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드우드-195화 (195/275)

195화

나는 잠깐 주변을 훑어보다가 입을 열었다.

“머무르는 걸로 되어있는 숙소의 이름이?”

“점박이 암소, 라는 이름의 여관이에요.”

대답을 들은 나는 클로에와 함께 그 여관 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밤이 깊었기에 거리를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

“누가 보면 통금시간이 정해져 있기라도 한 줄 알겠네.”

“국경에 접한 도시다 보니, 왕국과의 전쟁 여파로 인해 아직 분위기가 흉흉하겠죠.”

게다가, 원래 관문 역할을 하고 있었다는 걸 생각해보면 이 도시가 밤에 이렇게 인기척이 적은 것도 이해하지 못할 일은 아니다. 원래 제국과 왕국 사이의 교통로 역할을 하고 있었는데, 이제는 그러지 못하니까. 천상 왕국과 제국이 제대로 된 화해 무드로 접어들기 전까지는 계속해서 이런 분위기겠지.

잠깐 주변을 살피던 나는 웃으며 말했다.

“여관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땅을 밟지 말자.”

내 말을 들은 클로에가 무슨 뜻인지 이해하기 위해 잠깐의 버퍼링 시간을 가진 다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야겠네요.”

우리는 곧장 몸의 마력을 돌리며 근처의 건물 지붕 위로 휙 하니 뛰어오른 다음, 위에서 주변을 살피며 천천히 움직였다.

“굴뚝이 있네.”

“……당연한 거잖아요?”

우리가 머무르는 것으로 되어있는 여관에는 굴뚝이 자리 잡고 있었다. 클로에는 당연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불이 나면, 저기를 통해서 들어가자.”

산타 할아버지는 겨울에 찾아오는 법이지만, 이 산타는 겨울이 되면 죽는 슬픈 사정이 있거든.

“괜찮은 생각 같아요.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도 아니고. 아마, 바로 여관 식당과 이어진 주방으로 내려가겠죠.”

굴뚝을 통해 내려간 다음, 우리가 머무르는 걸로 되어있는 방까지 도착하면 일단 안심이다. 게다가, 이런 여관은 한 번에 대량의 음식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굴뚝도 크게 만든다. 사람 하나 정도는 문제없이 들어갈 수 있다.

“바로 들어갈 수는 없어.”

정보처에서 이상함을 느끼고 있다면, 그 여관을 지켜보고 있는 시선이 있을 확률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하지만, 밤에 마음먹고 숨어버린 사람들을 찾아내는 건 굉장히 어려울 텐데…….”

“찾아낼 수 없으면, 튀어나오게 하면 될 일이지.”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고 나서 내 옆에 허상을 하나 만들었다가 지웠다. 그걸 확인한 클로에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네요, 마틴 님의 능력으로 허상을 만들고 두리번거리면서 거리를 돌아다니게 만들면 되겠군요.”

수상한 녀석이 보이는데, 지들이 움직이지 않고 배길 수 있을까. 움직이지는 않는다고 해도, 뭔가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나는 허상의 조종에 신경을 집중해야 해.”

“제가 찾아내야 한다는 거군요.”

나는 그 말에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클로에가 그런 나를 보다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표정이 영 못 미덥다는 느낌인데요. 걱정하실 필요 없어요. 제가 관찰력은 좀 부족할지 몰라도, 이렇게 숨어있는 사람들을 찾아내는 건 꽤 잘해요. 첩보국에서도 훈련시킨단 말이에요.”

나는 그 말에 대답했다.

“사실, 네가 못 미더운 건 아니야. 첩보국이 다소 못 미덥다는 거지.”

의외로 그 자식들 국가 최고위 정보기관이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게 자꾸 뭔가 허당 같다는 느낌이 들게 한단 말이지. 내 말에 클로에가 애매한 표정을 지었다.

“뭐, 마틴 님이라면 그렇게 생각하실 만도 하네요. 하지만 정말 자신 있어요.”

“그렇게까지 말한다면야.”

나는 클로에를 바라보다가 한마디를 덧붙였다.

“부탁한다. 사실상 너한테 내 목숨의 처우를 넘겨준 거나 마찬가지야.”

클로에가 숨어있는 정보처의 요원 중 하나라도 찾아내는 데 실패하면 위험해진다. 내 말에 클로에가 진지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건 저도 알고 있어요. 실망시키지 않을게요.”

“좋아, 그럼 시작한다.”

대답을 들은 나는 지붕 위에 자리 잡은 나는 길목의 외진 곳에 허상을 하나 만들어낸 다음, 그대로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큰길로 나오도록 했다.

내가 해야 할 일은 간단하다. 큰길로 나와서 주변을 살피는 척하다가, 모자를 꾹 누른 자세를 유지하며 조심스럽게 길을 건너, 반대편에 있는 뒷골목으로 걸어가도록 만들면 된다.

“세 명이에요.”

나는 그 말에 클로에를 바라봤다.

“확실해요.”

“위치는?”

내 말에 클로에가 곧바로 대답을 돌려주었다.

“반대편 건물 3층, 그리고 여관 건물 왼쪽 구석, 마지막으로 저희가 있는 건물에서 이어지는 뒷골목에 한 명.”

나는 그 말에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위치는 파악하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곧바로 희미하게 소쩍새 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아닌 밤중에 갑자기 소쩍새 소리가 날 이유가 없으니, 이건 지들끼리 주고받는 신호 같은 거겠지.

“두 명이 움직이는군.”

내 말에 클로에가 고개를 끄덕였다.

“한 명은 주변을 살필 생각이겠죠. 여관 맞은편 건물에 있는 녀석이 주변을 감시할 생각인 모양인데요. 감시하는 눈이 줄었어도 지붕으로 들어가는 건 다소 까다로울 것 같은데.”

여관의 지붕이 ㅅ 모양으로 되어있기에, 지붕의 뒤편을 통해 움직이면 경사로 인해 맞은편에 있는 건물에서는 우리가 보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여관의 굴뚝은 맞은편에서 볼 수 있는 지붕면에 위치하고 있어요.”

“그건 내가 처리할 수 있어, 더 늦기 전에 움직이자.”

내 말에 클로에가 고개를 끄덕이고 나와 함께 재빨리 여관 쪽으로 다가갔다. 동시에, 나는 살짝 고개를 지붕 너머로 내밀었다.

“신호를 보내면 바로 뛰어서 굴뚝으로 들어가. 하나…… 둘…… 지금.”

말을 마친 나는 이번에는 허상이 아니라 분신을 만들어, 우리를 감시하는 녀석이 위치한 창문 바로 옆쪽을 툭툭 노크했다.

내 신호와 함께 클로에는 재빠르게 굴뚝 쪽으로 뛰었다. 지켜보던 녀석의 시선은 순간적으로 옆으로 돌았을 테니, 클로에가 굴뚝 안으로 들어가는 걸 확인 할 수는 없었을 거다.

실제로, 건물 건너편에서는 별다른 움직임이 보이지 않는다.

“다음은 내가 들어갈 차례인데.”

클로에만 무사히 보내는 데 성공했으면 내가 들어가는 건 껌이지. 은신을 사용한 나는 천천히 굴뚝에 도착해 그대로 뛰어들었다. 잠시 뒤, 나는 검댕이 달라붙은 상태로 여관의 식당에 진입하는 데 성공했다.

“크흐.”

“고생하셨어요.”

기어 나온 나를 향해 클로에가 손을 내민다. 나는 그 손을 잡고 자리에서 일어나 잠깐 기지개를 한 번 켜고, 입맛을 다셨다.

“정리해야지.”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고 나서 빠르게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가져와 굴뚝 주변을 정리했다.

“감쪽같네요. 검댕이 묻은 모습만 걸리지 않는다면, 굴뚝을 통해 누가 들어왔다고는 생각하지 못할 거에요.”

“수상한 점을 잘 찾아내는 사람들이 또 수상한 점을 감추기도 잘하는 법이니까.”

나는 다시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원위치시켜놓고 주머니에서 숙소의 열쇠를 꺼냈다.

“이걸로 다 끝났어. 숙소 들어가서 쉬자.”

이 시간에 주방은 물론이고, 사람들이 돌아다닐 리가 없었기 때문에 우리가 머무르는 것으로 되어있는 숙소에 도착하는 건 별로 어렵지 않았다.

“깨끗하네요. 게다가 방도 크고…… 이거 봐요, 주전자와 함께 준비되어있는 찻잎도 꽤나 고급품이에요.”

“보석상이잖아. 숙소에 이 정도 돈은 사용하는 게 당연하지.”

내 말에 클로에가 음, 하는 소리를 내고 고개를 끄덕인 다음 램프에 불을 붙이고 서류를 살피다가 작게 감탄하면서 나에게 서류를 건네주었다.

“첩보국에서 신경을 많이 썼다고 하더니, 사실이긴 하네요.”

나는 건네받은 서류를 살펴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에게 정보처의 감시가 몰리게 될 것을 방지하기 위해 테네스 공국에서 우리와 비슷할 정도로 수상한 녀석들을 세 팀 정도 출발시킨 모양이다. 우리를 포함하면 정보처에서 감시해야 하는 무리가 네 개가 된 거니까, 우리에게 인력을 집중하기 힘들겠지.

“문제는, 올리비에 황녀의 과거 행적인데요.”

클로에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첩보국에서 건네주고 돌아간 정보에는 최근 몇 년간 올리비에 황녀의 행적도 기록되어 있었다.

어디로 가야 우리가 필요로 하는 정보를 확보할 수 있을까. 나는 서류를 살펴보다가 어떤 단어 하나를 손등으로 툭 쳤다.

“가능성이라고 한다면 안티온 대도서관이 아닐까 싶긴 한데.”

악마와 한 계약을 푸는 방법이 무슨 오믈렛 만드는 레시피는 아니잖아. 길거리에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흔하게 접할 수 없는 정보에 속한다. 당연히, 그런 지식이라면 오랜 세월 지식을 축적한 안티온 대도서관이 필요한 정보를 찾아낼 수 있는 가능성이 가장 높을 것이다.

“그렇네요. 게다가, 이미 고인이 되었던 올리비에의 행적을 고려해보면, 그 황녀가 안티온 대도서관과 긴밀한 관계라는 점을 추측할 수 있어요.”

올리비에가 카루토스 타카운의 무덤에 대한 정보를 찾아낸 경로는 당연히 안티온 대도서관이었을 것이다.

그런 자료가 도서관 카드 만들면 무료로 대여해서 볼 수 있는 종류의 열람실에 있지는 않을 테니까.

“칠색 내각의 잔당 중 하나가 안티온 대도서관에서 한 자리 차지하고 있을 확률이 있어요. 하지만…… 안티온 대도서관 안에 들어있는 자료의 양은 말이 안 나올 정도로 방대한데.”

클로에의 말에 나는 잠깐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안티온 대도서관도 어쨌든 도서관인 이상, 누군가 출입하게 되면 그 기록이 남을 것 같은데.”

보유하고 있는 귀중한 도서를 누군가 빼돌리는 상황을 막기 위해서는 기록을 남기지 않을 수 없다. 내 말을 들은 클로에가 약간 눈썹을 올리며 대답했다.

“올리비에의 방문 기록을 확보할 수 있다면 탐색 범위를 줄이는 데 큰 도움이 되겠지.”

내 말에 클로에가 애매한 표정을 지었다.

“글쎄요, 어쩌면 차라리 대도서관이 소장하고 있는 자료 전체를 뒤져보는 편이 더 쉬울 수도 있겠는데요.”

“그 정도야?”

내 말에 클로에가 고개를 끄덕였다.

“제국 마법사들의 두뇌라고 불리는 곳이에요. 리버플로우 양의 도움을 받는다고 해도 몰래 침입하기 힘들 정도로 엄청난 장소인데. 그런 곳에서 꽤나 중요하게 다루고 있을 출입인 명단을 빼돌린다니.”

나는 그 말에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내 팔자가 쉽게 흘러간 적이 어디 있기는 했냐. 어려운 건 나도 알고 있어.”

어렵건 쉽건 그건 중요한 게 아니다.

“방법을 찾아내야지. 그게 아니라면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내가 죽기 전에 하고 싶은 일들을 목록으로 만들거나.”

“일단, 안티온 대도서관이 자리 잡은 도시에 도착하는 게 급선무겠네요.”

가서 보지 않으면 어딜 쑤시고 들어가야 하는지 확인할 수 없으니까.

게다가, 정보처에서도 계속 사람들이 따라붙는다고 생각해야 하기 때문에 이동 중에 계속해서 쓸데없는 일정들을 넣어야 할 필요가 있다.

“당장 내일만 하더라도 이 도시에 위치한 보석상에 가서 사업 이야기를 하는 행세를 해야 할 거야.”

“연기의 길은 멀고 고된 법이죠. 오늘은 무사히 여관에 도착한 것에 만족하면서 자도록 할까요?”

그래야겠지.

“먼저 씻으실래요?”

“네가 먼저 씻어라.”

말을 마친 나는 클로에가 씻고 나오는 걸 확인한 다음 몸을 닦고 밖으로 나왔다. 클로에는 내가 따로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소파에 자리를 펴고 누워있었다. 수건으로 머리의 물기를 닦아낸 나는 별다른 말 없이 램프를 끄고 침대에 누워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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