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화
별로 어려울 것도 없는 질문이었기에, 나는 곧장 대답했다.
“하이랜더는 우리와 같은 종류의 식사를 하지 않아도 한참 버틸 수 있습니다.”
내 말에 미로스가 다소 당황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적의 주검을 뜯어먹겠다는 뜻인가?”
나는 그 말에 대답했다.
“아니요, 하이랜더들은 우리가 소화시킬 수 없는 나무도 섭취해 소화할 수 있습니다.”
꼭 그런 걸 해야 하는 건 아니다. 쿠르스트 산맥에서 하이랜더들에 대해 파악할 당시 알아낸 것 중 하나가 바로 저거다. 하이랜더들은 우리가 먹는 음식을 섭취해야만 하는 건 아니다. 길가의 풀을 뜯어 먹으며 전진하라는 정신 나간 개소리가, 하이랜더들에게는 개소리가 아니라는 거다.
실질적으로 우리가 챙겨가야 하는 식량은 나와 클로에, 엘렌이 먹을 분량만 있으면 된다. 천오백의 하이랜더가 세 명이 섭취할 만한 보급품을 챙겨서 움직이지 못할 리가 없다.
“그건 몰랐군. 그렇다면, 보급 면에서는 확실히 걱정할 필요가 없어.”
나는 국경 수비대 사령관을 바라봤다.
“국경 수비대 사령관님, 저는 사령관님과 함께 온 국경 수비대 병력들의 경험과 장비를 믿고 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수색대의 병사들은 대부분 하이랜더를 상대해 본 경험이 나보다도 훨씬 많다.
거기에 더해 관문 수비대가 사용하는 대 하이랜더용 발리스타를 비롯한 온갖 장비들을 고려해본다면 언데드로 변한 하이랜더들이 성문을 나와 공격한다고 해도 충분히 버틸 수 있을 것 같은데.
“…….”
사령관이 잠깐 자신이 가져온 서류와 함께, 미로스에게 이런저런 서류들을 요청해서 찬찬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냉정한 판단을 부탁드립니다. 본대가 버텨주지 못한다면 하이랜더들을 뒤로 돌릴 수는 없습니다.”
솔직하게 말해봐. 우리가 없어도 막아낼 수 있을 것 같아? 아니면 그냥 두들겨 맞아서 개박살 날 것 같아?
한동안 고민하던 국경수비대 사령관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언데드가 된 하이랜더들은 그 움직임이 일반적인 하이랜더들에 비해 약한 편이군. 숫자가…… 약 일만오천이라. 상당한 피해를 감수해야겠지만, 완전히 불가능한 요구는 아닙니다.”
국경 수비대 사령관의 말을 들은 미로스가 턱을 쓰다듬었다.
“상당한 피해라. 어느 정도를 예상하고 있나?”
“글쎄요. 크게 잡으면 일만에서 일만오천 정도의 피해를 각오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다만, 코랄린 관문을 뚫기 위해 소모전을 벌이는 것보다는 피해가 적을 것 같습니다.”
미로스가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틀린 말은 아니군. 혹시, 다른 의견들이 있다면 더 이야기해보도록 하게.”
그 후로 밤까지 이어진 회의가 마침내 일단락되었다. 나와 엘렌, 클로에를 포함한 일천오백 정도의 하이랜더는 코랄린 관문 앞에 도착하면 곧바로 산을 넘어 관문의 뒤에 자리 잡을 거다.
그 사이, 국경 수비대의 병력과 아리아 장벽의 병력은 서로 연합해 코랄린 관문을 두들긴다. 하이랜더들이 보이지 않는다면 오히려 역공을 가할 수도 있으니, 그에 대한 대비를 한다.
하이랜더들이 넘어가는 데 성공하고, 적의 역습을 막아내는 데 성공하면 목표는 달성한 거다. 이야기를 듣고 있던 간부 중 하나가 입을 열었다.
“어차피 전장의 상황은 격변하는 법입니다. 일단은 마틴 레드우드의 제안에 기반해 작전을 세우고, 코랄린 관문에 도착한 이후 변경할 점이 생긴다면 수정하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
미로스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도록 하지. 국경 수비대의 간부들은 안 그래도 피로가 누적되어 있을 테니, 이 이상 회의를 길게 끄는 건 좋지 못하겠군.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겠네.”
말을 마친 미로스가 자리에서 일어나 국경 수비대 사령관과 함께 나갔다. 간부들이 남아서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병사 하나가 들어와서 경례를 하고 입을 열었다.
“소박하게나마 국경 수비대 병력들을 위한 환영회를 준비했습니다. 미로스 기사단장님의 지시에 따라 술은 제공해드릴 수 없지만, 음식은 충분히 준비했으니 사양하지 마시고 즐겨주시기 바랍니다.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우리는 병사들의 안내를 받아 마련된 장소로 향하기 시작했고, 그 사이 클로에가 입을 열었다.
“제국군이 우리의 계획을 예상하지는 않을까요?”
“그럴 수도 있지.”
내 말에 클로에가 다소 심각한 표정을 하고 나를 바라봤다.
“그럼 위험하잖아요. 잘못하면 이전에 전멸한 오천의 병사처럼 될 수도…….”
나는 그 말에 픽 웃었다.
“그럴 수는 없어. 코랄린 관문 근처에 자리 잡은 산은 그 기반이 돌이야.”
땅을 파서 육괴를 묻어놓는 식의 개수작을 부릴 수는 없다. 그리고, 산에서의 기동력은 하이랜더들이 인간에 비해 압도적이다.
심지어 국경 수비대의 수색대조차도 하이랜더들만큼 빠르게 움직이는 건 힘들다.
“올리비에는 아리아 장벽에서 저지른 실수 때문에 땅을 치고 후회하는 중일걸.”
덕분에 하이랜더를 게릴라식으로 운용하는 게 가능해졌다. 한번 싸움이 시작되면 멈추지 않는 광전사가 아니라, 막강한 무력을 가진 특공대로 변해버린 거다.
“그래도, 분명히 대비는 해두고 있을 거예요.”
“그건 네 말이 맞아.”
대비가 되어있겠지. 산을 쉽게 넘어가도록 두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뭘 준비했는지 확인하는 게 우선이야.”
극복할 방안이 보인다면 산을 넘으면 되고, 그게 아니라면 다른 방법을 생각해야 한다.
“땅굴이라도 파버릴까요?”
클로에의 말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코랄린 관문 근처는 땅을 파면 나오는 게 죄다 돌이야.”
그 관문에 해자나 공호를 파놓지 않은 게 아니라 파기만 하면 나오는 게 돌덩이들뿐이라 만들 수가 없었던 거다. 땅굴을 파서 성벽을 넘는 건 불가능하다.
“아니면 염전은 어때요.”
“폭우로 소금 농사가 망한 걸로 아는데.”
내 말에 클로에가 음, 하는 소리를 냈다.
“그래도 이미 생산되었던 소금들은 창고에 보관하고 있을걸요. 폭우라고 해도 소금을 보관하는 창고니까 수해에 대한 대비는 충분히 되어있을 테고.”
클로에의 말에 나는 손을 휘휘 저었다. 언데드에게 소금의 효과가 좋다는 건 이미 증명된 사실인데. 올리비에가 거기에 대한 대비를 해놓지 않았을 리가 없다.
“아서라, 그거 욕심내다가 괜히 육괴에 얻어터질라.”
육괴는 밥도 안 먹고 잠도 안 잔다. 한번 지시를 내리면 그 장소에서 쥐죽은 듯이 아무것도 안 하고 기다릴 수 있다. 그러다가 적이 접근하면 그대로 펑 하고 터뜨리면 된다.
함정으로 심어놓기에 그만한 물건이 없지.
“그래도 한번 확인해 볼 만한 일이긴 하네.”
까놓고 말해서, 뜨겁게 달궈서 녹인 천일염을 통에 한가득 쏟아 넣고 투석기로 날리기만 해도 효과는 훌륭할 거다. 1000도가 넘어가는 액체 소금을 뒤집어쓰면 언데드만 잡는 게 아니라 사람도 충분히 잡는다.
클로에가 내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네. 한번 살펴볼 만한 가치는 있을 것 같아요. 어차피 뭔가 수상하면 마틴 님이 눈치챌 수 있잖아요?”
나는 그 말에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왜 이래. 갑자기. 안 하던 칭찬을 다 하네.”
보통 일이 많다고 불만을 표시하는 게 주된 레퍼토리였잖아. 내 말에 클로에가 어깨를 으쓱했다.
“공짜로 신발을 한 켤레 받았잖아요? 칭찬 정도는 2박 3일 동안 계속해드릴 수 있어요.”
그래 뭐, 말은 공짜니까. 좋은 말 몇 번 해서 마법이 걸린 신발 한 켤레를 받으면 수지맞는 장사긴 하다.
마련된 연회장 안에 들어가려고 하자 내 얼굴을 확인한 병사가 인사를 하고 입을 열었다.
“마틴 레드우드 님. 국경 수비대 사령관님께서 제안하신 게 있습니다. 제7수색대 병력들과 따로 자리를 가지시겠습니까?”
다만, 병사들 간에 차별로 인해 갈등을 만들 수는 없는 노릇이라서 제공되는 음식은 연회장 안에 마련된 음식과는 차이가 있다는 모양이다. 나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편이 좋을 것 같은데.”
기왕에 밥 먹을 거면, 이전까지 한솥밥 먹던 친구들이랑 먹는 게 나도 마음이 편하니까. 재료만큼이나 함께하는 사람들도 음식의 맛에 영향을 끼치는 법이다.
“그럼, 안내하겠습니다.”
병사가 나와 클로에를 대리고 다른 간부들이 머무르는 연회장 대신 다른 곳으로 안내해주었다.
“봐, 온다고 했잖아 이 새끼들아!”
내가 클로에와 함께 도착하자, 도리안이 키들거리면서 주변 녀석들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도리안의 손 위에 론도화가 듬뿍 쌓였다.
“뭐, 내기하셨습니까?”
내 말에 도리안이 키들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여기로 온다 안 온다.”
나는 그 말에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고 병사들을 쭉 훑었다. 이건 내가 배신감을 느껴야 하는 시점 같은데.
“설마 내가 고깃점이나 더 주워 먹자고 여길 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거냐?”
나쁜 자식들. 전우애라는 것에 대해서 다시 한번 고찰해봐야 할 것 같은데. 내가 대놓고 섭섭한 표정을 짓자 제7수색대의 사람들이 다소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입맛을 다셨다.
“거긴 소고기를 준다고 들었습니다.”
나는 그 말에 작게 한숨을 쉬었다. 모닥불 위에서 구워지고 있는 고기는 닭고기나 양고기 같은 것들이다. 어이가 없어서 웃음밖에 안 나오네.
“알았으니까 궁상 그만 떨고 고기나 좀 떼줘라. 망할 자식들.”
말을 마친 나는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서 녀석들이 건네준 접시를 받아들었다. 그런 나를 보고 있던 도리안이 입을 열었다.
“하이랜더들이 있더군.”
“수색대 사람들이 편히 쉴 수 있는 환경이 아니라는 건 동의합니다.”
나와 도리안의 대화를 듣고 있던 수색대 병력들이 본능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저런 반응이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하이랜더라고 하면 이 녀석들이 몇 년이나 주적으로 간주하던 종족이니까. 쿠르스트 산맥을 떠나면서 국경 수비대가 하이랜더들을 향해 보내던 눈빛을 나는 아직 까먹지 않았다.
“이젠 아군이야.”
양의 갈빗대에서 살점을 발라내며 내가 던진 말에 수색대의 병력들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도리안이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하이랜더가 왕국에 도움을 주고 있다는 건 이미 보고받은 사실로 알고 있어. 하지만 마틴, 너는 모르겠지만 우리 대부분은 하이랜더에게 소중한 전우를 잃은 경험이 있어. 그게, 그냥 그렇게 뜨신 물에 던져넣은 각설탕처럼 싹 사라질 수는 없지.”
나는 그들의 말에 씹고 있던 고개를 삼키고 나서 도리안의 말을 받았다.
“괜찮습니다. 지금의 상황에 익숙해지는 데 시간이 필요하다는 건 알고 있어요. 하지만, 하이랜더들이 왕국에 위협이 되지 않는다면 국경 수비대는 그 규모를 줄일 수 있습니다.”
내 말에 수색대 병력들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희미하게 웃었다.
“결국, 약속을 지키시는군요. 까먹으시진 않았나 했습니다.”
올리비에의 계획을 막기 위해서 나는 국경 수비대의 도움을 받았고, 그들에게 전역을 약속했다.
나는 그 말에 뼈만 남은 갈빗대를 이리저리 살펴보다가 다소 어두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안 까먹었어. 다만, 일이 생각보다 많이 꼬여서 약속을 지키는 시점이 늦어진 건 미안하다.”
말을 마친 나는 갈빗대를 바닥에 툭 던졌다. 도리안이 그런 나를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그래서, 구체적으로 코랄린 관문은 어떻게 뚫겠다는 거냐?”
그 말에 병사들의 신경이 대번에 곤두서는 것이 느껴졌다. 흙바닥에 주저앉아서 고기를 씹고 있지만, 이 순간 이 사람들이 짓고 있는 표정만큼은 쿠르스트 산맥에서 얼음장 같은 바람을 맞고 있던, 내가 기억하고 있는 그런 표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