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9화
향유고래를 찾아볼 수 있는 장소는 굉장히 먼 바다다. 애초에 주식으로 삼는 것들이 죄다 심해에 살고 있기 때문에, 향유고래를 찾기 위해서는 물이 깊은 바다로 향해야 한다. 다행히, 우리가 타고 있는 이 포경선의 선장은 포경선 선장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고래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었다.
“향유고래는 암컷은 암컷끼리, 수컷은 수컷끼리 몰려다니는 특징이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수컷은 나이가 많이 들면 단독생활을 하게 됩니다.”
그래? 그건 모르고 있었는데. 나는 그냥 무리 지어 다닌다는 정도만 알고 있었을 뿐이다. 단독생활이라.
“우리가 노려야 하는 건 단독생활을 하는 녀석이겠군요.”
내 말에 선장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입에 물고 있던 파이프에서 연기를 뿜었다.
“나이가 많이 들었다는 건 그만큼 노쇠했다는 뜻일 텐데…… 쉽게 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유명한 복싱 선수도 칠순 잔치할 정도 나이가 되면 많이 약해지잖아. 향유고래도 늙으면 약해질 텐데, 이 험난한 바닷속 야생에서 과연 늙은 향유고래를 보기가 쉬울까?
내 말에 그가 웃으며 대답했다.
“제아무리 늙었다 해도 향유고래입니다. 인간 빼고는 감히 사냥하려 드는 동물이 없죠. 그 성깔 더러운 범고래 녀석들도 수컷 향유고래는 혼자 있건 무리로 몰려있건 피합니다.”
워낙 거대하고 강력한 녀석이라, 어릴 때 죽는 경우를 제외하면 천수를 누린다는 게 선장의 설명이었다.
“찾아내는데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빠른 시일 안에 필요로 하는 녀석을 찾을 수 있도록 노력을 아끼지 않겠습니다. 누가 뭐라 해도, 여러분의 도움이 없었다면 저는 거기에서 꼼짝없이 죽었을 테니까요. 하하하!”
그는 그렇게 말하고 나서 눈을 가느다랗게 뜨고 바다를 응시하다 뒤편을 향해 외쳤다.
“좌회전, 두 개 반!”
그 말에 조타륜을 잡고 있던 선원이 좌회전, 두 개 반! 이라는 외침과 함께 조타륜을 꺾었다.
“어떻게 바다는 좀 있을 만하십니까?”
“파도에 흔들리는 건 괜찮습니다.”
배 타고 안 흔들리는 생활을 영위하고 싶다면 한 30척 정도를 쇠사슬로 줄줄 묶어놓아야 한다.
“다만, 식사가 더럽게 맛없다는 점은 슬프네요.”
바다에서 먹을 수 있는 음식은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괜히 사람들이 예전에 괴혈병 걸려서 빌빌거리고 돌아다녔던 건 아니지.
“귀족분들께 내어드릴 만한 음식은 확실히 아닙니다. 출항 당시 상황 때문에 어쩔 수 없었습니다. 너그럽게 이해해주셨으면 합니다.”
“괜찮습니다. 나무 조각을 던져주고 씹어먹으라고 하는 건 아니잖아요.”
맛없고 딱딱한 음식이라면 이미 쿠르스트 산맥에서도 경험해 본 적이 있다. 둘 다 맛없다는 점에 있어서는 쌍벽을 이루기 때문에, 적응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그냥, 약간 아쉬울 뿐이지.
“인내심이 필요할 겁니다. 단순히 발견하는 것만 생각한다면 많이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 사실, 향유고래 포경에 있어 가장 어려운 건 발견이 아니라 발견 후 추격해 사살하는 과정입니다.”
향유고래는 순한 동물이 아니다. 열 받으면 달려들어 대가리로 배를 들이받아 작살내는 녀석들이다. 포경선의 선장은 물론이고, 배에서 일하는 선원들까지 모두가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다는 마음가짐으로 이 일을 하고 있다.
“뭐, 이번에는 거기까지 할 일은 없으니 다행이군요.”
내 말에 선장이 고개를 끄덕이고 바다로 파이프 안의 재를 털어냈다.
“그렇습니다.”
삐걱이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더니 클로에가 슥 다가와서 난간에 등을 기댄 채 선장에게 말을 건다.
“원래, 배에는 여자를 들이면 안 된다는 미신이 있는 걸로 아는데요.”
선장이 클로에의 말에 웃으며 대답했다.
“여자가 타면 배가 질투하죠. 하지만, 돈을 낸 사람은 예외입니다.”
거 참 널널한 미신이네.
“그럼 선장 중에는 여자가 없겠네요.”
내 말에 선장이 어깨를 으쓱했다.
“여선장이 없는 이유는 미신보다는, 선원 놈들이 워낙 거칠기 때문이죠.”
망망대해에 손바닥만 한 배, 그 안에 들어있는 마흔 정도 되는 뱃사람과 여선장이 한 달을 넘는 항해를 지속한다라. 확실히 위험한 조합이긴 하네.
“그래도 해군이나, 큰 규모의 상단에는 있다고 들었습니다. 최소한 분명히 여선장이 없다. 라고 말할 만한 분야는 역시 해적이겠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수평선 너머로 뉘엿거리던 해가 서서히 잦아들기 시작하고, 배 위에도 어둠이 찾아왔다.
“밥 먹어야 하는데.”
내 말에 클로에가 으으, 하는 소리를 냈다.
“어제 먹던 비스킷에서 반 토막 난 애벌레가 발견되었어요.”
“나머지 반은?”
내 말에 클로에가 으음, 하는 소리를 냈다.
“글쎄요. 어디로 간 건지 모르지는 않는데, 그냥 알에서 나올 때부터 그 상태였다 생각하려고요.”
비위도 좋군.
“입 안에 밀어 넣고 씹어서 삼키면 다 똑같아요. 사실, 맛만 따지고 보면 비스킷이 애벌레보다 더 맛없을걸요.”
다섯 번 구운 물건이라고 했나. 그 정도면 빵의 형태를 한 도자기라고 생각하는 편이 더 좋다.
“그걸 씹어먹다니, 치아가 튼튼하네.”
내 말에 클로에가 대답했다.
“그냥 먹다가는 이빨이 부러질 것 같아서 마력을 사용했죠.”
“먹기 위해 써야 하는 마력이라니.”
염장 고기, 비스킷, 양배추 절임. 아마 우리가 다시 항구로 돌아가기 전까지는 이 세 가지 조합의 메뉴에서 벗어날 수 없을 거다. 신선한 물 같은 경우에는 메이슨이 마법을 활용해 하루에 조달할 수 있는 양이 아슬아슬하게 맞아떨어지니 문제 될 건 없다.
이대로 쭉 항해를 이어간다면 우리의 경험 많은 선장께서 짜잔, 하고 향유고래가 등짝으로 분수쇼 하는 모습을 보여주겠지. 잠깐 배 위에서 시간을 보내던 나는 주변을 살펴본 다음 고개를 갸웃했다.
희끄무레하게 낀다 싶던 안개가 어느 순간 굉장히 짙어졌고, 덩달아 공기도 축축해졌다.
“안개가 점점 많이 끼는데. 이거, 지금 항해 가능한 상황인가?”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촤르르, 하는 소리가 배 안에서 울려 퍼졌다. 닻을 내리는 거다.
“마틴 레드우드 님!”
선장의 목소리였다.
“여기 있습니다.”
내 말에 그가 내 쪽으로 다가와서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래도 안개가 완전히 걷히기 전까지는 정박해야 할 것 같습니다. 시야가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억지로 항해하다가는 큰 봉변을 당할 겁니다.”
“선장님이 그렇게 판단하셨다면, 그게 맞는 거겠죠.”
나는 범선을 운용해 본 적도 없고, 나침판이나 육분의 같은 걸 활용해서 항해를 해본 기억도 없다. 잘 모르는 분야에 대해서는 전문가가 이래야 한다고 하면 곱게 그 조언을 따르는 게 현명하다.
“그럼, 저는 들어가 보겠…….”
저 멀리에서 희미하게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저건.”
내 말에 선장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대꾸했다.
“아, 우리 말고도 안개 속으로 진입한 다른 배가 있었던 모양이군요. 혹시나 지나가며 배가 부딪칠 수 있으니, 자신들의 위치를 알려주는 겁니다.”
나는 그 말에 시선을 다른 쪽으로 돌렸다. 조금이라도 안개 속에서 시야를 확보하기 위해 켜놓은 우리 배의 램프 따위가 눈에 들어온다.
“이상한데요. 저쪽 배는 램프를 켜놓지 않은 모양입니다.”
내 말에 선장이 으음? 하는 소리를 내고 잠깐 턱을 쓰다듬었다.
“확실히…… 게다가 그런 것 치고는 종소리가 상당히 가까웠습니다.”
그때, 마스트 꼭대기에 올라가 있던 녀석이 크게 외쳤다.
“우현으로 배가 한 척 접근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 말에 선장이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이 안개 속에서 다른 배 쪽으로 접근한다고? 거리를 말해!”
“가깝습니다. 이 정도 거리면 얼마 지나지 않……?!”
마스트 위에서 보고를 이어가던 선원이 하던 말을 딱 멈췄다. 그리고, 뭔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갑판 위로 떨어진 건 마스트 위에 올라갔던 선원의 시체였다.
“화살을 맞았어요.”
나는 다소 긴장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전투를 할 수 없는 선원들은 전부 배 아래에서 대기하라고 해.”
말을 마친 나는 검을 뽑아 들었다. 바닥에 떨어져 있는 화살은 뭔가 이상하다. 클로에는 화살이라는 것 정도밖에 눈치채지 못한 모양이지만.
화살촉이 시뻘겋게 녹이 슬어있고, 화살대는 낡아서 그 축이 뒤틀리고 휘어져 제 역할을 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화살깃으로 붙여놓았던 깃털은 이미 다 썩어 문드러지고, 그 흔적 정도만 약간 남아있을 뿐이다.
저딴 맛탱이가 가버린 화살을 쏴서 머리통을 꿰뚫었다니. 평범한 궁수의 재주가 아니다.
“귀신이 쐈다고 하면 믿을까.”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고 안개 너머를 바라봤다. 이전에 누가 이런 의견을 냈다면, 말 같지도 않은 개소리 하자 말라고 쏘아붙였겠지만…… 당장 내가 악마한테 영혼이 저당잡힌 상황이잖아. 유령선이라고 없을 건 뭐야. 바다에서 일어나는 온갖 재해 상황을 생각해본다면, 살아남기 위해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넘기고, 그 대가로 유령선이 되어버린 배 한두 척 정도는 있지 말란 법은 없지.
“저기…….”
그리고, 옆에서 긴장한 목소리와 함께 배 옆을 가리키는 클로에의 말과 함께 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던 가능성은 현실로 빚어졌다.
뱃면에 다닥다닥 달라붙어 있는 이끼와 따개비, 곰팡이가 슬어있는 찢어진 돛, 박살난 조타륜과 짐승에게 물어뜯긴 것처럼 작살나 있는 뱃고물.
항해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는 내가 봐도 ‘와 씨, 어떻게 물에 떠 있는 거지?’라는 생각이 저절로 들 정도로 엉망진창인 배가 자욱한 안개를 뚫고 서서히 그 모습을 드러냈다.
사람으로 치면 저건 그냥 시체다. 죽은 배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처참한 몰골의 배는 서서히 우리 배 쪽으로 접근하고 있었다.
“유령선…….”
클로에가 내 옆에서 작게 중얼거렸다. 백 명이 보면 백 명이 전부 유령선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배 위에 타고 있는 녀석들의 형체가 서서히 그 모습을 드러냈다.
물이끼가 덕지덕지 엉겨 붙어있는 불어터진 시체들이 다 찢어진 옷과 미역 줄기 따위를 대충 걸친 채 우리를 응시하고 있다. 잘 보니 녀석들 몸 위로 기괴하게 생긴 게나 갯강구 같은 것들이 따개비가 엉겨 붙은 몸 위를 스멀스멀 돌아다니는 모습도 보인다.
“아니, 좀 귀엽게 생기면 뒤지는 병에 걸렸나.”
왜 하나같이 저딴 몰골을 하고 있는 걸까. 그 와중에 불어터진 시체 중 하나는 큼지막한 갯강구 한 마리가 자기 입으로 쑥 들어가자 그걸 으적으적 씹기까지 한다.
바닷물에 찌든 선장모를 쓰고 있는 시체가 의족을 박아넣은 다리를 척 하고 앞으로 내딛더니 애꾸눈으로 우리를 쭉 훑어보며 입을 열었다.
― 배의 모든 화물을 넘기고, 죽어라. 그럼 목숨만은 살려주지.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머릿속의 우동 사리가 소금물에 불어터지기라도 한 건가. 화물을 넘기고 죽으라면서 살려주겠다니. 지가 무슨 화타도 아니고. 어쨌든, 우리랑 같이 가고 싶어서 찾아온 걸로 보이지는 않으니…….
“클로에, 너는 남아서 포경선으로 넘어오는 녀석들을 상대해.”
“그럴게요.”
대답을 들은 나는 곧장 검을 뽑아 들고 갑판을 뛰어넘어 낡은 유령선의 갑판 위에 착지했다. 그와 동시에, 커틀러스를 든 채 서 있던 시체 중 한 녀석의 머리통이 썰려 나가 바닥을 구른다.
“덤벼. 언데드라면 이미 지긋지긋하게 상대해봤어.”
유령선 위의 언데드라 해서 달라질 건 없지.
머리가 잘렸던 언데드가 주변을 더듬거리더니 자기 머리통을 주워서 다시 머리통에 끼운다. 잘려나간 머리통을 저런 식으로 다시 붙여버리다니.
“굉장한데, 순록 선의 같은 건 필요 없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