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드우드-228화 (228/275)

228화

테이블을 앞에 두고, 세자는 세 명의 노인을 대면하고 있었다. 각자가 자신의 가슴에 교단을 상징하는 성물을 걸고 있었다. 테이블 위에는 차와 함께 다과가 놓여 있었지만, 자리에 앉은 사람들 모두 테이블 위의 다과나 차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가장 먼저 입을 연 것은 일리온 교단의 대주교였다.

“오늘 이렇게 자리를 마련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세자 저하.”

세자는 그 말에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

“대주교들이 알현을 청하는데, 내 어찌 거절할 수 있나요. 그래서, 오늘은 무슨 일로 한 번에 세 분이나 찾아오셨나요? 동시에 나에게 축복이라도 내려주시려는 겁니까?”

대주교의 지위를 인정하는 부드러운 어조의 반존대는 일견 가벼운 장난을 거는 것 같았지만, 세자의 눈초리는 서늘했다. 일리온 교단의 대주교가 그런 세자와 눈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오늘 이렇게 찾아온 것은 다름이 아니라, 항간에 떠도는 마틴 레드우드에 대한 소문 때문입니다.”

“마틴 레드우드에 대한 소문이라. 대주교는 항간의 소문에 제법 귀를 기울이시는 모양이군요.”

세자의 말에 일리온 교단의 대주교가 웃으며 대답했다.

“성직자가 세속의 소문에 귀 기울이는 경우가 흔치는 않습니다. 하지만, 흘려들을 수 없는 종류의 소문이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일리온 교단의 대주교가 동의를 구하는 것처럼 다른 두 대주교를 바라봤고, 그들은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대주교분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소문이라.”

세자는 계속해서 소문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는 중이고, 대주교들은 그 소문의 내용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었다.

“한번 들어보지요.”

“마틴 레드우드가 악마와 거래를 했다는 소문입니다.”

그 말에 세자가 눈을 크게 뜨고 그들을 바라보다가 웃음을 터뜨렸다.

“대주교들께서 요즘 많이 심심하신 모양이군요. 마틴 레드우드가 악마와 거래를 했다니. 항간에 도는 소문 중에는 내가 남색을 밝힌다는 이야기도 있더군요. 그런 풍문 하나하나에 관심을 기울이실 줄이야.”

놀리는 것 같은 세자의 말에 일리온 교단 대주교 옆에 앉아있던 바레스 교단의 대주교가 걸걸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마틴 레드우드는 왕국에 구국의 영웅으로 그 이름이 드높습니다. 그런 흉흉한 소문이 그를 따라다니는 건 좋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만약의 가능성을 생각한다면 그가 사특한 흉물과 거래했다는 소문은 조사가 필요하지 않을까 합니다.”

그 말에 세자가 잠깐 바레스 교단의 대주교를 바라보다가 차를 스푼으로 휘저으며 말했다.

“대주교, 진심으로 하는 말인가요? 베로나 제국의 공습으로부터 이 왕국을 지켜내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 자를 그런 얼토당토않은 소문을 빌미 삼아 조사하겠다, 이거요?”

“위로는 신을 모시고, 아래로는 정의와 사랑을 베푸는 성직자로서는 마땅한 의무입니다.”

세자는 그 말을 듣고는 헛웃음을 흘리다가, 차를 휘젓던 티스푼을 딱 멈췄다.

“어이가 없군. 보아하니 농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아.”

세자의 말투는 순식간에 딱딱하게 변했다.

“악마와 계약한 자를 색출하는 것은 교단의 지도자 된 우리의 의무이자 권리입니다. 세자 저하께서는 부디 협조를 당부드리고 싶습니다.”

“협조? 국가의 위기를 극복하는 데 공을 세운 자를 근거도 없는 소문을 빌미로 교단에 개처럼 끌려가 조사받게 하는 행위를 지금 협조라 표현하는 건가?”

세자는 표정까지 굳힌 다음 앞에 앉아있는 대주교들을 바라봤다.

“베로나 제국은 언데드를 동원해 이 왕국을 습격했다. 그대들은 제국에서 벌인 그 일에 대해서는 함구하고 있으면서, 그 언데드의 공세를 막아낸 자를 어찌 악마와 계약했다고 주장하며 겁박하려 하는 건가?”

“언데드 하이랜더 말씀이십니까. 하지만, 그 일을 벌인 올리비에 황녀는 현재 죽었습니다. 죽은 황녀에게 죄를 물을 수는 없지 않습니까.”

바레스 교단 대주교의 말을 받아, 하운 교단의 대주교가 턱수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마틴 레드우드는 그 막대한 언데드 군세를 극히 소수의 병력으로 막아내는 데 성공했습니다.”

“신이 그를 돌봤기 때문이겠지.”

세자의 말에 일리온 교단의 교주가 웃으며 대답했다.

“세자 저하, 마틴 레드우드는 공식적으로 교단에 귀의한 적이 없습니다. 신의 기적은 믿지 않는 자에게 베풀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 전장에서의 승리가 악마의 도움을 받았다는 건가?”

하렌 교단의 대주교가 부드러운 표정으로 대답했다.

“어디까지나, 근거 없는 의심일 뿐입니다. 하지만 정말로 마틴 레드우드가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 그 승리를 쟁취했을지도 모릅니다. 저희 세 명의 대주교는 그저, 의심을 확실히 매듭짓고 싶을 뿐입니다.”

세자는 그들의 말을 듣고 나서 차분하게 말했다.

“그래서, 그대들은 나에게 도대체 무엇을 원하는가.”

“마틴 레드우드를 왕도로 소환해주셨으면 합니다. 또한, 마틴 레드우드의 모친을 포함해, 평시 각별한 관계를 유지하던 자들을 교단에서 심문하겠습니다.”

“내가 허락할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점점, 분위기는 거칠어지고 있었다. 바레스 교단 교주의 입이 열렸다.

“세자 저하, 이는 청을 올리는 것이 아닙니다.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넘긴 자에 대한 심문과, 그에 필요한 조치는 교단이 가지고 있는 권리입니다. 저희는 그저, 왕국의 세자 저하에 대한 예를 갖추기 위해 미리 말씀드리는 것뿐입니다.”

대답을 들은 세자가 주먹을 꽉 쥐고 대답했다.

“지금, 한 나라의 세자이자 국왕 폐하를 대신해 국정을 다스리고 있는 내 앞에서 통보를 하겠다는 거군.”

“세자 저하께서는 분명히 이 나라를 다스리십니다. 허나, 저희는 이 나라의 왕이 아니라 더 숭고한 분을 섬깁니다. 그분의 뜻을 이행할 뿐입니다.”

“오냐, 알아들었다.”

말을 마친 세자가 자리에서 팍 하고 일어나 테이블을 짚고 그들 앞에 얼굴을 들이밀었다.

“마틴 레드우드가 악마에게 영혼을 팔았다. 그대들은 그렇게 의심하는 모양이지.”

“그렇습니다.”

말을 마친 세자는 머리를 쓸어넘긴 다음 말했다.

“그대들이 의심하고 있는 자는 마틴 레드우드다. 내가 중히 여기는 사람이고, 이 나라를 구한 공적이 있는 사람이며, 정당한 권리에 따라 쿠르스트 산맥 일대의 영지의 모든 권리를 가진 자다. 그대들의 의심이 헛된 망상일 뿐이라는 것이 밝혀진다면, 그대들은 세간의 풍문 따위에 휘둘려 그를 겁박한 것을 어찌 사죄할 생각인가?”

그 말에 대주교들은 침묵했다.

“아니면 다행이지 않습니까? 같은 소리를 할 생각은 말아라. 그대들은 이 나라에 자리 잡은 교단의 대주교들이고, 나는 한 나라의 세자다. 이 관계에서 오가는 대화가 농담이 아니라는 것을 안 이상, 그대들은 그대들의 발언을 책임져야 한다.”

“그 말씀은, 세자 저하께도 해당됩니다. 세자 저하께서는 마틴 레드우드가 악마에게 영혼을 팔지 않았다고 확신하십니까?”

세자는 대주교 중 하나가 던진 말에 곧바로 대답을 돌려주었다.

“그렇다. 나는 확신한다.”

“그렇다면, 그 말씀에 대한 책임도 지신다는 뜻으로 알아들어도 되겠습니까.”

세자는 그 말에 의자에 다시 앉으며 대답했다.

“그렇다. 나는 내 말에 확신이 있다. 그대들은 그대들의 말을 책임질 정도의 확신이 있는가?”

주교들은 잠깐 서로를 바라본다. 세자는 그런 그들의 행동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후, 마틴 레드우드가 악마에게 영혼을 팔지 않았다는 것이 밝혀질 경우 그대들은 그 모함에 대한 응당한 대가를 치를 것이다. 어떤 처벌을 내릴 것인지 명확하게 기록해 서류로 남겨놓을 테니. 이에 서명하라.”

그 말에 대주교들의 시선이 일제히 세자에게 향했다.

“진심이십니까?”

“자신이 없나? 그대들도 또한 마틴 레드우드가 악마와 거래했다는 것이 밝혀질 경우 나에게 요구할 것을 서류로 만들어 나에게 가져와라. 내 친히, 그 위에 옥새를 찍어주마!”

말을 마친 세자는 살벌한 표정을 한 채 주교들을 바라봤다.

“그 정도 용기도 없지는 않겠지. 그대들의 말대로, 교단의 의무이자 권리 아닌가. 이 나라의 공신이 악마와 계약했다는 주장을 하고, 조사를 요구하고 싶다면 그 정도는 각오를 했어야지.”

대주교들이 서로 시선을 주고받나 싶더니, 이내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하겠습니다.”

“좋아.”

세자가 고개를 끄덕이자, 일리온 교단의 대주교가 입을 열었다.

“그럼, 마틴 레드우드를 왕도로 소환해주시지요.”

“그는 지금 파이크 왕국에 없다. 내가 은밀히 시킨 중대한 일을 수행하는 중이다.”

주교들이 당황스러운 표정을 짓고 세자를 바라봤다.

“그는 쿠르스트 산맥에 있는 게…?”

“비밀리에 수행해야 하는 일이기에, 대외적으로 그렇게 위장했다. 마틴 레드우드의 모친에게도 비밀로 할 정도로 중요한 일이었으니까.”

대주교들이 멍하니 세자를 바라보다가 이내 정신을 차렸는지 입을 연다.

“악마와의 계약 여부를 확인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한 일입니다.”

세자가 곧바로 이죽이는 어투로 대꾸했다.

“그대들에게는 그렇겠지. 이 나라의 왕이 아니라, 더 숭고한 존재를 섬기는 중이니까. 하지만 나는 이 나라의 세자다. 더 숭고한 존재의 뜻보다는 왕국의 미래가 더 중요하다. 그대들 마음속 우선순위를 나에게 강요하지 마라.”

“세자 저하!”

마침내 대주교들의 입에서 큰 소리가 나왔다. 곧바로 세자의 표정에 분노가 서렸다. 동시에, 세자는 테이블 위에 차려져 있던 찻잔과 다과를 팔로 확 쓸어낸 다음 자리에서 일어나 그들을 응시하며 외쳤다.

“지금 누구 앞에서 감히 목소리를 높이는 거냐! 이 나라 왕가를 능멸할 작정인 거냐! 그대들이 모시는 숭고한 존재께서 목 위로 떨어지는 칼날까지 막아주실 거라 생각하는 거냐!”

세자의 호령에 대주교들이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눈에 담겨 있는 분노는 숨겨지지 않고 있었다.

“마틴 레드우드는 내가 은밀히 지시한 임무를 마치고 나면 파이크 왕국으로 복귀할 것이다. 그대들은 마틴 레드우드가 복귀한 이후 조사를 진행하면 되리.”

“하지만…….”

세자는 그 말에 한 손을 슬쩍 들어 올렸다.

“그만. 대주교들에게 내가 양보할 수 있는 건 여기까지가 한계다. 이 나라의 미래를 그대들이 책임지고 있는가?”

하렌 교단의 대주교가 다시 차분한 어조로 대답했다.

“세자 저하께서 마틴 레드우드를 왕도로 소환하기 힘들다는 것은 잘 알았습니다. 그렇다면, 저희는 저희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겠습니다.”

그 말을 들은 일리온 교단의 대주교 또한 차분한 어조로 말했다.

“세자 저하의 선택을 존중합니다. 부디, 그 선택에 따라오는 결과도 감당하실 준비가 되셨으면 합니다. 일리온께서 세자 저하에게 지혜를 내려주시길 간절히 기도드리겠습니다.”

“잔말 말고 돌아가서, 내가 보내는 서류나 받아 볼 준비를 하라.”

이걸로, 파이크 왕국의 세자는 이 나라의 교단과 완전히 갈라섰다. 이제, 둘 중 하나가 굴복하기 전까지는 절대로 끝나지 않을 싸움이 시작된 거다.

교단에서는 매주 올리는 예배에서 마틴 레드우드에 대한 이야기를 할 것이고,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넘긴 자를 비호하는 세자를 은근히 깎아내릴 것이다.

동시에, 세자와 마틴 레드우드에게 불만이 있던 귀족들과 연합할 것이다. 서로 크고 작은 다툼은 있었지만, 파이크 왕국에서 왕권과 신권이 서로를 죽여버릴 기세로 부딪치는 건 이번이 처음일 것이다.

세자도, 대주교들도 자신의 승리를 확신하고 있었기에 가능한 충돌이었다. 또한, 끝나고 나면 누구 하나는 수백 년이 넘도록 회복할 수 없을 깊은 상처를 입게 될 싸움이기도 했다.

그것은, 이 대담이 있은 지 일주일 후 세 교단이 왕국의 모든 교회에서 동시에 구국 예배라는 이름으로 예배와, 마틴 레드우드의 모친인 로델린 레드우드를 구속하는 것으로 시작될 것이다.

천장에 거미줄, 바닥에 먼지, 침대는 더러운 천으로 덮어놓은 짚더미가 대신하고 있는 2평 남짓의 공간에는 손바닥만 한 창문 하나가 시간의 흐름을 알 수 있게 해줄 뿐이다. 한쪽 구석에 파여있는 구덩이는 화장실이라는 것을 알려주려는 것처럼, 구더기 몇 마리가 구덩이 근처에서 꾸물거리며 오물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그녀의 몸에 걸쳐진 옷은 곰팡내 나고 더러운 삼베였다.

“레드우드 부인. 하실 말씀은 없으십니까?”

로델린은 방 안의 풍경을 응시하며 대답했다.

“없습니다.”

로델린의 말에 사제복을 입은 남자가 건조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들의 잘못을 알고도 감추는 것은 죄악입니다.”

“제 아들은 그런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파이크 왕국의 교단에서 일제히 진행했던 구국 예배의 내용을 들은 그녀는 자신이 왜 여기에 와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의 아들, 마틴 레드우드가 악마에게 영혼을 팔았고, 이로 인해 국가의 위기가 다가오고 있다는 식의 내용을 다루는 예배였다.

얼토당토않은 일이다.

“식사는 하루에 두 번 넣어집니다. 아침에는 묽은 오트밀과 훈제 청어 반 토막. 저녁에는 밀기울로 만든 빵과 우유.”

말이 우유지, 버터를 뽑아내고 남은 찌꺼기일 것이다. 소위 말하는 버터밀크다. 로델린은 조용한 어조로 말했다.

“안 그래도 나이가 먹다 보니 배에 군살이 붙어서 걱정이었는데, 교단에서 이렇게 배려를 해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어요.”

언뜻 들으면 비꼬는 것 같은 말이었지만, 로델린이 말하는 어조에는 달리 원망이나 비아냥이 섞여 있지 않았다.

“소박한 식사와 검소한 생활 속에서 신에게 기도해 가장 지혜로운 답을 찾으시기 바랍니다.”

“제가 드릴 수 있는 대답은 하나뿐입니다. 제 아들은 그런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앞으로도 이 대답이 변할 일은 없어요.”

로델린의 말에 사제가 살짝 허리를 숙인 다음 책 한 권을 내밀었다. 교단의 성전이었다.

“강한 모성애는 사람으로 하여금 큰 죄를 짓게도 하는 법입니다. 오래 생각하고, 깊게 살피시길.”

말을 마친 사제는 밖으로 나가, 문을 닫았다. 철컥,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잠기는 소리가 들렸다. 이후, 로델린에게 이어지는 일정은 굉장히 간단했다. 약 3시간에서 4시간 정도의 수면 후 아침 식사. 그리고 사제에게 끌려가다시피 심문실로 안내받는다.

저녁 식사를 하는 15분 정도를 제외하면, 언제나 번갈아 들어오는 사제들에게 계속해서 심문받는다.

“레드우드 부인의 모성애에는 감탄했습니다. 하지만, 아들이 잘못된 길로 들었다면 이를 바로잡는 것도 또한 어머니가 마땅히 해야 할 일 아니겠습니까.”

“…….”

로델린은 그 쉬지 않고 이어지는 심문 과정 속에서 언제나 입을 다물고 있었다. 어떤 말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녀는 슬쩍 시선을 돌려 심문실 한쪽에 서 있는 기사를 바라봤다. 세자 저하가 보낸 사람이다. 만에 하나, 심문실에서 사제들이 수상한 짓을 벌이지 않도록 감시하는 역할이다.

왕궁의 기사가 지켜보는 가운데, 고문으로 그녀의 입을 열 수는 없으니 이런 식으로 사람을 지치게 만드는 거다. 긴 심문을 마치고 다시 돌아온 골방 안에는 계절이 변하며 덮쳐드는 여름의 열기가 한가득이다. 그 무더위 속에서 어떻게든 얕은 잠을 자고 일어나면 산채로 찜통에 들어간 것 같아서 머리가 멍해진다.

며칠 뒤, 심문실에 들어온 사제가 짐짓 엄한 표정을 짓고 그녀를 바라본다.

“계속 이렇게 버티시면, 저희로서도 달리 방법이 없습니다.”

“그런가요.”

로델린은 힘없이 그렇게 중얼거리고 나서 고개를 들고 그를 바라봤다.

“제 살을 찢고, 내장을 뒤틀고, 뼈를 부수세요. 옷을 벗기고 거리를 행진시키며 사람들로 하여금 돌과 오물을 던지게 하세요.”

지친 몸이었고, 몽롱한 정신이었지만, 그 안에 박혀 있는 심지 하나만큼은 여전히 촛불처럼 조용히 빛나고 있었다.

“설사 이 세상에 나 하나를 위한 지옥이 만들어진다 해도, 제 대답은 변하지 않습니다.”

로델린의 대답을 들은 사제는 얼굴을 살짝 구겼다. 레드우드 부인에 대한 세자의 감시는 살벌했다. 지금 로델린에게 취하고 있는 조치는, 그들이 세자의 감시하에서 가할 수 있는 최대한의 압박이었다. 로델린은 지금까지 그녀가 버텨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버틸 것이다.

“레드우드 부인. 부인께서 정직하게 아드님에 대한 진술을 하게 된다면, 교단 쪽에서도 마틴 레드우드에게 가하는 처벌을 완화할 의향이 있습니다.”

사제의 부드러운 어조에 로델린은 그 말에 곧장 대답했다.

“사제님께서는 저를 바보라 생각하시는 모양이군요. 저는 한낱 아녀자이지만, 또한 쿠르스트 산맥에서 아들을 대신해 영주직을 대리하고 있기도 합니다. 제가 사리 구분도 하지 못할 거라 여기시는 겁니까?”

로델린은 자신의 진술이 아들인 마틴 레드우드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잘 알고 있다. 그리고, 교단의 사제들은 절대로 마틴 레드우드에게 가하는 처벌을 완화하지 않을 것이다. 차라리 젖은 미역에 부싯돌로 불을 붙였다는 말을 믿을 것이다.

그렇게, 계속해서 시간이 이어지기 시작했고 로델린은 그 시간이 몰고 오는 고초들을 묵묵히 견디고 있었다.

* * *

나는 로델린의 소식을 전해 받고는 타고 있던 낙타 위에서 주먹을 꽉 쥐었다.

“쌍놈의 새끼들이.”

사람을 고시원만 한 방에 가둬두고 영양실조와 수면 부족으로 자연사라도 시킬 생각인 건가.

“진정하세요.”

나는 클로에의 말에 울컥한 표정으로 뭐라고 말하려고 하다가 이내 입을 다물었다.

“그래.”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고 어금니를 꽉 물었다. 마음이 급해지면 안 된다. 세자는 알게 모르게 분명히 로델린을 돕고 있었다. 교단에서 감금하는 것까지는 막을 수 없었지만, 주기적으로 기력이 쇠하지 않게 사식을 넣어주고, 단순 심문을 제외한 어떠한 행위도 용납하지 않기 위해 왕실을 지키는 기사들로 하여금 심문 과정과, 그녀가 머무르는 골방을 지키게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델린이 비참한 처지라는 점은 변하지 않는다. 뭐 강도질을 한 것도 아니고, 살인을 한 것도 아닌데. 이건 완전 중범죄자 취급이잖아.

“어디, 다 끝나고 돌아가서 보자고.”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고 눈앞에 펼치진 사막을 응시했다. 바짝 마른 모래가 바람을 타고 넘실거리는 지독하게 뜨거운 사막이다. 벽해의 피를 얻은 이상 메이슨을 비롯한 다른 사람들은 전력에 딱히 보탬이 되는 것도 아니기에 그대로 돌려보냈다. 이제 다시 나와 클로에 둘뿐이다.

옆에서 클로에가 내 눈치를 보다가 조심스럽게 질문을 던진다.

“안 더우세요?”

“그러게. 왜 안 덥지?”

딱 봐도 더워 보이는 사막인데, 왜 나는 이렇게 멀쩡한 걸까. 나는 내 손을 이리저리 살펴보다가 중얼거렸다.

“몸 안에 도는 피가 체온까지 조절해주는 건가.”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지금 그렇게까지 덥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만록의 심장은 확실하게 심장의 마력 하나만 쌈박하게 강화해줬는데, 내 몸에 흐르고 있는 이 벽해의 피는 뭔가 이것저것 잡다하게 다양한 편의성을 제공해주는 느낌이다.

“계속 이동하자. 첩보국에서 전달한 장소까지 앞으로 얼마 남지 않았어.”

원래는 이 사막 동북쪽 어딘가에 있다는 사실 말고는 알 수 있는 게 없었지만, 최근에 첩보국에서 연락이 한 번 왔었다.

“이 사막에 장미 덩굴이라.”

“그것도 어마어마한 양이라고 들었어요. 과장 조금 보태서 수천 그루는 될 것 같다고 하던데요.”

조사하기 위해 파견되었던 첩보국의 인원에게서 연락이 끊겼다고 한다. 공격받은 거다. 첩보국에서는 그 요원의 시체를 수습하는 것도 포기한 상황이다. 그 정체불명의 장미 덩굴 더미에는 특기할 만한 사항이 하나 더 있었는데, 바로 그 장미 덩굴이 벽처럼 지키고 서 있는 장소의 중심에서 몰아치고 있는 회오리다.

“어제로 일주일을 관찰했는데, 계속 회오리가 유지되고 있다고 했었죠.”

“본래는 있을 수 없는 일이야.”

물론 사막은 열기 때문에 공기가 제법 미쳐 날뛰기는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회오리가 일주일이나 유지되고 있다는 건 굉장히 이상한 일이다. 덕분에, 그 회오리가 몰아치는 장소 주변은 하늘에서 쏟아지는 고운 모래로 인해 시야가 제대로 확보되지 않는다고 한다.

“삭풍의 족쇄라.”

일주일이나 몰아치고 있는 회오리라면, 분명히 바람을 가둬버렸다는 식으로 표현할 수도 있겠지. 그렇다면, 거기에 피어난 장미 덩굴은 당연히 우리가 바다에서 벽해의 피를 얻어내는 동안 온갖 개수작을 부렸던 그 자식들이 만들어 놓은 거점일 거다.

“저 멀리, 보이세요?”

두 시간 정도 낙타를 타고 이동하자 자욱하게 쏟아지는 모래폭풍 너머, 저 멀리 하늘까지 이어져 있는 회오리 기둥이 눈에 들어온다.

“길은 제대로 찾아온 것 같네. 또 언데드를 꺼내려나.”

사막 하면 역시 미라인데 말이야. 모래 섞인 붕대를 칭칭 감은 시체들이 그어어 하는 소리를 내며 몰려올 생각을 하니 벌써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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