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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우드-251화 (251/275)

251화

왕도로 들어오는 성문을 지키고 있던 병사들 중 하나가 하품을 길게 하며 중얼거렸다.

“오늘 마틴 레드우드가 온다고 하던데.”

“그 악마와 계약했다는 귀족?”

그 말에 옆에 있던 병사가 혀를 차며 대답했다.

“난 솔직히 잘 모르겠다. 그럴 만한 사람으로 보이진 않던데.”

“니가 뭘 안다고?”

그 말에 병사가 대답했다.

“베로나 제국군과의 전쟁에서 한 번 싸우는 모습을 본 적이 있거든. 하이랜더였나? 그 회색 거인들이랑 함께 전진해서는 제국군 머리통을 다 뽑아버리던데.”

“그게 무슨 상관이야.”

그 말에 병사가 음…… 하는 소리를 내고는 주머니에서 육포를 하나 꺼내 씹기 시작했다.

“그냥 그렇다는 거지. 어쨌든 거기에서 그 귀족 나으리 덕분에 죽다 살아났으니까.”

“사제분들 이야기는 전혀 다르던데. 그 전쟁이 승리로 끝날 수 있었던 것도 악마와 계약해서라고.”

그 말에 육포를 씹던 병사가 끄응, 하는 소리를 냈다.

“뭐, 사제님들이 그렇게 말씀하시니까. 애초에, 우리가 뭘 알겠어. 도착하면 다 밝혀질 텐데.”

그 말에 다른 병사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왕도에는 단상을 제작하는 공사가 끝났다. 하루가 멀다고 각 지역에서 귀족들이 마틴 레드우드의 공개 취조 과정에서 백성들에게 제공할 식량을 담은 마차가 수시로 오가는 중이다.

백성들은 마틴 레드우드의 취조 결과에 대해 이런저런 추측을 내놓는 동시에, 그날 제공될 식사에 대한 기대를 품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왕도 백성들의 신경은 모두 마틴 레드우드의 도착에 쏠리게 되었다. 왕도의 백성들뿐이 아니라, 인근에 거주하던 백성들까지 그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을 지경이니까.

“진짜, 엄청나게 많군.”

왕도로 들어오는 성문 앞에는, 마틴 레드우드의 도착을 기다리며 노숙하는 백성들이 온 천지에 깔려 있었다. 모두가 마틴 레드우드의 취조 결과보다는, 그날 제공될 식사를 기대하는 사람들이다.

세자도 이들을 따로 제지하지는 않았다.

“저기, 저 마차 행렬 아닙니까?”

성문 위에서 수다를 떠는 사이, 밖을 지켜보고 있던 후임병이 정면의 대로를 가리켰다.

“너 씨, 또 이상한 거 보고 그러는 거면 성문 위에서 목에 밧줄 걸어놓고 밀어버린다.”

앉아서 수다를 떨던 병사 중 하나가 휘적휘적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하자, 시선을 대로 쪽으로 고정한 병사가 대답했다.

“이번에는 확실합니다. 왕국기와 함께 레드우드 가문의 문장이 찍힌 깃발도 있습니다.”

“진짜네.”

후임 옆에 서서 그 장면을 확인한 선임병이 바로 아래를 향해 외쳤다.

“관측대에서 보고! 마틴 레드우드가 탄 것으로 보이는 마차가 접근 중이다, 윗선에 보고하고 준비해!”

* * *

저 앞에 보이는 거대한 성문은, 파이크 왕국의 왕도로 들어가는 성문이다. 창밖을 확인한 나는 허어, 하는 소리를 냈다.

“뭐 이리 사람들이 많은 거지.”

누가 보면 엘비스 프레슬리가 다시 살아나 내한 공연이라도 하는 줄 알겠네. 내 말에 클로에가 의자에 기댄 채 대답했다.

“공짜로 밥과 술을 주는데, 마다할 사람이 있나요. 그것도 왕궁에서 베푸는 식사니 모두가 기대할 만하죠. 감자를 먹이지는 않을 테니까.”

그럼, 왕궁의 위신이라는 게 있는데. 저녁에 회사에서 회식하자고 하는데 김밥천국 갈 거라고 생각하는 회사원들은 없잖아. 사실, 한 번 정도는 가보면 되게 웃길 것 같긴 한데.

어쨌든, 사람들이 모여 있는 이유는 내 공개 취조보다는 그 과정에서 제공되는 식사 때문이긴 하지만 그래도 귀족이 탄 마차가 지나가니 노숙하고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우리 쪽으로 쏠린다.

“그나저나, 지금은 농번기 아니야?”

내 말에 클로에가 대답했다.

“아무리 없이 차려도 신선한 고기와 야채가 듬뿍 들어간 스튜와 제대로 구운 빵이 제공될 텐데, 농사가 대수인가요. 가을에 추수제가 열리면 수확할 작물이 밭에 남아있어도 왕도의 성문 앞에 노숙하는 사람들이 이 만큼은 모여요.”

게다가, 대충 흘러가는 이야기를 듣고 있으려니 세자가 이번에 귀족들에게서 삥을 아주 단단히 뜯은 모양이어서, 스튜와 빵 정도로 끝날 것 같지는 않은 느낌이다. 머무르는 사람들도 식량을 잔뜩 실은 마차가 오가는 걸 봤을 테니, 기대는 더더욱 커졌을 거다. 기대가 커지면 소문도 그만큼 빠르게 퍼지는 법이다.

길을 따라 쭉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으려니, 마차가 서서히 그 속도를 늦추기 시작한다.

“도착한 모양이네요.”

나는 클로에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복장, 흐트러진 곳 없어?”

내 말에 클로에가 다가와서 옷을 약간 다듬어 주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문제없어요. 하인이 옷이 물을 쏟으면 바로 해고해 버릴 정도로 고귀하신 귀족 같아요.”

“그게 고귀한 귀족이야?”

내 말에 클로에가 픽 웃었다.

“저는 어때요?”

클로에의 말에 나는 그녀를 살핀 다음 대답했다.

“내가 해고하면 너는 옆에서 싸대기를 올려붙일 것 같네.”

내 말에 클로에가 잠깐 키들거린다.

“목발 잘 챙기고. 괜히 내려서 잠깐 걸어가는 사이에 자빠지면 쪽팔릴 거다.”

“잡아주는 건 바라지 않을게요. 그런 상황이 되면 모르는 척만 하지 말아주세요.”

그런 잡소리를 떠들면서 우리는 마차의 문이 열릴 때까지 기다렸다.

“마틴 레드우드 님. 필요한 준비가 끝났습니다.”

곧이어 마차의 문이 천천히 열리고, 문을 연 병사가 경례한다.

“고생한다.”

나는 먼저 마차에서 내리고, 뒤이어 내리는 클로에의 몸을 부축해주었다. 마차에서 내리자,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한 무리의 병사와, 그 앞에 서 있는 대장이 보인다.

“왕도로 돌아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성의 서문을 지키고 있는 아인 레더휠입니다.”

“레더휠 경, 조사를 받아야 합니까?”

원래는 그냥 통과시켜주지만, 아무래도 그럴 분위기는 아닌 느낌이다. 내 질문을 들은 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본디, 마틴 레드우드 님의 신분은 보증되어 있기에 필요하지 않은 절차입니다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세자 저하께서도 평시 절차에 따라 검문하라는 지시를 내리셨습니다.”

세자가 내린 게 아니라 대주교를 비롯해 그편에 붙은 귀족들이 강력하게 요청한 것이겠지. 세자는 하도 녀석들이 쨍알거리니 그냥 들어준 것뿐이고. 어차피, 검문을 한다 해서 변하는 건 아무것도 없다.

FM대로 진행해도 딱히 뭐 문제 될 건 없다. 마차 안에 들어있던 건 나와 클로에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병사들이 다가와 마차를 검사하고, 나와 클로에의 몸을 살핀다.

“문제없습니다.”

병사들이 다시 돌아가 대장에게 보고하고, 그가 고개를 끄덕인 다음 경례한다.

“번거로우셨을 텐데, 협조에 감사드립니다.”

“번거롭긴요. 고생하셨습니다.”

필요한 절차를 모두 마치고 다시 마차로 향하려고 하는데 저 멀리에서 외침이 들렸다.

“멈춰라!”

나는 그 말에 인상을 팍 쓰고 외침이 들린 쪽을 바라봤다. 딱 봐도 정갈하게 차려입은 행색이 교단의 사제들 되시는 모양이시다.

“먼저 마차에 타 있어.”

마차 문을 열고 클로에를 부축해준 다음, 나는 녀석들에게 다가갔다. 녀석들의 바로 앞에 선 나는 제일 앞에 서 있는 사제를 향해 입을 열었다.

“멈춰라는 부탁이 아니라 명령 같은데.”

내 말에 녀석이 헛기침을 한 번 하고는 서류를 꺼내 들었다.

“마틴 레드우드, 그대는 현재 악마와 계약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이에 의해, 왕국에 자리 잡은 세 교단에서는 그 혐의에 대해 취조할 예정이며, 취조가 끝나기 전까지는 구금 조치를 취한다.”

나는 팔을 꼰 채 녀석이 하는 말을 듣다가 한마디했다.

“국왕 폐하께서 윤허하신 일인가?”

“…….”

그 말에 대답이 없다. 당연히 그렇겠지. 나는 녀석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말을 이었다.

“나는 이 나라의 귀족으로서 파이크 왕국의 왕가에 봉사하며 충성을 바치고 있다. 지금 막 비밀리에 전달받은 어명에 따라 임무를 수행하고 돌아오는 길이지. 나는 어명에 따라 임무를 무사히 마쳤고, 당연히 이를 보고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런데 너는 어찌 그 앞길을 막아서는 거냐. 나에게 있어 교단의 지시가 어명보다 중할 것이라 여기는 건가?”

말을 이어가며 앞으로 한발 다가가자, 사제가 뒤로 두 발 물러난다.

“그대가 악마와 계약했다는 혐의가 있는 이상, 파이크 왕국의 국왕 폐하에게 무슨 일을 할지 알 수 없다.”

나는 그 말에 어이가 없다는 듯이 녀석을 바라보다가 외쳤다.

“이런 미친 새끼. 지금 내가 국왕 폐하께 칼이라도 들이밀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냐! 정신줄을 놓았군그래!”

이 자식들이 성문 앞으로 사제들과 함께 허겁지겁 기어 와서는 여기에서 서류까지 꺼내놓고 악마 어쩌구를 운운하는 이유는 뻔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성문 근처에 머무르고 있던 백성들의 시선은 우리를 향해 있다. 여기에서 내가 약하게 나오거나, 순순히 사제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면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할지는 뻔하다.

물러설 생각도 없고, 이유도 없다. 내가 뭐가 쫄려서 이 친구들 노랫가락에 맞춰 탬버린을 쳐야 하는데?

할 말을 마친 나는 다시 마차로 돌아갔다. 하지만, 마차는 움직이지 않았다.

“사제님들이 길을 비키지 않습니다.”

마부가 당황한 목소리로 그런 말을 전달해줬다.

“왕궁으로 가는 길이 이 길 하나밖에 없는 건 아닐 텐데.”

그리고 교단의 사제들도 여기에서 왕궁으로 향하는 길을 전부 둘러쌀 정도로 숫자가 많지는 않을 거다. 사제가 되는 과정이 무슨 운전면허처럼 쉽지는 않을 거 아니야.

내 말에 마부가 아, 하는 소리를 내고 머뭇거린다. 아무래도, 사제의 뜻에 반하는 행위를 하는 게 거북한 모양이다. 하지만, 결국 마부는 마차의 방향을 돌렸다. 신은 죽고 나서 만나지만 당장 나는 마부 뒤편에 타고 있으니까. 아무래도 가까운 쪽의 말을 듣는 편이 장수하는 비결이라고 생각했겠지.

결과적으로는 현명한 선택이다. 아무 죄 없는 마부에게 마음에도 없는 험한 소리 하는 건 별로 내키지 않았으니까.

“마틴 레드우드 님.”

마차에서 내리자, 궁 앞을 지키고 있던 병사들이 나를 확인하고 곧바로 옆으로 비켜선다. 여기는 누가 뭐라 해도 세자의 근거지니까. 성문에서와 같은 검문은 없었다. 애초에, 나는 이전에 칼 차고 국왕을 알현하는 것까지 허락을 받아놓았으니까.

“바로 알현실로 향하시라는 세자 저하의 지시가 있었습니다. 안내하겠습니다.”

“그렇게 하지.”

말을 전달받은 우리는 병사의 안내를 따라 곧바로 알현실로 향했다.

“불편하지는 않아?”

내 말에 클로에가 목발을 짚은 채 나아가며 대답했다.

“이 정도로 불편함을 느꼈다면 여태 동안 마틴 님을 어떻게 모셨겠어요.”

“하긴.”

간단하게 대화를 나누는 와중에, 나는 걸음 속도를 약간 늦췄다. 클로에는 잠깐 나를 바라보나 싶더니 별다른 말 없이 다시 걸어가기 시작한다.

“안에 계십니다.”

말을 마친 병사는 인사를 하고 돌아갔다. 나는 문 앞에 서서 노크했다. 곧바로, 익숙한 목소리가 문 너머에서 들렸다.

“누구지?”

“마틴 레드우드입니다.”

들어오라는 말이 돌아왔다. 나는 문을 열고 클로에와 함께 세자 앞에 섰다.

“고생이 많았겠군.”

“저 먹고살자고 한 일인데 고생이라고 할 것이 있겠습니까.”

내 말에 세자가 나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히죽 웃으며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동기 같은 건 내 알 바 아니지. 중요한 건 자네 덕분에 몇 년에 걸쳐 손을 써야 한다고 생각했던 일이 한 번에 풀리게 되었다는 결과가 중요해.”

나는 그 말에 뻗어진 세자의 손을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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