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드우드-209화 (209/275)

209화

푸앙트로제 인근에서 병력을 지휘하던 제국군의 사령관에게 누군가 달려왔다.

“보고가 들어왔습니다. 아마그리 숲에서 현재 용의자가 피셰르 어촌 방향으로 질주 중이라고 합니다. 아군이 파악하고 있던 인적 사항과 동일합니다.”

남자 하나, 여자 하나. 입고 있는 복장과 머리색 같은 것들이 전부 일치한다. 여자에게 무슨 문제가 생겼는지, 남자가 여자를 업은 채 도주 중이라고 한다. 사령관이 그 말에 자리에서 팍 일어나며 좋아! 라고 외쳤다.

“포위를 준비해라. 아마그리 숲 일대부터 시작해서 피셰르 어촌에 이르는 범위를 쥐새끼 한 마리 못 빠져나가도록 틀어막아. 현재 푸앙트로제로 향하고 있는 모든 병력들에게도 이 사실을 알려 도착하는 즉시 포위망에 힘을 보태도록 조치한다.”

말을 마친 사령관은 곧바로 지도를 살피며 선을 긋기 시작했다.

“아마그리 숲에서 피셰르 마을로 향하는 경로에 강이 자리 잡고 있다. 강을 따라 병력을 배치해, 만에 하나 추격 대상이 강물을 타고 빠져나가는 일이 없도록 해라. 적은 칼린 경을 한칼에 죽일 정도의 실력자다. 대처에 신중을 기하고, 소수의 병력이라면 보고에 우선순위를 두도록.”

말을 마친 사령관은 숨을 깊게 몰아쉰 다음 다시 자리에 앉았다. 황급하게 문을 연 병사가 급박한 목소리로 외쳤다.

“사령관님, 황제 폐하십니다!”

그 말에 사령관은 앉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병사가 들고 있는 수정구를 받았다.

“황제 폐하.”

― 푸앙트로제에서 발견된 수상한 자는 마틴 레드우드와 그 졸개일 가능성이 높다! 만에 하나라도 놓치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야!

그 말을 들은 사령관의 머리가 순식간에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코랄린 관문의 악마.

“황제 폐하, 소신이 추격하고 있는 대상이 마틴 레드우드가 맞다면 신중을 기해야 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잘못하면 아군의 피해가 너무 커질 수도 있습니다.”

코랄린 관문에서 얼마나 많은 병사들이 죽었는지는 제국에서 녹봉을 받아먹고 있는 자들이라면 다들 알고 있다. 소수의 병력과 하이랜더로 만이 넘어가는 언데드를 상대하고, 멀쩡한 모습으로 승리를 거머쥔 악마 같은 자다.

― 놓치면 각오해야 할 것이다! 올리비에를 죽인 녀석이 뻔뻔하게 감히 짐의 땅에 발을 들이다니. 반드시 그 자식의 눈알을 산 채로 씹을 것이야! 알아들었는가?

황제의 목소리에는 이미 노여움이 가득했다.

― 대답을 하란 말이다!

“분부를 받들겠습니다. 소신, 반드시 마틴 레드우드의 주검을 폐하께 올리겠습니다.”

― 생포해라! 그 자식에게 편안한 죽음을 안겨 줄 생각은 없다!

그 말에 사령관은 할 말을 잃었다. 감히 하면 안 되는 생각이지만, 자신이 모시고 있는 이 제국의 최고존엄이 드디어 실성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불현듯 스칠 정도였다. 그 코랄린 관문의 악마를 생포하라니. 이미, 지금 나누고 있는 대화는 그에게 수정구를 전달한 병사와, 지휘실에 자리 잡은 간부들에게 또렷이 들리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들이 쫓는 대상이 마틴 레드우드라는 것을 깨달은 사람들의 표정에는 명백한 공포가 서려 있었다. 최소한, 왕국에서 군인으로서의 의무를 다하고 있는 자들에게 마틴 레드우드라는 이름이 가져오는 공포는 최소한 저 정도는 되었다.

근데, 그런 자를 격멸도 아니고 생포하라니. 사령관의 머리가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분부를 받들겠습니다.”

연락은 그걸로 끝났다. 그리고, 자리에 앉아있던 간부들이 당황스러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정말로 그 남자입니까?”

“황제 폐하께서 직접 내리신 옥음이다. 너는 감히 의심을 입에 담느냐.”

그 말에 간부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옆에 앉아있던 간부가 대답했다.

“생포라니, 말도 안 되는 일입니다. 상대는 만이 넘는 언데드를 상대로도 승리를 쟁취한 자입니다. 기회가 있다면 지금 당장 죽여야…….”

“그렇다면, 자네가 황제 폐하께 진언을 올려보겠나?”

사령관의 말에 간부는 다시 할 말을 잃었다. 방금 전 황제의 목소리에 서려 있는 분노를 고려해보면, 그 진언의 끝에 기다리고 있는 것은 교수대가 분명하다.

“추격하고 있는 대상의 정체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은 채, 생포를 명하도록. 활을 포함한 투사 무기는 금지한다.”

정체를 알릴 수는 없다. 향후 적어도 3-5년 정도는 마틴 레드우드라고 하는 이름이 제국의 병사들에게 가져오는 공포는 가시지 않을 거다. 정체를 알리면 오히려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

“……알겠습니다.”

전장에 선 사령관은 어명조차 거부한다는 옛말이 있다. 하지만, 그 옛말에 따라 움직이기에는 현 사령관은 지휘 능력은 있는 편이라 해도, 담이 그렇게까지 크지 않았다.

* * *

“세상살이 하고는.”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고 클로에와 함께 강물로 몸을 던졌다. 서늘한 강물이 몸을 적신다. 이 정도면 적절하겠지. 나는 클로에의 몸을 뒤에서 끌어안은 채 부지런히 강물 속에서 다리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저기 있다!”

“그래 새끼들아. 여기 있다.”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고 브레이서에 마력을 불어넣을 준비를 했다. 강물에 떠 있는 적을 보면 할 수 있는 행동은 두 가지뿐이다. 강물에 몸을 던지거나, 아니면 화살이나 마법을 쏴붙이는 거다.

“……?”

하지만, 화살이나 마법 같은 건 날아오지 않았다. 뭘 하고 있는 거지.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흐르는 강물에 몸을 맡긴 채 계속해서 떠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풍덩거리는 소리와 함께 가볍게 옷을 입은 병사들이 강물 속으로 뛰어드는 광경이 보였다.

“생포? 진심인가. 아니면 지휘관이 실성한 건가.”

나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헤엄쳐서 내 근처로 다가오는 녀석들을 확인하고, 몸에 마력을 물어넣은 채 팔을 힘껏 휘둘렀다.

손을 타고 물이 쫙 딸려 나가며 그대로 다가오던 병사의 머리통을 후려친다. 채찍에 맞은 것처럼, 병사는 구슬픈 비명을 한 번 내지르고는 그대로 기절했다.

속도를 조절해야 한다. 마력을 사용해 헤엄치기 시작하면 이 강을 빠져나가는 건 한순간이지만, 아직 클로에가 정신을 차리지 못했고, 알버트도 수정구로 준비가 끝났다는 대답을 돌려주지 않았다.

나는 일부러 클로에와 내 몸을 강물 위에 띄워놓을 정도로만 발장구를 치며, 강물의 흐름에 몸을 맡기고, 다가오려고 하는 병사들을 막는 데에만 집중하기 시작했다. 계속해서 병사들은 강물 속으로 몸을 던지기 시작한다. 벌써 30분 정도는 지난 것 같다.

강물 위에는 제국의 병사들이 나를 노리고 다가오는 중이었다. 쪽배를 타고 있는 녀석들도 있었고, 그냥 헤엄쳐서 다가오는 녀석들도 있었다. 그 꼴이 꼭 우유에 말아놓은 시리얼 같다.

“으윽.”

끌어안고 있던 클로에의 입에서 희미한 소리가 났다. 회복이 내 생각보다 훨씬 빨랐다. 몸이 튼튼해서 그런가.

“정신 차렸냐. 15 곱하기 7은 뭐야.”

내 말에 클로에가 작게 대답했다.

“105에요.”

“네 이름은?”

“클로에 로니세라에요. 죄송한데요, 무슨 일이 일어난 거예요?”

정신은 차렸지만, 목소리에는 아직도 기운이 없고, 체온도 여전히 높은 상황이다. 하지만, 40도 이상의 고열은 더 이상 아닌 모양이다.

“어디까지 기억하고 있어?”

“해열제는 소용 없을 거라고 말씀하신 것까지 기억나요.”

나는 그 말에 클로에에게 빠르게 상황을 설명해주었다. 내 말을 듣고 있던 클로에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냥, 저를 버릴 수도 있으셨잖아요.”

“웃기는 소리 하지 마. 첩보국장도 무조건 살려서 데려오라고 했어.”

내 말에 클로에가 대답했다.

“그럴 리가요. 제가 마틴 님보다 첩보국장님은 훨씬 더 잘 알고 있어요.”

나는 그 말에 입을 다물고, 다가오는 적을 향해 주머니에서 쇠구슬을 꺼내 쏘아붙였다. 딱, 하는 소리와 함께 이마에 쇠구슬을 맞은 녀석이 그대로 물속으로 머리통을 처박는다.

“헤엄, 칠 수 있어?”

내 말에 클로에가 대답했다.

“네, 문제없어요. 정신도 차렸고, 기운도 돌아왔어요.”

목소리는 다시 밝아졌지만, 억지로 기운을 끌어올려서 한 대답이라는 건 어렵지 않게 눈치챌 수 있었다.

“그렇다니 다행이네.”

일단, 정신을 차렸으면 위험한 고비는 넘긴 거다. 나도 굳이 억지로 텐션을 끌어올린 클로에의 행동을 지적하지는 않았다.

“강물 속에 들어있는 병사들, 제가 한 번에 정리할 수 있어요.”

“물속에서 충격을 뿜어내면 네 몸도 상해.”

내 말에 클로에가 강가를 턱으로 가리켰다.

“저쪽으로 잠시 가요.”

지키고 있는 병사들이 보이긴 하지만, 저 정도는 충분히 처리할 수 있다. 저 녀석들은 우리를 생포할 작정인지, 마법이나 화살 같은 건 전혀 사용하지 않고 있었으니까.

나는 몸에 마력을 돌리며 빠른 속도로 강가로 접근했다.

“젠장, 이쪽으로 올라왔다. 막아!”

나는 그 병사들의 공격을 막아냈다.

“때려주세요.”

“오냐.”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고 그대로 클로에의 등짝에 있는 힘껏 발차기를 꽂아 넣었다. 타격음은 들리지 않았다. 내 발차기의 충격은 그대로 흡수되었을 거다.

“조금 더. 제가 그만해달라고 할 때까지 때리세요.”

나는 그 말에 쉬지 않고 클로에의 등을 후려치기 시작했다.

“그만.”

클로에의 말을 들은 나는 곧바로 발차기를 멈췄다.

“여기에서 폭발시키면 의미가 없어요.”

나는 그 말에 강가에 놓여있는 쪽배를 가리켰다. 이 녀석들이 우리를 쫓을 때 쓰기 위해 구해놓은 쪽배인 모양이다.

“저걸 탄다.”

우리는 쪽배로 다가가 그 배 위에 탔다. 나는 쪽배에 타서, 방향 조절을 위해 준비된 작대기를 있는 힘껏 밀었다. 힘을 받은 쪽배가 물 위를 쭉 미끄러져 나아간다. 클로에는 자신의 손을 물속에 집어넣은 채 심호흡을 한다.

“배, 흔들릴 거예요.”

“상관없어. 어차피 네 체온을 더 낮추기 위해서라도 강물 속으로 다시 뛰어들어야 했으니.”

거대한 물기둥이 솟구쳤다. 그리고, 강물 위에서 헤엄치던 병사들이 입이나 귀에서 피를 토하더니 죽은 물고기처럼 푹 쓰러진 채 물 위를 둥둥 부유한다. 물론, 그중에는 정말로 이 강 안에 살고 있던 물고기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터진 물기둥은 그대로 큰 파도가 되어 쪽배에 타고 있던 병사들을 물속으로 빠뜨렸다.

“한 번 더.”

클로에는 그렇게 말하며 뒤집힌 채 떠내려오는 쪽배 쪽으로 다가갔다. 나와 클로에는 다시 쪽배 위에 올라탔다. 나는 재빠르게 클로에의 등짝을 여러 번 후려갈겼다.

“그만. 다시 터뜨릴게요.”

다시 한번 아까의 물기둥이 솟구쳤다. 물속을 유영하던 병사들은 이걸로 전부 죽거나, 기절했다. 우리는 충격에 박살 난 쪽배를 버리고, 다시 물속에서 헤엄치게 되었다.

“하아…… 흐으…….”

일을 마친 클로에가 거칠게 호흡을 몰아쉰다.

“고생했다. 수영은 내가 할 테니 맡겨.”

말을 마친 나는 클로에를 뒤에서 끌어안은 채 다시 헤엄치기 시작했다.

“사람을 이렇게 개고생을 시키다니.”

“죄송해요.”

클로에의 말에 나는 혀를 차고 대답했다.

“그 뱀 말하는 거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런 병신같은 뱀이 잔혹하기 짝이 없는 야생에서 생존에 성공했다는 걸 믿을 수가 없다. 짐승의 독은 즉효성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위기에서 벗어나거나, 먹이를 빠르게 사냥할 수 있으니까. 근데, 고열에 시달리게 하는 독은 그런 의미에서 진짜, 겁나게 쓸모없는 독이다.

먹이에 독을 쏟아 넣어도 죽는데 한참 걸릴 테고, 위기의 순간에 천적에게 독을 쏟아 넣어도 죽는 데 한참 걸릴 테니까. 그런 머저리 같은 독을 품고 있는 주제에 왜 멸종하지 않은 건지 모르겠네.

내 말에 클로에가 대답했다.

“원인이야 어찌 되었건. 저 때문에 일이 꼬였잖아요.”

“맞아. 말 한번 잘했네. 너 앞으로 3개월 동안은 봉급 반토막이다. 개 같아도 참아. 세상살이가 다 그런 거잖아.”

사람 아래에서 일하다 보면 니 잘못이 아니어도 책임지고 엿 먹어야 하는 순간이 있는 거야. 내 말에 클로에가 한동안 침묵하고 있다가 대답했다.

“감봉 같은 걸로 제 실수를 벌충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야, 사람 끌어안고 수영하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아냐? 자꾸 말 시키지 마. 기운 빠진다.”

내 말에 클로에는 침묵을 지켰다. 그래, 이제 좀 낫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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