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9화
그 뒤로 며칠 동안 우리는 조용하고 안락한 여행을 계속할 수 있었다. 녀석들도 우리를 방해하지는 않았고, 우리도 녀석들이 방해하지 않는 이상 괜히 괴롭힐 이유는 없었으니까.
“이봐.”
하지만, 그 평화로운 여행도 그 끝을 고할 모양이다. 출발 준비를 하고 있는 교단의 병사들을 향해 내가 말을 걸자, 병사들이 일제히 우리를 바라본다.
“무슨 일이십니까.”
나는 그 말에 턱짓으로 마차의 바퀴 하나를 가리켰다.
“저 바퀴, 상당히 위태로워 보이는데.”
겉은 크게 이상이 없어 보이지만, 마차와 연결된 부분이 헐겁다. 게다가 바퀴살도 꽤나 오랫동안 고생한 흔적이 역력하다. 사람으로 치면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들어 한참을 죽을병으로 고생하다, 마침내 체념하고 죽음을 기다리는 병실의 환자 같다고 해야 하나.
내가 나무에 대해 많은 건 알고 있지는 않지만, 필요할 때를 대비해서 어느 정도의 지식은 갖추고 있었다. 최소한, 저 바퀴를 구성하고 있는 재료가 상당히 위태로운 상태라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솔직히 말해, 가다가 중간에 박살날 가능성이 너무 높아 보인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어제까지만 해도 저 바퀴는 저런 상태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그, 그렇습니까? 확인해보고 조치하도록 하겠습니다.”
병사들이 황급하게 바퀴로 접근한다. 나는 클로에를 향해 시선을 던졌다. 클로에도 뭔가 느낀 점이 있는지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 목발을 짚은 채 내 옆으로 다가와 속삭였다.
“오늘은 야숙이 예정되어 있어요.”
“그래, 딱 좋은 시기로군.”
야숙하는 와중에 당하는 기습이라는 건 언제나 효과적이기 마련이지. 이 녀석들이 뭘 준비했건, 그 카드를 오늘 펼쳐 보일 셈이다. 우리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와중에, 기사가 병사의 보고를 들었는지 우리 쪽으로 다가온다.
“마차의 바퀴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하지만…… 이 근방에는 마차 바퀴를 수리할 만한 실력 있는 장인이 없습니다.”
아, 그렇게 나오시겠다? 사실, 마차 바퀴는 그냥 니들이 따로 빼놓은 물건으로 갈아 끼우면 될 거라고 생각하는데.
“다소 위태로워 보이는 건 사실이지만, 이틀 정도만 버티면 됩니다. 제가 보기엔 조심해서 운행하면 어떻게든 될 것 같습니다.”
제가 보기엔, 이라. 니가 뭔데. 뭐 마차 바퀴 전문가라도 되냐? 이 시점에 필요한 건 전문가의 의견이지, 마차의 구조에 대해서는 개뿔도 모르고 평생 기도하며 검만 휘두른 교단 기사의 의견이 아니건만. 나는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며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런가. 자네 말대로 어쩔 수 없겠지. 마차 운용에 신중을 기하라고 마부에게 일러두게.”
“그리하겠습니다.”
일단은, 넘어가 줄 수밖에 없다. 여기에서 시간을 끌 수는 없으니까. 차라리 녀석들이 뭘 준비했건 피할 생각을 하지 말고 정면으로 받아치기로 나는 마음을 바꿔먹었다.
한번 해봐라. 헤로스한테도 쫄지 않았는데 이런 너절한 녀석들에게 쫄아서 달달 떨까 보냐.
바퀴가 위태로운 마차는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야기를 듣고 나니 불안하네요.”
“그 다리로 마차를 벗어나는 게 썩 쉬운 일은 아닐 텐데.”
내 말에 클로에가 하! 하는 소리를 내고는 손을 휘휘 저었다.
“그건 문제가 아니에요. 다만, 여기까지 준비를 해두었다는 걸 깨닫고 나니 역시 마틴 님에게 짐이 되지 않을까 불안하긴 하네요.”
나는 그 말에 혀를 찼다.
“내가 팔 하나가 없어도 너 정도의 짐 하나 정도는 견딜 수 있어.”
내 말에 클로에가 슬쩍 상처받은 표정을 지었다.
“어머, 역시 짐이라고 생각하시는군요. 좋아요, 한번 일이 벌어지면 보자고요. 제가 짐이 될지, 아니면 조수가 될지.”
클로에는 그렇게 대꾸하고 나서 나에게 서류를 넘겨주었다.
“이번에 왕도에 만들어지고 있는 단상의 구조와 일정이에요.”
“뭐, 개수작을 부릴 가능성은 없고?”
내 말에 클로에가 고개를 저었다.
“첩보국에서 가용한 인원을 동원해 감시 중이에요. 사용되는 자재 자체도 국가 주도로 구매한 거기 때문에, 거기에 장난을 쳤다간.”
졸지에 그 구매를 주도한 귀족들이 벼락을 맞을 것이다. 이 마차와 유사한 종류의 개짓거리를 해놓을 위험은 없겠군.
“뭐야, 이건 공개 취조가 아니라 숫제 축제잖아.”
광장에 모인 사람들에게는 음식과 술이 제공될 예정이라고 한다. 남이 조사받는 장소에서 술을 마시고 밥을 먹다니. 단상 위에서 그 모습을 볼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황당하군.
약간 과장되게 표현하면, 식당에 앉은 손님 앞에서 요리사가 칼질하는 통참치가 된 느낌이다.
“사람을 많이 모아야 하니까요. 세자 저하께서는 일단 국고에서 거기에 필요한 경비와 식음료를 제공하고, 이후 귀족들이 자발적으로 공출한 것들로 다시 국고를 채우실 모양이세요.”
나는 그 말에 코웃음을 쳤다.
“일단 쓰고 나중에 돈을 걷는다니. 세자 저하께서 한 몫 단단히 잡으시겠는걸.”
참 간단한 이야기다. 이번 공개 취조를 위해 사용된 비용과 식자재에 세자가 조금 장난을 쳐놓는다면, 사용된 국고의 재산 이상을 귀족들로부터 뜯어내는 게 가능하다.
“사람은 배가 불러야 일을 하고, 나라는 국고가 든든해야 돌아가는 법이잖아요. 게다가, 세자 저하는 왕권 강화를 위해서는 수단을 가리는 성격이 아니시니까요.”
나는 그 말에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모로 가도 학점만 잘 나오면 된다는 말이 있잖아?
“왕도에 도착하기 전에 머무르는 마지막 마을에는 근사한 예복을 준비하게 시켜줘.”
내 말에 클로에가 내 복색을 슥 훑어봤다.
“확실히, 지금 입고 있는 복장이라면 아무래도 그 행색이 초라하긴 하죠.”
어쩔 수 없잖아. 턱시도 입고 싸울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첫인상은 중요해. 왕도 앞에는 사람들이 모여있을 테니까.”
“돈을 듬뿍 바르죠. 제 복장도 좀 그럴싸하게 바꿔 입어야겠네요.”
우리는 그렇게, 왕도에 도착해서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에 대해 이야기하며 시간을 보냈다.
“마부 실력 한번 기가 막히네.”
해가 저물어 갈 때까지 마차는 부서지지 않고 있었다. 클로에는 손에 카드를 쥔 채 대답했다.
“적절한 때가 되면 부서지겠죠. 그것보다, 빨리하세요.”
나는 그 말에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내가 이겼어. 너도 알잖아.”
내 말에 클로에는 으, 하는 소리를 내고는 손에 쥐고 있던 카드를 옆에 내려놓았다.
“하도 심심해서 하자고 했지만, 이렇게 일방적으로 쥐어 터질 줄은 몰랐어요.”
“내가 말했잖아. 게다가, 봐주지 말라고 한 건 너다.”
잠깐 밖을 바라보던 나는 입을 열었다.
“이제 부서질 거다. 준비해.”
아니나 다를까, 내가 말을 마치기가 무섭게 갑자기 마차가 한 번 크게 덜컹거리더니 곧바로 아래에서 으지직 하는 소리가 나며 마차가 한쪽으로 확 기울었다.
나와 클로에는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재빨리 마차에서 빠져나왔다. 드드드득, 하며 마차의 바닥이 긁히는 소리가 들리더니, 우리가 빠져나간 마차는 그대로 밑창이 아주 작살나서 못 쓰게 되어버렸다. 열심히 마차를 끌고 있던 말들도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해서 연거푸 투레질을 반복한다.
“괜찮아?”
“문제없어요.”
클로에의 상태를 확인한 나는 먼지를 털어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길 상태가 생각보다 좋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함께 있던 기사가 나에게 그런 말을 건넨다. 지금 내 앞에서 연기하는 거야? 마차 바퀴 작살나기 전에 거리를 벌렸다는 사실은 이미 확인했는데. 어디서 약을 팔려고 들까.
“그래서, 계획은?”
내 말에 기사가 으음, 하는 소리를 냈다.
“본디, 그냥 말을 타고 이동하게 된다면 크게 문제는 없지만.”
말을 하며 녀석이 클로에를 슬쩍 바라본다. 그래, 저 다리로 말을 타는 건 무리가 있겠지. 이 핑계로 여기에서 시간을 끌 생각이었던 모양이다.
“어쩔 수 없이 새 마차를 구하는 편이 어떨까…….”
“별수 없지.”
내 말에 그가 고개를 끄덕이고 말을 이었다.
“인근 마을의 신전에서 도움을 받겠습니다. 교단 기사라는 자격 증명이 필요하니 저를 비롯한 몇 명의 병사를 차출하겠습니다.”
나는 그 말에 병사들의 얼굴을 슥 훑어봤다. 아무래도,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지 제대로 모르는 모양이다. 교단이 짠 계획대로 일이 진행된다면 여기에 남은 녀석들도 우리와 함께 죽겠지.
물론, 나는 그렇게 둘 생각이 없다.
“그러도록. 일정이 늦어지면 곤란하니 최대한 빨리 다녀오게.”
기사가 고개를 끄덕이고 병사 몇을 선발해, 말을 타고 달리기 시작했다. 클로에는 내려앉은 마차에 기대서 쉬고 있었다.
“얼마 걸리지 않겠죠?”
나는 그 말에 멀어지는 교단 기사와 그 일당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저 친구들이 시야에서 사라지면 바로 시작하지 않을까 싶은데.”
내 말에 클로에가 끄응, 하는 소리를 냈다.
“요즘 너무 쉰 느낌이 있죠.”
그토록 격렬하게 쉬지 않고 이어지던 험난한 시간들이 끝나고, 요즘 너무 풀어진 느낌이 있다. 멍하니 숲을 바라보고 있던 클로에가 내 허리춤에 달린 물통을 꺼내 한 모금 마신 다음 입을 열었다.
“제가 네 명 상대할게요.”
“그럼 내가 열 명이네.”
내 말을 들은 클로에가 희미하게 웃으며 박살난 마차의 나무 조각을 집어 들고 수풀로 집어 던졌다.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날아간 나뭇조각의 종착역은 사람의 비명이었다.
“이러면 아홉이죠?”
“그러네.”
곧바로, 근처에 숨어있던 녀석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하나같이 자신의 모습을 감추고 싶은 건지, 얼굴에 복면을 쓴 채였다.
“젠장, 들켰군. 공격…….”
말을 하려던 녀석은 코앞까지 다가온 나와 눈을 마주쳤다. 공격하자, 녀석이 급하게 검을 들어 막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검을 막아낸 녀석은 붕 떠서 근처에 서 있던 아름드리나무에 등을 들이받고 피를 토했다.
튼튼하네. 가려 뽑았다는 말은 사실인 모양이다. 녀석들이 재빠르게 나를 둘러싼다. 녀석들의 행색을 훑어본 나는 비웃는 것 같은 어조로 말했다.
“베로나 제국의 복식이라. 너무 티가 난다고 생각하지 않아? 덕분에 베로나 제국에서 보낸 게 아니라는 확신은 섰군.”
내 말에 녀석들은 대답하지 않는다. 나무에 몸을 들이받은 녀석이 비척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자세를 잡는다.
“베로나 제국은 원수를 오래 기억한다. 황제 폐하의 명에 따라 여기서 죽어라, 마틴 레드우드.”
그 말과 동시에 뒤편에 서 있던 녀석 중 몇 명이 손을 들어 올렸다. 선명하게 빛나는 연결점을 통해 나를 노리고 뻗어 나오는 마력의 흐름이 눈에 잡힌다. 검을 휘둘러 그 마력을 끊어버린 나는 혀를 찼다.
“여러 명이서 한 명을 노리고 뭇매를 놓는 주제에 말은 참 잘해요.”
나에게 마법을 걸 생각이었던 마법사들이 당황한 움직임을 보인다. 녀석들이 당황하는 사이 마법사들의 뒤편에 나타난 분신에, 앞에 서 있던 기사 중 하나가 급하게 외쳤다.
“조심해라!”
마법사들이 본능적으로 자신의 몸에 보호막을 펼친다. 분신이 휘두른 검이 보호막을 구성하는 마력을 잘라내고 어렵지 않게 마법사의 머리를 잘라낸다.
“이게, 무슨…….”
보호막을 부순 게 아니다. 마법사가 급하게 전력을 다해 펼쳐낸 보호막은 녹아내리는 것처럼 흩어져버렸다. 그 장면을 목격한 녀석들은 이를 악물고 양손으로 무기를 잡은 채 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숫자로 밀어붙일 생각인 모양이다. 딱하기도 하지.
그 순간, 헤로스의 모습이 내 머리를 스쳤다.
“그 자식도 이런 생각을 하다 나한테 졌겠지.”
꼭 내가 당해봐야 뭔가를 배우는 건 아니다. 약간 물러지려던 정신을 바로잡은 나는 심호흡을 한 번 했다. 기회를 줄 필요는 없다. 몰아쳐서 뭔가를 해보기도 전에 빠르게 끝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