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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우드-230화 (230/275)

230화

전갈 독의 효과는 굉장했다. 검에 팔뚝을 살짝 스친 녀석은 몇 초 지나지 않아 동공이 풀린 채 몸을 덜덜 떨다가, 입에 게거품을 문 채 모랫바닥에 드러누워 몸을 버둥거리기 시작한다.

그 모습이 마치, 살충제에 맞은 모기 같다.

“공격해라!”

스무 마리의 거대 전갈이 나와 클로에를 향해 달려들었다.

“다섯 마리 정도는 상대할 수 있겠지?”

내 말에 클로에가 레이피어를 손 위에서 빙빙 돌리며 대답했다.

“욕심이 너무 많으시네요. 절반은 제가 처리할 거예요.”

“절반? 뭐, 자신감은 좋군.”

나는 그렇게 대꾸한 다음 자세를 잡고 밀려오는 전갈들을 바라봤다. 이런 식의 소규모 교전에서 승리하는 법은 이론은 간단하고 실천은 어렵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한 녀석을 정해서 죽인다. 그 다음, 근처에 있는 다른 녀석을 다시 지정해서 달려들어 죽인다. 그걸 계속 반복하면 결국 이긴다.

가장 가까이 있는 녀석에게 달려들자, 전갈이 커다란 집게를 휘두른다. 휘둘러진 집게를 발로 내려찍자 집게가 박살나며 그 안에 차 있던 무른 속살이 질질 터져 흘러나온다.

“죽어!”

집게를 내려찍은 발에 힘을 넣어 뛰어오르자 전갈 위에 타 있던 녀석이 내 목을 노리고 샴쉬르를 휘두른다. 만들어낸 분신이 검을 들어 올려 그 공격을 막아내는 사이, 내 공격이 녀석의 가슴에 얇은 자상을 남긴다.

“으그… 그르르륵…….”

뭔가 추가적인 행동을 취하기도 전에 독이 효과를 발휘한다. 가슴을 부여잡고 게거품을 물며 비명 비슷한 뭔가를 지르던 녀석이 바닥으로 풀썩 쓰러진다.

내가 등에 탄 것을 눈치챈 전갈이 꼬리를 움직여 나를 찌르려 든다. 독침은 의도한 목표를 이루지 못하고, 내 검에 잘려나가 모래투성이 바닥에 떨어진다.

“주인이 죽었어. 마땅히 따라가야지.”

등에 올라온 녀석을 처리할 수 있는 방법을 잃은 전갈은 몸을 이리저리 뒤튼다. 어차피 오래 매달려 있을 생각도 없었다.

“내가 이 자식아.”

그렇게 중얼거리며, 나는 독침을 잃어버린 전갈의 꼬리를 양손으로 꽉 붙잡았다.

“고래 턱 힘도 팔로 견뎠어.”

3미터 정도 되는 전갈은 크긴 하지만, 어디 향유고래에 비할쏘냐.

꼬리를 꽉 붙잡은 나는 허공에서 몸을 뒤집으며 몸에 마력을 불어넣으며 몸을 돌렸다. 전갈의 몸이 내 손에 잡힌 채 플레일처럼 빙빙 회전한다. 나를 포위하기 위해 사방에서 서서히 다가오던 녀석들은 그 기세에 더 이상 접근하지 못한다.

“뭐 저런 괴력이…….”

“이런 상황에서는 인마.”

말하는 녀석에게 시선이 쏠리게 마련이야. 그리고 시선이 닿으면, 다음 목표로 찍히는 거다. 나는 녀석을 향해 플레일처럼 휘두르던 거대 전갈을 내려찍었다. 내려찍힌 거대 전갈은 녀석을 으깨는 걸로는 모자라서, 녀석이 타고 있던 전갈의 몸통까지 박살냈다.

“후우.”

호흡할 때마다 몸이 새로워지는 기분이다. 계속해서 하나씩, 눈에 들어오는 녀석을 처리하기 시작한다.

휘둘러지는 전갈의 꼬리와 집게를 피한다. 휘둘러지는 샴쉬르를 막아내고, 날아오는 화살을 튕겨낸다. 전갈의 갑각이 박살나 내부의 연한 살이 터져 나오고, 그 위에 타고 있던 적은 비명을 지르며 절명하거나, 독에 중독된 채 고운 모래 속에 처박힌다.

“물러서지 마라. 젠장, 괴물 같은 자식!”

“얼씨구, 그게 댁들이 할 말이냐?”

자동차만 한 전갈을 타고 온 주제에 누가 누구보고 괴물이라고 하는 거야.

“차라리 저 여자를 노려라!”

나는 그 말에 픽 웃으며 클로에를 바라봤다.

“너를 노리겠다는데.”

클로에의 표정이 대번에 썩어들어간다. 대여섯 마리의 전갈이 클로에를 향해 쇄도한다. 다가온 전갈의 입 속으로 클로에의 레이피어가 박힌다. 그리고, 뭐가 터져나가는 소리와 함께 전갈의 몸통이 통째로 박살나 사방으로 그 살점과 외피를 흩뿌린다.

“약간 놀라서 잠깐 구경하고 있었더니 뭐가 어째?”

클로에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적이 쏘아붙인 화살을 손으로 붙잡고 뛰어올라 전갈 위에 타고 있던 녀석의 마빡에 박아버린 다음, 주먹을 들어 올려 전갈의 정수리를 내려쳤다. 폭음과 함께 전갈의 정수리가 거대한 망치로 얻어맞은 것처럼 함몰된다.

내가 잠깐 사이에 두 마리의 전갈을 처리한 것처럼, 클로에도 잠깐 사이 두 마리의 전갈을 처리하는 데 성공했다.

“이런, 미친년이…….”

불쌍하게도, 뭐라고 말하던 녀석은 클로에가 던진 레이피어가 미간에 박혀 말을 끝맺을 수 없었다. 미간에 레이피어가 박힌 채 눈이 허옇게 뒤집힌 시체를 보던 나는 분신을 만들어 녀석의 마빡에 박힌 레이피어를 뽑아내 클로에에게 던져주었다.

“고마워요.”

나는 눈앞의 적을 향해 검을 휘두르며 대답했다.

“천만의 말씀. 나 지금 벌써 여섯 마리째다. 서두르는 게 좋을걸.”

“이런. 더 열심히 해야겠네요.”

클로에는 다소 놀란 표정으로 내 주변에 쓰러져 있는 시체를 확인하고는 분주히 움직인다. 그럼, 나도 마저 하던 일을 해볼까.

“자, 받아봐.”

휘익, 하는 소리와 함께 내가 휘두른 검이 맥아리 없이 눈앞의 적을 향해 휘둘러진다. 어지간한 실력을 갖춘 검사라면 어렵지 않게 흘려내고 반격을 먹일 수 있을 정도다.

“이 자식이…!”

당연히, 내 참격을 흘린 다음 반격을 먹일 생각으로 검을 힘껏 들어 올렸다. 내 검과 녀석의 검이 서로 부딪치려는 순간. 나는 검을 잡은 손에 마력을 불어넣었다. 몸에 흐르는 벽해의 피가 그 즉시 팔의 완력을 강화시키고, 나약하기 짝이 없던 참격은 적의 검과 맞닿는 순간 말도 안 될 정도로 강력한 참격으로 변한다.

녀석은 들어 올린 검과 함께 반 토막 났다. 검을 휘둘러 엉겨 붙은 피를 털어낸 나는 혀를 찼다.

“조심했어야지.”

믿을 수 없을 정도의 급가속과 급정지. 벽해의 피를 몸 안에 받아들인 내가 배를 타고 이 사막까지 오면서 클로에와 연습한 기술이다.

강력해 보이던 공격이 막아내려는 순간 터무니없이 약해진다. 반대로, 약해 보이는 공격이 막아내는 순간 숨이 막힐 정도로 강력해진다.

직접 경험해본 클로에가 말하길.

[물론 어느 정도 수준에 오른 검사라면 몸에 마력을 불어넣은 상태로도 휘두르는 검에 담긴 힘의 강약은 조절할 수 있지만…… 마틴 님의 힘 조절은 그런 간단한 기교 수준이 아니에요. 변동 폭이 너무 커. 바위를 쪼갤 기세로 휘둘러진 공격이 갑자기 깃털처럼 가벼워지고…… 깃털처럼 가벼워 보이던 공격이 갑자기 바위를 쪼개버리잖아요.]

쉽게 말해서, 내 검에 담긴 힘은 그 위력이 미친년 널뛰기하듯 오락가락한다.

“으아아아아!”

무기를 들고 달려오는 녀석을 향해 검을 휘두른다. 자신의 몸을 노리는 강격을 막아내기 위해 있는 힘껏 방패를 위로 치켜드는 녀석. 하지만, 방패 위에 닿은 검에서는 팅, 하고 작은 소리가 흘러나온다.

“어어…?!”

공격을 막아내기 위해 있는 힘껏 방패를 들어 올렸던 녀석은 그 바람에 균형을 잃고 휘청한다. 그 순간 이어진 공격이 녀석의 심장을 꿰뚫었다. 시체에서 검을 뽑아낸 나는 칼날을 이리저리 살펴봤다.

“확실히 유용하네.”

벽해의 피 덕분에 생각하는 즉시 원하는 양의 마력을 원하는 장소에 불어넣거나, 다시 거둬들일 수 있다.

덕분에 내 공격은 그 강약이 구분되지 않게 되었다.

강공인 줄 알고 전력을 다해 막았는데 약한 공격이면 몸의 균형이 무너지고, 약공인 줄 알고 힘을 조절했는데 강공이면 방어가 뚫릴 테니까.

따라서, 나와 검을 맞대는 사람은 내 공격을 방어할 생각은 사실상 포기해야 한다.

약 30분 정도가 더 지나자, 도합 스무 마리의 전갈과 스무 명의 병사는 모두 평등하게 시체가 되어 모랫바닥 위에 뉘어졌다.

“후우, 후우.”

클로에는 숨을 몰아쉬며 허리춤에 달랑거리는 물통을 꺼내 들이킨 다음 입가를 훔쳤다.

“정확히 절반 처리했네.”

“마틴 님이 제 몫을 남겨놓아 주셨으니까요.”

클로에는 손수건으로 이마를 닦으며 대답했다.

“시간이 충분했으면, 혼자서도 전부 처리할 수 있었을 텐데 뭐.”

“그건 그렇죠. 근데, 굳이 이런 녀석들을 보낸 이유가 뭘까요. 이런 녀석들로 처리할 수 없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을 텐데.”

깊게 생각할 필요도 없는 문제다.

“시간이 필요했던 거겠지.”

이길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보내는 경우는 대부분 시간을 벌기 위해서다.

그래서, 녀석들은 충분한 시간을 끌었을까.

우리는 낙타를 타고 빠르게 이동하면서 눈을 가늘게 뜨고 저 멀리 휘몰아치는 모래 회오리를 바라봤다. 아직까지는 눈으로 볼 수 있는 변화는 없는데.

한 시간 정도 더 이동하자, 휘몰아치는 모래 회오리 주변에 자리 잡은 장미 덩굴이 마침내 모습을 드러낸다.

“첩보국에서 들은 묘사와는 다르네요. 저건 주변에 자라난 장미 덩굴이 아니라, 차라리 담벼락이라고 해야 할 것 같은데.”

어지간한 성인 남성 정도의 높이까지 서로 뒤얽혀 자라난 장미 덩굴은 벽을 형성하고 있었다.

“첩보국에서 잘못된 정보를 전달했을 리는 없지.”

“그렇다면, 첩보국의 보고 이후 모습이 이렇게 변한 거겠네요.”

어쨌든, 주어진 시간 동안 이 녀석들은 최선을 다했다.

“뭘 준비했는지 알기 위해서는 가까이 다가가서 확인한 다음 엘렌의 도움을 요청해야 할 텐데.”

내 말에 클로에가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

“아마, 그건 힘들 거예요. 엘렌 리버플로우 양도 현재 의심받고 있잖아요.”

엘렌은 로델린만큼 나와 직접적인 관계가 아니기에 아직은 그녀에게 무슨 피해가 간 건 아니지만, 함부로 연락하기에 좋은 상황은 아니다. 안 그래도 로델린이 교단에게 구속당해 심문 받고 있는 상황인데, 엘렌까지 그런 신세로 만들 수는 없지.

“별수 없지.”

이번에는 엘렌의 도움은 보류해야 할 것 같다. 나와 클로에는 천천히 눈앞에 켜켜이 뒤엉켜 있는 장미 덩굴로 다가갔다.

사막 한복판에 자리 잡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장미 덩굴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생기를 띄고 있었다. 덩굴 위로는 검붉은 색의 장미 꽃봉오리가 여기저기 달라붙어 있는데, 지금 당장 꽃망울을 터뜨리고 피어날 것처럼 생동감이 넘친다.

“그래, 이건 좀 봐줄 만…… 옘병.”

나는 하려던 말을 취소해야 했다. 정면에 달려 있던 꽃봉오리가 마침내 꽃을 피워올렸기 때문이다.

피어나는 검붉은 장미의 암술과 수술이 자리 잡고 있어야 하는 중앙에 위치한 사람의 입이 눈에 들어온다. 꽃 한가운데에서 쩝쩝거리는 소리를 내며 혀를 날름거리는 사람의 입이라니. 흉측스럽게 짝이 없는 광경이었다.

역시, 이 새끼들의 미적 센스는 어딘가 맛탱이가 가 있는 게 확실하다. 내 바로 앞에서 피어난 꽃봉오리를 시작으로, 우리가 오기를 기다리기라도 한 것처럼 덩굴에 달랑거리던 꽃봉오리들이 일제히 그 입을 열고 장미를 토해내기 시작한다. 모두 하나 같이 꽃의 중앙에는 사람의 입을 달고 있다.

지옥에 식물원이 있다면 이런 형태를 하고 있지 않을까.

― 마틴 레드우드.

장미들이 일제히 내 이름을 읊조린다. 그 목소리는 분명히 여성의 것이다.

“얼굴을 보여줄 자신은 없는 건가? 하긴 뭐, 상판이 그렇게 되었으니 좀 수줍어할 만도 하지.”

누군지는 알고 있다. 내 말을 듣자마자 곧바로 수천 송이는 될 것 같은 그 입 달린 장미에서 빠득 하고 이 가는 소리가 울려 퍼지나 싶더니, 이내 다시 여유를 찾은 모양인지 낮은 웃음소리를 흘린다.

― 여기는 내 땅이다. 네 녀석이 바다에서 시간을 허비하고 있을 때 나는 이 땅에 뿌리내려 성장했지.

그 여자의 몸에는 식충식물의 문신이 새겨져 있던 게 기억난다. 그래, 뭔가 식물과 관련된 흑마법을 전문으로 사용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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