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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우드-234화 (234/275)

234화

정말로 접근하고 싶지 않은 자태를 뽐내며 솟구치고 있는 모래 회오리.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저기로 향해야 한다.

“다가가면 모래에 산채로 갈려버릴 것 같은데요.”

“그러게.”

당장 이동할 수는 없다. 우리도 휴먼이기 때문에, 휴식이 필요하다.

해가 저물기 시작하자, 우리는 주섬주섬 짐을 챙겨 필요한 것들을 내려놓고 텐트를 쳤다.

다음은 식사 준비다. 모닥불을 피우고, 필요한 도구들을 꺼내든다.

“그래도, 배에서 먹던 것보다는 훨씬 영양가가 있겠네요.”

오랜 항해를 각오해야 하는 항해와는 다르니까. 말린 과일과 반건조 소시지와 햄, 치즈와 채소 절임 같은 것들이 오늘의 메뉴다.

“이건 어떻게 먹어야 하는 거예요?”

클로에가 꺼낸 자루를 확인한 나는 아, 하는 소리를 냈다. 찐쌀, 다른 말로는 올벼쌀이라고 하는 물건이다. 쌀을 도정하기 전에 먼저 찐 다음, 이후 껍질을 벗긴 물건이다.

“물이 끓으면 쏟아 넣고 5분 정도 삶은 다음, 체로 건져서 물을 뺀 다음 끓고 있는 냄비 위에 올려놓고 적당히 쪄.”

장립종은 단립종에 비해 조리가 간단한 편이니까. 이 정도면 충분히 먹을 수 있는 물건이 만들어질 거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식사 준비가 끝났다.

밤이 다가와 해가 사라진 사막의 공기는 순식간에 식었다.

“이래도 여전히 회오리는 유지되고 있네요.”

해가 다 저물고, 먹을 음식 준비가 끝났는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회오리는 휘몰아치고 있었다.

“그나저나, 저렇게 굉장한 회오리인데 왜 아무도 저걸 모르고 있었던 걸까요.”

“사막이니까.”

사막은 위험한 땅이다.

설사 사막을 가로질러 이동하는 상단이나, 여행객들이 있다 해도 어차피 사막에서는 정해진 경로를 통해서만 움직인다. 제아무리 회오리가 크다 해도, 사람들이 다니는 사막의 길목에서 벗어나 있는 이상 들키지 않는 것도 그렇게 신기한 일은 아니다. 이 시대에 무슨 인공위성이 있는 것도 아니잖아.

“하긴, 생각해보면 그것도 그렇네요.”

말을 마친 클로에는 내 몫의 음식을 건네준 다음 자리에 주저앉아 식사하기 시작했다.

“……별로 안 드시네요.”

“입맛이 영 꽝이다.”

내 말에 숟가락을 내려놓은 클로에가 입가를 훔치며 대답했다.

“레드우드 부인 때문인가요?”

“지금 어떤 처우를 받고 있는지 알고 있으니까.”

세자에게 로델린이 지금 어떤 처우를 받고 있는지는 확실히 전달받았다. 지금 내가 먹고 있는 것도 보존을 중시한 음식이긴 하지만, 로델린이 먹는 음식은 그것보다 더 형편없다.

“레드우드 부인의 몸이 상하는 일이 없도록 세자 저하께서 최선을 다하실 거예요. 걱정되는 건 이해하지만…… 배가 빈 채로 휘두르는 검에는 투지를 담기 어려워요.”

“그래, 알고 있어.”

내가 음식을 먹지 않는다고 로델린에게 주어지는 음식의 질이 향상되는 건 아니다. 오히려, 제대로 먹고 정신과 육체를 가다듬어 하루라도 빨리 헤로스와의 계약을 무효화시키는 게 로델린이 지금의 처우에서 빠르게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접시 위에 올려져 있는 음식들을 바라보던 나는 숟가락을 들고 식사를 시작했다.

“그나저나, 교단이 이렇게까지 권세가 강할 줄은 몰랐는데.”

“지금 문제가 되는 대상이 악마와의 계약이니까요. 해당 분야에서 발생한 문제만큼은, 교단이 왕명조차 무시하고 달려들죠. 게다가, 관습적으로 그러한 교단의 움직임을 문제 삼지 않는 분위기도 형성되어 있으니까…….”

그래서 한 나라의 귀족인 로델린조차 교단의 구속을 거부할 수 없었던 거다. 세자가 아무리 힘을 써도 거기까지는 막을 수 없었겠지.

클로에의 대답을 들은 나는 픽 웃었다.

“최소한, 세자 저하께서 나를 응원하는 이유는 알 것 같군.”

세자의 성격상 자기 땅에서 멋대로 설치는 녀석들을 달가워할 리가 없으니까. 이번 기회에 밟아놓겠다는 거겠지. 교단의 기를 팍 죽여놓고 싶은 이유는 다를지라도, 원하는 결과 자체는 나와 일맥상통한다.

식사를 마친 우리는 곧바로 잠자리를 준비하고, 그대로 눈을 감았다.

* * *

저녁, 세자는 불편한 표정으로 눈앞에 서 있는 대주교를 바라보고 있었다.

“세자 저하, 꼭 필요한 일이라는 명목하에 로델린 레드우드 부인을 데려간 지 벌써 5시간이 지났습니다.”

세자는 그 말에 웃는 표정으로 차를 마시며 대답했다.

“이거, 일이 좀 늦어지는 모양이군요. 주기적으로 의논을 나눠야 하는 일이기 때문에, 종종 이런 일이 있을 것 같아요.”

말을 마치고 호록, 하는 소리와 함께 세자가 차를 마신다.

“로델린 레드우드 부인은 지아비를 저버리고 아들인 마틴 레드우드와 함께 왕도로 향했습니다. 그 이후, 꽤나 오랜 시간 자신의 아들과 동행했습니다.”

“어머니의 자식 걱정은 당연한 일 아닌가요.”

세자의 말에 대주교가 주먹을 꽉 쥐고 대답했다.

“이 모든 일이 마틴 레드우드와 계약한 악마의 손에 놀아나는 과정에서 벌어진 일일 수도 있습니다.”

“그거 큰일이군요.”

대주교는 끄응, 하는 소리를 내고 세자를 바라봤다.

“레드우드 부인에 대한 조사는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세자 저하, 나라의 운영이 중요하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어찌 그것이 이 세상에 호랑이처럼 숨어 만인을 타락시키는 사이한 악마를 찾아내는 것에 비할 수 있겠습니까.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국사를 조금 뒤로 미루는 한이 있어도…….”

세자는 대주교를 바라보다가 옥새를 툭 하고 대주교 앞에 던졌다.

“그거 가져가서 왕 노릇 하시지요.”

세자의 말에 대주교가 움찔하고는 뒤로 한발 물러났다.

“소인이 어찌 감히 그런 생각을 할 수 있겠습니까, 세자 저하. 다만, 내궁 밖에서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고 계십니까?”

세자는 쿠키 한 조각을 들고 이리저리 살펴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다마다요.”

왕궁에서 나라의 녹을 받아먹는 귀족들 중 상당수가 왕 대신 신을 선택한 모양이다. 그들은 지금 내궁 밖에 모여 돗자리를 펼친 다음, 며칠에 걸쳐 쉬지 않고 마틴 레드우드를 당장 불러들이라는 탄원을 올리는 중이었다. 그 탄원은 단지 궁 밖에서 울려 퍼지는 목소리로 끝나는 게 아니었다.

지금 세자의 집무실 테이블 위에 산더미처럼 올라가 있는 서류 대부분이 마틴 레드우드를 즉시 왕도로 불러들여야 한다는 탄원서였다.

심지어, 그런 주장을 펼치는 자들 중에는 마틴의 가문인 레드우드 가문도 있었다. 어머니인 로델린 레드우드와는 다르게, 그의 아버지는 해당 소식을 듣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의 아들인 마틴 레드우드의 강제 소환을 요청하는 목소리를 높였다.

“아 참. 여기, 대주교 전원의 서명을 담았습니다.”

이전에, 세자가 보냈던 서류가 대주교 세 명의 서명을 담고 돌아왔다. 그 서류를 이리저리 살펴보던 세자가 고개를 들어 대주교를 바라봤다.

“마틴 레드우드가 악마와 계약했다고 하는 소문을 신기할 정도로 확신하는군요. 그 이유가 궁금할 지경이에요.”

“저희는 확신 없이 움직이지 않습니다.”

세자가 그 말에 턱을 괸 채 대주교를 바라봤다.

“동감해요. 문제는 그 확신의 출저가 아닐까요.”

“교단 내의 일에 대해서는 제아무리 세자 저하라 하더라도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세자는 대주교의 말을 듣고 나서 서류를 바라봤다. 그래, 교단 내의 일은 설사 국왕이 물어본다 해도 대답할 의무가 없다. 하지만, 마틴 레드우드가 무사히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데 성공한다면 그것도 다 옛말이 되겠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려니 또 다른 서류 하나가 슥 하고 내밀어졌다.

“이건, 마틴 레드우드가 악마와 계약했다는 사실이 증명된 이후 저희가 요구하고 싶은 것들입니다.”

막대한 양의 보조금, 전 국민의 주말 예배 참석 의무화, 왕족의 반려를 찾을 때 관여할 수 있는 권한. 10세 이하 왕족들의 신학 교육 의무화.

거기에 더해 교단 성서의 내용을 국법과 동일한 위치까지 격상. 그 이외 등등…….

이 녀석들은 사실상, 왕이 다스리는 국가라는 가면을 쓴 신정국가를 만들려고 한다.

“대주교, 이렇게 권력욕이 많은 줄은 몰랐어요. 진작이 알아봤어야 하는데 말이지요.”

“신실한 나라를 만들기 위해 밤낮없이 봉사할 뿐인 소박한 노인네입니다. 부디, 오해하지 마셨으면 합니다, 세자 저하.”

신실한 나라 좋아하시네. 그 서류를 훑어본 세자는 주교 앞으로 던져줬던 옥새를 다시 집어 들고 그 서류 위에 옥새를 찍었다. 이미 던져놓은 주사위다.

세자는 이제 와서 뒤로 뺄 수도 없는 상황이고, 설사 그게 가능하다 해도 그럴 생각도 없었다.

“그럼, 마틴 레드우드가 무사히 임무를 마치고 돌아오기를 기다리면 되겠군요. 아, 로델린 레드우드는 일이 끝나고 나면 돌려보내지요.”

말을 마친 세자는 밖을 향해 말했다.

“대주교가 이만 돌아가겠다고 하는구나. 안내해드려라.”

세자는 말을 마치고 나서 대주교를 바라봤다. 명백한 축객령.

“아무쪼록, 레드우드 부인에게 지시한 일이 조속히 끝나기를 바랍니다.”

“노력은 해보겠네.”

대주교는 그런 세자를 잠깐 바라보다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하고 돌아갔다. 세자는 대주교가 나간 문을 바라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로델린이 머무르는 장소로 향했다.

“세자 저하를 뵙습니다.”

목욕을 마치고, 식사를 하고 있던 로델린이 급하게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럴 필요 없다. 피로가 쌓인 몸일 텐데.”

허리를 숙이려는 자세를 취하자, 세자가 그를 제지한다. 로델린은 잠깐 주저하다, 다시 자리에 앉았다.

“내궁에 방을 내어줄 테니. 오늘은 쉬고 내일 아침 식사를 마치고 돌아가도록 해라.”

말을 마친 세자는 잠깐 로델린을 바라보다 한탄 섞인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일단, 지금으로서는 이게 내가 배려해 줄 수 있는 전부다.”

핑계를 대서 일시적으로 구금을 풀고, 목욕을 시키고 영양가 있는 음식을 준비한다.

“이미 세자 저하의 배려에 기운을 많이 찾았습니다.”

로델린은 입가를 닦은 다음 말을 이었다.

“이 이상 내궁에 머무르는 것이 세자 저하에게 피해가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만 돌아가도…….”

“머무르도록. 목욕을 하고 충분한 식사를 했다고 하나, 요 며칠 사이 네가 겪은 고초로 쌓인 피로는 충분한 잠이 아니면 풀 수 없다는 것을 내 잘 알고 있다.”

최소한의 수면과 쉬지 않고 이어지는 심문. 세자가 보낸 왕궁의 기사들 때문에 직접적으로 고문할 수는 없지만, 고문 말고도 사람을 지치게 만드는 방법은 차고 넘친다.

“의사의 말에 따르면 가벼운 탈수 증상이 있었다고 하는군.”

로델린을 내궁으로 불러들인 다음 가장 먼저 한 일은 의사를 불러 몸을 진찰하게 하는 일이었다.

“이 나이 먹고 제 몸 하나 건사하지 못하다니, 죄송하고 민망합니다.”

죄송할 것도 없고, 민망할 일도 아니지. 물을 안 줘서 걸린 탈수가 로델린의 잘못은 아니다.

“구금된 장소를 지키는 기사들로 하여금 틈틈이 물을 넣어주라 지시하지.”

“배려에 감사합니다. 이 몸으로는 갚을 길이 없는 은혜입니다.”

로델린의 말에 세자는 흠, 하고 코웃음 비슷한 소리를 냈다.

“네 아들이 갚으면 될 일이겠지.”

로델린이 그 말에 세자를 향해 시선을 던졌다.

“감히 여쭈어볼 것이 있습니다.”

“듣고 있으니 말해 보거라.”

허락이 떨어지자 로델린은 기다렸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정말로, 제 아들이 악마에게 정말로 영혼을 팔았습니까?”

“아니다.”

세자는 태연하게 거짓말을 던졌다. 즉시 돌아온 세자의 단호한 대답. 로델린의 표정이 그 대답을 듣자마자 편안해지는 것이 눈에 보일 정도였다.

어차피, 이 거짓말이 거짓말이라는 것이 들통나면 레드우드 가문도 끝장이고, 세자도 끝장이다. 마틴이 목적을 성취하고 돌아오면 세자가 한 거짓말은 거짓말이 아니게 된다.

로델린은 앞으로도 계속해서 고초를 겪어야 한다. 그 힘든 과정을 버티는 데 거짓말이 조금이나마 힘이 된다면, 까짓 거짓말하지 못할 이유도 없다는 게 세자의 생각이었다. 한 나라의 세자로 있다 보면 거짓말은 밥 먹듯이 하게 된다. 그가 해왔던 거짓말 중에서도 이 정도는 굉장히 양호한 축에 든다.

“마틴 레드우드는 악마와 계약하지 않았으니,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리게. 분명히 돌아올 때는 좋은 소식을 가지고 올 거야.”

“그리 믿겠습니다.”

그걸로 대화는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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