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드우드-183화 (183/275)

183화

내 말을 들은 클로에가 디저트를 한입에 홀랑 집어삼킨 다음 자리에서 일어났다.

“서두를까요?”

“그래, 파티 전에는 바이란 관문의 전당포 지점 위치를 알아내야 하니까.”

계산을 마친 나는 클로에와 함께 가게를 나와 벤그리프 교수의 집으로 향했다. 어젯밤에 도둑을 맞았다는 게 거짓말은 아닌지, 치안대의 사람들이 줄을 쳐놓고 사람들을 통제하는 중이었다.

“마틴 레드우드 님.”

그러던 와중 내 얼굴을 확인한 치안대의 병사가 얼굴을 굳히고는 경례한다.

“고생한다. 사건 조사 중인가?”

“그렇습니다. 벤그리프 교수라는 사람의 집에 도둑이 들었다고 합니다.”

나는 그 말에 음, 하는 소리를 내고 웃으며 말했다.

“한번 살펴보고 싶은데.”

내 말에 병사가 잠깐 난감한 표정을 짓더니 대답을 돌려주었다.

“죄송합니다. 제 권한 밖의 일이라서…… 사건을 담당하는 사람을 불러오겠습니다.”

“그래 주게.”

병사가 급하게 어디론가 달려가더니, 남자 한 명을 데리고 왔다.

“제가 이 사건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고생이 많네. 현장을 한번 살펴보고, 벤그리프 교수라는 자와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은데.”

내 말에 담당자가 으음, 하는 소리를 냈다.

“도움을 줄 수 있다.”

“물론, 마틴 님이 살펴봐 주신다면야 저희로서도 굉장히 안심입니다만.”

말은 그렇게 하고 있지만, 이 친구는 나를 의심하고 있다. 괜히 찾아와서 귀찮게 한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지. 심지어, 나와 클로에는 전형적으로 놀러 나가는 귀족들이 할 법한 복장을 하고 있다.

담당자 입장에서는 이 자식들이 돌아다니다가 심심해서 찾아왔다고 생각할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뭐.

이 친구가 어떻게 생각하건 내 알 바는 아니다. 회사에서 상사한테 아부하는 녀석들 중에 진짜 상사를 좋아해서 그러는 녀석들이 얼마나 있을까? 어차피 내가 더 위에 있기 때문에, 이 담당자는 내 요청을 거절할 수 없다.

“그렇다니 다행이군.”

말을 마친 나는 곧장 벤그리프 교수의 집에 처져 있는 줄을 넘었다. 담당자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클로에, 따라와.”

클로에가 조심스럽게 줄을 넘고, 우리는 벤그리프 교수의 집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집이라고 해도, 그냥 집은 아니네.”

저택과 주택 사이의 그 애매한 경계에 걸쳐져 있는 집이다. 보통의 평민은 꿈도 꾸기 힘들 만한 집이라는 건 확실하다.

“치안대는 문을 따고 침입한 걸로 추측하고 있어요.”

“발자국은 따로 발견된 게 없지?”

내 말에 클로에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정원에서 집까지 깔린 석재 타일을 밟고 이동한 모양이에요. 저택 안에도 흙자국이 없는 걸로 봐서, 일을 하기 전에 신발의 흙을 완전히 제거한 게 아닐까 싶은데…….”

아무래도 일 처리한 뽄새를 보니 그냥 좀도둑은 아닌 모양이다. 주변을 살피던 나는 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도둑맞은 물건은 뭔데?”

“집에 보관하던 금품 전부와 대리석으로 만든 여자 조각상이라고 들었어요. 가보라고 하던데요.”

실제 여자와 크기가 비슷하다고 한다.

“대리석으로 만든 그 정도 크기의 조각상이면 무게가 꽤 나가겠는데. 바닥에는 끌고 나간 흔적이 없잖아.”

“어디 보자.”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고 조각상이 자리 잡고 있었다고 하는 서재를 살폈다. 창틀 근처에 누렇게 말라붙은 지푸라기 조각이 몇 개 보인다. 나는 그걸 보고 픽 웃었다.

“개짓거리 하기는.”

“치안대는 훔친 물건은 밧줄로 묶어 창문으로 내린 걸로 추측하던데.”

나는 그 말에 인상을 쓰고 대답했다.

“창문 열고, 아래를 내려다봐.”

내 말에 클로에가 선선히 고개를 끄덕이고 창문을 열어 아래를 살핀다.

“무슨 흔적이라도 있어?”

“아니요.”

“대리석으로 만든 조각상은 무거워. 밧줄로 묶어서 창문으로 내렸으면 창문 아래의 땅에 흔적이 남아있어야 해. 아니면, 도둑들이 마법사나 기사겠지.”

내 대답을 들은 클로에가 나를 바라봤다.

“그럼, 창문으로 내린 게 아니라는 건가요?”

“또는 도둑들이 마법사나 기사.”

내 말에 클로에가 으음, 하는 소리를 내고 웃었다.

“그럴 리는 없는 것 같은데요. 기사나 마법사라면 굳이 창문을 통해 내리지 않고도 얼마든지 대리석 조각상을 옮길 수 있었을 텐데.”

나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고로, 창문으로 내린 건 아니라는 뜻이지.”

“하지만, 그럼 저 창문의 지푸라기는 뭐에요?”

“뭐긴 뭐야, 개수작이지.”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고 나서 바닥에 떨어져 있는 지푸라기를 들고 말했다.

“이게 정말로 밧줄에서 떨어져 나온 거라면, 이런 형태일 수는 없어.”

밧줄이 석고상의 무게를 견디는 과정에서 떨어져 나왔으니 모양이 ㄱ모양으로 꺾여있거나, 창틀에 비벼져서 닳은 부분이 있어야 한다. 근데 이 지푸라기 조각들에는 그런 게 없다.

“그럼, 그 녀석들은 조각상을 어디를 통해 옮긴 걸까요.”

“어디긴 어디야. 창문이 아니라면 당연히 문이지. 벽에 구멍이라도 냈을까?”

내 말에 클로에가 응? 하는 소리를 내고 나를 바라봤다.

“하지만, 치안대에서는 거기에서 이상한 흔적을 찾지 못했어요.”

나는 클로에의 말에 대답했다.

“발자국도 안 남기고, 안에 들어가기 전에 신발의 흙먼지도 제거하는 녀석들이야. 대놓고 알아챌 수 있을 만한 흔적을 남겨놓는 게 오히려 이상하지.”

이 짓거리도 오랜만에 하려니 재미있네. 나는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었다. 올리비에가 패배 기념품이랍시고 준 손수건이 손에 잡힌다. 그 여자가 여기 있었으면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팔을 꼰 채 겁나 한심하다는 듯이 바라보고 있었겠지 뭐. 바닥을 살펴보던 나는 마루에 떨어져 있는 몇 방울의 검은 액체를 확인하고 거기에 손을 가져갔다. 찐득거리는 느낌이 전해진다. 코에 가져가 냄새를 맡아보니, 타르다. 담뱃진을 뜻하는 타르가 아니라, 송진 같은 걸 분해해 만든 진짜 타르다. 다른 말로는 피치라고도 불리는 점성이 있는 검은 액체.

여기에 타르가 왜 떨어져 있는 걸까.

내 모습을 바라보던 클로에가 질문을 던졌다.

“흔적이 없다면 조각상은 어떻게 찾죠?”

나는 그 말에 대답했다.

“그 커다란 조각상을 이고 지고 옮겼을 가능성은 낮아. 마차를 사용했겠지.”

말을 마친 나는 화장실 안으로 들어갔다. 화장실은 소위 말하는 푸세식이었다. 볼일을 보면, 아래에 만들어놓은 공간에 쌓이는 거다.

“으. 식사한 지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클로에가 살짝 인상을 쓰고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나는 아랑곳 하지 않고 바닥에 나 있는 구멍 쪽으로 머리를 가져갔다.

“뭐, 뭐 하세요?”

“확인할 게 있었거든.”

말을 마친 나는 손과 얼굴을 닦았다.

“확인은 끝나셨나요?”

“그래.”

아래에 쌓인 오물이 없다. 최근에 비웠다는 뜻이다.

“이 정도면 볼 건 다 봤어. 교수와 한번 이야기를 해봐야겠는데.”

“벤그리프 교수라면 지금 관할 치안대 지부에서 절도 발견 당시 상황을 진술하고 있어요.”

그럼 바로 찾아가면 되겠네. 우리는 그의 집을 나와서 곧장 치안대 지부로 향했다.

“벤그리프 교수를 좀 만나보고 싶습니다.”

치안대는 갑작스러운 내 방문에 상당히 당황한 모양이었다.

“마틴 님, 지금 벤그리프 교수는 발견 당시 상황에 대해 진술 중입니다.”

“잠깐 대화 나눌 시간 정도는 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내 말에 치안대 지부의 대장으로 보이는 자가 끄응, 하는 소리를 냈다.

“아무리 그래도 갑작스럽게 찾아오시면…….”

“중요한 일이라서 그렇습니다. 30분 정도면 충분합니다.”

내 말에 그가 잠깐 복잡한 표정을 하고 있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대장이 안으로 들어가고, 잠시 뒤 그는 머리가 희끗희끗한 노중년과 함께 나왔다. 팔꿈치 부분을 몇 번이나 수선한 모직옷과 몇 번 수선한 흔적이 있는 구두가 눈에 들어온다. 하지만, 복장 자체는 어지간한 평민들이 입기는 힘들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단정했다.

“벤그리프 교수 맞으신지요.”

내 말에 노중년이 허리를 깊게 숙여 인사했다.

“그렇습니다. 만나 뵙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마틴 님. 저를 찾으셨다고 들었습니다.”

“여기에서 이야기할 만한 건 아니니. 잠시 시간이 되신다면 차라도 한잔 드시지요.”

여기까지 불려 나온 이상 벤그리프 교수가 거절할 수는 없었기에, 그는 순순히 나와 함께 찻집으로 향했다. 칸막이와 방음이 잘되는 대신, 차의 가격이 꽤 나가는 가게였다.

차와 다과를 앞에 둔 벤그리프가 내 눈치를 보나 싶더니 입을 열었다.

“이제, 무슨 일 때문인지 말씀해주시겠습니까?”

“저택에서 조각상을 훔쳐 간 도둑이 어디에 있을지 짐작이 갑니다.”

내 말에 벤그리프 교수는 물론이고, 옆에서 차를 마시고 있던 클로에까지 눈을 크게 뜨고 나를 바라봤다. 나는 그런 두 사람을 슥 훑고는 차를 한 모금 마신 다음 말을 이었다.

“조각상은 돌려드리지요. 하지만, 제 도움을 받으신다면 범죄자를 투옥하기는 힘들 겁니다.”

내 말에 그가 살짝 눈살을 찌푸리더니 급하게 표정을 피고 나를 바라봤다.

“범죄자를 투옥하기 힘들다니. 설마 마틴 님이 건드리기도 힘들 정도로 지체 높으신 분께서 이 비루한 것의 조각상을 탐냈다는 뜻입니까?”

나는 그 말에 고개를 저었다.

“그런 건 아닙니다. 하지만, 제가 조각상을 찾아다 드리면 범죄자를 찾는 건 포기하셔야 합니다.”

내 말에 벤그리프가 허어, 하는 소리를 냈다.

“치안대에서 조사 중에 있습니다. 굳이 마틴 님의 도움을 받지 않아도…….”

“슬프지만, 치안대에서 범인을 찾아낼 가능성은 없어요.”

잘못 짚고 있고, 뭐가 중요한지도 모르고 있다.

“지금이라서 조각상을 찾아다 드릴 수 있는 겁니다. 더 시간을 끌면 조각상은 팔려나갈 겁니다. 설사 치안대에서 범인을 찾는 데 성공해도, 조각상을 되찾기는 불가능하겠죠.”

내 말에 벤그리프 교수는 끄응, 하는 소리를 냈다.

“조각상을 되찾거나, 범인을 잡거나. 둘 중 하나만 선택하실 수 있겠죠. 물론, 절도당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를 선택할 기회도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니…… 벤그리프 교수는 아주 운이 좋으신 편이군요.”

내 말에 그가 잠깐 내 표정을 살피다가 한 손으로 자기 얼굴을 쓸어내리고, 차를 한 모금 마셨다.

“금품 따위는 시간이 지나면 다시 그만큼 모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조각상은 소중합니다. 범죄자를 잡는 건 포기하겠습니다. 마틴 님이 정말로 조각상을 되찾아 줄 수 있다면 이 비천한 것이 간절히 부탁드리겠습니다.”

나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조각상을 선택하신 거군요. 좋아요, 그럼 대가에 대해 이야기를 좀 나눠보죠. 아, 돈을 달라는 건 아닙니다.”

내 말에 벤그리프 교수가 잠깐 나를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조각상을 되찾아 주신다면, 제가 드릴 수 있는 도움이라면 뭐든지 드리겠습니다.”

“간단합니다. 이후 제 일을 보조할 유능한 인재들이 좀 필요한데. 벤그리프 교수가 소개해준다면 고마울 것 같아요.”

내 말에 벤그리프가 다소 의심스러운 눈길을 보낸다.

“정말, 그거면 됩니까?”

“그거면 충분하죠.”

내 말을 들은 벤그리프 교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찾아만 주신다면, 맹세코 다른 귀족분들의 아래로 들어가려고 하는 녀석이라도 설득해서 마틴 레드우드 님 아래에서 일하게 만들겠습니다.”

이걸로 나눠야 할 대화는 다 나눈 것 같다.

“아, 치안대에는 30분 정도 면담을 요청했으니, 기왕에 시킨 다과는 드시고 가시는 편이 어떨까요?”

말을 마친 나는 인사를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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