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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우드-224화 (224/275)

224화

나는 기겁하며 녀석의 윗니 중 하나에 엉겨 붙었다. 목이 꿀렁거리는 소리와 함께, 막대한 양의 바닷물이 고래의 뱃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이빨에 달라붙는 게 조금만 늦었어도, 나도 위장 속으로 빨려 들어갔겠지.

나는 다시 콱, 하고 이빨 사이에 바늘을 박아넣은 다음 부지런히 펌프질을 하기 시작했다. 찌이잉, 하고 누가 귀를 한 대 후려친 것 같은 느낌이 몸을 달린다.

초음파다. 귀로 듣는 게 불가능한 소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귀에 가해지는 부담은 확실히 느껴진다. 나는 속이 뒤집히는 것 같은 느낌을 꾹 참고 계속해서 펌프질을 했다. 얼마나 남은 거야 이거.

그때, 윗니에 달라붙어있는 나를 씹어버리기 위해 녀석의 턱이 다시 닫히기 시작했다.

“……차라리.”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고 심장 안에 자리잡은 마력을 싹 다 끌어내 몸으로 퍼뜨린 다음, 방금 전까지 손으로 눌러대던 펌프를 양다리 사이에 끼웠다.

오른손은 윗니를 잡았다. 왼손은 아랫니를 잡았다.

“끄어어어어어…….”

나는 숨이 넘어갈 것 같은 소리를 흘리며 그 상태로 필사적으로 고래의 입이 완전히 닫히는 것을 막은 채 버텼다. 그러면서, 양다리 사이에 끼운 펌프를 다리 힘을 이용해 계속 펌프질했다. 씹으려고 힘을 쓰는 고래와, 씹히고 싶지 않은 나의 힘 싸움은 그렇게 한동안 이어졌다.

클로에는 날뛰는 고래를 보고 긴장한 표정으로 난간을 꽉 잡고 있었다.

“아직 멀었어요?”

클로에의 말에 옆에 서 있는 메이슨이 무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완전히 주입되지 않았습니다. 로니세라 경, 마음은 이해하지만.”

그때, 클로에의 양손에 꽉 잡혀 있던 난간이 으지직 하는 소리를 내고 클로에의 손안에서 박살났다.

“마음을 이해하긴 뭘……!”

말을 이어가던 클로에가 눈을 크게 뜨고 수면 위로 머리통을 내민 향유고래를 바라봤다.

“저거, 지금…….”

클로에의 말에 모두가 수면 위로 올라온 향유고래의 머리통을 보고 기겁했다. 마틴이, 닫히려고 하는 고래의 입을 양손으로 억지로 열어놓은 채, 양다리를 부지런히 조였다 풀기를 반복하는 장면이었다.

“고래의 턱힘을 버티다니.”

옆에서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선장을 팍 하고 노려본 클로에가 수정구를 향해 외쳤다.

“마틴 님, 제가 갈게요!”

클로에의 능력이라면 닫히려고 하는 고래의 힘도 저렇게 괴로운 표정으로 견뎌야 할 필요는 없다.

곧바로, 수정구 너머에서 마틴이 힘겹게 외쳤다.

― 오지, 오지마! 거의 다 끝났어!

그 외침에 메이슨이 옆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네, 거의 다 주입된 것 같습니다.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 서둘러!

메이슨이 곧바로 양손을 뻗었다. 고래의 머리 위에 작은 마법진이 만들어지고, 메이슨의 손등에 박혀있는 보석이 희미하게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 입 안에서 느껴지는 통증으로 성이 잔뜩 나 있던 고래의 움직임이 서서히 잦아들기 시작한다. 마틴의 양팔을 꽉 내리누르던 고래의 턱에서 서서히 힘이 빠진다.

마틴은 기진맥진한 표정으로, 등에 짊어지고 있던 빈 통을 집어던진 다음 수정구를 향해 말했다.

― 아아, 들리면 이리 와서 나 좀 살려주지.

마틴은 진이 쭉 빠진 목소리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 * *

양손이 덜덜 떨린다. 도대체 어떻게 버티고 있었던 건지 모를 정도다. 양팔은 손부터 어깨에 이르기까지 검푸른 피멍이 한가득이다. 스머프가 따로 없을 지경이네.

클로에는 내 몸 상태를 살펴본 다음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부상을 입지는 않았다는 걸 확인한 모양이다.

곧이어, 클로에가 코를 막고 약간 뒤로 빠지며 말했다.

“오징어 냄새나요.”

“지금 성희롱하는 거야?”

내 말에 클로에가 기가 막히다는 표정을 한 채 바닷물을 담은 커다란 통을 가져오더니, 한 바가지를 퍼서 내 머리 위로 확 쏟았다.

“씻으세요.”

나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바가지를 손에 들고 바닷물을 퍼내려고 했지만, 손에 힘이 다 풀려서 툭 하고 바가지를 놓친다.

“…….”

클로에가 그 모습을 보고는 끄응, 하는 소리를 낸다.

“제가 씻겨드릴게요.”

“뭐? 무슨 소리를 하는거야 남사스럽게.”

내 말에 클로에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짓고 나를 바라봤다.

“마틴 님이 했던 일은 기억나지 않으시는거에요?”

“…….”

그렇게 나오니 내가 할 말이 없긴 하네.

“걸으실 수는 있죠? 조금 있다 선실로 오세요. 준비해둘게요.”

나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클로에의 뒤를 따라 방으로 들어갔다. 방 안에 자리 잡은 커다란 통 안에는 김이 오르는 물이 담겨 있었다.

“바닷물이라서 좀 그렇지만, 그래도 따뜻한 물이면 근육의 피로를 풀 수는 있겠죠. 들어가세요.”

천연 해수탕이라. 나는 클로에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통 안으로 들어갔다.

“뜨거우면 말하세요.”

옆에는 차가운 바닷물이 담긴 통이 하나 더 있었다.

“아니야, 딱 좋아.”

내 말에 클로에는 고개를 끄덕인 다음 뭔가를 꺼내 들었다. 희미하게 라벤더 향기가 나는 가루가 담긴 통이었다.

“가루비누? 그건 언제 챙겨온 거야.”

“아껴 쓰면 소량으로 충분하고, 저는 제 몸에서 냄새나는 건 별로 선호하지 않거든요. 몰래 돌아다녀야 하는 임무라면 어쩔 수 없지만…… 그게 아니라면 꼬박꼬박 챙겨오는 편이에요.”

말하면서 클로에는 꽤나 능숙한 손놀림으로 가루비누를 물에 갠다.

“원래 회복력은 빠르신 편이라고 알고 있는데, 좀 어떠세요?”

대답하는 대신 손을 살짝 들어 올렸다. 그것만으로도 손이 벼락 맞은 사시나무처럼 달달달 떨린다.

“닫히는 고래 턱을 억지로 받쳐봤어?”

“그럴 리가 있나요.”

클로에는 내 쪽으로 수건을 건네주었다.

“그걸로 아래를 감싸고 나오세요.”

나는 시키는 대로 했다. 내가 무슨 염치도 없는 개변태도 아니고, 벌떡 일어나서 ‘짜잔, 코끼리!’ 같은 소리를 할 수는 없잖아. 아래를 감싸고 통 밖으로 나와 앉자, 곧바로 클로에가 내 머리 위로 비누를 바른 손을 올린 다음 벅벅 문지르기 시작한다.

“좀 아픈데.”

“그렇다니 기쁘네요.”

그런 대답을 돌려주면서, 클로에는 머리를 비비는 손에서 힘을 약간 뺐다.

“거품 들어가요, 눈 감고 계세요.”

시키는 대로 눈을 감았다. 한동안 내 머리에 거품을 내주던 클로에가 말했다.

“들어가셨던 물은 오징어 냄새에 오염되었어요. 따로 보관하던 찬물로 씻겨낼게요.”

“냉수마찰이라. 좋지 뭐.”

내 말에 클로에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내 등을 한 번 탁 쳤다.

“이리 오세요.”

뜨거운 물이 담겨 있는 통 앞에 서서 고개를 숙이자, 차가운 바닷물이 내 머리 위로 확 끼얹어진다. 갑작스럽게 맞이한 찬물에 몸을 살짝 떨자 클로에가 놀리는 것 같은 어투로 대답했다.

“잘 참으면 있다가 사탕 한 개 드릴게요.”

“이 시국에 사탕이 있을 리가 없는데.”

내 말에 클로에가 희미하게 웃음을 흘리며 대답했다.

“레드우드 부인께서 키우실 때 힘들었겠네요. 눈치 빠른 아이들은 이래서 싫은 법이죠.”

“집어치워.”

괜히 쪽팔린 느낌이 들어서 쏘아붙이자, 클로에는 별다른 대꾸를 하지 않고 물을 끼얹으며 손으로 머리를 문질러 비눗물을 닦아낸다.

“나중에 자고 일어나면 머리에 하얗게 소금이 달라붙어 있겠군.”

“물이 아까워서 이러는 거지. 다 끝내고 나면 맹물로 한 번 헹굴 생각이에요.”

동시에, 등에 다소 까끌거리는 목욕 타월의 느낌이 닿았다.

“가만히 좀 계시는 게 어떨까요. 이게 사람을 씻기는 건지, 개를 씻기는 건지 모르겠네요.”

“개는 수치심이 없지만, 나는 수치심이 있거든. 수건 한 장 홀랑 걸치고 외간 여자의 도움을 받아 씻는 게 얼마나 창피한데.”

내 말에 클로에가 대답했다.

“뭐요, 나도 벗으라는 거예요?”

“그래 준다면 좋겠는데.”

“어림도 없죠.”

그렇겠지. 이후 우리는 별다른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고, 방 안에는 계속해서 타월이 내 몸을 비비는 소리만이 이어졌다.

“미리 말해두는데, 수건으로 가린 쪽은 어떻게든 스스로 해결하세요.”

이 여자가 정말. 그걸 굳이 말로 확실히 해둬야 하는 거야?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초코파이 같은 센스는 어디에 쳐박아둔 거야. 좋아, 어디 한번 해보자고.

“알았어, 노력해볼게.”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고 양손을 살짝 들어 올려보았다. 엿을 한번 먹여보고 싶다는 생각과 이미 입은 부상이 서로 더해져 양손은 딱 봐도 동정심이 일어날 정도로 안쓰럽게 떨리고 있었다.

“차라리 한술 더 떠서 알몸으로 몸에 가루비누 바르고 마틴 님 몸에 비벼보라고 하지 그러세요?”

당연히, 씨알도 안 먹혔다. 애초에 먹힐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긴 했다.

“그래 줄 수 있어?”

내 질문에 곧바로 돌아온 것은 대답을 대신하는 코웃음이었다. 그리고, 뒤이어 클로에가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대답했다.

“열심히 노력하신다면, 지옥불이 꺼지기 전에 가능하지 않을까 싶어요.”

“그냥 아니요, 라고 대답해도 되잖아.”

더럽게 돌려 말하네. 그러는 사이 클로에가 손에 들고 있는 타월은 내 팔 쪽으로 향했다.

“아프면 말해주세요. 설마하니 자존심 챙긴다고 안 아픈 척하지 말고.”

“내가 퍽이라 그러겠다.”

그리고 타월을 쥔 클로에의 손이 내 팔을 문지르기 시작했다. 제법 힘이 들어가 있었기에 나는 곧장 말했다.

“아파.”

“이 정도는 참으세요.”

“이런 망할, 아프면 말하라고 할 땐 언제고.”

내 말에 클로에가 계속해서 일정한 압력으로 팔을 타월로 문지르며 대답했다.

“아프시면 말하라고 한 것뿐이잖아요.”

얼씨구, 마치 치과 의사처럼 말하는구나.

“내가 양팔을 쓰지 못하는 틈을 노려서 아주 사람을 가지고 노는구나.”

“흔한 기회는 아니잖아요.”

그 이후로 클로에는 부지런히 내 몸을 닦았다. 정말로, 수건으로 가려져 있는 부위 이외의 장소는 남김없이 싹 닦아주었다.

“이제 나머지는 스스로 하세요.”

말을 마친 클로에는 살짝 뒤로 물러나더니 인사를 하고 문으로 향했다.

“거참, 가차 없기는.”

“혹시 보고 있는 편이 마음이 편하신가요?”

그럴 리가 있나.

“나가.”

“……문 바로 밖에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 다 닦고 나면 말씀하세요.”

클로에가 나간 다음, 나는 최선을 다해 열심히 수건으로 가려져 있던 장소를 닦았다. 헹구는 건, 어차피 여기만 헹구면 되는 거니까. 나는 그냥 찬물이 담겨 있는 통 안으로 쑥 들어가서 몸을 몇 번 흔든 다음 밖으로 나왔다.

“다 닦았다.”

그 말에 클로에가 마른 수건과 젖은 수건, 그리고 물이 담겨 있는 수통을 하나 가지고 안으로 들어왔다. 등이나 가슴 같은 장소는 젖은 수건으로 소금기를 닦아내고, 머리는 맹물을 조금씩 부어가며 소금을 씻어내린다. 그다음, 마른 수건으로 아까와 마찬가지로 특정 장소를 제외한 나머지 장소의 물기를 전부 훔쳐낸다.

“끝났어요.”

“고생했다.”

내 말에 클로에가 고개를 저었다.

“고생이라고 할 거 있나요. 잠깐 뒤돌아 있을 테니, 속옷만 어떻게든 입어주세요. 나머지는 제가 입혀드릴게요.”

클로에가 뒤를 돌고, 나는 억지로 속옷을 챙겨 입었다. 그다음, 클로에가 다소 어색한 손놀림으로 내 옷을 입혀준다.

“별로 능숙하진 못하네.”

“남자 옷은 입어 본 경험도 없는데, 입혀 주는 게 익숙할 리가 없잖아요.”

클로에는 그렇게 쏘아붙인 다음 내 앞에 서서 셔츠의 단추를 맞추기 시작한다. 꽤나 집중하고 있는 건지 아랫입술을 꽉 깨물고 있었다.

“끝났다.”

단추를 다 맞춘 클로에가 내가 입고 있는 옷을 슥 훑어보더니 손을 뻗어 옷맵시를 약간 다듬어 준 다음, 방 안에 있던 물통을 비롯한 세면도구들을 싹 치웠다.

“팔이 다 나을 때까지는 어지간한 건 다 도와드릴 테니까 억지로 팔을 움직이는 일은 없도록 해요.”

말을 마친 클로에가 내 침대 옆에 앉아 서류를 훑어보기 시작했다. 나는 잠깐 그 모습을 보고 있다가 다시 눈을 감고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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