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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우드-208화 (208/275)

208화

우리는 아마그리 숲의 초입부에서 바로 숲속으로 진입했다. 사실상, 걷는다기보다는 기어간다는 표현이 더 적절했다. 최대한 몸을 낮추고, 가능한 적은 소리를 내기 위해 노력했다. 1시간 정도의 행군 끝에 우리가 이동한 거리는 고작 2km 정도였다.

“푸엣취!”

주변에서 끌어모은 덤불과 낙엽 따위를 뒤집어쓴 채 천천히 움직이던 와중, 우리에게서 20-30m 정도밖에 떨어지지 않은 지점에서 사람의 기침 소리가 났다. 나와 클로에는 동시에 움직임을 멈췄다. 사람이 있다. 방금 전 기침 소리에는 땅 아래에서 올라온 것 같은 소리였다. 입을 틀어막고 한 기침이지만, 한밤중의 숲속에서는 나팔에 대고 소리친 것처럼 선명하게 우리 귀를 때렸다.

우리는 다시 천천히 땅을 기어가기 시작했다. 여기에 적들이 숨어있다면, 우리는 최소한 이 차단선 만큼은 거의 다 넘었다는 뜻이다. 저 멀리에서 횃불을 들고 움직이는 녀석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대도서관에 침입한 녀석 중 하나는 여자라고 하던데?”

“그래? 갑자기 수색에 대한 열정이 솟구치는걸.”

녀석들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횃불로 여기저기를 비춰보는 중이었다. 주기적으로 이 일대를 순찰하는 녀석들이다. 손에는 끝이 날카로운 쇠 작대기를 하나 들고 땅을 이리저리 쿡쿡 찔러보고 있었다.

녀석들은 우리 쪽으로 다가오고 있다. 밤이고, 우리는 계속 덤불을 뒤집어쓰고 이동하는 중이었기 때문에 아직까지 들키지는 않았지만.

“야, 교대해. 팔 아파 죽겠다.”

“벌써? 몇 번이나 했다고.”

“수백 번은 했어 이 새끼야. 넌 하루가 멀다 하고 변소에서 손놀이 하잖아. 그 팔근육을 좀 유용한 곳에 써보라고.”

“옘병.”

땅을 막대기로 쿡쿡 찌르던 녀석이 횃불을 든 놈에게 작대기를 건네주고, 횃불을 받는다. 그리고, 녀석들은 다시금 땅을 막대기로 콱콱 찌르며 다가오기 시작했다. 지금 클로에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마 상당히 긴장하고 있겠지.

나는 재빨리 주변을 살폈다. 아까 기침을 한 장소. 나는 그 위에 분신을 만든 다음, 그 위에서 팍 드러눕도록 한 다음 바로 분신을 지워버렸다.

“으아아악?!”

기침 소리가 들렸던 곳 위에 수북이 쌓여있던 덤불이나 낙엽 같은 것들이 푹 꺼지면서 안에서 비명이 울린다. 횃불을 들고 주변을 쿡쿡 찌르던 녀석들이 놀란 표정으로 눈을 크게 뜨고 그쪽을 바라본다.

“이런 씨팔, 이 개새끼야. 내가 지주대 튼튼한 걸로 가져오라고 했지! 안 그러면 부러진다고 했어 안 했어. 사람 말을 좆으로 듣네 이게.”

“죄, 죄송합니다!”

그리고, 순찰하던 녀석들이 그쪽을 향해 외친다.

“멈춰, 홍차!”

“걸상! 우리는 삼십칠 번 매복조다.”

그 말에 횃불을 들고 있던 녀석들 중 하나가 웃으며 입을 열었다.

“삼십 칠번…… 와 씨. 제론이었냐? 니들 존나 잘 숨었다? 바로 옆에 있는데도 모를 뻔했네.”

“그럼 뭐해, 이 빙신 같은 새끼가 다 조져버렸구만. 넌 썅, 상황 끝나고 막사 돌아가서 보자. 니들도 구경하지 말고 좀 도와줘. 이거 우리 셋이서 하면 시간이 너무 걸려.”

“알았어. 후딱 끝내자.”

순찰하던 두 녀석은 주변 땅을 콱콱 쑤시는 걸 잠깐 멈추고, 녀석들이 은신처를 다시 지어 올리는 걸 도와주기 시작한다.

그 사이, 나와 클로에는 최대한 천천히 움직여 그 장소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위급하던 상황을 벗어났음에도 불구하고, 나와 클로에는 서로 말 한마디를 나누지 못했다. 방금 전에는 정말 위험했다. 그리고, 이 제국군 병사들은 내가 생각한 것보다 더 잘 숨는 것 같다. 애초에, 밤 중의 숲속은 굉장히 어둡기 때문에, 따로 빛을 밝힐 수단이 없는 지금 적이 숨은 곳을 찾아내는 게 보통 어려운 게 아니다.

한마디 대화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몇 시간째 이어지는 긴장감. 목이 말라도 물을 마실 기회가 없고, 배가 고파도 뭔가를 먹을 여유가 없다. 그냥, 계속해서 덤불 사이에 숨고, 낙엽을 뒤집어쓴 채 흙 위를 기어서 앞으로 나아갈 뿐이다.

몇 시간이나 지났을까. 나는 살짝 손을 들어 올렸다. 하지만, 여전히 클로에가 꾸물거리며 움직이는 모습이 보인다. 뭐 하는 거야. 나는 조심스럽게 클로에 쪽으로 다가가서 말을 걸었다.

“클로에, 이 근처로 하자.”

들키지 않고 낮을 보내야 한다. 내 옆으로 바짝 다가온 클로에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저도…… 그러니까. 맞다고 생각, 해요. 아니, 그래야 한다고.”

그 목소리를 들은 나는 시선을 돌려 클로에를 확인했다. 얘 갑자기 상태가 왜 이런 거야. 잠깐 그녀를 살펴보던 나는 손을 뻗어 그녀의 어깨를 잡았다.

“왜 이렇게.”

체온이 엄청나다. 나는 곧바로 클로에 쪽으로 바짝 붙어 그녀의 몸 상태를 확인했다.

“조금, 어지러운 것뿐이에요.”

“지랄하지 말고 얌전히 있어.”

나는 다소 신경질적으로 쏘아붙인 다음 클로에의 몸 상태를 확인했다. 체온이 뜨거운데 몸에서는 땀 한 방울 안 나온다. 이건 일사병인데.

클로에는 어눌한 목소리로 힘겹게 말을 잇기 시작했다.

“그으, 횃불. 뱀. 분신…… 놀라서. 팔뚝.”

문장이 아니라 단어가 이어진다. 나는 곧장 그녀의 팔뚝을 살펴봤다. 손끝을 타고 물린 흔적이 희미하게 느껴진다.

아까 횃불 들고 쇠꼬챙이로 땅 찌르던 녀석들 때문에 움직임을 멈춘 기억이 있는데. 그때 아마 뱀을 마주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아니, 뱀이 있는 건 몰랐을 거다. 알았다면 뱀 따위가 클로에의 능력을 무시하고 살에 독니를 박아넣을 수 있을 리가 없다.

내가 분신으로 적들의 텐트를 무너뜨리는 와중에 뱀이 놀라서 클로에를 물어버렸나 보군. 뱀이 근처에 숨어있는 줄 모르고 있던 클로에는 그대로 물려버린 거고.

“어디에 사는 무슨 뱀이 일사병을 유발해? 일이 꼬이려니까.”

“……죄송해요.”

“뭐가, 뱀한테 갑작스럽게 팔뚝을 물렸는데도 들키지 않으려고 소리를 참은 게?”

이건 그냥 재수가 더럽게 꼬였을 뿐이지, 클로에가 뭘 잘못한 게 아니다. 그 이후로 이어진 상황도, 클로에가 자신이 뱀에게 물렸다는 걸 나에게 보고하기는 힘든 상황이었다.

어쨌든, 여기에서 버티는 건 포기해야 한다. 일사병 걸린 사람한테 땅 파고 들어가서 15시간 정도를 버티라는 건 그냥 사형선고다.

일사병은 바로 치료하지 않으면 걸린 사람 중 8할이 죽는다. 그리고, 설사 살아난다고 해도 2할 정도의 환자는 뇌 손상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아 후유증이 남는다.

“해열제…… 가방에…….”

“소용없어.”

해열제는 일사병에 소용없다. 무조건 체온을 식히는 방식으로 치료해야 한다. 병원에 실려 가도 약을 주는 게 아니라 얼음과 물로 체온을 식힌다.

내가 필요한 것들을 준비하는 그사이, 클로에는 실신한 모양인지 움직임이 보이지 않는다. 나는 그런 클로에를 확인하고는 혀를 찼다.

“그래, 차라리 기절해 있는 편이 좋을 거다. 실례 좀 하마.”

우선, 클로에의 옷을 싹 벗겼다.

배낭을 뒤지던 나는 투명한 색의 액체가 담긴 병을 확인하고 꺼내서 냄새를 맡아봤다. 코끝이 찡할 정도로 독한 증류주다. 더 뒤적거리니, 솜뭉치 같은 것들도 보인다.

“소독약 대신으로 쓸 생각이었던 모양이네.”

어쨌든, 유용하게 쓸 수 있어서 다행이다. 나는 곧장 입에 알콜을 머금은 다음 클로에의 몸을 향해 확 뿜었다. 뿜어져 나온 알콜들이 클로에의 몸에 닿는 즉시 증발하며 열을 빼앗아 갈 거다.

“크흐, 이러면 술 냄새가 나긴 하겠네.”

지금 그게 중요한 건 아니지. 들키지 않을 생각까지 하며 치료하기에는 너무 위험한 상황이니까. 계속해서, 병 안에 담겨있는 알콜을 계속 입으로 뿜던 나는 텅 빈 병을 다시 집어넣은 다음 벗겨둔 옷을 흔들어 부채질을 했다.

“그리고…….”

속옷과 셔츠를 다시 입히고, 그 위에 물을 뿌려 옷을 적신 다음 그녀를 안아 들었다. 여기에서 할 수 있는 조치에는 한계가 있다. 물이 더 필요하다. 이 숲을 나가게 되면 건너는데 다리가 필요할 정도로 넓은 강이 나온다.

나는 수정구를 들고 알버트에게 연락했다.

“클로에가 독사에게 물렸습니다.”

내 말에 알버트가 대답했다.

― 독사? 숲에서 물린건가?

“그렇습니다. 고열에 시달리다 실신했고, 몸에서 땀이 나지 않습니다. 계획을 변경할 생각입니다.”

내 말에 알버트가 잠깐 침묵을 지키다가 대답했다.

― 다른 선택지도 있네.

나는 그 말에 건조하게 대답을 돌려주었다.

“제가 선택하지는 않을 것 같으니. 굳이 선택지가 뭔지 물어보지는 않겠습니다.”

― 클로에는 유능한 인재야. 나도 인정하네. 하지만, 그로 인해 자네까지 위험에 빠지는 상황을 감수하고 싶지는 않아.

물어보지 않겠다고 했지만, 알버트는 굳이 자신이 제시할 예정이었던 선택지를 공개했다.

― 포기하게.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도 있는 거야.

나는 그 말에 얼굴을 구긴 채 말했다.

“결정을 번복할 생각은 없습니다. 계획은 변경하겠습니다.”

― 이봐, 나는 왕국의 첩보국장이네. 임무의 달성을 위해서 죽어 나간 첩보국 요원들의 숫자가 얼마나 될 것 같나? 내가 첩보국장에 오르기 전까지 봐야 했던 수많은 광경들은 또 어떻고. 나라고 이런 선택지를 제시하고 싶어서 한 게 아니야. 이 세상에는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게 아니라, 둘 중 하나를 포기해야 하는 선택지도 존재해.

이야기를 듣고 있던 나는 얼굴을 구긴 채 말을 다소 짧게 했다.

“첩보국장. 나는 첩보국의 요원이 아닙니다. 내가 댁을 돕는 게 아니고, 댁이 나를 도와야 하는 상황입니다. 내가 계획을 바꾸겠다고 했으면, 당신은 수긍하고 협조하셔야 합니다.”

― 세자 저하의 지시에 따라 말이지. 세자 저하께서는 자네에게 무슨 일이 생길 것을 걱정하고 있어.

클로에 로니세라가 아니라.

알버트의 말 뒤에는 그런 문장이 숨어있는 것 같았다.

― 이런 젠장맞을. 클로에 로니세라 경은 내가 어릴 적에 거두어들여서 훈련하고 키웠어. 나라고 그 아이에게 정이 없을 것 같나? 내 면상은 수천 개의 바늘을 박아넣어도 피 한 방울 나지 않는 줄 알아? 고열에 발한 증세가 없다는 게 뭘 의미하는지는 나도 알고 있어. 해당 증세의 치료를 위해서는 다량의 물과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지. 자네가 처한 상황에서 그 두 가지 조건을 달성해서 클로에 로니세라 경을 치료하고 무사히 빠져나올 방법은 없단 말이네.

알버트가 답지 않게 말이 많아졌다. 꽤나 화가 난 모양이다.

“방법은 있습니다.”

― 이성적으로 판단해. 자네답지 않군. 다시 한번 내 제안을 깊게 고려해보게.

나는 그 말에 낮게 웃음을 흘리고 대답했다.

“저에게는 클로에가 필요합니다. 더 이상 고려하지는 않겠습니다. 숲을 빠져나오면 만나게 되는 강에 빠질 겁니다. 강물을 타고 계속 내려가면 바다가 나오겠죠.”

강이니까. 강물의 끝에 바다와 만나는 지점은 있을 수밖에 없다. 강물에 빠지면 체온을 식혀야 하는 클로에의 열사병에 대한 조치도 될 수 있다. 익사는 내가 막으면 된다.

아직은 주변이 어둡다. 빠른 속도로 숲을 빠져나가면 녀석들은 어촌 일대를 포위할 것이다. 나와 클로에는 들키지 않고 강물에 떠밀려 내려가면 된다.

― 포위망에 강이 포함되어 있으면, 그 강을 따라 병력을 배치하는 건 상식이야. 자네, 피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나?

“최대한 빨리 그 강이 바다와 접하는 지점 근처에 배를 한 척 준비해주세요.”

꼭 강 하류 근처에 배가 있어야 하는 건 아니다. 안전을 위해 좀 먼 바다에 배를 위치시킨다고 해도, 내가 직접 헤엄쳐서 찾아가면 될 일이다.

― ……젠장, 알았네. 이렇게 되었으니 클로에 로니세라 경의 안전도 반드시 확보하길 바라네.

“감사합니다.”

말을 마친 나는 수정구를 다시 집어넣고 클로에를 둘러업었다. 신고 있던 신발은 클로에의 신발로 갈아신었다. 안티온 대도서관에서 필사한 내용이 적힌 종이는 둘둘 말아 텅 빈 물통 속에 넣고 뚜껑을 닫았다. 물통이니까, 방수는 문제없지. 여기에 만약을 대비해 나침반도 챙겼다. 그리고 안티온 대도서관에서 슬쩍한 책.

“이건, 물에 젖어도 첩보국에서 복원할 수 있기를 기대해야지.”

챙기기는 하겠지만, 물에 젖어서 쓸 수 없게 되면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이외에 나머지는 필요 없다. 나는 곧바로 달리기 시작했다.

물로 적셔놓은 몸이지만, 등에 업으니 그 젖은 천 너머에서 뿜어져 나오는 뜨거운 체온이 아직도 느껴진다. 응급조치는 했다고 하지만, 서둘러서 추가로 뭔가를 하지 않으면 위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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