마 섬이잖아! 우린 다 살았어!”

나는 틀리지 않았어. 리마 섬이라는 이름이 나오자마자 나는 침을 삼키고 눈을 빛냈다. 그 섬이 바로 루크 발리아노가 온갖 불법 작물을 재배하는 곳이다.

그리고…… 내가 제일 처음 물어봤던 질문에 대한 대답이기도 했다. 세상에, 몇십 분이나 있어야 대답을 들을 수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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