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화
마틴 레드우드의 실력은 교단에서 상정한 것 이상이었다. 아니, 이상이라는 표현으로는 부족하다. 압도라는 단어에 생명을 불어넣게 된다면 지금 그들 앞에 서 있는 마틴 레드우드가 가장 그 형태와 닮아있을 것이다.
아홉 명이다. 어느 나라에 가더라도 요직을 꿰차고도 남을 정도로 실력 있는 일리온 교단의 마법사와 기사가 아홉 명이나 달라붙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상대하는 마틴 레드우드는 묵묵히, 말 한마디 없이 그 숫자를 차곡차곡 줄여 갈 뿐이었다.
“악마.”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가는 단어는 그것 하나뿐이었다. 저자는 악마다. 사람이 저런 힘을 가지고 있을 수는 없다. 여기에 모인 실력자들이라면 그들만으로도 충분히 국지전을 벌여 승리를 손에 거머쥘 수 있다. 이들의 실력이라면 그들에게 검과 마법을 전수받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왕궁에서 왕도 입구까지 줄을 서고도 남음이 있을 것이다.
파이크 왕국의 기사단장 모리스 핀들턴도 이럴 수는 없다. 아니, 오히려 이 정도 숫자의 실력자들이 달려든다면 그 싸움은 결국 모리스 핀들턴의 죽음으로 귀결될 것이다.
“일리온이시여.”
적의 턱 아래에서 정수리 쪽으로 검을 박아넣은 마틴이 그를 돌아보며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니들의 신은 이런 일을 하는 녀석들에게도 축복을 내려주나? 겁나게 헤픈 신이군그래.”
신의 이름을 부르고 나서, 마틴의 대꾸를 듣자 남자는 정신을 차렸다. 싸워야 한다. 이대로 끝날 수는 없다. 그들은 해야만 하는 일이 있다. 죽음은 각오했었던 일이다. 언젠가 그들 앞에 찾아올 것이다.
“우리가 함께라면……!”
마틴이 혀를 차며 대답했다.
“여기에 우리가 어디 있는데, 그 사이 시체랑 친구라도 먹은 거냐?”
그 말에 남자는 멍하니 주변을 살폈다. 살아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오로지, 죽은 시체들만이 방금 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남자의 뇌리에 각인시켜주려는 듯이 널브러져 있을 뿐이다.
“이건, 이건!”
조금이나마 용기와 투지를 되찾으려고 하던 남자의 마음속 희망이 완전히 꺼지는 순간이었다. 아무것도 없다. 습격은 실패했다. 전 세계에서 끌어모은 일리온 교단의 정예 중 정예가 단 한 명의 손 앞에 박살나 버렸다.
“상처 하나 없다니.”
얼굴에 피가 엉겨 붙은 마틴 레드우드가 사신과도 같은 모습으로 그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저항하려는 순간, 그의 허벅지를 뚫고 칼날이 박혀 들었다.
* * *
나는 녀석의 눈을 살피다가 대답했다.
“상처라니. 댁 같은 친구들에게 다칠 리가 있나.”
내가 너희 같은 것들과 싸우다가 상처 입었다면, 대굴빡에 바람구멍 뚫려서 따끈한 고향 땅으로 돌아간 해골이 얼마나 억울해하겠어. 내가 그 친구의 명예를 지켜주려는 건 아니지만, 어쨌든 그 자식 입장에서는 머리통에 불이 붙은 기분일 텐데.
“아, 이미 붙어있지.”
“잠깐, 기다려! 이대로 살려 보내준다면……!”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녀석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뭔가 더 말을 이어가려던 녀석은 결국 그 말을 끝맺지 못하고 목에서 피를 쏟아낸다.
“살려주면 뭐. 교단에 가서 이르게?”
내가 미쳤다고 살려 보내주겠냐. 내가 아무 목적 없이 사람이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며 흥분하는 또라이는 아니지만, 죽일 생각으로 온 녀석들을 살려 보내주며 나는 너무나도 착한 사람이라며 스스로의 등을 토닥여 주는 성격도 아니다. 그런 자비는 간디한테 가서 찾으시든가.
목줄기에서 피를 쏟아내던 녀석은 그륵거리는 소리와 함께 바닥에 쓰러졌다. 습격한 녀석들 중에 생존자는 없었다. 클로에가 목발을 짚고 다가오며 한마디 던진다.
“제가 더 빨리 끝냈네요.”
“내가 더 많이 처리했고.”
내 대답을 들은 클로에가 하하, 하고 건성으로 웃더니 주변을 슥 둘러봤다.
“이제 마차도 없는데, 어떻게 마을까지 가야 하죠.”
마차를 구하러 갔던 교단의 기사가 돌아오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그 말에 어깨를 으쓱하고 대답했다.
“수정구는 뒀다가 신혼방 장식품으로 쓰게? 세자 저하에게 연락해서, 인근 마을에서 급하게 마차 한 대 이쪽으로 보내 달라고 부탁해줘.”
내 말에 클로에가 아, 하는 소리를 냈다.
“그러면 되겠네요. 게다가, 교단의 호위를 받던 와중에 기습을 당했으니 이 습격을 빌미로 왕국군의 호위를 받을 수 있을 거예요.”
당연히, 마차부터 숙소까지 모든 것이 지금과는 다르겠지. 내 말을 들은 클로에는 수정구를 통해 바로 연락을 취했다.
“오늘 저녁까지는 여기에 마차와 호위 병력을 보내주신다고 하시네요.”
“저녁이라.”
생각했던 것보다 시간이 더 걸리는데.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고 주변을 둘러봤다.
“아무래도 세자 저하도 습격을 예상하지는 못하신 모양이네.”
“네, 이야기를 전해 받고는 꽤나 당황하신 모양이더라고요.”
그 이야기를 들으며 내려앉은 마차를 뒤지던 나는 바닥에 천을 깔았다.
“이렇게 된 이상 그냥 쉬자.”
당장 할 것도 없고, 할 수 있는 일도 없다. 그러고 보니, 나는 시선을 돌려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멍하니 우리를 바라보는 교단 병사들을 바라봤다.
“뭐해?”
내 말에 녀석들이 움찔하고는 나에게서 약간 거리를 벌린다.
“안 잡아먹어, 알아서들 쉬고 있어. 오늘 저녁 중으로 왕국군이 호위 업무를 교대해 줄 거다.”
어차피 이 일을 꾸민 건 저 녀석들이 아니다. 물론, 일을 꾸미지 않았다고 해도 여기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고 있었다면, 그것만으로도 녀석들까지 정리해야 하겠지만 이 녀석들은 그런 것도 아니다. 굳이 쓸데없이 제거해도 영양가가 하나도 없다.
나는 그대로 녀석들에게서 신경을 껐다. 알아서 잘들 쉬겠지 뭐.
“한 명 정도는 살려둬서 취조하는 편이 어땠을까요?”
바닥에 깔아놓은 천 위에 앉은 클로에의 말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녀석들의 증언을 듣는다고 변하는 건 없어.”
어차피 녀석들 중 마지막에 남은 녀석이 공포에 질려 일리온의 이름을 불렀다. 내가 여태 동안 숱한 전쟁과 싸움을 겪었지만, 이 세상에서 죽기 전에 신을 찾는 녀석은 하나도 없었다. 심지어, 무수한 언데드의 군세를 앞에 두었던 그린모스 정글에서조차 병사들은 신의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즉, 죽기 전에 신을 찾는 일이 이 세상에서는 꽤나 생소하다는 반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녀석이 죽기 전에 신을 찾았으니, 일리온 교단과의 연관성은 그걸로 충분하다. 어차피 녀석을 살려서 취조해도 확인해보고 싶은 건 교단에서 보낸 사람들이 맞는지의 여부였을 텐데, 확인된 이상 굳이 괴롭힐 이유는 없지.
“뭐, 마틴 님이 그렇게 판단하셨다면야.”
클로에는 그렇게 대답한 다음 붕대에 감겨 있는 자신의 다리를 살폈다.
“큰 문제 없네. 녀석들이 아마 집요하게 노렸을 텐데.”
내 말에 클로에가 히죽 웃으며 자기 다리를 살짝 쳤다.
“노리는 곳이 뻔하면, 공격이 단순해지는 법이죠. 오히려 그래서 더 쉬웠어요. 차라리 그 실력으로 허를 찔러 다른 곳을 노렸다면 제법 상처를 입어야 했을 텐데.”
클로에는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천 위에 드러누웠다.
“결국, 경험 차이가 아니었을까 싶어요. 저는 마틴 님을 보필하며 정말 별의별 일을 다 겪었으니까요. 아무래도 순간적인 판단 속도나 결단력에서 차이를 보일 수밖에 없죠.”
“고맙다는 뜻으로 알아듣겠어.”
내 말에 클로에가 누운 채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본다.
“정말 양심도 없으셔라. 사람 다리를 이렇게 만들어 놓고.”
“그건 평생 책임질 거니까 넘어가 줄 수 있지 않을까?”
내 말에 클로에가 잠깐 침묵한 채 얌전히 있다 대답을 돌려주었다.
“때리고 쓰다듬어주는 느낌이긴 하지만…… 좋아요, 넘어가 드리죠.”
다행이네.
“이 사실을 알면 교단에서는 난리가 나겠죠?’
“아마도, 녀석들도 동원할 수 있는 건 죄다 끌어모아서 덤벼들었을 텐데.”
그 녀석들이 여기에서 죄다 시체로 변해버렸으니 얼마나 속상할까. 그 정도 실력을 갖추고 있는 인재는 단순히 시간과 자금을 투자한다고 만들어 낼 수 있는 게 아니다.
필사적으로 길러놓은 인재들이 여기에서 별세했으니, 세자가 마음에 들어하지 않고 있던 소위 ‘교단의 사병들’이라는 것도 그 위세가 팍 꺾였다고 봐야 한다. 게다가, 이 정도 실력자를 파이크 왕국 내부의 교단에서 찾아서 동원했을 리도 없다.
조직에 문제가 생기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누구 책임인지 따지는 것이다. 당연히, 이 경우에는 지원을 요청했던 이 나라의 대주교가 되겠지.
쉽게 말해서, 이제 일리온 교단의 대주교는 인생이 겁나게 고달파질 일만 남은 거다. 그냥 어중이떠중이들이 덤벼들었다가 작살났다면 대주교에게까지 책임의 화살이 돌아가지는 않겠지만, 여기에서 죽은 게 너절한 잡것들은 절대로 아니니까.
“일리온 교단의 대주교는 내가 손을 쓸 필요도 없을 것 같은데.”
내 말에 클로에가 놀란 표정을 짓고 나를 바라봤다.
“그래서, 그냥 두실 건가요?”
“아니.”
손을 쓸 필요가 없는 거랑, 내가 손을 쓰고 싶은 거랑은 다르잖아. 남의 엄마를 그런 곳에 한참 동안 가둬놨으면 자기 인생도 나락으로 떨어질 각오는 해뒀어야지.
“벼랑 끝으로 향한 건 그 대주교 스스로 한 일이지만, 거기에서 미는 건 내가 할 거다.”
그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려니 해가 저물기 시작한다. 내려앉은 마차에서 챙겨왔던 음식을 꺼내 저녁을 먹고 나자, 저 멀리에서 마차가 호위병력들과 함께 다가오고 있었다. 녀석들이 들고 있는 깃발 중에는 확실히 파이크 왕국의 국기가 포함되어 있었다.
“아, 인근에 주둔 중인 기사단에서 호위 병력을 보낸 모양이네요.”
클로에가 국기 바로 옆에 약간 낮게 걸려 있는 문양을 확인하고 말했다. 주둔 중인 기사단이라. 주둔군에는 수정구가 있으니 그걸 통해 세자가 직접 지시를 내린 모양이다. 당연히, 호위 병력의 구성에도 관여했겠지. 그렇다면 따로 이 녀석들의 의도를 의심할 필요는 없다.
“마틴 레드우드 님. 급하게 오느라 제대로 된 격식을 갖추지 못해 죄송합니다. 세자 저하의 명에 따라 현재 여건이 허락하는 한 모시는 데 불편함이 없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다가온 기사가 말에서 내려 인사를 하자, 나도 마주 인사하며 대답했다.
“급한 상황이었으니까요. 오히려 이 정도로 많은 분들이 마중을 나와 주셔서 감사한 마음뿐입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서로가 적이 아니니, 나도 고슴도치처럼 가시를 세울 필요는 없다. 인사를 마친 다음, 우리는 다시 마차에 올랐다. 곧바로 병사 하나가 문을 열고 들어와 뭔가를 우리 쪽으로 조심스럽게 내밀었다.
“여기, 일정입니다. 급하게 짠 상황이라 중간에 변경될 수도 있습니다.”
나는 그 말에 서류를 받아 들고 내용을 확인했다. 옆에 앉아서 곁눈질로 서류를 확인하던 클로에가 중얼거렸다.
“분명한 대우 차이가 존재하네요.”
“세자 저하의 사람들이니까.”
내 말에 클로에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지금 호위병들을 통솔하는 기사는 모리스 핀들턴 경에게 도움을 받은 적이 있는 걸로 알아요. 왕국에 대한 충성심도 그분을 닮았다는 평이 있고.”
“그래? 꽤 잘 알고 있네.”
내 말에 클로에가 어깨를 으쓱했다.
“이전에 첩보국에서 일할 때 정보를 파악할 필요가 있었거든요.”
다행이다. 최소한, 이제는 호위하는 녀석들이 우리에게 칼을 들이미는 상황은 없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