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8화
이 친구를 그리운 집으로 어떻게 날려 보낼지는 정했으니, 이제 실행할 일만 남았다. 녀석과 검을 주고받으면서 조금씩 발리스타 쪽에 가까워지며, 발리스타를 발사하는 병사들의 모습을 확인한다.
퉁, 하는 소리와 함께 발리스타가 거대한 창을 날려 보낸다. 병사들이 다시 새로운 창을 발리스타에 끼워 넣고 장전을 마치자 나는 로베르의 공격을 정면에서 방어하고 뒤로 쭉 밀려나는 시늉을 했다.
“히익.”
“물러나!”
근처까지 다가온 내 모습을 확인한 병사들이 당황한 표정을 짓고 나를 바라본다. 곧바로 나는 물러나라는 명령을 내렸고, 병사들은 자신의 목숨 보전을 위해 내 지시를 순순히 이행했다. 좋아, 이제 발리스타는 장전이 끝났다.
남은 건…….
나는 로베르와 싸움을 이어가면서 녀석의 시선을 피해 연거푸 분신을 만들어 발리스타에 장전된 창끝에 밧줄을 단단히 묶었다. 그 사이에도 로베르는 나를 향해 쉬지 않고 공격을 쏟아냈고, 나는 꽤 많은 상처를 입은 채 녀석과 대치하기 시작했다.
“큰소리한 것치고는 볼품없군.”
내 몸 상태를 확인한 로베르가 승기를 잡았다는 듯이 환한 미소를 한 번 지은 다음 다시 나를 노려본다. 나름대로 방심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되새기는 모양인데.
나는 발리스타 옆에 서서 히죽 웃었다.
“방심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하고 싶었으면 조금 더 일찍 하는 게 좋았을걸.”
“이건……!”
그사이 나는 계속 분신을 만들어 발리스타의 창과 연결된 밧줄을 녀석의 발목에 살짝 걸어두는 데 성공했다. 뒤늦게 자기 발목에 걸린 밧줄을 확인한 로베르가 밧줄을 향해 검을 휘두른다. 검이 휘두르는 경로에 누워있는 분신이 나타나 로베르의 참격을 막아내고 사라진다. 그 사이, 나는 발리스타의 시위를 고정해두고 있는 잠금장치를 풀었다.
“잘 가라. 멀리 안 나간다.”
창은 밧줄을 꼬리에 단 채 허공으로 쏘아져 나간다. 그리고, 발목이 그 밧줄과 연결된 로베르의 몸도 덩달아 붕 떠서 발리스타의 창과 함께 성벽 밖으로 훨훨 딸려 날아간다.
“마틴 레드우드으으으으! 이것이 끝이라고 생각지 마라!”
녀석은 하늘을 향해 날아가면서 그런 외침을 남겼다.
“지랄도 참 다종 다방면으로 한다. 네가 무슨 만화영화에 나오는 악당이냐?”
듣고 있는 내가 다 창피할 지경이네. 저 멀리까지 날아가는 로베르의 모습을 바라보던 나는 다시 시선을 돌렸다. 로베르는 제거했으니, 다음으로 해결해야 할 건 그 와중에도 계속해서 하늘에서 떨어져 내리는 하이랜더들이다.
클로에가 언데드 하이랜더 세 마리와 함께 치고받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곧장 그곳을 향해 달려가서 휘둘러진 언데드 하이랜더의 공격을 막아내며 말했다.
“고생했다.”
내 말을 들은 클로에가 언데드 하이랜더의 가슴 위에 손을 올리고 충격파를 뿜어내며 대답했다.
“더 고생해야겠죠?”
“그럼 이 판국에 돌아가서 목욕이라도 할 생각이었냐?”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에도 클로에가 공격을 막아내면 내가 언데드의 숨통을 끊고, 반대로 내가 공격을 막아내면 클로에가 언데드의 몸을 박살 내는 식으로 쉬지 않고 언데드가 되어버린 하이랜더들을 처리한다.
“내기하실래요? 누가 더 많이 잡나?”
“얼씨구, 전쟁이 장난이냐.”
내 말에 클로에가 대답했다.
“투지를 끌어올리기 위한 간단한 내기 같은 거예요.”
나는 그 말에 혀를 차고는 대답했다.
“내기라면 판돈도 있겠지.”
내 말에 클로에가 대답했다.
“제가 이기면 한 일주일 정도 쉬게 해주세요.”
나는 그 말에 코웃음을 쳤다.
“휴가라. 이번 기회에 아주 그냥 평생 쉬게 해버릴까?”
내 말에 클로에가 도발하는 것 같은 표정과 함께 하이랜더의 머리통을 박살 내며 말했다.
“마음에 안 들면 이기시면 되잖아요?”
“내가 이기면 뭘 얻는데.”
내 말에 클로에가 대답했다.
“예전에 제안하셨던 거 기억하세요? 첩보국 나와서 마틴 님 아래에서 일하라고 하셨잖아요.”
나는 그 말에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건 네가 스스로 의지를 가지고 정해야지. 내기 판돈으로 써먹으라고 생각할 시간을 충분히 준 건 아닌데.”
내기에 이겼기 때문에 클로에가 내 아래로 들어온다니.
나는 그런 그림을 원해서 클로에가 해당 제안에 대한 대답을 아직까지도 안 보채고 기다리고 있었던 게 아니다. 내 말에 클로에가 대답했다.
“이게 제 결정이에요.”
“그러셔?”
그렇게 말하는 클로에의 표정이나 행동을 보아하니, 어차피 내기에서 진다고 해도 내 밑으로 들어오기로 마음먹은 모양이다.
뭔가 다른 의도가 있어서 한 제안이라기보다는…….
그냥, 아래에서 일하겠다는 말을 하기는 좀 부끄럽기 때문에 저런 제안을 한 것 같은데.
“좋아, 네 결정이 그렇게 되었다면 따라주는 게 또 예의겠지.”
“그럼 합의 본 거죠? 시작할게요.”
대충 합의를 마친 우리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언데드 하이랜더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어차피 클로에는 첩보국을 나와 내 아래에서 일하겠다고 결정을 내린 상황이라고 생각된다. 그렇다면 어차피 개고생했으니까 이 일 끝나고 나서 휴가나 선물해주는 편이 좋겠지. 굳이 멱을 따놓은 언데드 하이랜더의 숫자를 착실하게 셈할 생각은 없다. 적당히 속이면 되겠지.
그렇게 다섯 시간이 지났다.
“이건 내기 같은 게 문제가 아니잖아.”
언제까지 쏠 생각인 거야. 저 자식들은. 이마에서 줄줄 흘러내리는 땀을 훔치며, 나는 쓰러진 언데드 하이랜더의 몸에 박힌 검을 뽑아냈다.
“적이 물러난다!”
마침내, 성벽 위에서 그런 외침이 울려 퍼졌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늘에서 떨어지는 언데드 하이랜더의 공습은 멈추지 않고 있었다.
“……언데드라 이거지.”
잠을 자지 않고, 먹지도 않는다. 그냥 던져놓으면 본능적으로 움직여 주변에 존재하는 산 사람들을 공격하는 언데드 하이랜더들. 투석기만 계속해서 날릴 수 있으면 성벽을 넘겨 날려 보낼 숫자는 얼마든지 있으니, 후퇴한 다음에도 계속해서 하이랜더들을 날려 보내 우리의 휴식 시간을 빼앗을 생각인 모양이다.
적 병력이 퇴각했다고 해도, 이렇게 계속 언데드 하이랜더들이 공세를 지속한다면 아군의 피로는 누적될 거다. 이미, 성벽 위의 병력과 성벽 아래의 병력들 표정에는 피로가 한가득하다.
“이건 무조건 투석기를 처리해야겠는걸.”
이대로 가면 다음의 공세를 막아내는 데 성공한다고 해도 결국 언젠가는 무너질 거다. 그리고, 그 무너지는 순간은 블루핸드 성과 안타리아 관문의 병력이 도착하기 전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헤로스의 해골이 계속해서 적의 머리 위에 떠 있었으니까.
“결국 성 밖으로 나가야겠군.”
성안에서 투석기를 망가뜨리기는 굉장히 어렵다. 저 정도 거리에 있는 장비를 요격할 수 있는 건 아군의 투석기나 발리스타 정도뿐인데 적도 이 싸움의 핵심이 투석기로 날려 보내는 언데드 하이랜더라는 걸 알고 있는 이상, 그런 시도에 대한 방어는 준비해두었을 거다.
“그래도 한번 날려보는 편이 좋겠지.”
나는 투석기를 다루는 병력들에게 지시해 적의 투석기 쪽으로 돌을 쏘아 보내게 했다. 쏘아진 투석기의 돌은 곡선의 궤도를 그리며 적군의 투석기를 향해 날아갔지만, 허공에서 뭔가에 부딪혀 바닥으로 떨어진다.
“방어막 같은 건가.”
투석기의 돌을 막아내고도 별다른 탈이 없는 걸 보니 애를 많이 썼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다.
“엘렌 리버플로우를 여기로 좀 데려와라.”
병사가 내 말을 듣고 경례를 올린 다음, 곧바로 엘렌을 데려왔다.
“왜, 무슨 일이야?”
“적의 투석기는 우리 쪽에서 날려 보내는 투석기의 돌을 막아내는 방어막을 쳐놓은 모양인데. 우리는 못 하는 거냐?”
우리도 방벽을 만드는 데 성공하면 지금 이 와중에도 날아오는 언데드 하이랜더의 접근을 차단할 수 있을 텐데. 내 말에 엘렌이 대답했다.
“우리가 방어막을 쳐야 하는 범위는 이 장벽 전체잖아. 설사 방어막을 둘러친다고 해도 투석기가 쏘아 보내는 언데드 하이랜더들을 막아낼 수 있는 수준의 내구도는 절대로 만들 수 없어.”
적은 투석기만 보호하면 되지만, 우리는 그게 아니니까. 엘렌이 불가능한 일이라고 단언한 이상 어쩔 수 없지.
“저 방벽 너머로 사람이 들어갈 수는 있어?”
이번 질문에는 엘렌이 긍정적인 대답을 돌려주었다.
“문제없어. 보호막의 유지를 위해서 정해진 최소한의 충격 이상의 공격이 가해져야 보호막이 발동하도록 만들어 놓은 모양이니까.”
즉, 사람이 통과하는 데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는 뜻이다. 그럼 어쩔 수 없지.
“오늘은 성을 한번 빠져나가야겠군.”
내 말에 엘렌이 잠깐 나를 바라봤다.
“그 여자도 예상하고 있을 것 같은데.”
나는 그 말에 대답했다.
“괜찮아. 그 여자가 내 목적을 예상한다고 해도 과정은 예상하지 못할 테니까.”
목적을 아는 것만으로 모든 일을 막을 수 있다면 암살 위협을 받은 사람들이 죽을 리가 없지. 과정을 모르면 막을 수가 없는 법이다.
아직 올리비에 황녀는 나에 대해 모르는 점이 꽤 있다. 그리고 그중 한 가지가 바로 내가 그렇게 기를 쓰고 숨기던 은신 능력이다. 올리비에가 준비를 아무리 잘해놓았다고 해도 한 번도 그녀의 귀에 들어갈 수 있는 상황에서는 은신을 사용한 적이 없으니, 그녀도 은신에 대한 대비는 해놓지 않았을 것이다.
“방법이 있다는 건 알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쉬운 일이 되는 건 아니야. 애초에, 수비도 굉장히 삼엄할 거 아니야. 까딱 잘못해서 실수하면 너는 적진에 혼자 방치되는 거야.”
엘렌은 내 표정을 보고 그렇게 중얼거렸다.
틀린 말은 아니다. 굉장히 어려운 작업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다 실수를 해 들키게 된다면 당연히 적들이 나를 포위하고 포기할 때까지 계속해서 두들겨 팰 것이다.
“그건 그렇지만, 달리 방법 있어? 그렇다고 아군 병력이 성문을 열고 투석기를 향해 돌진할 수는 없는 노릇이잖아.”
내가 가서 해결하는 거 말고는 달리 뾰족한 방법이 보이지 않는다. 내 말을 들은 엘렌이 후우, 하고 숨을 내쉰 다음 고개를 끄덕였다.
“틀린 말이 아니라서 뭐라고 하지도 못하겠네. 어차피 나는 마법 관련 분야의 조언을 할 뿐이고, 병력을 지휘하는 사령관은 아니지. 미로스 제커빌 기사단장과 이야기를 나눠봐야 할걸.”
나는 그 말에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 곧바로 미로스 제커빌에게로 향했다.
“젠장, 이 자식들 멈추지를 않는군.”
적이 물러난 다음, 미로스 제커빌도 지휘를 잠시 멈추고 성벽 아래로 내려와 투석기를 통해 날아온 언데드 하이랜더들을 상대하고 있었다.
“잠시 시간 있으십니까?”
“조금만 기다리게!”
그 말과 함께 미로스 제커빌이 버디슈를 휘둘러 언데드 하이랜더를 반으로 짜개버리고 나를 돌아봤다.
“마틴 레드우드, 무슨 일인가?”
“언데드 하이랜더를 상대하는 것도 좋지만, 저 투석기를 어떻게 하는 게 근본적인 해결방법 아니겠습니까.”
내 말에 미로스가 후우, 하는 소리를 내고 버디슈의 끝으로 땅을 한 번 쿡 찔렀다.
“나도 그걸 모르는 건 아니야.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성벽을 열고 병력을 내보내 투석기를 공격할 수는 없지 않나. 그건 본말전도야.”
“금일 밤 중으로, 제가 한번 몰래 적들의 투석기를 노려보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