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드우드-128화 (128/275)

128화

로베르를 품에 안은 올리비에가 약간 들뜬 것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보고 싶었어요. 하루에도 몇 번이나. 당신 생각을 하는걸요.”

“올리비에 황녀 전하.”

올리비에는 그의 품 안에 안겨서 작게 중얼거렸다.

“이름으로 불러 달라고 몇 번이나 말했잖아요. 당신은 정말 제 말을 들어주지 않는군요.”

“올리비에. 나는 네가 쿠르스트 산맥으로 가는 걸 여전히 반대하고 있어.”

그 말을 들은 올리비에는 로베르의 품 안에 안긴 채 대답했다.

“어쩔 수 없잖아요. 사람은, 작은 소망 때문에 큰일을 벌이기도 하는 법이에요. 당신과 함께하고 싶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여기까지 왔어요.”

말을 마친 올리비에는 포옹을 풀고 약간 젖은 눈을 한 채 로베르를 올려다봤다.

“당신도 그렇잖아요 로베르, 내 사랑. 저와 함께하기 위해서 당신이 걸었던 길에 얼마나 많은 피가 뿌려져 있는지 알아요. 우리는, 용서받을 수 없는 일을 하고 있어요.”

올리비에가 작게 울먹거리기 시작한다. 로베르는 그런 올리비에를 바라보다가 손을 뻗었다. 올리비에는 그 손을 잡고 중얼거렸다.

“하지만 괜찮아. 조금만 더 노력하면 함께 할 수 있어요. 정말로 얼마 안 남았어요. 결코 잡을 수 없는 별과 같은 소망이었지만, 닿을 것 같아요.”

올리비에는 살짝 발꿈치를 들어 올려 로베르의 뺨에 입을 맞췄다.

“당당하게, 사람들 앞에서 나는 당신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는 날이 올 거예요. 그날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어요. 나는 쿠르스트 산맥으로 향해야 해요. 당신은, 당신 만큼은 저를 이해해주겠죠. 그렇죠?”

“그래, 이해해.”

올리비에가 그 말에 희미한 웃음을 띄웠다.

“고마워요, 사랑해요.”

로베르는 그런 올리비에를 바라보다가 그녀의 얼굴 쪽으로 자신의 얼굴을 천천히 향했다.

“안 돼요. 우리 약속했잖아요.”

그 대답을 들은 로베르가 올리비에의 얼굴 쪽으로 향하던 자신의 몸을 멈췄다.

“하지만, 이마는 괜찮을지도 몰라요.”

올리비에의 대답을 들은 로베르가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 눈을 감고 그 입맞춤을 받은 올리비에는 어두운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세상 사람들이 제가 하는 일을 알게 되면 뭐라고 할까요. 저를 향해 뭐라고 손가락질할까요.”

“나는 네가 저지른 일에 대해서는 잘 몰라. 하지만, 그 일은 우리의 미래를 위해서 한 일이잖아? 나는 그걸 알고 있으니 칠색 내각의 머리 중 하나가 된 거고.”

올리비에는 로베르의 말을 듣고 여전히 어두운 표정을 유지한 채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로베르는 그런 올리비에를 보다가 자기 가슴을 한 번 쿵 쳤다.

“그럼 괜찮아. 세상 사람들이 다 너를 욕해도, 나는 너에게 감사할 테니까.”

로베르의 말을 들은 올리비에가 약간 표정을 풀었다.

“그건…… 정말로 큰 위로가 되네요. 저기, 오늘은 자고 가지 않을래요? 같은 침대에서, 손잡고.”

그 말을 들은 로베르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미안한데, 참을 자신이 없어.”

“아, 그렇겠죠. 미안해요. 마음이 너무 앞서서.”

로베르는 그런 올리비에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이내 입을 열었다.

“마틴 레드우드라. 그 녀석이 지금 너와 나 사이를 막고 있는 거지?”

“네, 그 남자 때문에 일이 자꾸 어그러지고 있어요. 칠색 내각도 벌써 두 명이나 죽어버렸어요. 그 남자를 막아내지 못하면…….”

올리비에의 말에 로베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쿠르스트 산맥에서 그 남자는 죽을 거다. 맹세하지.”

“고마워요.”

대화를 마친 다음, 로베르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아직 해야 할 일이 있으니 나는 그만…….”

자리에서 일어나 돌아가려고 하는 로베르의 손을 올리비에가 붙잡는다. 로베르가 고개를 돌리고, 올리비에가 그런 로베르를 끌어안고 입을 맞춘다. 키스라기보다는 뽀뽀.

“너…….”

“미안, 하지만. 참을 수가 없었어요. 용서해줘요.”

일정 수준 이상의 육체접촉은 금지. 그런 이야기를 나눴었다. 올리비에는 황녀다. 두 사람이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이 커지기 시작하면 돌이킬 수 없는 선을 넘는 건 순식간이니까.

올리비에는 로베르가 여태껏 만나본 여자 중에서 가장 아름다울 뿐 아니라, 가장 똑똑한 사람이다. 돌이킬 수 없는 선을 넘는 순간 두 사람의 운명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저런 규칙을 정한 거다. 언젠가, 당당하게 함께 할 수 있는 때가 오기 전까지는 서로의 간절한 마음을 꽉 잡아두자.

“너도 실수를 하는군.”

“어쩔 수 없잖아요. 사랑하고 있는데. 하지만, 다음부터는 이런 일 없도록 할게요.”

로베르가 올리비에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올리비에는 눈을 감고 그 손길을 느꼈다.

“그럼, 내일 보자.”

“네, 내일 봬요. 아, 가기 전에 이거.”

올리비에는 로베르에게 손수건 하나를 건네주었다. 수가 놓여 있는 손수건이다.

“대단한 건 아니지만, 직접 한 거예요.”

[언제나 당신을 생각하며, 마음을 담아.]

그런 글귀와 함께 그려져 있는 노란색의 작은 하트. 로베르는 그 손수건을 바라본다. 슬쩍슬쩍 로베르의 표정을 살피던 올리비에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나중에, 나중에는 더 대단한 걸 준비할게요. 지금은 이런 것 밖에 못 주고, 심지어 이름도 못 새겼지만…….”

“나에게는 충분해. 고마워.”

올리비에의 입에 곧바로 웃음이 번진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로베르가 방을 나갔다.

“으으.”

닫힌 문을 바라보던 올리비에는 차갑게 식은 차를 입에 물고 가글을 한 다음 화분에 뱉었다.

그리고, 손수건에 알콜을 발라 입과 이마를 몇 번이나 문질러 닦았다.

“정말이지, 그 남자도 이렇게 쉬우면 얼마나 편했을까?”

아니지, 그럼 애초에 저거처럼 관심도 안 주었으려나.

* * *

쌓인 눈을 넘고 넘어, 나를 포함한 오십 명의 수색대가 빠르게 절벽을 오르고 있는 중이다. 빠르게 움직이면서 뻗치기 시작한 열이 고산지대에서 몰아치는 냉기를 밀어내기 시작한다. 추위는 느껴지지 않는다.

나는 뒤따라 올라오는 녀석들의 숫자를 확인했다. 뭐, 괜히 수색대에서 몇 년을 보낸 사람들이 아니니까, 뒤처지는 사람은 없었다.

“딱 맞게 도착한 것 같은데. 오늘 저녁 중에는 볼 수 있겠어.”

케스트렐 산머리로 향하는 제1관문을 나오게 되면, 녀석들은 이 주변에서 야숙을 하게 될 것이다. 이 근방에 2500이나 되는 병력을 머무르게 할 수 있는 장소는 별로 많지 않고, 여기는 그중에서도 썩 괜찮은 곳이니까.

“전원 도착했습니다. 주변에 순찰한 흔적이 약간 남아있는 걸 확인했습니다.”

뒤편에서 들어온 보고에 나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수색대가 관문 밖에서 활동하며 위협을 예방하는 것처럼, 제국에도 유사한 임무를 수행하는 부대가 있다. 우리가 머무르고 있는 이 장소는 바로 그 부대가 주로 돌아다니는 영역이다.

“산악 특전단이라.”

그렇게 중얼거린 나는 몸을 숨긴 채 대기하고 있는 수색대 병력들을 보며 히죽 웃었다.

“제국 녀석들과 우리 중 누가 더 뛰어날지 궁금한데. 오늘 결과가 나오겠군그래.”

내 말에 녀석들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자긍심이라고 할 것까지는 없지만, 우리가 더 잘났다! 라고 하는 라이벌 의식은 없을 수가 없다.

“그런 머저리들 따위에게 지지는 않을 겁니다.”

“그래야겠지. 어쨌든, 여기는 녀석들이 주로 활동하는 영역이다. 머무른 흔적을 은폐하는데 각별한 주의를 기울이고, 조금이라도 수상한 점이 있으면 바로 보고하도록.”

그리고, 올리비에가 차출한 병력들이 지나가기 전까지는 잠은 자지 못할 거다. 피로가 좀 쌓이겠지만, 50명이 피로를 쌓아서 2500명의 피로를 유발할 수 있다면, 교환비가 굉장히 좋은 편이다.

“조만간 적의 본대가 여기 도착하기 전에 먼저 주변 정찰을 위한 병력을 보낼 거다.”

말을 마친 나는 모여있는 녀석들을 보고 히죽 웃었다.

“각자, 내가 지정해준 위치에 도착해 대기할 수 있도록. 설마, 제국의 졸개 나부랭이들의 순찰에 걸리는 병신은 없겠지.”

대화를 마친 다음 우리는 재빠르게 흩어지기 시작했다. 너무 빠르게 움직일 수는 없다. 눈으로 뒤덮인 산맥은 한 발만 내딛어도 그대로 발자국이 남아버리는 까다로운 지형인 데다가, 날이 너무 추워서 몸을 숨길만 한 초목도 자라지 않는다.

천상, 몸을 숨길 방법이라는 것이 쌓여있는 눈 속으로 기어들어 가는 거 말고는 없다. 당연히, 시각을 통한 정찰도 눈에 파묻혀 있으면 제대로 될 리가 없다.

하지만, 소리로 충분하다. 2500명의 행렬이니까. 게다가 녀석들은 여기에서 숙영할 확률이 높다. 숙영지를 편성하는 동안 발생하는 소음을 놓치는 건 귀머거리 정도가 아니면 힘들걸.

점령전이라 그거지. 방어를 단단히 올린 상대를 엿 먹이는 가장 좋은 방법은 몰래 안에 들어가서 걸어놓은 빗장을 활짝 열어버리는 거다. 피해도 적고, 효과도 강력하지.

“이전에 들었던 방법이 있으니까.”

나중에는 그걸 한번 사용해보자고.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몰려오는 한기에 몸이 둔해지기 시작할 때 즈음이 되어서야 저 멀리에서 희미하게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는 모르겠지만…… 조금 더 기다리기 시작하자 저 멀리에서 망치로 못을 때리는 것 같은 소리가 무수히 울려 퍼지기 시작한다.

그 사이, 희미하게 주변에서 들리는 발걸음 소리. 주변에 이상한 점이 없나 찾아내는 중이다.

“끝났군.”

숙영을 위해 텐트를 치는 소리다. 계속해서 몇 시간이고 이어지던 텐트 치는 소리가 잦아들기 시작한다.

다시 시간이 흘러가기 시작한다. 발가락과 손가락을 꿈지럭거려보자, 얼어붙은 발가락과 손가락이지만 어떻게든 지시를 따라 움직여 준다.

아마, 눈 아래에 숨어있는 다른 녀석들도 이 이상 버티기는 힘들겠지.

“좋아, 지금이다.”

나는 온몸에 마력을 돌리며 눈을 박차고 밖으로 나와 입에 피리를 물고 힘껏 불었다. 날카로운 피리 소리가 어둠이 내려앉은 쿠르스트 산맥에 울려 퍼졌다.

곧바로, 나는 챙겨온 병을 꺼내 창에 단단히 묶은 다음, 비탈길 아래 보이는 숙영지를 향해 힘껏 집어 던졌다. 마력으로 강화된 창이, 그 끝에 묵직한 통을 달고 날아간다.

“너만 백린 쓸 줄 아는 거 아니고, 너만 그런 장난질을 칠 줄 아는 거 아니야. 이 여자야.”

백린을 만드는 방법 자체는 그렇게 어렵지 않다. 인산칼슘에 탄소와 규소를 살짝 가미하고, 그대로 약 2000도까지 가열하면 된다. 원래 이 정도 온도를 뿜어내고 유지하기 위해서는 용광로 정도는 있어야 하지만…….

마법은 두었다가 어디에 써먹겠어? 이런 데 쓰라고 있는 거지. 아마 올리비에도 이런 방식으로 만들었을 거다.

백린탄을 달고 날아간 창들이 퍽퍽거리며 박히고, 달려 있던 병이 크게 뒤흔들리며 생석회와 백린이 서로 뒤섞인다.

잠시 뒤, 유독한 연기를 뿜어내며 타오른다.

“기습이다! 전원, 대응 준비!”

숙영지에 긴급하게 울려 퍼지는 종소리와 함께 병사들이 급하게 움직여 장비를 챙기기 시작한다. 어차피 챙겨 온 창과 병이 많지는 않다. 두 번 정도 더 던지면 될 것 같은데.

“저건 또 뭐야.”

꽤 커다란 텐트에서 청백색의 갑옷을 입은 남자가 밖으로 뛰쳐나온다. 눈에 힘을 주고 보니, 딱 봐도 뭔가 범상치 않아 보이는 느낌이다. 녀석이 이리저리 주변을 살피나 싶더니, 내 쪽으로 시선을 딱 고정한다.

“네 녀석!”

목에 성대 대신 앰프를 박아넣었네. 저기에서 여기를 향해 소리치는데 어떻게 이렇게 또렷하게 들리는 거지.

그나저나 어떻게 본 거야. 눈이 엄청나게 좋은 건가?

나는 녀석들이 숙영지에 만들어 놓은 횃불이나 화톳불 덕분에 녀석을 알아차릴 수 있었지만, 녀석이 나를 알아차리는 건 굉장히 힘들 텐데.

“기사가 아니라 오페라 가수를 하지 그랬……?”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녀석이 병사가 들고 있는 창을 빼앗아 들더니, 그대로 투창 자세를 잡았다. 절로 코웃음이 나오는 풍경이었다.

저기부터 여기까지 거리가 얼마나 되는지 알면서 저러고 있는 건가?

나야 고지대에서 저지대로 창을 던졌으니 어렵지 않게 숙영지의 텐트에 닿았지만, 아래에서 위로 던지는 창이 여기까지 날아올 리가 없…….

쿠아아아아아, 하는 살벌한 소리와 함께 날아온 창이 급하게 고개를 돌린 내 뺨을 스치고 허공을 가른다. 창이 날아간 궤도를 따라 뒤늦게 터져나가는 공기가 내 몸을 뒤흔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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