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드우드-193화 (193/275)

193화

뭘 주는 편이 좋을까? 라는 고민을 하던 나는 디에론의 모습과 방 안을 살펴보다가 질문을 던졌다.

“그러고 보니, 큰손 전당포라는 조직은 제법 규모가 있는 걸로 아는데. 이 난리가 일어나도록 모습을 드러내는 졸개가 하나 없군.”

내 말에 디에론이 잠깐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

“아랫것들은 지금 제가 지시한 일 때문에 바쁩니다.”

“아, 그래?”

무슨 일이길래 자신을 지킬 사람도 남기지 않고 전부 그 지시한 일로 내보낸 걸까.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내가 앉아 있는 자리에 허상을 하나 남겨놓고 은신을 사용해서 디에론의 책상 위로 다가갔다.

봉투가 뜯어진 편지가 하나 놓여있다. 내가 건네준 편지는 아니다. 바로 옆에 놓여있는 편지의 내용을 확인한 나는 속으로 작게 웃었다. 그렇구만, 이런 사정이라면야 본부의 사람들을 다 빼는 것도 이해하지 못할 일은 아니지.

재빠르게 다시 허상이 자리 잡은 자리로 돌아간 나는 은신을 풀고 디에론을 보며 말했다.

“아들이 가출했군.”

내 말에 디에론의 눈이 크게 떠졌다.

“그걸, 어떻게.”

나는 그 말에 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어디 보자…… 아들은 공부를 계속하고 싶은 모양인데, 당신은 아무리 공부를 열심히 한다고 해도 아들이 학자가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하는 모양이고. 그래서 아들과 불화가 좀 있었어. 그러다가 결국 아들은 가출을 선택했지.”

내 말에 디에론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야, 그럴 수밖에 없지. 그 편지에 적힌 내용을 내가 지금 그대로 읊고 있는 거니까. 이 화법은 꽤나 효과가 좋다.

맞은 편에 앉아 있는 사람이 이런 식으로 미리 조사를 끝내놓은 다음, 마치 지금 알아낸 것처럼 꾸며놓으면 그 이야기를 듣는 사람은 굉장히 당황하게 되면서, 동시에 알 수 없는 묘한 신뢰감을 품게 된다. 여전히 놀란 표정을 짓고 있는 디에론에게 나는 웃으며 한마디 건넸다.

“내가 그런 거 찾아내는 데에는 도가 튼 사람이거든. 자세한 방법은 물어볼 생각 하지 마. 영업비밀이다.”

말을 마친 나는 등받이에 허리를 기댄 채 안쓰러운 표정을 지으며 디에론을 바라봤다.

“멍청한 아들이 공부를 하고 싶어하면, 부모 입장에서는 속이 착잡한 모양이지.”

이쯤에서 나는 살짝 한 번 디에론을 떠보았다. 내 말에 곧바로 디에론이 대답을 돌려주었다.

“그렇지 않습니다. 자랑스러운 아들입니다. 머리도 좋고, 충분히 베로나 제국의 황도나 파이크 왕국의 왕도에 자리 잡은 아카데미에서 공부해서 우수한 성적을 낼 수 있습니다.”

“자식을 높게 평가하는 부모도 세상에 드문 건 아니고.”

내 말에 디에론이 주먹을 꽉 쥐고 대답했다.

“저는 한 조직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한 자식을 둔 부모이지만, 사람의 역량을 평가하는 능력은 어디 가서도 떨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는 제 아들에 대해 제가 내린 객관적인 평가를 말씀드리는 겁니다.”

나는 그 말에 웃으며 다리를 꼰 채 그녀를 바라봤다.

“그럼, 왜 공부를 더 시키지 않으려고 하는 건지 모르겠군. 학비를 대기 힘든 재정 상황도 아닐 텐데.”

“저는 범죄자니까요. 베로나 제국도, 파이크 왕국도 제가 장물아비 조직의 장이라는 걸 아예 모르는 게 아닙니다.”

나는 그 말에 아하, 하는 소리를 냈다. 받아먹고 있는 돈이 있으니 그냥 두는 거겠지. 하지만, 암묵적으로 무시해주고 있다 해도 그런 불법 조직의 수장의 자식을 한 국가의 수도에 자리 잡은 아카데미에 합격시켜주지는 않을 것이다.

아카데미를 졸업하게 되면 귀족 아래에서 일해야 하는데, 부모가 불법조직의 수장인 자를 아래에 두고 부리려는 귀족은 없을 테니까.

“더 공부를 시킬 수가 없습니다. 아들이 더 공부하고 싶다고 말할 때, 어머니가 얼마나 그 아이를 기특하게 볼지 생각해보셨습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 공부를 시키지 못하는 제가 얼마나 가슴 아픈지 아십니까?”

“나야 모르지.”

나는 시원스럽게 대답을 돌려준 다음 테이블 위의 컵에 물을 따르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내가 힘을 좀 써줄 수도 있는데.”

내 말에 디에론이 멍하니 나를 바라봤다.

“아들이 정말로 댁이 말한 것처럼 머리가 좋은 편이라면야, 파이크 왕도의 롱라인 아카데미에 입학시켜주지 못할 것도 없지.”

물론, 내 이름을 빌려줄 생각은 없다. 나와 이 큰손 전당포 사이의 연결점이 생기면 안 되니까.

“그게, 가능합니까?”

나는 그 말에 히죽 웃으며 대답했다.

“나는 가능하지. 가출했다고 하지만, 조직원들이 최선을 다한다면 아들을 찾는 건 어렵지 않을 거야, 그렇지?”

내 말에 디에론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큰손 전당포는 작은 조직이 아니고, 그 조직의 조직원들이 전부 나서서 가출한 아들을 찾기 시작한다면 결국은 찾아내는 데 성공하게 될 거다.

“문제는, 찾아낸 아들에게 뭐라고 말할 건데?”

내 말에 디에론의 표정이 그늘이 확 드리워진다. 다시 데리고 올 만한 명분도 없고, 부모로서 자식이 원하는 일을 해주지 못한다는 점이 가슴 아프기도 할 것이다.

“그러니까, 내가 나를 베로나 제국에 몰래 들어가게 해주는 대가로 아들에게 할 말을 만들어 주겠다는 거야.”

이 정도면 딱 적절하다. 자식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 부모는 없고, 지금 눈앞에 있는 이 장물아비 조직 지부 수장은 그중에서도 모성애가 꽤나 각별한 편으로 생각된다. 아들이 파이크 왕국의 아카데미에서 공부할 수 있다면, 일정 수준의 위협이 자신에게 가해진다고 해도 나에 관한 정보를 부는 경우는 없겠지.

“비밀 엄수를 위해, 제 아들을 인질로 잡겠다는 뜻입니까?”

디에론의 말에 나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너도 거절하기는 힘들 것 같은데.”

“돈을…… 충분히 먹이는 데 성공하면 마틴 님의 도움을 받지 않아도 어떻게든 아들을 아카데미에 진학시킬 수는 있습니다.”

“허세 부리기는.”

나는 그렇게 말하고 나서 디에론을 보고 낮게 웃음을 흘렸다.

“너는 큰손 전당포의 지부장일 뿐이지, 본부장은 아니야. 네 위에는 모셔야 하는 어르신들이 있다는 뜻이지. 아들을 진학시키기 위해서 조직의 돈을 끌어다 쓰는 걸 조직의 웃어른들이 어떻게 볼까?”

쓸 수 있는 돈이 많다고 해도, 그건 조직의 돈이다. 지부장으로서 품위 유지를 위해 사용하는 돈에 대해서는 뭐라고 하지 않겠지만, 자식을 아카데미 보내기 위해서 조직의 돈을 투자해 파이크 왕국이나 베로나 제국에 돈을 먹이는 꼴을 윗사람들이 두고 볼까?

디에론의 자리 자체가 위험해질 수도 있는 짓이다. 그러니 자식이 가출하는 상황에 이를 때까지 조치를 취하지 못했던 거고.

“…….”

디에론이 결국 내 말을 반박하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사실 인질이라고 생각할 필요는 없잖아? 어머니로서 아들의 꿈을 이뤄 줄 수도 있어. 그리고 그 대가는 매우 싼 편이야. 남는 장사면 남는 장사지, 결코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니라고.”

내 말에 디에론이 이내 눈을 뜨고 나를 곧게 바라봤다.

“약속하신 겁니다.”

“그래.”

내 말에 디에론이 허리를 깊게 숙여 인사한다.

“말씀해주신 일을 정말로 해주신다면, 마틴 레드우드 님과의 거래는 무덤까지도 가져갈 각오를 하겠습니다.”

“좋아. 그럼 준비하라고. 네가 필요로 하는 물건은 베로나 제국 안으로 무사히 들어가고 나서 건네주도록 하지.”

말을 마친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준비하는 동안, 머무르실 곳이 필요하시겠죠.”

디에론은 그렇게 말하고 나서 종이 위에 잉크로 뭔가를 써 내려가더니, 자신의 지장을 찍어 나에게 건네주었다.

“이 종이를 챙겨서, ‘늙은 뱃사공 쉼터’라는 곳으로 가시면 됩니다. 준비가 끝나기 전까지 머무르시는 데 불편함은 없을 겁니다.”

나는 그 말에 종이를 받아들고 히죽 웃었다.

“이런 것까지 바라고 온 건 아니었는데. 준다고 하니 달게 받지.”

이 앞에서 벽을 타고 오르는 거대한 바퀴벌레를 보고 슬슬 숙소가 걱정되던 참이었거든. 자라고 하면 못 잘 건 없지만, 더 좋은 숙소를 이용할 수 있는데 굳이 바퀴벌레랑 동침할 이유는 없잖아. 나는 인사를 나누고 나서 다시 클로에와 함께 후드를 뒤집어쓰고 건물 밖으로 나왔다.

“보람찬 만남이었네요.”

“기분이 꽤 좋아 보이네.”

내 말에 클로에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쁠 게 있나요. 그냥 코뚜레 꿰서 질질 끌고 다니는 것보다는 훨씬 더 안전한 선택지를 택했잖아요? 다소 불안했는데, 이 정도라면 뒤통수가 가려울 것 같지는 않아요.”

나는 그 말에 허허허 하고 웃으면서 한마디 했다.

“너는 옆에서 구경했잖아.”

“잘했죠? 괜히 나서서 일을 망치지는 않았잖아요.”

태연하게 대답하는 클로에의 말에 나는 잠깐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뭐…… 괜히 함부로 나서서 일을 어그러뜨리는 것보다는, 얌전히 있는 편이 몇 배는 더 훌륭한 선택이긴 했다.

“마틴 님이 디에론에게 제안하신 거래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필요한 서류 작업이 좀 있을 텐데, 그건 제가 하는 편이 좋겠죠.”

“그래, 주의해야 할 점이 뭔지는 알고 있지?”

“실마리를 따라가도 마틴 님과 이어질 여지가 없으면 되는 거잖아요?”

그게 가장 중요하다. 실제로 거래를 한 건 나지만, 이 거래는 서류상에 내 이름이 들어가 있으면 안 된다. 클로에라면 그 정도는 어렵지 않게 처리할 수 있겠지.

“숙소에 도착하면 바로 착수할게요.”

대화를 마친 우리는 디에론이 소개해 준 쉼터로 가서 서류를 내밀었고, 내용을 확인한 남자가 우리에게 방을 하나 내주었다. 우리가 뒤집어쓰고 있는 후드를 벗으라고 하지도 않았고, 질문도 한마디 없었다.

“훌륭한데요.”

허름하기 짝이 없어 보이는 외관과는 다르게, 막상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니 꽤나 깔끔하게 정리된 방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후드를 벗고, 장비를 풀어 내린 클로에는 그대로 침대 위에 드러누워서 한숨을 팍 내쉬었다.

“혹시, 저는 또 소파인가요? 마차를 오래 타서 그런지 생각보다 허리가 아프네요.”

“너 기사잖아.”

내 말에 클로에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그렇죠…….”

얼씨구, 이 아가씨가 함께 연기를 하면서 이전과는 다르게 제법 친해져서 그런지 이제는 투정까지 부리려고 하네.

“다행히, 오늘은 소파에서 잘 필요는 없어 보인다.”

나는 그 말에 대답 대신 바로 옆에 보이는 작은 문을 열었다. 거기에는 또 다른 방이 자리 잡고 있었고, 클로에가 드러누운 침대보다는 작지만 제대로 된 침대가 자리 잡고 있는 방이 하나 보였다.

“하나 더 있어.”

내가 가리킨 문 너머를 확인한 클로에의 표정이 대번에 밝아졌다.

“신난다. 다행이네요.”

누워있던 침대에서 벌떡 일어난 클로에는 곧바로 방 안을 확인하고는 챙겨온 자신의 짐을 그 안에 들여놓고는 바로 책상 앞에 앉아서 잉크병을 따고, 펜을 손에 들었다. 별다른 소리가 들리지 않는 고요한 방 안에서 펜이 종이 위에서 사각거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성실한 태도가 훌륭하군.”

내 말에 클로에가 잉크병 안에 펜을 담그며 대답했다.

“미적거리다가는 상사가 뭐라고 하거든요.”

그 말을 끝으로 우리의 대화는 끝났다.

나는 이불을 덮고 침대에 누운 채 그 소리를 듣다가 그대로 잠들었다.

다시 잠에서 깼을 때는 클로에가 작업하던 책상 위에 완성된 서류가 놓여있었고, 클로에가 잠든 방 안에서는 코 고는 소리가 작게 들리고 있었다.

“이 정도면 문제는 없겠네.”

클로에는 내가 지시한 일을 문제없이 잘 수행했다. 내용 점검을 마친 나는 봉투 안에 서류를 넣고, 밀랍을 녹여 봉투를 봉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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