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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우드-129화 (129/275)

129화

충격에 맞서 자세를 바로잡은 나는 허, 하는 소리를 내고 저 멀리 서 있는 녀석을 바라봤다. 나도 모르게 입을 약간 벌렸다.

너무 황당하잖아. 나는 투창용으로 제작된 창을 투창기를 통해 날려서, 그것도 고지대에서 저지대로 날려서 적의 텐트를 공격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저 녀석이 던진 건 그냥 던지라고 만든 창도 아니고, 찌르라고 만든 창이었다. 근데 그게 여기까지 날아온다고? 심지어 그러고도 힘이 남아서 허공으로 날아가 버렸잖아.

“저건 또 뭐 하는 새끼야.”

이게 말이 되는 거냐. 당하고도 믿을 수가 없네.

맨손으로 창을 던져서 이 행성의 정지궤도에 올려놓을 기세구나. 저건 위험한 녀석이다.

올리비에가 어디에서 또 괴물 하나를 찾아내서 자기 아래로 끌어들인 모양인데.

“도망칠 생각은 하지 마라!”

“으아아아, 오지마. 이 새끼야.”

내가 창을 피한 걸 확인한 녀석이 나를 향해 질주하기 시작했다. 발이 땅에 닿을 때마다 폭탄이 터지는 것처럼 사방으로 눈발이 흩날리고, 그 호쾌한 광경에 걸맞은 속도로 사람 가죽을 뒤집어쓴 미확인 괴생명체가 시시각각 나에게 가까워진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나에게 화가 많이 난 모양이다.

“예로부터 화난 녀석은 상대하는 게 아니라고 했으니까.”

녀석이 나를 향해 질주하는 사이 나는 입에 피리를 물고 재빠르게 몇 번 불었다.

뒤로 빠지자는 신호다. 피리를 불고 난 다음, 나도 마찬가지로 미친놈처럼 산비탈을 올라오는 괴물을 무시하고 뒤로 빠질 준비를 서두르기 시작했다.

저런 건 내 계산에 없었으니까.

“도망치는 거냐, 겁이라도 먹은 모양이지?!”

“당연히 겁먹지 미친 새끼야.”

방금 내 두 눈으로 기가 막힌 장면을 봤잖아.

“그렇게 두지 않는다! 너는 여기에서 죽는다, 마틴 레드우드!”

목소리가 너무 가까워서 고개를 돌려보니, 충분히 거리가 가까워진 녀석이 나를 향해 검을 휘두르는 중이었다.

어느 사이에 벌써 여기까지 온 거야?! 급하게 팔뚝의 브레이서에 마력을 불어넣자 보호막이 만들어졌다.

“어?!”

녀석의 검은 보호막을 아무렇지도 않게 박살낸 다음, 계속해서 나를 향해 뻗어 온다.

“흐읍.”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내 몸이 약간 뜬 채 뒤로 쫙 밀려난다. 보호막을 부순 이후의 참격이 이렇게 강하다니.

쌓인 눈 위에 검을 박아넣어 속도를 줄인 나는 입가를 훔치며 질문을 던졌다.

“혹시, 양친 중 하나가 하이랜더냐?”

내 질문을 들은 녀석의 얼굴이 험악하게 변한다. 패드립으로 이해한 모양이다.

굳이 따지자면 칭찬의 의도였는데.

“아, 기분 나빴으면 미안. 악의는 없었어.”

사과의 뜻으로 분신을 만들어 녀석을 향해 검을 휘두르게 했다.

“어……?”

분신의 공격은 너무나도 쉽게 녀석의 미간을 꿰뚫었다. 잠깐만, 이렇게 죽어버리면 방금 그 창을 보고 기겁했던 내가 병신이 되는 기분이잖아.

그래도 죽어줘서 고맙다.

뒤통수에서 이마 쪽으로 뚫고 나온 검은, 분신이 사라지자 함께 사라졌다. 검이 사라진 상처에서 뇌수와 피가 뒤섞인 액체가 흘러내려 눈이 쌓인 바닥을 적신다.

“미친.”

그리고, 바닥으로 흘러내린 피가 섞인 뇌수가 다시 빨려 들어가는 것처럼 녀석의 이마 속으로 밀려 들어갔다. 그리고, 검이 쑤시고 들어가며 만들어진 상처에도 순식간에 새살이 차오른다.

아무렇지 않게 구멍이 났었던 자기 이마를 매만진 다음, 녀석이 살벌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나를 죽이려면, 마력을 바닥내야 할 거다.”

알려 줄 필요는 없었을 텐데. 친절하기도 하지. 하지만 굳이 말해주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다. 단순무식에 끈질기기 짝이 없는 능력이군.

녀석은 오른손에는 뻘건 무늬가 새겨진 시미터를 들고, 왼손에는 금으로 장식된 상아색의 스틸레토를 쥔 채 자세를 잡는다.

그냥 상점에서 1+1으로 파는 물건은 아닌 것 같은데.

“이 시간에 피곤하지도 않냐? 그냥 다시 돌아가서 잠을 자는 건 어떨까?”

내 말에 녀석이 시미터로 나를 겨눈 채 대답했다.

“거절한다. 마틴 레드우드, 올리비에가 네 죽음을 원한다.”

“그거 다행이네, 나도 그 여자가 죽었으면 좋겠거든.”

“진지하게 상대하지 않으면 죽을 것이다.”

“……응? 죽일 생각이라며 병신아.”

죽여야 하는 대상이 방심해서 설렁설렁하는 것 같으면 기뻐해야지 왜 화를 내며 조언을 하고 자빠졌어? 이상한 녀석이네.

쿠쿵, 하는 소리와 함께 쉬지 않고 나와 녀석의 검이 서로 격돌하고, 분신이 나타나고 사라지기를 반복하며 녀석의 몸을 난도질한다.

하지만, 녀석이 입은 상처는 다 가짜라도 되는 것처럼 순식간에 회복된다.

“크읍…….”

“후우.”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우리는 자연스럽게 서로의 칼날이 마주한 채 힘 싸움을 시작했다. 그 와중에도 계속해서 만들어지는 분신들이 녀석의 몸을 후려치고 있었지만, 검게 변색된 피부는 도대체 무엇으로 만들어진 건지 도무지 피해를 주지 못하고 있다.

“이름이?”

힘은 나보다 이 녀석이 훨씬 더 좋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지금 서로 검을 맞대고 있다는 건, 녀석이 그러고 싶다는 뜻이겠지.

“로베르 그리즈만.”

이름은 기억해 둬야 할 것 같다. 녀석이 누군지 알게 된 나는 검을 통해 전해지는 힘을 견디며 억지로 웃음을 지은 다음 입을 열었다.

“원한다고 다 가질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걸 그 여자는 언제쯤 깨달으려나. 고집과 반항이 어린이의 특권이라면, 포기와 순응은 어른의 지혜인데.”

내가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 말을 한 모양이다. 내가 들고 있는 검에 확, 하고 가해지는 힘이 더 늘어나며 순간적으로 몸이 균형을 잃고 휘청인다.

그 틈을 타고 로베르가 나를 노리고 발차기를 날린다. 분신이 나타나 대신 맞아줬지만, 그 힘 때문에 나는 뒤로 약간 물러나야 했다.

“말을 함부로 하는군.”

“그런 경향이 없지 않아 있지.”

나는 히죽 웃으며 녀석을 슥 훑어봤다. 베로나 제국의 기사일 텐데. 그 여자를 황녀 전하가 아니라 올리비에라고 부른다니.

“뭔가 특별한 사이 같은데. 연인인가?”

내 말을 들은 녀석이 움찔한다. 그 꼴을 본 나는 한심한 표정을 지었다.

정정한다. 저 흐리멍덩한 꼬라지를 보아하니 그럴 리는 없겠군. 나는 허상을 만들어내며, 피리를 불어 신호를 보냈다. 다른 녀석들은 다 철수했는지 궁금해서 날린 신호다.

“개수작 부리지 마라!”

잠깐 사이에 쏟아진 여덟 번의 참격이 내가 만들어낸 허상을 작살낸다. 그 사이 뒤로 빠져 있던 나는 숨을 몇 번 몰아쉰 다음 달래는 것 같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아이고 총각. 좀 살살해. 그러다 허리 상하겠어.”

입은 쉬지 않고 떠드는 중이지만, 사실 굉장히 긴장된다. 녀석과 격돌하면서 내 몸에 생긴 생채기가 한두 개가 아니다.

싸움 실력은 슬프게도 이 녀석이 나보다 훨씬 더 우위에 있다. 시간을 끌 수는 있겠지만, 이대로 계속 싸우면 내가 질 거다.

이 정도면 기사단장인 모리스 핀들턴이랑 싸워도 이기는 거 아니야?

나이를 먹을수록 강해지는 이 세상의 뒤틀린 밸런스를 생각해보면, 이 자식이 모리스 핀들턴과 동갑이 되면 분명히 지금보다 더 강해지겠지.

그때, 희미하게 내 귀를 간지럽히는 피리 소리, 미리 내정했던 합류 지점까지 무사히 이동한 모양이다.

“그럼 이제 나도 슬슬 도망쳐볼까.”

“허락하지 않는다.”

“허락받고 도망치는 병신이 세상에 어디 있냐.”

내가 도망은 또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거든. 잘 있어라. 아마 불가능할 것 같지만 다시 보지 말자. 계속해서 뒤로 밀리고 있던 내 뒤편에는 깎아낸 것 같은 절벽이 자리 잡고 있었다. 나는 곧장 그 아래로 떨어진 다음, 계속해서 아래로 추락하는 허상을 만든 다음 절벽에 검을 박아넣고 은신을 사용했다.

“젠장맞을 자식, 놓치지 않는다!”

그리고, 녀석은 별다른 고민도 하지 않고 추락하는 내 허상을 향해 뛰어내렸다.

“별 미친놈 다 보겠네.”

검을 뽑아 들고 허상을 향해 추락하는 녀석을 보고 그렇게 중얼거린 다음, 나는 은신을 풀고 절벽을 기어올랐다.

“으아아아아아!”

절벽 아래에서 울려 퍼지는 분노에 가득 찬 함성. 도망에 성공한 사람 입장에서는 너무나도 듣기 좋은 소리다. 나는 휘파람을 불며 주변을 살핀 다음, 다른 수색대 병력과의 합류점으로 향했다.

“마틴 레드우드 님. 다음 급습은 언제쯤 하실 예정입니까?”

합류 지점에 기다리고 있던 병력 중 하나가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급습은 취소한다. 복귀하자.”

저쪽에 좀 멍청하지만 힘은 장사인 좀비 킹콩이 하나 있어. 내가 혼자 감당하기에는 버거운 녀석이다.

올리비에가 뭘 믿고 이런 산골짜기에 2,500명이나 되는 병력을 이동시켰는지 궁금했는데, 이제는 알 것 같다.

저런 게 떡하니 자리 잡고 있다면 소수 병력을 활용해 미리 피로도를 쌓아놓는 게 보통 힘든 일이 아니지.

“그렇습니까, 알았습니다.”

함께 온 병력들은 내 지시에 군말 없이 따라주었다. 이게 다 그동안 세워놓은 공적 때문 아니겠어? 그냥 똥 싸고 닦을 휴지가 다 떨어져서 돌아가자고 했어도 철석같이 무슨 이유가 있어서 복귀하는 거라고 생각하겠지.

병사들에게 복귀에 관한 이야기가 전달되고, 우리는 다시 왔던 길을 며칠에 걸쳐 되짚어 돌아가, 본대가 머무르고 있는 숙영지에 도착했다.

“예상보다 복귀가 훨씬 빠른 것 같은데.”

다시 돌아온 나와 수색대의 병력을 보고, 알버트가 약간 의외라는 표정을 지은 채 나를 바라봤다.

“로베르 그리즈만, 누군지 알고 있습니까?”

내 말에 알버트가 ‘음…….’ 하는 소리를 내고 고개를 저었다.

“아니, 처음 듣는 이름인데.”

모른다고? 다른 녀석도 아니고 첩보국장이라는 녀석이 모른다는 대답을 하다니. 나는 녀석의 대답을 듣고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그 녀석 하나 때문에 진행하려고 했던 계획을 취소하고 돌아와야 했습니다. 나이는 이제 서른 초반, 아니면 스물 후반으로 보이는 남자인데 실력은 핀들턴 경을 이기지 않을까 싶을 정도에요.”

내 말에 알버트가 눈을 껌벅거리다가 허어, 하는 소리를 냈다.

“이봐, 자네가 말하는 핀들턴 경이라는 사람이…….”

“생각하고 계신 그분 맞습니다.”

완전 걸어다니는 재앙 수준이던데, 그런 녀석을 첩보국에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건 올리비에가 이 남자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수를 써두었다는 뜻이다.

“바로 그 남자에 대한 조사를 시작해야 하나?”

나는 그 말에 고개를 저었다.

“그 남자의 조사를 위해 뺄 인원이 있으면 빨리 산맥으로 오라고 하세요.”

여기도 지금 인력이 여유로운 편이 아니다. 이런 상황이면 천상 로베르 그리즈만은 내가 상대해야 할 것 같다.

“그래도, 전쟁은 혼자 하는 게 아니야.”

나는 알버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그리고 적이 우리보다 더 많은 병력을 챙겨서 쿠르스트 산맥으로 향했죠.”

“증원병력을 더 준비하겠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 세워져 있는 막사 안으로 향했다. 그래도, 영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녀석은 뛰어난 기사일지는 몰라도, 머리를 굴리거나 뒷구멍으로 호박씨 까는 재능은 영 없는 것 같다.

“머리를 굴려서 그 여자를 어떻게 하는 건 힘들겠지만.”

아래에서 지시를 수행하는 졸개 녀석들이라면 가능하다. 아무리 올리비에가 경고하고 대비를 한다고 해도, 그녀가 모든 일에 직접 나설 수는 없을 테니까.

라하둔 꽃을 태워버렸을 때와 같다. 그 여자에게 개수작 부리는 건 잘 통하지 않으니, 수작을 부릴 거라면 주변에 있는 덜떨어진 녀석들을 타겟으로 삼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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