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화
그렇게 강물 위에서 얼마나 버텼을까. 마침내 수정구를 통해 알버트의 연락을 받을 수 있었다.
― 살아있나?
“죽었습니다.”
내 말에 알버트가 좋아. 라고 대답한 다음 말을 이었다.
― 강을 타고 쭉 내려오면 바다를 만날 거야. 거기에서 북쪽으로 쭉 헤엄치게. 보통 사람 기준으로 약 2시간 정도 헤엄치면 닿을 거리에 어선이 한 척 보일 거야.
2시간이라.
“알겠습니다.”
― 강 하류와 바다가 만나는 장소 인근에 제국군이 운용하는 함선들이 다수 발견되었어. 조심해야 할 거야. 안 들킬 수 있나?
큰 배는 아닌 모양이다. 주로, 육지와 맞닿은 임해에서 운용하는 작은 규모의 함선들이지만, 그 숫자가 꽤 되는 모양이다.
“네, 가능합니다.”
클로에가 정신을 차렸으니까. 연락을 마친 나는 클로에를 보고 말했다.
“바다와 만나는 지점에 도착하면, 자맥질을 할 거야.”
“……호흡은 어떻게 하죠?”
나는 그 말에 대답했다.
“내가 머리를 내밀고 호흡을 한 다음, 물속으로 들어가서 숨을 나눠줄게.”
인공호흡이랑 비슷한 원리다. 2시간 내내 그럴 필요가 있는 것도 아니다. 제국의 함선들이 진을 치고 있는 곳을 통과하기 전까지만 계속하면 되니, 실질적으로는 한 20분에서 30분 정도만 자맥질을 유지하면 된다.
“하지만, 그러면 들킬지도 몰라요.”
나는 그 말에 대답했다.
“나는 안 들킬 수 있어. 자세한 건 나중에 말하자. 일단, 지금은 헤엄칠 시간이야.”
말을 마친 나는 몸에 마력을 때려 박고 클로에를 안은 채 빠르게 헤엄치기 시작했다. 그 전까지는 단순히 강물의 흐름에 몸을 맡기고 있을 뿐이었지만, 거기에 마력으로 강화된 각력이 더해지자, 나와 클로에의 몸은 빠른 속도로 물살을 가르고 나아가기 시작했다. 다른 병사들이 미처 쫓아오기 힘들 정도로.
그때였다. 저 멀리 강둑에서 우리를 노리고 화살이 쏟아졌다. 나는 브레이서에 마력을 불어넣었다. 화살이 브레이서로 만들어진 보호막을 때리고 물속에 잠겨 든다.
“그래, 이제 정신을 차린 모양이지?”
생포가 불가능하다는 당연한 사실을 이제서야 제국군이 깨달은 모양이다. 하지만 너무 늦었다. 강물을 맛본 나는 희미하게 웃었다. 소금기가 섞여 있다. 이제 강물과 바닷물이 만난다. 뒤를 돌아보니 밤하늘과 맞닿은 바다의 수평선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나는 바지의 허리띠를 풀러 몇 가닥으로 가늘게 찢은 다음, 그것들을 서로 묶어 긴 가죽끈을 급조했다. 한쪽은 내 팔뚝에 묶고, 다른 한쪽은 클로에의 팔뚝에 묶었다.
“좋아. 잠수해.”
우리는 동시에 몸을 물속으로 밀어 넣고 빠르게 헤엄쳐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잠수한 채 앞으로 나아가던 나는 클로에의 등을 한 번 치고, 은신을 사용한 다음 물 위로 향했다.
너무 큰 움직임을 보인다면, 제아무리 은신을 사용했다지만 들킨다. 주변에 자리 잡은 함선 위에서 병사들이 횃불이나 램프를 든 채 바다를 살피는 모습이 보인다.
불빛을 피해 고개를 최대한 뒤로 젖히고, 코와 입만 밖으로 내놓은 나는 크게 몇 번 호흡한 다음, 다시 잠수했다. 팔목에 묶어놓은 가죽끈으로 클로에를 찾아내고, 그대로 입을 통해 숨을 밀어 넣었다.
그렇게, 우리는 자맥질 상태를 유지하며 한동안 이동했다. 여전히 환하게 불을 밝힌 채 우리를 찾는 함선들이 저 멀리 보인다. 나는 올라와도 괜찮다는 의미로 손에 묶은 가죽끈을 몇 번 당겼다. 이내 클로에의 머리가 쑥 하고 올라온다.
“크하…… 푸하아.”
자유롭게 호흡할 수 있게 된 클로에가 연신 숨을 몰아쉰다.
“죽는 줄, 죽는 줄 알았어요! 방금 전에는 눈앞에서 막 불꽃이 반짝거리는 게.”
“익사는 괴롭지. 경험담이야.”
내 말에 클로에가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고 보니 그렇네요. 마틴 님은 호수에서 익사하실 뻔했었죠. 보통 그런 일을 겪으면 정신적으로 큰 충격을 받아서 수영은 꿈도 못 꾼다고 하던데.”
“재수가 좋았지.”
말을 마친 나는 계속해서 헤엄치기 시작했다.
“저기, 저 배가 아닐까요?”
보통 사람들의 수영 실력으로는 두 시간 정도 걸린다고 했지만, 우리는 꽤 빠르게 도착한 모양이다. 나는 저 멀리에 떠 있는 배를 확인하고 수정구를 손에 쥐었다.
“배가 있는 걸 확인했는데. 저 배가 맞는지 확신이 안 서는군요.”
― 주기적으로 다섯 번 불빛을 깜박이라고 연락을 취해두었어.
나는 그 말에 가만히 물 위에 뜬 채 그 배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배 위에 불이 켜지고 꺼지기를 다섯 번 반복한다. 저 배가 맞는 모양이다. 나는 후우, 하고 숨을 내쉬었다.
“첩보국장님, 고생하셨습니다.”
― 그래, 덕분에 푸앙트로제 인근에 펼쳐놓은 첩보망은 전부 회수해야겠지만. 이런 일을 벌였으니, 정보처도 눈에 불을 켤 테고…… 급하게 배를 구하느라 기도비닉은 유지하지 못했어. 아, 확보한 서류와 책은 배를 운용하는 요원에게 건네주면 되네.
나는 그 말에 저런, 하는 소리를 냈다. 물에 한참을 있었던 책이다. 멀쩡한 상태일 리는 없을 텐데. 잠깐 고민하던 나는 입을 열었다.
“나중에 일이 잘 풀리고 나면 이 일에 대해서는 반드시 보답하겠습니다.”
― 필요 없네. 어쨌든, 두 사람 모두 무사하니 다행이군.
그걸로 연락은 끝났다. 우리는 기다리고 있던 배 위에 올랐다.
“마틴 레드우드 님, 그리고 클로에 로니세라 경.”
배를 운용하는 사람이 슬쩍 인사를 건넨다.
“아, 그리고 첩보국장님이 요청하셨던 책 말인데…….”
나는 그 말에 아, 하는 소리를 내고 책을 꺼내 보았다. 다 젖었을 텐데. 하지만, 의외로 챙겨온 책은 멀쩡했다. 물에 젖기는 했지만, 내용은 흐려지지 않았다.
“금 토큰이 필요할 정도로 중요하게 보관하던 물건이니까요. 기본적인 보존 마법 같은 게 걸려있었던 건 아닐까 싶습니다. 불을 붙이거나 강제로 찢어버리는 건 몰라도, 마법으로 방수 처리하는 건 그렇게 어렵지 않습니다.”
첩보국 요원의 말에 나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불가능한 건 아니다. 실제로, 불에 넣어도 그슬린 흔적조차 없던 책도 있잖아. 종이가 방수 성능이 있는 건 놀랄 축에도 들지 못한다.
“다행이네. 첩보국장님이 실망할까 걱정했는데.”
이 정도로 상태가 멀쩡하면 내 쪽에서도 할 말이 생긴다. 첩보국에서 오랜 시간에 걸쳐 만들어낸 첩보망이라고 해도, 이 책 만큼 중요한 정보를 찾아낼 수는 없었을 테니까.
이 책도 넘기라고 한 걸 보면, 아마 알버트는 이 책에 방수 기능 정도는 있을 거라고 예상했던 모양이다.
“종이와 잉크 정도는 배에 있겠지?”
내가 사필한 내용을 통째로 넘겨줄 수는 없다. 무슨 일이 생길 줄 알고.
“그렇습니다. 안에 들어가시면 찾을 수 있을 겁니다.”
나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클로에를 바라봤다.
“너는 아직 열이 다 내린 게 아니니, 먼저 선실에서 쉬고 있어.”
클로에는 내 말에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 선실로 향했다. 나는 물통에서 필사한 내용을 꺼내 그 내용을 베낀 다음, 첩보국의 요원에게 건네주었다.
“감사합니다.”
“이 배는 어디로 향하는 거지?”
내 말에 첩보국 요원이 대답했다.
“약 2주간의 항해 뒤, 테네스 공국의 대형 상선과 만날 겁니다. 두 분은 거기에서 배를 갈아타시고, 테네스 공국으로 향하시면 됩니다. 배를 갈아타시고 약 한 달 정도 걸리실 거라 생각합니다.”
나는 그 말에 끄응, 하는 소리를 냈다. 한 달 하고도 반이 배 위에서 날아가 버리는군. 어쩔 수 없다. 테네스 공국이라면 몸을 기댈 만한 녀석도 알고 있으니까. 괜찮겠지.
“이 배로 그렇게 오래 항해할 수 있나?”
“피셰르 어촌에 몇 대 없는 원양 어선입니다. 2주 정도는 충분히 항해할 수 있습니다. 인근의 주요 항로도 피할 예정이니, 들킬 가능성도 거의 없습니다. 이 시기에는 큰 풍랑이 이는 경우도 거의 없으니. 큰 문제는 없을 겁니다.”
나는 그 말에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한 달 반이라고 했지만. 내가 건네준 내용을 해석하고 나온 정보를 확인하고 나면 예정이 변할 수도 있다. 일단, 기다리는 것 말고는 당장 할 수 있는 일이 없겠네. 나는 선실 안으로 들어갔다.
* * *
마틴이 잠들어 있는 걸 확인한 클로에는 곧장 수정구를 꺼내 들고, 밖으로 나와 연락을 취했다.
― 마틴 레드우드? 무슨 일 있나?
알버트의 목소리를 확인한 클로에가 차분한 어조로 대답했다.
“클로에입니다.”
― ……클로에 로니세라. 무사하니 다행이군.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말을 마친 클로에는 길게 한숨을 내뱉고 나서 말을 이었다.
“첩보국을 나오겠습니다.”
― 결정을 내린 모양이군.
“그렇습니다.”
알버트가 그 말에 잠깐 침묵을 유지하다가 대답했다.
― 마틴 레드우드와 나눈 대화를 들은 건가?
“전부 들은 건 아닙니다.”
클로에는 분명히 고열로 인해 실신했다. 그리고, 정신을 차렸다가 다시 실신하기를 몇 번 반복했다. 그사이 일어난 일들은 잠을 설치면서 꾼 꿈의 몇 조각 편린처럼, 몇 개의 장면 정도만 남아있을 뿐이다. 마틴이 옷을 벗기고 몸 위에 알콜을 뿜어낼 때의 광경, 그리고 마틴과 알버트가 서로 나누었던 대화의 몇 조각 정도가 전부다.
하지만 결정을 내리는 데 필요한 건 그게 전부였다. 그걸로 충분했다. 사실, 이미 첩보국의 요원이라기보다는 마틴 레드우드를 시중드는 기사로서의 업무에 치중하고 있었지만, 직접 입에 담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에는 큰 차이가 있다.
― 나를 원망하나?
“그렇지는 않습니다. 이해합니다.”
그 상황에서 클로에를 버리는 건 분명히 한 번 정도는 생각해 볼 수 있었던 선택지였다.
그리고, 누가 뭐라고 해도 어릴 때 죽을 뻔한 클로에를 거두어들인 건 알버트다. 그 은혜가 고작 그런 대화로 완전히 빛이 바래지는 않는다.
“다만, 그 은혜에 얽매이는 건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나.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 그런가.
다소 씁쓸함이 섞여있는 목소리가 돌아왔다. 하지만, 그것뿐이었다. 알버트가 이 시점에 그녀의 행동이 배은망덕하다고 할 수는 없다. 클로에는 수정구를 향해 여전히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이해해주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누구나 자신이 필요하다고 해주는 사람 아래에서 일하고 싶을 테니까요.”
― 이해하네. 자네가 내가 마틴 레드우드에게 했던 제안을 이해해 준 것처럼.
클로에가 알버트의 말에 작게 숨을 내쉰 다음 대답했다.
“감사합니다. 첩보국은 나오게 되었지만…… 생신이나 기타 기념일에는 찾아뵙거나, 하다못해 선물이라도 보내겠습니다.”
― 그래준다니 고맙군. 필요한 조치를 취해두겠네. 앞으로는 첩보국에 소속된 요원에게 정보를 공유하는 게 아니게 되네.
이전처럼 첩보국에서 필요할 때 정보를 요청하거나, 마틴 레드우드의 개인적인 일에 첩보국의 연락망을 자유롭게 쓰지는 못하게 될 거다. 그게 가능하기 위해서는, 마틴 레드우드의 요청이 스스로가 내린 결정이 아니라 세자 저하나 국왕 폐하의 지시에 의거한 행동이어야 한다.
“네, 알겠습니다.”
문제없다. 이걸로 클로에는 더 이상 첩보국의 눈치를 볼 필요 없이 마틴 레드우드의 업무 보조에 집중할 수 있게 된다.
심지어, 마틴 레드우드의 업무 보조를 위해서 첩보국에 손해가 될 만한 일도 주저 없이 할 수 있다. 더 이상 소속되어 있지 않으니까.
첩보국 소속이라는 신분을 포기하면서 놓친 이득은, 그녀가 노력해서 벌충하면 된다. 아니, 무조건 그럴 생각이다.
첩보국은 사교클럽 같은 게 아니다. 한 번 나가겠다고 하면 그 말을 다시 주워 담을 수는 없다. 알버트와 클로에의 대화는 그걸로 끝났다. 클로에는 다시 수정을 챙겨 선실로 돌아왔다.
“첩보국장과 대화했나?”
누워있던 마틴의 말에 클로에가 순간 동작을 멈춘 다음, 다시 천천히 수정을 가방 안에 넣으며 대답했다.
“네. 첩보국을 나오겠다고 말하고 돌아오는 길이에요. 더 이상 첩보국에 남은 미련은 없습니다.”
“그래. 힘든 결정이었을 텐데, 고생했다.”
말을 마친 마틴은 다시 입을 다물었다. 클로에도 별다른 말을 하지 않고 자신을 위해 마련된 침상에 누워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