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9화
내 대답이 끝나자, 로버트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입을 열었다.
“내가 불만이 있다고 한다면?’
치안대장의 말에 나는 그의 눈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이번 일은 세자 저하께서 저에게 지시하신 일입니다. 모여 계신 세 분은 세자 저하의 지시를 이행하는 저를 위해 조력해주시는 상황이지요. 왕도 치안대장님께서 불만이 있으시다면 인지해두겠습니다만, 이 방침에 문제가 없는 한 변경할 생각은 없습니다.”
내 대답을 들은 로버트 칼빈이 이내 웃음을 터뜨렸다.
“거 젊은 친구가 말 한번 살벌하게 하는군그래, 응?”
그러면서 로버트가 옆에 서 있는 모리스 핀들턴을 툭 하고 쳤다.
“말했지 않았나. 강단 있는 녀석이라니까.”
모리스 핀들턴의 말에 로버트가 여전히 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왕도 치안대장이 되고 나서 저 정도로 젊은 친구가 눈을 흡뜨고 나를 꼬나보는 상황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어!”
로버트가 다시 소파에 털썩 앉더니 여전히 웃음을 담은 목소리로 경쾌하게 말을 이었다.
“치안대는 적극적으로 협조할 테니, 걱정할 필요 없네. 그 살벌한 얼굴 좀 피게나. 거 젊은 친구가 왜 그리 세상을 진지하게 사는지 참. 내일 죽기라도 하나?”
그 비슷한 상황에는 한 번 처해봤었지. 내일 죽는 건 아니고, 겨울 첫눈이 내리면 죽는 거였어. 그리고 방금 전 그 상황에서는 표정이 살벌해지는 게 정상이야. 웃는 녀석은 미친놈이고.
기분이 더러운 건 아니었다. 애초에, 내 눈앞에 서 있는 사람들은 그냥 동네 공원에서 막걸리 자시는 노인분들이 아니다. 게다가, 내가 사람과 물자를 빌리는 입장이고 저쪽에서는 빌려주는 입장이니 이 정도의 간단한 시험 정도는 당연하지. 사실, 조금 덜한 감이 없지 않아 있다.
이 정도로 간단하게 넘어가 주는 이유는 역시 내 이름값과, 모리스 핀들턴이 다른 두 사람에게 좋은 말을 해주었기 때문이겠지.
“대충 어떤 식으로 진행할지는 알았으니, 이제 조금 더 구체적으로 들어가 보자고.”
치안대장이 손을 비비며 말하고 나서 재빠르게 종이 위에 뭔가를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자네에게 지원해 줄 수 있는 치안대의 물자와 인력이네.”
나는 그 숫자를 확인하고 대답했다.
“인력이 더 필요합니다.”
“이유는? 왕국 안에 자리 잡은 교단 교회의 숫자를 고려해본다면 꽤 적절한 것 같은데.”
나는 그 말에 눈앞에 앉아있는 치안대장을 바라봤다.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교단이 공식적으로 소유하고 있는 재산은 간단하게 압류 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지 않겠습니까.”
원래 나쁜 일은 몰래 하는 법이고, 몰래 하는 일은 숨겨져 있기 마련이다. 숨은 걸 찾아내려면 인력이 더 필요하다. 내 말을 들은 감사청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 젊은이의 말에 일리가 있군. 감사청이 주도하는 건 아니지만, 감사청의 인력이 동참하는 건이다. 어설프게 끝내 감사청의 명예를 실추시킬 수는 없지. 그건 치안대도 마찬가지 아닌가?”
“조직의 명예라. 하!”
치안대장은 유쾌한 웃음을 터뜨린 다음 말을 이었다.
“고생하는 녀석들에게 상여금이나 좀 쥐여줬으면 좋겠군. 다 처리되고 나면 국고가 빵빵해질 거 아닌가.”
그런 말과 함께 자기 배를 퉁, 하고 두들긴 치안대장이 뭐가 웃긴지 낮게 웃음을 흘린다. 감시청장 데인 딥호른이 그런 로버트를 보고 살짝 인상을 쓰며 한마디 한다.
“우리는 돈으로 움직이면 안 되는 사람들이네.”
“그러니 배가 불러야지! 지갑은 비었고, 마누라는 가계부를 보며 연신 한숨을 쉬고, 자식들은 배고프다고 칭얼거리는데 눈앞에 떡하고 돈자루가 놓이면 그걸 안 받아먹을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 이 말이야.”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사람은 언제나 더 많은 걸 원하는 법이죠.”
“얻을 것과 잃을 것. 잃을 게 많은 사람들은 눈앞의 돈자루를 보며 주저하기 마련이야. 하지만 잃을 게 없는 사람들은 눈앞의 돈자루를 보면 일단 손에 쥐게 되어있어.”
로버트는 말을 마치고 주먹을 꽉 쥐었다.
“일단 잘 챙겨주고, 뒷돈을 받아먹은 녀석은 발각되는 즉시 개박살을 내는 거지. 나는 치안대를 그렇게 운영하고 있네.”
뭐, 개인의 조직운영 철학 같은 건 아무래도 좋다. 사실, 저 말이 일견 완전히 개소리인 것도 아니고.
“눈앞의 돈자루 따위에 흔들리지 않는 마음을 가지기 위해서 필요한 건 다른 사람들로부터의 선망의 시선과, 높은 긍지, 그리고 자부심이야.”
로버트와 데인은 아무래도 성향이 서로 좀 다르긴 한 모양이다. 어쨌든, 나는 두 사람의 논쟁을 일단 중단시키고 다시 일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세 분은, 돌아가시는 즉시 휘하의 인력들에게 지시를 내려주시기 바랍니다. 가능하면 내일 중으로, 전국에서 동시에 진행했으면 합니다. 상황이 여의치 않다면 몇 개의 예외가 생길 수 있겠지만, 여건이 괜찮다면 꼭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내 말에 모리스가 턱수염을 쓰다듬으며 대답했다.
“부탁이고 뭐고, 세자 저하로부터 지시받은 일이네. 국왕 폐하께서 직접 나서서 반대 의사를 표명하지 않는 한, 나라의 녹봉을 받는 우리가 그 명을 어찌 거절하겠나.”
“교회의 규모를 기준으로 투입되는 인원의 숫자를 조정할 생각입니다.”
큰 규모의 교회라면 당연히 투입되는 인원이 많아야 한다. 또한, 큰 규모의 교회일수록 신도들이 많기 때문에 이런저런 반발이 일어날 수 있으니 기사단에서도 적극적으로 나서줘야 할 필요성이 있다.
“각 지역의 치안대는 조사가 진행되는 동안 서류를 보관하고, 인력이 휴식과 필요한 작업을 진행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해주시기 바랍니다.”
어느 정도의 예산을 편성해야 하는가, 교회의 조사를 마치는 데에는 얼마나 시간이 걸리는가. 누구를 보내고, 어떤 절차에 따라 확보한 자료와 재산을 이송해야 하는가. 쉬지 않고 이어지던 회의는 기어이 다음 날 새벽이 되어서야 끝나게 되었다.
결정된 사안은 수정구를 통해 기사단과 치안대, 감사청에 전달되었다. 여기에서 결정된 내용은 곧바로 전국으로 퍼져나갈 것이다.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일을 마친 우리 앞에는 지독하게 독한 커피가 담겨있던 잔 몇 개가 텅 빈 채 놓여 있었다. 감사청장이 검지와 엄지로 콧잔등을 누르며 대답했다.
“굉장히 성실한 편이군.”
“해야 할 일이 있을 때는 다른 사람들만큼은 부지런해진다고 생각합니다.”
내 말에 모리스가 말을 이었다.
“여기에서 나눈 이야기가 밖으로 흘러나갔을 가능성도 있어.”
나는 그 말에 회의하며 기록한 내용을 툭 치고 대답했다.
“약 3만 명에 달하는 인력이 움직이는 상황입니다. 이야기가 밖으로 흘러나가지 못하게 막는 건 불가능합니다.”
소규모로 진행되는 작업이라면 이야기가 밖으로 흘러나가지 않게 할 수 있지만, 움직이는 인력이 치안대와 기사단, 감사청을 다 합쳐 3만이 넘어가는 상황이다. 이야기가 흘러나가 교단의 귀에 들어가지 않게 방지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흘러 들어가는 걸 막을 수 없다면, 흘러 들어가도 어쩔 도리가 없도록 만들면 될 일이지. 나는 감사청장 데인을 바라보며 말했다.
“하나 더, 교단에서 직간접적으로 운영 중인 각종 시설들이 있는 걸로 압니다. 이후, 교회가 보관 중이던 문건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관련 시설들이 확인되게 된다면, 꼭 따로 명단을 작성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런 시설들도 검증 대상이다. 재산을 다른 구멍으로 빼돌리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 하나가 바로 그런 봉사 시설을 활용하는 방법이니까. 예산을 듬뿍 잡아놓고, 장부를 잘 꾸미면 말 그대로 돈이 솟아나는 우물이 따로 없다.
“그러도록 하지. 그럼, 고생하도록.”
세 명이 돌아가고, 나는 방 안에 남아 후우, 하고 숨을 내쉬고 주전자를 들어 안에 들어있는 식은 커피를 쭉 들이키고 입가를 훔쳤다.
“아주, 땡전 한 푼 남겨놓지 않고 다 쓸어내 주마.”
내가 원래 세상에서 하던 일이 있거든. 니들이 아무리 발악해도 내가 찾아내려고 마음먹으면 못 찾아낼 건 하나도 없어. 국수 한 가닥도 네 돈으로는 못 먹는 꼴로 만들어주마.
* * *
교회의 문이 벌컥 열리고 사람들이 안으로 진입했다.
“…….”
보통이라면 사제들의 얼굴에 노여움이 서릴 법도 하건만, 사제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들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네 인장 협정에 따라 해야 하는 일을 집행하기 위해 왔습니다. 사제분들은 적극적으로 협조해주시기 바랍니다.”
네 인장 협정. 파이크 왕국의 옥새와 세 교단의 대주교들의 인장이 모두 찍혀 있는 협정은 간추려 저런 이름으로 불리고 있었다. 공식적인 명칭은 약 50글자가 넘어가는 긴 문장을 자랑하는 협정이었지만, 그 긴 문장을 일일이 다 말할 수는 없다 보니 자연스럽게 자리 잡은 단어였다.
“천벌을 받을 거다.”
교회의 장로 사제가 던진 말에 안으로 들어온 치안대의 병력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럼, 시작하도록.”
일 처리는 빠르게 이루어졌다. 교회에는 사람과 물자의 출입을 금하는 금줄이 쳐지고, 안으로 진입한 사람들은 빠르게 교회 내부의 문건과 물자를 확보하기 시작했다. 확보된 문건과 물자는 함부로 개봉될 수 없도록 촛농으로 밀봉되어, 기사단 병력의 호위를 받으며 인근의 치안대에 마련된 장소로 보내진다.
도착한 물자는 그 공간 안에서 분류되고, 문건은 감사청의 인력에 의해 분석되기 시작한다. 이들은 모두 일시적으로 본래의 업무를 중단한 채, 특별 집행위원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한 장소에서 일어나는 일이 아니었다. 파이크 왕국 전역의 교회에서 이와 비슷한 일이 진행되고 있었다.
물론, 모두가 이 사람들처럼 철저하게 교회 내부를 쓸어내려 드는 것은 아니었다. 개중에는 신실하게 신을 믿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런 사람들은 나름대로 교회의 사제들을 위해 이런저런 배려를 해주고, 문건의 압수나 물자의 분류를 조금 유하게 처리해주려는 시도를 보였다.
“이게 무슨?!”
하지만, 그러한 시도는 며칠 뒤 보고를 전달받은 왕도의 마틴 레드우드에 의해 무산되었다. 한 마을의 치안대장이었던 한 남자는 밧줄에 몸이 구속된 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앞에 서 있는 감사청의 요원을 응시했다.
“롱보트 마을의 치안대장 젠슨 시커. 귀하는 네 인장 협정에 따른 교회의 사유 재산 파악 및 문건 확보에 있어 그 의무를 다하지 않은 혐의가 있다. 현 시간부로 그대는 호송 마차에 태워져 왕도로 이송된 후 네 인장 협정을 위한 특별집행부에서 취조받을 것이다. 이 과정에서, 혐의가 사실로 밝혀질 경우 응당한 조치가 취해질 것이다.”
약 300개가 넘어가는 교회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이와 비슷한 행위가 적발된 사례가 17건 있었다. 취조 끝에 혐의가 사실로 밝혀진 자들은 곧바로 그 정도의 차이에 따라 좌천에서 구속까지의 형벌을 받게 되었다.
이와 관련된 소식은 빠르게 교회의 물자를 억류하고 있던 치안대와 기사단, 감사청의 병력들에게 전달되었다.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 사제들을 위해 필요한 절차를 간략화하거나, 일부 눈감아 주는 행위는 빠르게 잦아들기 시작했다.
“당장 이렇게 모든 것을 다 억류해가면 이후 사제들은 어떻게 생활하라는 뜻이오?!”
교회 안에 비축되어있던 식량을 밀 한 톨조차 남기지 않고 모두 쓸어가는 집행위원들의 모습에 사제가 분노하며 화를 내자, 개 중 한 명이 입을 열었다.
“당장의 생활에 꼭 필요한 물자는 특별집행부에서 마련한 임시 기준에 따라 제공될 것입니다. 물자 제공에 대한 임시 기준은 파이크 왕국의 국왕 폐하께서 교단의 의견을 다소 참고하여 새로운 원칙을 수립하기 전까지 유효합니다.”
훈제 청어나 말린 대구, 감자와 콩 같은 것들이 교회의 재산을 압류당한 사제들을 위해 제공되었다. 그것도, 사제들이 비협조적으로 나올 때는 기다렸다는 듯이 그 제공량이 조정되기 시작했다. 조사가 진행되는 동안 이루어지는 예배 시간에는 집행위원들이 반드시 참석했으며, 예배가 끝난 다음 신도들로부터 거두어들인 봉헌금은 그 즉시 집행위원들에 의해 회수되었다.
사제들은 어쩔 수 없이 스스로가 선택한 검소한 생활이 아니라, 타인에 의해 강요된 검소한 생활을 해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