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화
제대로 내가 원하던 식으로 일이 진행되기 시작한 지 오늘로 일주일이 지났다. 계속해서 확보한 문건을 분석한 보고가 쉬지 않고 쏟아지는 중이었다. 그 와중에 클로에는 각 교회 내에서 압류한 재산 목록을 파악하고, 다른 비슷한 규모의 교회의 재산 목록과 비교하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나는 서류를 살피다가 입을 열었다.
“여기, 하이힐 시에 있는 교회.”
내 말에 근처에서 서류를 살피고 있던 감사청 요원이 자리에서 일어나 내 쪽으로 다가왔다.
“네, 뭔가 이상한 점이라도?”
나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운영 중인 고아원이 해당 지역의 영주로부터 지원금을 받고 있는 모양이던데.”
내가 들고 있는 서류를 살펴본 그가 동의하며 첨언한다.
“그렇습니다. 실버휘슬 남작의 영지이고, 고아원에 주기적으로 지원금을 보내고 있습니다.”
나는 그 말에 턱을 쓰다듬었다.
“제대로 쓰이고 있는지 한번 확인해봐야겠어. 금일 저녁 중으로 실버휘슬 남작의 영주성으로 향해서 관련 문건을 확보하라고 지시를 내려.”
내 말에 남자가 허읍, 하고 숨을 들이켰다.
“저기…… 마틴 레드우드님.”
“응?”
“실버휘슬 남작은 교단의 사람이 아닙니다. 저희가 실버휘슬 남작의 영주성으로 난입해 관련 문건을 압수하는 것은 아무래도 권한 밖이 아닌가 싶습니다. 정식 절차를 밟지 않는다면…….”
나는 그 말에 쯔, 하고 혀를 찼다.
“안 할 거면 몰라도, 할 거라면 제대로 해야지. 해당 교회에서 실버휘슬 남작으로부터 지원받은 금액을 속여서 장부에 기록한 다음 잉여금을 빼돌렸을 수도 있어. 당연히, 실버휘슬 남작의 영주성에 보관되어있는 문건과 확보한 문건을 서로 비교해봐야 할 거 아니야.”
“아무리 그래도…….”
사실, 잉여금을 빼돌렸는지 어떤지는 별로 궁금하지 않다. 장담하는데 이건 실버휘슬 남작과 해당 지역에 자리 잡고 있는 교회가 서로 작당하고 돈을 해 처먹은 걸 거다. 왜냐하면, 이전에 세자가 나에게 건네주었던 귀족 명단에 이 녀석의 이름이 있었거든.
세자 편이 아니라 교단 편에 섰다는 것은 이전부터 이 실버휘슬 남작이라는 친구가 교단과 함께 날름 집어먹은 떡고물이 있다는 뜻이다.
“진행해. 만약 실버휘슬 남작이 반발하더라도 강제로 집행해. 계속 거절 의사를 밝히고, 무력적인 수단까지 동원하려 한다면 기사단의 지원을 받아.”
“기사단의 지원 말씀이십니까?”
“그래.”
이제 슬슬, 교회뿐 아니라 세자가 나에게 넘겨주었던 귀족들에게도 칼날을 가져갈 때가 되었다. 하지만, 귀족들을 건드리기에는 명분이 없다. 지금 임시적으로 구성된 이 특별집행부의 관할은 어디까지나 교회의 사유 재산 압류일 뿐이다. 내가 세자가 넘겨준 명단에 들어있는 귀족들 목젖에 칼날을 들이밀기 위해서는 그럴듯한 명분이 필요하다.
그래서 그 시작은 이 실버휘슬 남작이라는 친구로 정한 것이다.
교단 교회와 이 실버휘슬 남작이라는 친구 사이에 연관 관계를 밝히는 데 성공한다면, 실버휘슬 남작과 연고가 있는 귀족들에 대한 조사까지 착수할 빌미가 생긴다. 그러면, 이제 줄줄이 엮어서 귀족들이 바짝 쫄게 만들고, 명단에 올라와 있는 녀석들을 잡아 조지면 된다.
“귀족들 사이에서 이런저런 말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제가 관여할 분야는 아니지만…… 그래도.”
“어차피 수습은 내가 할 테니, 지시에 따르도록 해.”
말을 마친 나는 다시 서류를 살펴보다가 몇몇 교회의 이름을 따로 적어 넘겨주며 말을 덧붙였다.
“이 교회들은 작년 추수 이후 거행했던 감사예배에 사용된 자금의 소비처가 확실치 않으니, 추궁해서 정확히 확인해. 만약 만족할 만한 대답이 돌아오지 않는다면 이후 할당될 예산에서 삼천오백 론도를 3년간 삭감하는 식으로 정리하도록 하지.”
우리는 사회 정의 실현 같은 반짝거리는 이상이 아니라, 교단 재산의 몰수를 통한 세력 약화라는 지극히 현실적인 목표를 가지고 있다. 서류를 자세히 확인해보고, 다른 곳들과 비교를 충분히 한다면 교회가 돈을 빼돌려서 숨겨놓은 자금이 얼마나 되는지는 충분히 추측이 가능하다.
세자와 논의한 결과, 세자는 재산의 압류가 다 끝난 다음 교회에 할당할 예산을 상당히 아슬아슬하게 책정해 놓을 계획이다.
따라서…… 예산이 실제로 어디에 소모되었는지를 명확히 밝힐 수 있다면 최고지만, 그럴 수 없다면 그냥 과징금 때리듯이 향후 할당 예산에서 빼돌려 놓은 금액만큼을 삭감하는 식으로 대응하면 된다. 구천 론도를 삥땅친 것 같으면 삼천오백 론도씩 3년. 뭐 이런 식으로.
알아서 가져다 바치고 이후 할당되는 예산을 보존하시든가 아니면 그냥 숨겨놓은 자금을 가져다 바치지 않고 삭감된 예산으로 버티면서 빼돌려 놓은 돈을 다 까먹든가. 선택은 교단에서 하도록 두면 된다. 국내에서 지원받은 금액이 아니라, 국외에서 지원받은 금액도 마찬가지로 처리하면 된다.
그러면 베로나 제국이나 테네스 공국과의 외교적 마찰을 줄인 채, 깔끔하게 처리할 수 있다.
“알겠습니다.”
말을 마친 나는 다시 서류로 눈길을 돌렸다. 두 시간 정도 지나고, 약 50개 정도의 서류를 처리했을 때 즈음 갑자기 누군가 안으로 들어왔다.
“누구십니까?”
무장을 한 기사로 보이는 사람이었다. 내 말에 곧바로 그가 대답했다.
“실버휘슬 남작님을 모시고 있는 기사 윌리엄 언더토우입니다.”
나는 그 말에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윌리엄 언더토우 경. 무슨 일이신지?”
내 말에 그가 곧바로 대답했다.
“현재, 실버휘슬 남작님의 영주성에 특별집행부의 인력들이 난입한 상황입니다. 남작님께서는 이 지시가 어디로부터 온 것인지 파악하라 하셨습니다.”
나는 그 말에 아, 하는 소리를 내고 고개를 끄덕였다.
“잘 찾아오셨습니다. 제가 내린 지시입니다.”
내 말에 그가 건틀릿을 입은 양 주먹을 꽉 쥐었다.
“내 검을 다루는 자라 비록 이런 분야에 밝지는 못하지만. 이 특별집행부의 역할은 교단의 재산 확인 및 압류라고 알고 있습니다. 엄연히 나라에 공을 세운 가문으로서 귀족의 의무를 다하는 실버휘슬 남작님에게 이런 무례를 범하는 연유가 무엇인지 알 수 있겠습니까.”
나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어려울 것 없겠군요. 실버휘슬 남작님과 연결된 수정구를 건네주신다면 제가 그분께 설명해드리지요.”
내 말에 그가 나에게 수정구를 내밀었다. 말은 공손하지만, 일단 행동에서는 자신이 모시는 영주의 성에 우리가 멋대로 난입한 사실을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는 듯 분노가 가득했다.
“아아, 실버휘슬 남작님? 들리십니까?”
― 마틴 레드우드, 네가 정녕 하늘 아래 무서운 것이 없는 모양이구나! 지금 당장 영주성 안에 들어온 자들을 뒤로 물려라!
나는 그 말에 허허허, 하고 웃으면서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
“당황하신 건 이해합니다. 그럼요. 하지만, 그 부탁은 들어드릴 수 없습니다. 현재 특별집행부는 영주님이 주기적으로 하이힐 시의 교회가 운영하는 고아원에 지원금을 보냈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이에, 저는 교회에서 해당 고아원에 보내진 예산을 정상적으로 잘 집행했는지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영주성에 방문한 겁니다.”
― 그래서, 지금 내 영주성에 멋대로 흙발을 내디딘 놈들에게 술이라도 먹여 보내라는 뜻이냐!
나는 그 말에 슬쩍 창밖을 확인하고 대답했다.
“업무 시간 중인데 술은 좀 그렇고, 밥이라도 한 끼 든든히 먹여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 친구들이 고생이 참 많거든요.”
― 네 녀석이 근데!
녀석이 다시 화를 내려 하자, 나는 다소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실버휘슬 남작님. 특별집행부에서 영주성으로 사람들을 보낸 이유에 대해서는 충분히 말씀드린 것 같습니다. 영주성으로 보내진 인원들은 필요한 문건을 확보하고 나면 알아서 돌아갈 겁니다. 충분히 이해하지 않으셨습니까? 물론, 그 이후에는 영주성에서 확보한 지원금 내역과, 고아원에서 실제로 사용한 금액을 비교할 예정입니다. 혹시, 그게 마음에 안 드시는 겁니까?”
내 말에 수정구 너머에 잠깐의 침묵이 유지되었다.
― 이보게 마틴 레드우드. 이러지 말게, 자네 아버지와 내 사이가 어떤지 모르는 건가?
나는 그 말에 으음? 하는 소리를 내고 놀란 것 같은 어조로 말했다.
“혹시, 저희 아버지와 아시는 사이였습니까? 그건 전혀 몰랐습니다.”
내 말에 곧바로 실버휘슬 남작이 입을 열었다.
― 알다마다. 주기적으로 만남을 가지고, 서로 선물도 주고받는 사이라네. 이번에 손주를 하나 봤는데 자네 아버지께서 직접 이름까지 지어주셨어.
나는 그 말에 이야, 하는 소리와 함께 반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진작에 말씀하시지 그러셨습니까. 이거 참.”
― 그래, 내가 당장 마음이 급해서 먼저 이 이야기를 꺼내지 못하고 대뜸 소리부터 질렀구만. 아버지와의 친분을 생각해서라도 이쯤 해두고…… 알지 않나, 응? 레온 레드우드 백작님의 아들이라면 내 친아들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하고 있네. 뭐 힘든 일이나 궁한 상황이 되거든 언제든지 아버지에게 연락하는 것처럼 연락하게나. 내 아들이라 생각하고 돕겠네.
나는 그 말에 웃으며 대답했다.
“이야,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감사합니다. 어쨌든, 영주성에 출입하는 인원들은 필요한 문건만 다 확보하면 돌아갈 테니 너무 심려치 마시지요.”
― ……뭐? 이보게, 내 말 알아들은 건가?
나는 그 말에 대답했다.
“알아듣고 자시고 할 게 뭐 있습니까. 제 아버지와 친한 건 친한 거고, 어명은 어명입니다. 그럼, 일이 바빠서 이만.”
말을 마친 나는 수정구를 다시 실버휘슬 남작의 기사에게 건네주었다.
“이제 돌아가 보도록 하세요. 혹시, 그래도 불만이 있다면 다음에는 저에게 찾아오지 마시고, 어명을 내리신 세자 저하께 직접 말하라고도 전해주시면 감사하겠네요.”
말을 마친 나는 뒤편을 보며 말했다.
“기사님께서 돌아가신단다. 배웅해드려라.”
말을 마친 나는 다시 의자에 앉아 서류를 손에 쥐었다.
“차라리 레드우드 부인 이야기를 꺼냈다면 어땠을까요.”
차를 들고 다가온 클로에의 말에 나는 간단하게 대답했다.
“변하는 건 없어. 인생에서 선을 긋는 건 중요하거든.”
로델린의 친구, 로델린의 부모, 로델린의 지인. 나는 그런 사람들까지 다 배려해 줄 수 없다. 나는 사람이고,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으니까. 로델린의 친구라고 해서 그 자식의 사정을 봐주게 되면 그다음에 문제가 생기기 마련이다.
내가 배려하는 건 내 어머니인 로델린이지, 그 이외의 다른 사람들이 아니다.
“내 어머니가 자신의 소중한 사람들을 보호하고 싶다면, 어머니가 스스로 그럴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지.”
말을 마친 나는 클로에를 바라봤다.
“그건 너도 마찬가지야.”
내가 배려해주고, 도움을 주는 건 클로에뿐이다. 그 이외에 뭐 클로에의 예전 직장 동료나 클로에의 부모, 아니면 지인 같은 기타 등등은 내가 뭔가를 해줄 이유도 없고, 그럴 의욕도 없다.
“제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다치면 저도 힘들 텐데요.”
“당연히 괴로워하겠지. 소중한 사람을 지키지 못했다는 슬픔 때문에. 하지만, 그것 때문에 나를 원망한다면 나로서도 할 말이 참 많아질 거야.”
말을 마친 나는 클로에와 눈을 마주친 채 말을 이었다.
“네 지인들의 문제는 사실, 네 지인들이 스스로 해결해야 할 문제야. 그게 안 된다면 네가 도움을 줄 수는 있겠지. 하지만 그 사람들을 위해서 내가 뭘 해줄 거라고 생각하지는 마라.”
“냉정하시네요. 사실 상관없어요. 어차피 친하게 지내는 지인이라고 할 만한 사람들도 없고. 그 사람들이 마틴 님에게 청탁을 넣으려 한다면 제가 먼저 어디 한 군데 부러뜨려서 돌려보낼 테니까.”
세상에, 아무리 그래도 부러뜨릴 필요까지는 없지 않나? 그냥 말로 하면 되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