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드우드-241화 (241/275)

241화

충분히 휴식을 취한 우리는 며칠째 몰튼브라운 숲으로 이동하는 중이었다.

“거참, 분위기 황량해지네.”

깊어가는 여름을 표현하는 것처럼 푸르른 초목들이 어느 시점부터 서서히 줄어들기 시작한다.

곧이어, 여름이라는 단어가 무색할 정도로 누렇게 뜬 풀이나, 이파리가 다 빠져 대머리와 비슷한 몰골이 된 나무 따위가 눈에 들어온다.

“덥네요.”

게다가 기온도 점점 올라가고 있다. 이미 느낌으로는 40도는 넘은 것 같은데.

여름의 열기라고 하기에는 입술이 바짝바짝 마를 정도로 건조하다.

“제대로 향하고 있다는 증거겠지.”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조금만 더 가면 우리는 문제의 몰튼브라운 숲 인근 마을에 도착한다.

“저는 헤로스를 본 적이 없는 것 같은데, 어떻게 생겼나요?’

“맨질맨질한 두개골을 감추려고 머리에 불을 붙인 해골. 온몸에 갑옷을 두르고, 어지간한 대검보다 더 거대한 숯덩이를 휘두르지. 텅 빈 두개골의 눈두덩에는 화염이 타오르고 있어.”

쏟아지듯이 휘몰아치는 불티와 유황 냄새, 잿가루 같은 것도 녀석의 트레이드 마크다.

“설명만 들으면 막 엄청나게 무섭지는 않은데요.”

“괜찮아. 직접 얼굴을 맞대보면 그 생각도 싹 사라지겠지.”

내가 담이 작은 사람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처음에 헤로스의 면상을 봤을 때는 기겁을 할 정도였으니까. 클로에도 담력은 있는 편이지만, 아마 헤로스의 모습을 보면 놀라지 않을 수 없을 거다.

“그거참 기대되네요.”

대화를 나누는 사이, 누렇게 뜬 초목들의 모습이 다시 한번 변한다. 이번에는, 뭔가에 그슬리기라도 한 것처럼 검게 변해있는 초목들이 우리를 반겨준다.

“후우.”

클로에는 그렇게 중얼거리고 지친 표정으로 물을 한 모금 마셨다. 그런 클로에를 보던 나는 주변에 너울거리는 가느다란 실가닥들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검에 의해 실가닥들이 잘려나가자, 나와 클로에가 서 있는 땅 주변의 기온이 서서히 정상으로 돌아오기 시작한다.

“그런 것도 되는군요.”

“안될 것 없지.”

삭풍의 족쇄를 손에 넣으면서, 헤로스가 부리는 권능을 검으로 벨 수 있게 되었다. 당연히, 그 자식의 힘으로 변해버린 기온도 원래대로 돌릴 수 있다.

“조심해서 접근하자.”

내 눈에 잡히는 실타래들의 숫자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 헤로스에게 가까워질수록 녀석의 힘이 더 강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젠 아예…….”

클로에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주변을 살폈다. 검게 그을려 있던 초목들은 아예 매캐한 연기를 스물스물 올리고 있었다.

“얼마 남지 않았어.”

우리 주변을 타고 흐르는 실가닥들의 근원을 어림짐작할 수 있는 수준까지 왔다. 나는 계속 실가닥을 잘라 주변의 온도를 정상으로 돌리며, 물을 한 모금 마셨다.

둘 중 하나가 끝나기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이 싸움이 나에게 좋은 쪽으로 끝나건, 나쁜 쪽으로 끝나건. 여기에서 정말로 끝나게 되는 것이다.

“보통 사람들이라면 화상을 입었을 거예요.”

주변을 둘러보면, 이제는 아무것도 없다. 그저, 흩날리는 검은 잿가루가 한때 여기에 풀과 나무가 있었다는 걸 알려줄 뿐이다.

“보인다.”

저 멀리 보이는 마을 어귀, 시뻘겋게 달궈진 권좌 모양의 돌덩이 위에 앉아있는 해골이 보인다. 내가 녀석을 봤듯이, 녀석도 나를 봤을 것이다. 아니, 그보다 훨씬 전에 내가 녀석을 향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혀 움직이지 않고 있는 이유는 뻔하다.

어차피, 내가 저기로 향할 수밖에 없으니까. 굳이 움직이지 않아도 되니까. 밀림 속을 탐험하는 사람처럼, 나는 계속해서 헤로스로부터 뻗어 나오는 실가닥들을 검으로 쳐내며 녀석에게 다가갔다. 클로에는 별다른 말 없이 내 옆에 붙어서 묵묵히 이동할 뿐이다.

― 마틴 레드우드.

“안녕 헤로스. 못 본 사이 많이 여위었군. 뼈밖에 안 남았잖아.”

녀석의 눈앞에 서는 것만으로도 확, 하고 위압감이 몸을 덮친다. 저절로 몸의 근육이 굳어갈 정도의 존재감. 무력한 어린아이 앞에서 사자가 낮게 울음을 터뜨리고 있어도 이 정도로 긴장하지는 않을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입을 놀렸다.

그렇게라도 해서 억지로 내 몸을 내리누르는 중압감을 떨쳐내기 위해.

― 농지거리할 정도의 여유는 없어 보이는데.

자리에서 일어나자, 옆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클로에가 자기도 모르게 뒤로 한 걸음 물러난 것이다.

― 옆의 계집은 그래도 상황 파악이 되는 모양이군.

말을 마친 헤로스는 뼈만 남은 손을 내 쪽으로 내밀었다. 그 목소리는 제법 차분했고, 나를 억누르던 압박감도 어디론가 싹 날아가 버렸다.

― 마지막 기회다. 나는 너를 제법 높게 평가하고 있었고, 여기까지 온 것으로 그 평가는 더욱 높아졌다.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다가오기 전에 스스로의 위치를 인지하고 현명한 선택을 해라.

헤로스는 불타는 눈길로 나를 응시하고 있다. 나는 혀를 차고 대답했다.

“이 화상아. 내가 여기에서 그만둘 거였다면 진즉 때려쳤다고 생각하지 않냐. 너야말로 마지막 기회다, 옆으로 비켜. 괜히 쥐어 터진 다음 추하게 돌아가지 말고, 그냥 눈 딱 감고 졸개 하나 포기해.”

내 말에 헤로스는 내밀었던 손을 거두었다.

― 방금 전 그게 마지막이었다.

압박감이 밀려든다. 나는 녀석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위압감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 삭풍의 족쇄라. 시덥잖군.

헤로스는 그렇게 중얼거리고 손을 옆으로 뻗었다. 뿜어져 나온 화염과 바닥에 쏟아지는 불티. 그리고 그 화염을 휘감는 재까지.

녀석의 손에는 이전 쿠르스트 산맥에서 봤던 그 거대한 숯덩이가 쥐여 있었다.

― 네 녀석이 손에 넣은 힘이 얼마나 하잘것없는지 내가 몸소 보여주마.

그 와중에, 뒤편에서 쇳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헤로스에게서 시선을 뗄 수는 없었다. 아마, 클로에가 근처에 몸을 숨기고 있었던 광대와 교전하기 시작했다는 뜻이겠지. 알아서 잘해 낼 것이라고 믿는다. 엘렌에게 조언을 구했었는데, 헤로스를 소환하는 데 성공했다면 광대의 힘이 약해지는 건 피할 수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으니까.

“…….”

헤로스는 대검을 어깨에 걸쳐놓은 채 나를 가만히 바라본다. 나는 그런 헤로스를 향해 함부로 접근하지 않는다.

― 이전에는 엉덩이에 불침 맞은 멧돼지처럼 날뛰더니.

“그게 상책이 아니라는 걸 알아서 말이야.”

내가 헤로스와 쿠르스트 산맥에서 만난 이후 시간이 꽤 지났다. 그 정도 시간이 흐르면 성질이 더러운 강아지도 훈련시켜서 멀쩡하게 만들 수 있을 텐데, 사람씩이나 되었으면 발전이 있어야 하지 않겠어.

헤로스가 살짝 움직이면, 나는 거기에 맞춰 반응하듯이 자세를 바꾸고 위치를 변경한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헤로스가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시뻘건 화염이 폭포수처럼 나를 향해 소용돌이치며 파도처럼 밀려온다.

“후우…….”

그 화염 속에서, 헤로스의 마력을 선명하게 볼 수 있다. 검을 들어 올린 나는 쏟아지는 화염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화염을 구성하는 헤로스의 마력이 검에 의해 잘려나가고, 밀려오던 화염이 사라진다.

흩어지는 화염 너머로 움직이는 헤로스의 모습이 보인다. 재빠르게 분신을 만들어, 휘둘러지기 직전의 검을 억지로 막아낸다. 공격을 막아낸 분신이 튕겨져 나간다.

공격을 방해받은 헤로스는 자세를 바로잡은 다음 중얼거렸다.

― 잔재주만 늘었군. 이런 게 네 자신감의 근거라는 거냐.

비웃는 것 같은 어조였지만, 목소리는 건조했다.

“왜, 실망이냐?”

나는 허상을 만들어 낸 채 천천히 헤로스를 향해 다가갔다.

― 아니라 말하지는 않겠다.

헤로스가 한 손을 꽉 쥐자, 녀석을 중심으로 불티를 머금은 짙은 잿가루가 흩날리기 시작한다. 그 잿가루의 연막 너머에서, 헤로스의 눈동자만이 불타고 있다.

― 네 앞에 죽음이 다가왔으니, 마땅히 두려워하라.

녀석이 대검을 크게 들어 올렸다. 당연히 분신으로 방해하는 데 성공했지만, 녀석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한 손을 횡으로 휘두른다.

“?!”

말도 안 되는 속도로 밀려오는 화염은, 쏟아진다는 표현으로는 그 속도를 차마 다 표현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화염의 형태를 한 섬광 같았다.

나로서는 검을 가져가는 게 고작이었다. 다행히도 그 덕분에 나에게 밀려오는 화염의 파도를 잘라낼 수 있었고, 산채로 숯덩이가 되는 것만큼은 피할 수 있었다.

― 뒤를 봐라. 그 정도 여유는 주마.

헤로스는 이후 별다른 공격 자세를 취하지 않았고, 나는 슬쩍 뒤를 돌아봤다.

“하.”

헤로스의 화염이 핥고 지나간 대지는 통째로 녹아내려 용암으로 변해있었다. 그리고, 그 용암은 몇 km에 이르는 강을 이루고 있다. 그 용암의 강이 닿은 곳은, 우리가 지나왔던 산이었다.

그 산도 마찬가지로, 통째로 녹아내리고 있었다.

― 볼만한 표정이군. 이제, 네가 지금 누구를 거역한 건지 알겠느냐.

그런 소리를 하며, 헤로스는 휘둘렀던 손을 꽉 쥐었다. 그 행동과 동시에, 용암의 강과 녹아내리던 산이 순식간에 굳어버린다.

“…….”

헤로스의 화염이 지나간 자리에 남은 건 녹아내린 흙과 산이 굳어서 만들어진 반질거리는 고체다. 세라믹을 만드는 방법과 크게 다르지 않다.

머릿속에 든 생각은 하나뿐이었다. 이건 너무하잖아. 카얀이 자신보다 강할 것이라고 말해주기는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니잖아. 화염을 뿜어서 멀쩡한 땅에 용암으로 한강을 만들고, 산 하나를 통째로 세라믹, 도자기 재질로 바꾸는 행위는 사람의 상식선에서 받아들이기 굉장히 부담스럽다.

소름을 넘어선 공포가 밀려온다.

― 우습군. 무엇을 기대했느냐.

나는 그 말에 심호흡을 하고 자세를 바로잡았다. 지금 펼쳐진 광경에 압도되어서는 안 된다. 결국, 저 엄청난 일을 일으킨 헤로스도 나를 다치게 할 수는 없었다.

“승리.”

내 말에 헤로스가 비웃는 것 같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 나는 전장의 태초마다. 모든 전장의 승리와 패배는 내 손 안에 있음이니. 이 세상의 모든 승리 그 자체를 앞에 두고 자신의 승리를 취하려 하느냐.

“못할 건 없어.”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한 발 앞으로 나아갔다.

“너도 결국 한 방이야, 헤로스.”

분명히 내 눈에 보인다. 저 녀석의 몸은 마력으로 구성되어 있다. 지금 클로에와 싸우고 있는 광대 녀석이 불러낸 건 헤로스 그 자체가 아니다.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있도록 가공된 헤로스의 파편이다. 당연히, 그 몸의 구성 성분은 마력이다. 그리고, 내 검은 마력을 베어낼 수 있다. 한 방만 제대로 치명타를 먹일 수 있다면, 그걸로 이 세상에 강림한 헤로스는 자신의 몸을 구성하는 힘을 잃고 돌아가게 된다.

그게, 내 승리로 가는 길이다.

― 한 번이라. 내가 그 한 번을 허락해 줄 거라고 생각하는 거냐.

“그럴 리가.”

한 방이면 끝나는데 당해주려고 하는 놈이 어디 있겠냐. 결국, 그 기회는 내가 만들어야 하는 거다. 헤로스의 움직임을 살피던 나는 재빨리 녀석에게 따라붙었다. 헤로스는 당연하다는 듯이 대검을 휘두르며 자신의 몸에 불티를 휘감는다.

검으로 불티를 구성한 마력을 잘라내고, 헤로스가 대응하기 위해 휘두르려는 숯덩이는 분신으로 미리 차단한다. 헤로스가 남은 손을 뻗는 걸 확인한 나는 내가 서 있는 자리의 뒤에서 앞으로 달려드는 허상을 하나 만들고, 옆으로 빠졌다.

헤로스는 후려치듯이 손을 횡으로 휘둘렀다. 허상은 물론이고 나까지 위협하는 화염이 피어오른다.

“젠장.”

다시 한번, 검을 휘둘러 화염을 막아내야 했다.

저 망할 숯덩이만 문제가 아니었다. 헤로스의 몸에서 계속해서 피어오르는 화염도 문제다.

카얀과 훈련하지 않은 건 아니다. 하지만, 헤로스가 화염을 뿜어내는 속도와, 그 위력은 카얀과는 확연한 차이를 보였다.

― 오지 않는 거냐.

말을 마친 헤로스가 손을 뻗었다. 녀석의 손에서 기관총처럼 화염 덩어리가 나를 향해 쏟아지기 시작한다. 어지간한 인간 마법사라면 1분은 넘는 정신집중 끝에 만들어 낼 법한 화염구였다.

그 공격을 다 막아낸 나는 숨을 몰아쉬며 어떻게든 파훼법을 찾아보려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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