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화
가게 주인이 저 델 씨라는 인간에게 광산 일이 잘되는 모양이라는 질문을 던졌으니, 저 친구는 광산에서 일하는 친구다.
그리고, 광산 일을 하는데 저 새를 모를 수는 없다. 공기 품질에 굉장히 민감해서, 광부들이 광산에서 죽는 걸 방지하기 위해 꼭 데리고 들어가는 새니까.
고로, 저 새끼는 정보처에서 보낸 사람이거나, 아니면 더럽게 수상한 사기꾼이라는 사실이 확정되는 거지.
“이 보석은 어떻습니까? 아까 것과는 다르게 품질이 굉장히 좋은 녀석이에요. 원래 함부로 꺼내는 물건이 아닌데. 손님께서 보석을 좀 아시는 것 같아서 특별히 보여드리는 겁니다.”
이번에 가게 주인이 꺼낸 반지에 박힌 보석은 J나 K 정도 등급을 받을 수 있는 물건이었다. 희미하게 누런빛이 돌기는 하지만 육안으로는 여간해서 차이를 찾을 수 없겠지. 아까 것보다 품질이 좋은 다이아라는 건 확실하다. 반지에 박힌 보석을 살피던 나는 애매한 표정을 지었다.
보석에서 뿜어져 나오는 때깔이 어둡다.
“너무 깊게 깎은 것 같은데. 세공사가 실수를 한 모양이군요. 아니면, 이렇게밖에 가공할 수 없는 상태였거나.”
깊게 깎았다. 간단하게 말해서 세로로 길쭉하다는 뜻이다. 빛이 안으로 들어갔다가 제대로 빠져나오지 못해서 뿜어져 나오는 광채가 어둡다는 소리다.
내 말에 가게 주인이 으음, 하는 소리를 내고 어색하게 웃었다.
“혹시 동업자십니까?”
나는 그 말에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테네스 공국에서 웨이슨 보석상이라는 이름으로 장사를 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조금 쉴 기회가 생겨서 베로나 제국으로 여행을 왔지요.”
내 말에 가게 주인이 어허허, 하는 소리를 냈다.
“이런, 테네스 공국의 상인이셨다니. 기사 앞에서 말을 타려고 한 격이군요. 속이려고 한 건 그냥 좀 넘어가 주세요. 고의는 아니었습니다. 이 바닥이 다 이렇지 않습니까?’
“이해합니다. 고품질의 보석을 제대로 세공한 장신구라면 아무래도 이 도시의 고객들이 소화하기에는 무리가 있겠죠.”
내 말에 점원이 한숨을 팍 쉬고는 대답했다.
“어쩔 수 없지 않겠습니까. 이걸 한번 보시겠습니까?”
가게 주인은 그렇게 중얼거리고 뭔가를 꺼내서 나에게 보여주었다. 백금을 기반으로 금을 박아넣어 무늬를 만든 반지에, 4캐럿 정도는 되어 보이는 고품질의 다이아몬드가 박혀 있다.
“이건 굉장히 훌륭한데요. 세공 상태도 훌륭해요. 보트형 세공이군요.”
지구에서는 마퀴즈 컷이라고 불리는 세공이다. 길쭉한 보트 형태로 보석을 세공한 거다.
“이 도시에는 이런 장신구를 소화할 수 있는 고객들이 없습니다. 다소 흠결이 있어도 가격이 저렴한 장신구를 선호하는 손님들이 훨씬 맞지요.”
“그렇겠죠. 무슨 뜻인지 저도 이해합니다.”
어쨌든, 나는 보석상을 연기해야 하기 때문에, 나는 상점 주인과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며 시간을 보내기 시작했다.
“나는 이만 들어가 보겠네.”
마침내, 우리 옆에 붙어있던 녀석이 주인장에게 인사를 건냈다.
“아, 네! 들어가세요!”
나는 문을 나서는 녀석을 슬쩍 바라보고, 확인할 수 있는 것들을 확인했다. 남자, 근육질, 나이는 30대 초반, 키는 171cm에 발 크기는 275mm 정도 되겠네. 몸에 붙은 근육의 양을 고려해보면 몸무게는 적어도 85kg 언저리는 될 것 같다.
“저분은 누구시죠?”
“아, 델 씨요? 이 도시에서 좀 떨어진 광산에서 십장을 하고 있는 사람이에요. 아시다시피, 그 일이 고되긴 하지만 수입은 꽤나 짭짤하거든요. 엄청 값나가는 물건을 구매하는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꾸준히 와서 간단한 장신구 몇 개 정도는 구입하곤 합니다.”
나는 그 말에 아하, 하는 소리를 냈다.
“그럼 이 도시에 사는 분은 아니군요.”
“네, 뭐…… 그렇긴 하죠. 근데 이런 건 왜 물어보시는 건지 여쭤봐도 될까요?”
계속 질문을 던지다 보면 으레히 나오는 반응이다. 나는 그 말에 웃으며 간단한 대답을 돌려주었다.
“아까 광산 일은 잘되냐고 물어보셨잖아요? 혹시 어떤 종류의 광산인가 싶어서… 공급처는 많을수록 좋지 않습니까.”
내 말에 가게 주인이 아하, 하는 소리를 내고 빙긋 웃었다.
“이해가 되네요. 아무리 그래도 옆에 이렇게 아름다운 연인분이 계신데 너무 일에만 집중하시는 거 아닙니까?”
그리고는 뭐가 그리 좋은지 가게 주인은 허허허 웃음을 흘렸다. 동시에, 옆에서 클로에가 샐쭉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맞아요. 당신. 여기 와서도 일 생각을 하시다니. 조금 섭섭해요.”
“그런가?”
나는 살짝 당황한 표정을 지은 채 클로에를 바라보다가 헛기침을 한 번 하고 입을 열었다.
“방금 전에 보여준 그 반지는 가격이 어느 정도 합니까?”
내 말에 가게 주인이 히죽 웃으며 가격을 말했다. 대답을 들은 클로에가 옆에서 질색하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가격이 너무 비싸요.”
“그 정도 여유는 있어. 그리고, 조금 있으면 보석상의 아내가 될 텐데 이 정도 장신구는 있어야지 나도 어디에서 모양 빠지지 않잖아?”
내 말에 클로에가 보석함의 반지를 바라보며 머뭇거린다.
“아무리 그래도…….”
“괜찮아. 그 정도 능력은 있어.”
내 대답을 들은 클로에가 잠깐 내 눈치를 보나 싶더니 마침내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워요, 소중하게 사용할게요.”
“소중하게 생각해야 하는 건 결혼반지잖아?”
내 말에 클로에가 내 팔뚝을 손으로 툭 치고는 대답했다.
“그것도 소중하게 생각할 거예요.”
그런 대화를 나누던 우리는 반지의 구매에 필요한 가격을 지불하고 다시 숙소로 향했다.
“방금 전에 왔던 그 델이라는 사람이?”
“맞아. 아마, 우리가 이 도시를 떠나면 따라붙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이 도시에서 살고 있는 것으로 되어있지 않으니 여기를 떠난다 해도 이상하게 생각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분명히 신분이랑 복장을 바꿀 거에요.”
“그런 걸로 속지는 않아.”
알버트가 면상을 갈아 끼워도 알아맞히고, 가면무도회에서도 얼굴을 보지 않고 누가 누군지 알아맞힐 수 있는데, 변장 따위에 넘어가지는 않는다.
“…….”
숙소의 문 앞에 선 나는 열쇠로 문을 열기 전에 문을 살짝 잡아당겨 보았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이 여관의 문은 이중 구조다.
문을 여닫는 손잡이와, 위에 달린 버튼을 잡아 돌리면 문에서 쇠막대가 튀어나와 문과 벽을 연결시켜 열리지 않도록 잠가 버리는 잠금장치.
이런 구조로 되어있는 문은 완벽하게 닫히지 않고 약간 틈이 있어도 잠금장치를 통해 문을 잠가 버릴 수 있다.
그러면 살짝 당겼을 때 그제서야 찰칵, 하는 소리가 나며 문이 완전히 닫힌다. 즉, 문을 당겼을 때 찰칵 소리가 나지 않는다면 누군가 들어갔다 나왔다는 뜻이다.
“지금 시간에 청소부가 다녀간 건 아닐 테고.”
나는 그렇게 중얼거린 다음 주머니에 손을 넣고 아이씨, 하는 소리를 냈다.
“열쇠를 어디에 뒀더라.”
그런 말과 함께 주머니를 뒤지는 척하며, 클로에를 향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서류는 따로 남겨놓은 거 없지?”
“당연하죠, 제가 바보도 아니고.”
클로에도 마찬가지로 낮은 목소리로 대답을 돌려주었다.
“누군가 이 방을 다녀갔어. 어쩌면, 도청기 같은 걸 설치 해두었을지도 몰라.”
뭐, 턴다운 서비스 같은 걸 해줬을 가능성도 있지만, 아니라면 문제가 심각해지니까. 내 말에 클로에가 작게 대답했다.
“만약 그런 일을 벌였다면, 찾아내서 제거해야 하나요?”
“그러면 의심받을 거야. 도청기가 있는 것 같으면 환기하자고 하면서 창문을 열어버릴게.”
내 말에 클로에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열쇠를 꺼내 문에 꽂아 넣으며 말을 이었다.
“방 안의 모습을 관찰하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내 말에 클로에가 으음, 하는 소리를 내고 고개를 저었다.
“도청이라면 모를까. 방 안을 관찰할 수 있는 도구는 숨겨놓을 정도로 소형화할 수 없어요. 게다가 가격도 굉장하죠.”
하긴, 몰래카메라 같은 게 쉽게 가능했다면 군대의 상위 부대에서는 수정구를 통한 교신이 아니라 화상 회의를 열었겠지. 도촬이 불가능하다면…….
“정말 중요한 대화는, 글로 써서 보여주기로 하자.”
말을 마친 나는 문을 열고 클로에와 함께 방 안으로 들어왔다. 나는 곧바로 방 안을 살펴봤다.
이 방의 구조는 아직 기억에 남아있고, 이런 종류의 틀린 그림 찾기는 내가 또 전문이다. 설치도 잘하고, 색출도 잘하지.
침대 쪽에 걸려있는 그림, 위로 올라가서 살펴보니 액자 틀의 먼지가 하나도 없이 깨끗하다. 여기에 하나 숨겨놓았을 것이다.
조심스럽게 액자를 치워보자, 동전만 한 크기의 금속덩어리 하나가 붙어있는 게 보인다.
도청이라. 하고 있다는 걸 확정했으면 그걸로 만족한다. 다른 곳에도 숨겨놓았겠지. 나는 창문을 열면서 클로에에게 말을 걸었다.
“차 한잔 마실래?”
내 말에 클로에가 아, 하는 소리를 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가 끓일게요. 잠시만요.”
그 이외에도 차를 끓여 먹는 주전자의 방향이 다르다. 여기에도 하나 숨어있을 확률이 크다.
클로에가 차를 끓이는 동안 나는 방 안을 살피면서 여섯 개의 도청기를 찾아내는 데 성공했다. 위치 파악을 끝낸 나는 종이 위에 그림을 그려서 클로에에게 건네주었다.
“고마워요.”
대화에 신경을 써야 한다는 점 때문에, 클로에가 잘 해낼 수 있을지 걱정이었는데 의외로 클로에는 지금의 상황에 꽤나 빠르게 적응한 모양이었다.
“테네스 공국의 차가 벌써부터 그립네요. 베로나 제국의 차도 맛은 괜찮지만…….”
그런 대사를 던지며 클로에가 내 쪽으로 종이를 하나 내밀었다.
[이걸로는 부족하지 않을까요? 조금 더 확실하게 하려면…….]
[뭐, 좋은 생각이라도 있는 모양이네.]
내 말에 클로에가 곧바로 글을 적었다. 종이 위에는 꽤나 빼곡하게 뭔가가 적혀 있었다. 나는 그 내용을 확인하고 나도 모르게 한숨을 팍 내쉴 뻔했다. 진심이냐 이거.
[가장 확실한 방법이잖아요. 다른 방법 있나요?]
나는 그 쪽지를 확인하고 나서 잠깐 천장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이고 쪽지에 적었다.
[그래, 까짓거 해버리자.]
* * *
정보처의 요원은 네모난 상자를 앞에 두고 황당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설치한 도청기를 통해 전해지는 여관의 소리는 온갖 상황을 다 경험해본 정보처의 요원조차 당황하게 할 정도로 습기가 가득했다.
― 하읍…….
그런 소리와 함께 이어서 들리는 축축한 느낌을 가득 담은 채 무언가를 빨아들이는 소리와, 이어지는 남자의 신음.
“이게 지금, 도청을 하고 있는 거야 아니면 관음을 하고 있는 거야? 왜 대낮부터 이러는 거야.”
하긴, 젊은 남녀가 서로 연인 관계라면 대낮부터 저러는 걸 이해하지 못할 건 아닌데. 이어지는 남녀의 뜨거운 숨소리와 신음 따위를 전해주는 도청장치 앞에서 멍하니 서 있던 정보처의 요원은 이내 눈을 질끈 감았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 둘은 정말로 연인이 확실한 것 같다. 애초에, 보석상에 들어가는 걸 보고 따라붙었던 동료도 보석상이 맞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전해주었으니까.
정보처 요원은 빠르게 도청 일지를 기록하고, 거기에 관측 후 자신의 생각을 적어넣었다.
“도청기의 유지에 필요한 마력과 비용이 크니까…….”
아닌 게 거의 확실해진 지금 와서 저 두 사람을 도청하는 행위는 큰 의미가 없을 것 같다. 정보처의 요원에게 이런 종류의 취미는 없었으니까.
* * *
나와 클로에는 테이블을 마주한 채 굉장히 신기한 짓거리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클로에는 밤을 대비하기 위해 마련되어 있는 양초의 기둥을 입으로 빨아 소리를 내는 중이었고, 나는 그 옆에서 아무것도 없는 그릇의 바닥을 혀로 핥으며 소리를 내는 중이었다.
물론, 그 와중에 틈틈이 요상스럽기 짝이 없는 신음을 섞고, 사랑한다는 소리를 포함해 다소 외설스러운 이야기까지 입에 담고 있었다.
젊은 남녀가 테이블에 앉아서 건조한 표정으로 불쌍한 양초를 빨고, 아무 죄도 없는 나무 그릇을 핥는 행위는 모르는 사람이 보면 정신병동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할 정도로 유니크한 장면을 연출하고 있었다.
[턱 아파요.]
클로에는 입에 양초를 문 채 종이 위에 그런 내용의 글을 썼다.
[나는 혀에 쥐가 날 것 같다.]
그에 대한 내 대답이었다. 그 글을 확인한 클로에는 깊은 한숨을 내쉬고는 양손에 기름을 약간 바른 다음 맞잡고 비비기 시작했다. 격하게 질척이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나는 그 소리에 맞춰 스스로의 허벅지를 손으로 때려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진짜, 가지가지 한다. 사람 속이려고 이런 짓까지 해야 한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