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화
내 말에 두 녀석이 서로를 바라보더니 픽 웃었다.
“그런 사람 없어. 설사 있다고 해도 네 녀석 같이 수상한 녀석들을 들여 보내줄 생각은 없다. 꺼져.”
말을 마친 녀석이 내 옆에 서 있는 클로에의 몸을 쭉 훑더니 히죽 웃으며 입을 연다.
“하지만 옆에 있는 아가씨는, 정 들어가고 싶다면 몸수색을 한 다음에 들여보내 줄 수 있는데. 한 2시간 정도 걸려. 꼼꼼히 수색해야 하거든.”
그 말을 들은 클로에가 놀란 듯이 입가로 손을 가져가며 말했다.
“어머, 정말요? 한 사람당 손목 두 개만 잘라주신다면 몇 시간이고 수색당해드릴 수 있어요.”
클로에의 말에 문을 지키던 남자들이 키들거린다. 녀석들 하는 꼴을 보고 있던 나는 쯔, 하고 혀를 찼다.
“귀찮아 죽겠네.”
그 밀론 카프리라는 자식이 무슨 베로나 제국의 황족도 아니고. 내가 말로 슬슬 구슬려가며 조심스럽게 접선해야 할 필요는 없다. 웃음을 흘리며 접근하는 녀석을 보던 나는 녀석의 멱살을 잡아 그대로 벽으로 집어 던졌다. 후웅, 하는 소리를 내며 날아간 녀석이 벽에 처박히고, 부스스 벽돌 가루가 떨어진다.
벽에 몸을 들이받은 녀석은 눈을 허옇게 까뒤집은 채 기절했다.
“이러면 계획 변경인가요?”
“들여보내 줄 생각이 없으니 별수 있나.”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뒤늦게 정신 차리고 달려드는 녀석들을 분신으로 제압하며, 두터운 문을 발로 힘껏 찼다. 으지직, 하는 소리와 함께 문짝이 터지듯이 뜯어져 나가며 길이 열렸다.
“안녕 친구들.”
휘날리는 먼지를 향해 손을 휘휘 저으며, 나는 문 너머에서 쉬고 있던 녀석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밀론 카프리라는 친구를 찾으러 왔는데.”
겉으로 보기에는 허름하기 짝이 없는 건물이었지만, 막상 안으로 들어오니 꽤나 아늑한 구조를 하고 있다.
낡은 소파에 앉아있거나, 바 테이블 근처에서 술을 마시고 있던 녀석들이 일제히 무기를 꺼내 들었다.
“이 자식이, 여기가 어디라고!”
“……휴가 갔으면 휴가 갔다고 말을 해줘.”
그런 소리를 하며 나는 건물 안을 한번 훑었다. 저기, 굉장히 인상 깊은 디자인의 문이 하나 눈에 들어온다.
“오, 저기인 것 같지 않아?”
내 말에, 휘날리는 먼지 때문에 작게 콜록거리던 클로에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그럼 가볼까. 나는 무기를 들고 달려드는 녀석들을 무시한 채 그 문으로 향했다.
“젠장, 막아 새끼들아!”
그럼 외침과 함께 녀석들이 달려들었지만, 전부 처리하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도 않았다. 나와 클로에는 손가락 하나 까딱할 필요도 없었다.
내가 만들어낸 분신으로도 충분히 처리가 가능한 수준이었으니까. 목표로 한 문 앞에 도착했을 때, 이 공간 안에 있던 스무 명 정도의 남정네들은 전부 제압되었다.
“어디 보자.”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고 문 앞에 서서 노크를 몇 번 했다.
“안에 계십니까? 들어갑니다.”
말을 마친 나는 문을 열어젖혔다. 피융, 하고 뭔가를 쏘아붙이는 소리가 들린다. 석궁?
날아오는 석궁 볼트를 손으로 잡아챈 나는 입에 시가를 문 채 양손으로 석궁을 들고 있는 중년을 보며 히죽 웃었다. 한쪽 눈에 흉터가 있는, 건장한 체격의 중년. 조각상을 훔친 녀석이 진술한 인상과 일치한다. 이 친구가 우리가 찾던 밀론 카프리라는 녀석인 모양이군.
“초면부터 활질을 하고 그러실까.”
“……뭐 하는 녀석이냐.”
입에 시가를 물고 있는 중년이 나와 클로에를 노려보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문을 닫은 나는 후드를 벗었다. 내 얼굴을 확인한 녀석의 손에서 석궁이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마틴, 레드우드? 코랄린 관문 대전의 영웅이 어떻게…… 아니, 왜 여기에.”
뭐야, 나를 알고 있었나. 나는 클로에 쪽으로 시선을 던지며 히죽 웃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처음부터 얼굴을 깔 걸 그랬나?”
내 말에 클로에가 차분한 어조로 대답했다.
“그러면 안 되는 거 아시잖아요? 지금의 접선에 대한 소문이 퍼지면 이 조직에게 좋지 않아요. 흔적도 없이 사라질 수도 있어요.”
나와 클로에 사이에 나눠진 대화지만, 이건 밀론에게 던지는 협박이었다. 우리가 여기에 왔다는 걸 다른 사람들이 알게 된다면 각오하라는 뜻이다.
“그, 어.”
녀석이 멍하니 그렇게 중얼거리는 동안 나는 의자를 하나 끌어와서 거기에 앉아 녀석을 바라봤다.
“뭐 좀 물어볼 게 있어서 찾아왔는데, 바깥에 있는 친구들의 손님 대접이 영 꽝이더라고.”
내 대답을 들은 녀석이 멍하니 있다가 침을 삼키고 대답했다.
“대신 교육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는 웃으면서 과장되게 손을 몇 번 저었다.
“에이, 뭘.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니었어. 감사 인사까지 받을 건 아니지.”
내 눈치를 보던 밀론 카프리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제가, 무엇을 도와드리면 되겠습니까?”
나는 그 말에 대답했다.
“바이란 관문, 니들 전당포 지점의 위치.”
내 대답을 들은 밀론의 표정이 확 굳었다.
“조직 내부의 정보는 대외로 유출하지 못하게 되어있습니다.”
나는 그 말에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는 사과를 하나 집어 들며 웃었다.
“아, 그래?”
허리에 차고 있던 칼을 뽑아든 나는, 사과를 손가락 위에 올려놓고 빙그르르 돌리며 칼날을 사과에 가져갔다. 순식간에 껍질이 벗겨진 사과를 한 입 베어먹은 나는 입가를 훔치며 대답했다.
“방금 전에 내가 한 말은 부탁이 아닌데.”
동시에 퍽, 하는 소리와 함께 테이블에 내 검이 박혀 들었다. 녀석이 움찔하고는 나를 바라봤다.
“제 상황을 이해해주셔야 합니다. 마틴 레드우드 님. 조직에 속한 사람으로서, 함부로 다른 지점의 위치에 대해서는 누설할 수 없습니다.”
나는 테이블에 박아넣은 검의 손잡이를 손가락으로 슬쩍 밀었다 놓았다. 박힌 검이 달랑달랑 메트로놈처럼 흔들린다.
“상황이라. 상황…… 아무래도 우리 친구가 지금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해서 제대로 이해를 하지 못하고 있는 모양인데?”
말을 마친 나는 훌쩍 테이블을 뛰어넘어 녀석의 뒤로 돌아가 양어깨 위에 손을 올려놓고 살살 주무르면서 부드러운 어조로 낮게 속삭였다.
“집중해서 잘 들어. 여기에서 친구가 내 부탁을 거절하게 되면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려줄 테니까.”
내가 손을 움직여 어깨를 주무를 때마다 녀석의 몸에 힘이 바짝 들어가는 게 느껴진다.
“지금 내가 여기에서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그냥 돌아가면, 그 즉시 치안대가 여기에 들이닥칠 거야. 네가 모아놓은 모든 재산은 국고로 환수되고, 너는 감방에 가겠지.”
“하지만, 아무리 그렇게 말씀하셔도.”
녀석이 입을 열자 나는 작게 쉬이, 하는 소리를 냈다.
“아직 내 말 안 끝났어 친구. 끝까지 들어야지?”
내 속삭임을 들은 녀석이 입을 다물었다.
“네 죄목을 생각해보면 기껏해야 감옥에서 5년 정도 버티면 되겠다고 생각하겠지. 하지만.”
“크으…….”
어깨를 주무르던 나는 그대로 손톱을 세우고 힘을 꽉 주었다. 녀석이 입고 있는 옷의 어깨 부분에, 손톱이 파고 들어가면서 피가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내가 그렇게 두지 않아. 너는 왕국의 감옥 중에서도 가장 불결한 환경과 지독한 간수들이 근무하는 곳에서 평생을 살 거야. 물론, 네 아내와 아들 한 명, 두 명의 딸도 같은 최후를 맞이하겠지.”
내 말에 녀석이 몸을 흠칫하고는 대답했다.
“아무리 마틴 님이라고 해도……!”
“그럴 수는 없을 거라고? 글쎄.”
말을 마친 나는 테이블 위에 꽂힌 검을 쑥 뽑아내 다시 허리춤에 꽂아 넣고 클로에를 바라봤다.
“레이피어.”
내 말에 클로에가 나에게 레이피어를 건네주고, 나는 다시 그걸 테이블 위에 박아넣은 다음, 녀석이 나를 향해 발사했던 석궁에 볼트를 장전했다.
“이 레이피어, 잘 봐.”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고 나서 아까와 똑같이 테이블에 박힌 레이피어를 손가락으로 쭉 밀었다가 놓았다. 흔들거리는 레이피어를 보고 있던 나는 내 석궁을 들어 내 허벅지를 겨눴다.
“무슨.”
“이게 네 석궁이라는 건 지금 밖에 기절해 있는 녀석들이라면 알고 있을 거야. 내가 이 석궁의 방아쇠를 당겨서 허벅지에 볼트를 박아넣으면.”
이 녀석이 지은 죄에 몇 가지가 더 추가된다. 그리고, 그 죄목은 이전까지 이 녀석이 저질렀던 범죄는 따위로 만들어 버릴 수 있을 정도로 무겁다.
“죄목이 추가되는 건 물론이고…… 나를 공격한 의도가 뭔지 알아내고, 배후 세력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모진 고문이 가해지겠지? 그 고문은 너에게만 향하는 게 아닐걸.”
이 친구의 가족들도 같은 목적하에 비슷한 고문을 당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공격은 마틴 레드우드 님이 먼저 했습니다!”
나는 밀론의 급박한 외침에 웃음을 흘렸다.
“그게 중요할 것 같아? 사실, 이건 그냥 핑계일 뿐이란 거 네가 더 잘 알 텐데? 나는 그냥 내가 원하는 대답을 들려주지 않은 네가 괘씸해서 인생을 망가뜨리려고 하는 거니까.”
내가 건드리고 있는 이 친구는 왕족도 아니고 귀족도 아니다. 그냥 아무것도 아닌 녀석이다. 모두 사건의 진상을 알게 되더라도 입을 다물 것이다.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으니까.
“잠깐, 잠깐만요!”
나는 그 말에 대답했다.
“저 레이피어가 왔다 갔다 하는 걸 멈추면, 나는 석궁의 방아쇠를 당길 거다. 어디, 그 뒤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한번 보자고. 그리고, 과연 그 일을 네가 감당할 수 있을지도.”
좌우로 흔들리던 레이피어는 서서히 그 움직임이 작아지기 시작한다.
“시간이 흐르고 있어. 대답해.”
그냥 대답하라고 하면 아무래도 쉽사리 대답하기 힘들겠지. 나는 부드러운 어조로 입을 열었다.
“이 장소의 위치는 벤그리프 교수의 조각상을 훔친 녀석에게 들었어. 녀석에게는 대가로 도망칠 수 있는 기회를 주겠다고 했지. 녀석은 나와 한 약속을 지켰고, 나는 약속한 기회를 주었지.”
“그 자식이…… 어떻게 도망쳤나 했더니.”
역시, 조각상을 훔친 게 어떤 녀석인지도 알고 도망치는 데 성공했다는 사실도 알고 있는 모양이다.
나는 웃음 섞인 목소리로 녀석의 귀에 작게 속삭였다.
“너도 마찬가지야. 대답해. 이 지부는 물론이고, 큰손 전당포라는 조직이 이번 일로 무너지지는 않을 거야. 약속하지.”
실핏줄까지 세워가면서 눈앞에서 흔들리는 레이피어를 바라보고 있던 녀석은, 그 흔들림이 멈추기 직전에 눈을 꽉 감고 대답했다.
“대답해드리겠습니다!”
그 대답을 들은 나는 곧장 석궁을 옆으로 치워버리고 녀석의 앞에 앉아 웃었다.
“현명한 결정이야.”
“다만, 이 일로 인해 제가 피해를 보게 되는 것만은 어떻게 해주시지 않겠습니까?”
나는 그 말에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그 점은 걱정할 필요 없어. 내가 여기에 들렀다는 사실만 네가 입 다물고 있는다면, 그 잘나신 큰손 전당포인지 뭔지에서도 내가 어떻게 바이란 관문 지부의 위치를 알아냈는지는 모를 테니까.”
내 말을 들은 그가 머뭇거리며 말했다.
“하지만, 이 일로 인해 해당 지부가 피해를 보게 된다면 반드시 조직에서 진상을 조사하려고 들 겁니다.”
나는 그 말에 고개를 저었다.
“전당포를 어떻게 하려고 물어본 게 아니야. 바이란 관문의 지부에게 도움을 받을 일이 있는데, 아무래도 위치를 모르겠어서 여기부터 찾아온 것뿐이거든.”
내 방문이 이 조직에 해가 될 일은 전혀 없다. 녀석의 표정을 바라보던 나는 쯔, 하고 혀를 찬 다음에 테이블 위의 종이 한 장을 꺼내 거기에 잉크로 글을 써 내려갔다.
[밀론 카프리는 이 행위가 소위 큰손 전당포라고 알려진 조직에 심대한 위해를 끼치지 않는 조건하에 마틴 레드우드에게 바이란 관문의 지점 위치를 알려주었다. 만약, 마틴 레드우드가 이 조건을 어기고 큰손 전당포에 위해를 끼치게 될 경우, 마틴 레드우드는 이에 대한 변상으로 4만 론도를 밀론 카프리에게 지불하고, 큰손 전당포의 재건립을 위해 해줄 수 있는 모든 일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