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드우드-199화 (199/275)

199화

대충, 그런 이야기를 하면서 녀석들에게 술과 고기를 적당히 먹인 다음, 우리도 식사를 마치고 그들과 인사를 나눈 다음 숙소로 돌아갔다.

“깔끔하게 처리되었네요. 이런 일을 여러 번 해보신 것 같았어요.”

나는 그 말에 대답하지 않고 웃을 뿐이었다. 여러 번 해보긴 했지.

“다만, 일 처리가 너무 능숙해서 오히려 의심을 사 버리는 게 아닌지 걱정이네요.”

“거기에서 잘못했으면 우리, 베로나 제국에서 나가야 할 수도 있었어.”

내 말에 클로에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아무리 그래도, 설마 그럴 리가 있겠어요?”

“설마라니. 잘 생각해 봐. 우리에 대한 의심을 완전히 거두기는 좀 그렇고, 그렇다고 계속 의심하자니 투자해야 하는 인력과 시간이 아깝지. 그럼 내쫓아 버리는 게 상책이야.”

괜히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미심쩍은 혹을 달고 있느니 그냥 떼버리는 게 깔끔하잖아? 나는 소파에 앉아서 천장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거기에서 내가 아무것도 안 하고 어버버하고 있었으면 제일 먼저 나에게 말을 걸었던 목수가 주변 분위기를 고조시켰을걸.”

안 그래도 국경에 자리 잡은 이 도시 사람들은 파이크 왕국이라면 치를 떨 거다. 파이크 왕국으로 물자를 보낸 상인의 돈으로 가게를 차린 녀석이라는 사실은 불을 붙이면 잘 타오를 수 있는 장작더미와도 같다.

“우리에게 험한 말과 협박 같은 게 쏟아졌겠지. 자, 여기서 질문. 연인과 함께 여행을 왔는데, 여행지에서 폭언과 위협을 받으면 보통 어떻게 행동할 것 같아?”

계속 이 나라를 여행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을 리가 없다. 혼자서, 사업상의 이유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왔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꿋꿋이 돌아다닐 수도 있겠지만.

나와 클로에는 관광차 베로나 제국에 방문한 것이다. 그것도 결혼이 예정된 애인과 함께.

클로에가 뭔가를 깨달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만약, 일이 그렇게 된 다음 우리가 바로 테네스 공국으로 향하지 않고 안티온 대도서관이 자리 잡은 도시로 향했다면.”

“수상한 놈으로 확정되는 거지. 너랑 내가 열심히 양초를 빨고 그릇을 핥아서 지워낸 적의 의심이 다시 깊어지는 거야.”

하지만 일 처리가 이렇게 맨송맨송하게 끝나버리면 녀석들도 대변 보고 밑을 닦지 않은 것 같은 찝찝한 느낌은 있을지언정, 대놓고 의심할 수는 없게 된다. 방금 전의 일은 어느 정도 약삭빠른 상인이라면 가능할 수도 있는 임기응변이었으니까.

“녀석들의 방침이 이렇게 변해버린 이상 앞으로도 계속 이런 일들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건 인지하고 있어야겠네요.”

“뭐, 차라리 잘된 일이지. 앞으로는 입조심을 하면 되거든. 내가 테네스 공국에서 온 보석상이라는 사실을 감춰야지.”

이제는 감춰도 괜찮다. 왜냐하면, 여기에서 한 번 크게 일이 잘못될 뻔했으니까. 내 출신과 직업에 대해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기 꺼린다고 해도 그걸로 정보처 녀석들이 우리를 수상하게 여길 수는 없다. 누구나 이런 일을 겪고 나면 자신의 출신과 직업을 밝히지 않으려고 들 테니까.

“그나저나, 관보라.”

내 말에 클로에가 문 옆에 걸린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서 나에게 건네주었다. 아까 구석에 앉아 있던 관보 기자께서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있던 것과 같았다.

“황궁의 지원을 받아서 매주 발행된다고 알고 있어요.”

내용을 확인한 나는 입맛을 다셨다.

“첫 페이지는 언제나 황제에 대한 기사를 적는 모양이지?”

내 말에 클로에가 벽에 기댄 채 고개를 끄덕였다.

“관보니까요. 애초에, 제국에서 황제보다 더 중요한 게 뭐가 있겠어요.”

그건 그렇지. 첫 페이지 다음으로 넘어가면 제국에서 새로 제정된 포고령이나, 개정된 법안 따위들의 내용도 적혀 있었다. 그 이외에도 제법 신문이라는 형태에 걸맞은 느낌의 기사들도 보인다. 엄밀히 말하면 관보 겸 신문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고 말하는 편이 더 정확할 것이다.

“우리 나라와는 다르네.”

“다른 나라니까요. 게다가, 객관적으로 분석하면 더 강대국이기도 하죠.”

나름대로 인쇄기술 같은 건 있는 모양이구나. 하긴, 인쇄기를 만들 기술력이 없어도 이 세상에는 마법이 있으니까. 신문을 펼친 나는 다소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거 잉크가 아니잖아.”

종이를 그슬어서 글자를 적어놓은 거다.

“마법을 사용한 거 같아요. 장기적으로는 잉크를 조달하는 것보다 비용이 적게 들 테니까요.”

하긴, 제국 전체에 뿌리는데 필요한 잉크의 양을 생각한다면 차라리 그편이 더 경제적일지도 모르겠다.

신문의 첫 페이지를 쭉 읽어내린 나는 작게 한탄했다.

“이 양반 아직까지도 이러고 있는 모양이네.”

나는 자식이 없으니까 사랑하는 딸을 잃은 아버지의 마음을 알 길은 없지만, 아무리 그래도 한 나라의 최고 존엄이 아직까지도 나랏일을 놓고 있다는 건 좀 심하지 않나?

“안식 예배는 또 뭐야?”

적혀 있는 내용이 사실이라면, 자그마치 3일에 걸쳐서 진행될 예정이라고 한다.

“발인 후 묘소에서 이루어지는 예배에요. 베로나 제국에서는 장례식을 마치고 나면 빠른 시일 안에 날을 잡아, 묘소에서 고인의 안식을 바라며 예배를 올리죠.”

“보통 3일 정도 하는 거야?”

내 말에 클로에가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요. 평범한 사람들이라면 두세 시간 정도면 끝나요. 하지만, 황녀를 위해 올리는 안식 예배라면 베로나 제국에서 콧방귀 좀 뀌는 교단들이라면 모두 예배를 올리고 싶어할 테니…….”

그 교단들이 다 한 번씩 예배를 돌리는 방식으로 일정을 짜다 보니 3일이라는 기가 막힌 시간이 소모되게 되었다는 건가.

“좋은 일이군.”

그런 큰 행사가 있다면 제국의 주요 인물들 대부분이 참석한다고 생각해야 한다. 그 말인즉슨, 우리가 지금 목표로 정해둔 안티온 대도서관의 주요 인물들도 상당수 빠져나갈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다. 주요 인물들이 모두 모이게 되니 자연스럽게 해당 장소를 경비하는 인원도 늘어나겠지.

하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어차피 우리가 올리비에의 묘소에 가서 그 친구의 죽음을 슬퍼해야 할 이유는 없다.

“안티온 대도서관의 관장이 이 예배에 참석한다면, 그 친구의 집은 비게 된다는 뜻이야.”

내 말에 클로에가 입술을 혀로 핥아 침을 바른 다음 대답했다.

“그렇군요. 안에서 뭔가를 찾아낼 수 있을 거예요.”

가장 좋은 건 역시 안티온 대도서관에 입장할 수 있는 권한이겠지만, 꼭 그게 아니어도 상관없다. 대도서관 내부의 지도, 아니면 대도서관에서 필요로 하는 일용품이나, 도서의 출입 예정 일자.

뭐든 상관없다. 녀석의 저택을 뒤져서 얻어내는 정보는 분명히 안티온 대도서관 안을 뒤지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들어가기 힘든 곳은, 아래부터 위로 등반하면 되는 법이니까.”

이런 일을 할 때 취해야 하는 가장 기본적인 자세다.

안티온 대도서관이 들어가기 힘든 장소다? 그럼 한 단계 아래로 내려 대도서관의 관장 저택을 노리면 된다.

그 저택도 들어가기 힘들다? 그럼 그 저택에서 일하는 하녀나 하인을 노리면 된다. 그렇게, 가능해 보이는 녀석부터 하나하나 공략해서 서서히 위를 노리다 보면 결국 안티온 대도서관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길이 열릴 것이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으려니 갑자기 옆에서 목소리가 들린다.

“저기, 시키실 일이 없으면 저는 먼저 자도 될까요?”

클로에의 말에 퍼뜩 정신을 차린 나는 멍하니 그녀를 바라봤다. 상당히 피곤해 보이는 눈이다. 시간이 꽤 지난 모양인데. 계속 잠을 참아가며 저러고 앉아 있었던 건가.

“어, 그래.”

내 대답을 들은 클로에가 소파로 향한다.

“오늘은 네가 침대에서 자라.”

“에이, 그럴 수는 없죠.”

나는 클로에의 말에 잠깐 클로에를 바라보다가 시선을 다시 치우며 말했다.

“세 번은 안 권할 거야. 침대에서 자.”

내 말을 들은 클로에가 군말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침대로 향하더니, 그대로 이불을 덮고 드러누웠다. 나는 조명을 끄고, 소파에 누워 눈을 감았다.

“…….”

눈을 감고 있으려니, 희미하게 삐걱이는 소리가 들린다. 눈을 뜬 나는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나 바닥에 귀를 가져갔다. 바닥을 타고 내 귀로 전해지는 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었다. 이쪽으로 오고 있다는 뜻이다.

이유가 뭘까.

나는 곧바로 몸을 일으켜 손수건을 물에 적시고 검을 챙긴 다음, 천천히 침대 쪽으로 다가가 클로에를 어깨를 몇 번 흔들었다.

“무슨.”

클로에가 뭐라고 말하려고 하자 나는 쉬이, 하는 소리를 내고 클로에를 바라봤다.

“쉿, 있어 봐.”

“네?”

내 말에 클로에가 몽롱한 눈을 한 채 나를 바라본다. 나는 재빠르게 물에 적신 손수건으로 클로에의 얼굴을 닦았다. 몽롱하던 클로에의 눈이 서서히 정상으로 돌아온다.

“누군가 우리가 머무르는 방으로 오고 있어. 같은 침대에 누울 거야.”

해치러 오는 게 아니라, 뭔가를 확인하고 싶어서 오는 것일 가능성이 크다.

내 대답을 들은 클로에가 곧바로 굳은 표정을 짓고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검을 이불 안에 밀어 넣고, 곧바로 침대에 누워 이불을 덮었다. 클로에는 곧바로 내 쪽으로 붙어 가슴에 얼굴을 가져갔다. 나는 그런 클로에에게 팔베개를 한 다음, 그녀를 끌어안았다.

문 너머에서 작게 찰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문을 따고 있는 거다. 클로에의 몸에 약간 힘이 들어간다.

“호흡, 조절해. 그리고,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움직이지 마.”

내 말에 클로에가 천천히 숨을 가다듬기 시작한다. 이내, 클로에의 숨소리가 잠든 사람의 숨소리와 비슷하게 변한다.

나와 클로에 사이에는 내가 숨겨놓은 검 한 자루가 숨겨져 있다. 하지만, 이걸 사용할 일은 없을 확률이 높다. 아마, 지금 문을 따고 있는 녀석은 뭔가를 확인하러 들른 것일 가능성이 높다.

철컥,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그리고 누군가 천천히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나와 클로에는 숨을 죽인 채 긴장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

침대 바로 옆에서 인기척이 느껴진다. 스르릉, 하고 검이 뽑히는 소리가 들리고 나를 끌어안은 클로에의 손에 힘이 바짝 들어간다. 휘익, 하고 검이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렸다. 다행히도, 클로에는 내가 지시한 일을 잘 수행했다. 그녀는 그 소리를 듣고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다시, 희미하게 칼집과 칼날이 스치는 소리가 들린다. 다시 검을 집어넣은 거다. 이내, 녀석은 다시 조용히 문을 나섰다.

“방금 전 그건.”

“정보처에서 보낸 사람일 거야. 우리의 관계가 사실이 맞는지 확인하러 온 거겠지.”

내 말에 클로에가 나에게 안긴 채 작게 중얼거렸다.

“마틴 님이 미리 지시하지 않았으면, 검을 뽑는 소리가 나자마자 반응했을 거예요.”

나는 그 말에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것 같아서 미리 말해둔 거야.”

거기에서 클로에가 반응했으면 저 녀석은 어렵지 않게 제압할 수 있었겠지만, 외려 저 녀석을 제압하면서 일이 크게 잘못되었을 것이다.

보석상이 정보처에서 보낸 사람을 제압한다? 그게 어딜 봐서 보석상 부부야.

“검을 휘두르는 소리가 들릴 때는, 꼼짝없이 다 끝나는 줄 알았어요.”

“그럴 가능성은 매우 낮았어.”

녀석들은 사람 피를 보고 싶어서 미친 연쇄살인마가 아니다. 목적과 이유를 가지고 움직이는 조직이다. 함부로 사람을 죽인 다음 그 뒤처리를 하는 건 녀석들 입장에서도 번거로운 일이다.

“의심을 거두는 데 성공했다고 생각했는데, 저 녀석들도 끈질기네요.”

나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가 여태 동안 한 일에 실수는 없었다. 감시는 옅어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 녀석들은 아직도 완전히 의심을 버리지는 않은 모양이다.

“내가 늦게 잠들어서 다행이었지.”

오늘은 그냥, 재수가 좋았던 거다. 나와 클로에가 한 침대를 쓰고 있지 않았다면 우리의 관계를 의심하게 되었을 거다. 나와 클로에가 평상시처럼 잠자리에 들었으면 크게 일이 틀어질 뻔했다.

“…….”

내 대답을 들은 클로에가 잠깐 뒤척이며 생각을 하나 싶더니 대답했다.

“아무래도, 한 침대를 쓰지 않고 따로 자는 건 그만두는 편이 좋을 것 같아요.”

나는 한탄 섞인 목소리로 대답했다.

“저 녀석들이 이렇게까지 하는 이상에는, 그럴 수밖에 없겠지.”

팔팔하게 젊은 몸뚱어리를 가지고 아름다운 여자랑 같은 침대를 써야 한다니. 잠 한번 기가 막히게 잘 오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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