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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우드-261화 (261/275)

261화

마틴 레드우드가 실버휘슬 남작의 영주성의 출입을 통제하고, 내부를 조사하고 있다는 소식은 퍼져나가는 들불처럼 빠르게 귀족들의 머리를 후려쳤다.

수 세대를 걸쳐 귀족의 자리와 명예, 권리를 지켜오던 귀족들 중에 그 의미를 추측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었다.

“시작일 뿐이야.”

세자가 마틴 레드우드에게 일시적으로 부여한 권한은 단순히 교단의 사유 재산 압류뿐이 아니었다. 그게 아니라면 마틴 레드우드가 저리 당당하게 한 영지를 통제하는 영주의 영주성에 인원을 쏟아 넣어 물자와 사람의 출입을 통제하고, 쥐 잡듯이 영주성을 쑤시고 다닐 수는 없다.

그리고, 그런 귀족들의 추측은 지금 이 자리에서 현실화되고 있었다. 귀족들 중 제법 그 권세가 높은 자들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세자에게 알현을 청했다.

“세자 저하, 듣기로는 마틴 레드우드가 실버휘슬 남작의 영주성을 다소 과격한 방식을 활용해 조사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저희가 듣기로는 마틴 레드우드가 현재 지휘하고 있는 특별집행부는 그 권한이 왕국 내의 교단에만 미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혹시, 어떻게 된 일인지 알 수 있겠습니까?”

표면적으로는 마틴 레드우드가 실버휘슬 남작의 영주성에 가한 조치에 대한 단순한 의문 표시일 뿐이었지만, 실제로는 여기에서 세자가 돌려주는 대답에 따라 향후 그들의 행동이 크게 변하게 되는 분기점이 될 것이다.

“마틴 레드우드가 실버휘슬 남작의 영주성을 수색하는 중이라는 사실은 나도 알고 있다. 또한, 그러한 조치를 시행하는 이유에 대해서도 충분한 확인을 했지.”

세자는 눈앞의 찻잔 안에 티스푼을 밀어 넣듯 집어넣은 다음 휘휘 저으며 말을 이었다.

“마틴 레드우드는 교단의 사유 재산 파악을 정확히 파악하고, 네 인장 협정에 규정된 약속을 충실히 이행하기 위해서는 교단과 연이 있었던 귀족들에 대한 조사가 꼭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네.”

세자의 말에 나이 든 귀족 중 하나가 후우, 하고 심호흡을 한 다음 입을 열었다.

“하지만 세자 저하, 본래 영주는 영지 내에서 만큼은 충분한 수준의 자유를 보장받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영지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는 영주들의 움직임이 소극적으로 변하게 될까 걱정입니다.”

세자가 그 말에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손을 휘휘 저었다.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을 테니, 너무 심려치 말게. 정확히 말하면, 교단과 연관이 있던 귀족들의 저택과 영주성에 보관되어 있는 관련 문건을 확보해, 교단이 소지하고 있는 문건들과 비교하기 위해 필요한 절차일 뿐이네.”

개소리. 눈앞에서 웃음을 띤 채 차를 마시는 세자를 보며 귀족들은 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것을 강제로 억눌렀다. 문건을 찾아내기 위해서는, 당연히 보관 중인 문서를 전부 열람해야 한다. 그리고, 귀족들은 자신의 근거지라 할 수 있는 영주성에 참 많은 비밀들을 보관하고 있기 마련이다.

마틴 레드우드는 교단과 관련이 있던 귀족들이 가지고 있던 그 모든 비밀스러운 서류를 전부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마틴 레드우드가 파악한 귀족들의 비밀과 치부가 누구의 귀로 흘러 들어가게 될지는 자명하다. 지금 눈앞에서 차를 마시며 별거 아니라는 표정을 짓고 있는 저 세자에게 흘러 들어간다.

마틴 레드우드는 거기까지만 해줘도 충분하다. 그 이후 세자는 확보한 문건을 바탕으로 근래 왕궁 입구에서 마틴 레드우드의 강제 소환을 주장하던 귀족들의 멱을 따기 시작할 거다.

“그렇다면, 질문을 하나만 더 허락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이야기를 듣고 생각을 이어가던 귀족 중 하나가 세자를 바라보며 차분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그리고, 세자는 그를 바라보며 손깍지를 꼈다.

“듣고 있으니, 해보도록.”

세자의 말에 귀족이 감사의 의미로 인사를 한 다음 입을 열었다.

“교단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던 귀족들은 예외 없이 마틴 레드우드가 지휘하는 특별집행부의 조사를 받게 되겠군요.”

예외 없이.

그 단어를 들은 귀족들의 머리가 민첩하게 굴러가기 시작했다. 그래, 예외는 없어야 한다. 마틴 레드우드는 공공연히 자신의 입으로 자신은 어명을 따를 뿐이고, 최대한 공정하게 일을 처리할 것이라고 떠들었다. 알현실에 모인 귀족들 모두가 세자의 입을 바라봤다.

“그래, 예외 없이.”

세자의 말에 질문을 던졌던 귀족이 곧바로 말을 이었다.

“레드우드 가문 또한 영지에 자리 잡고 있던 교단과 긴밀한 관계를 구축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마틴 레드우드의 가문을 걸고넘어진다. 질문을 던진 귀족의 목표는 처음부터 이거였다. 레드우드 가문도 이번에 세자의 편이 아니라, 교단의 편에 섰었다. 마틴 레드우드는 스스로의 손으로 가문과, 나아가 자신의 아버지 목덜미에 칼을 들이밀어야 한다.

레드우드 가문의 조사 과정에서 마틴 레드우드가 공정함을 유지하지 못한다면 자연스럽게 귀족들도 할 말이 생긴다.

귀족들이 열심히 짱구를 굴려 만들어낸 파훼법. 하지만, 세자는 너무나도 간단하게 대답을 돌려주었다.

“안 그래도, 마틴 레드우드가 자기 가문의 영주성을 조사하기 위한 인력을 구성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네.”

세자의 말에 귀족들이 잠깐 서로 눈치를 주고받았다. 귀족에게 있어,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가문은 절대로 포기할 수 없다. 그들의 권위와 힘은 가문의 역사를 통해서 빛나며, 그들의 권리와 의무 또한 그 뿌리를 가문에 두고 있다.

레온 레드우드가 마틴 레드우드의 부모이기 때문이 아니다. 가문의 영광을 위해서라면 귀족들은 자신의 부모를, 더 나아가 자신의 목숨조차 포기할 각오가 되어있다.

눈물을 머금고 열다섯에 마흔이 넘은 귀부인과 약혼했던 불쌍한 소년이 영주가 되어, 이제 막 스물이 된 사랑하는 딸은 쉰이 넘은 귀족의 셋째 부인으로 시집보낸다.

그것이 당연한 일이다. 귀족으로서 누릴 수 있는 모든 권리에는 의무가 따라온다.

그리고, 그런 삶을 당연하다는 듯이 살아왔던 귀족들이다. 마틴 레드우드 또한 귀족인 이상, 자신의 아버지를 해하는 한이 있어도 가문만큼은 지키려 할 것이다. 그것이 지금 모여있는 모든 귀족들의 일관된 생각이었다.

“명단을 한번 보겠나?”

그 말에 귀족들이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저희가 감히 그래도 괜찮겠습니까?”

“안될 거 뭐 있나.”

세자가 태연스럽게 서류를 꺼내 테이블 위에 내려놓을 때도, 순간적인 의심이 들기는 했지만 귀족들은 확신했다. 그럴 수는 없을 것이다. 자신의 아버지를 감옥으로 보낸다 해도 자신의 가문을 마틴 레드우드가 송두리째 박살내려 들지는 않을 것이다.

고로, 빈틈이 있을 수밖에 없다.

‘마틴 레드우드는 특별집행부를 지휘하는 자로서 그 공정함을 유지해야 하는데, 자기 가문은 사정을 봐주고 다른 귀족들의 가문은 사정없이 짓밟는다’

그 주장을 하기 위해 필요한 근거들을 수집해야 한다. 귀족들은 눈에 핏발이라도 세울 기세로 꼼꼼히 그 서류를 훑어보기 시작했다.

“이건…… 이럴 리가.”

서류를 살펴본 귀족들의 표정에는 충격과 불신이 자리 잡았다. 가문을 위해 살고, 가문의 영광을 위해 태어났다고 스스로를 믿어 의심치 않는 귀족이라면 절대로 할 수 없는 일이다. 어느 정도의 인력이 투입될 것인지, 며칠에 걸쳐 조사가 이루어질 것인지. 어떤 일정에 따라 조사를 할 예정인지.

서류에 적혀있는 내용이 실현된다면 레드우드 가문은 교단의 편을 들었던 다른 귀족 가문과 같은 운명을 맞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이 다른 가문 귀족의 손에서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마틴 레드우드, 레드우드 가문을 세습할 천부권이 있는 자의 손에 이루어진다.

물론 마틴 레드우드의 위세는 지금 파이크 왕국의 그 어떤 귀족보다 더 강대하다. 전쟁 영웅. 하이랜더의 지휘자. 태초마를 죽인 자. 그 위명은 강대하지만, 단지 그것 하나만을 믿고 수백, 수천 년에 걸쳐 쌓아 올린 가문의 명예를 자신의 손으로 박살내다니.

개인의 영광은 한순간이지만, 가문의 명예는 대대로 영원히 이어진다. 개인이 영광을 성취하는 것보다, 그 성취한 영광을 가문의 명예로 바꾸는 것이 더 중요하다.

마틴 레드우드의 행각은 귀족들 대부분이 심장에 새겨놓다시피 한 격언에 불을 지른 것과 같은 행위다.

“서류에 적힌 모든 내용이…… 실제로 이루어진다면, 마틴 레드우드가 특별집행부를 지휘하는 자로서 공정성에 신중을 기하고 있다는 사실은 틀림없어 보입니다.”

귀족 중 하나가 가까스로 꺼낼 수 있었던 말이었다. 실제로 이렇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 서류를 꾸미기는 쉽다. 하지만, 중요한 건 실제로 어떻게 조사가 이루어지고 있느냐 하는 점이다.

모여있는 귀족들의 머릿속에 한 가지 과제가 떠올랐다.

마틴 레드우드가, 자신의 가문을 실제로 어떻게 취급하는지 면밀하게 확인해야 한다. 정말로 그가 자신의 가문에 해가 되는 일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것이 귀족들의 믿음이었고, 지금 붙잡을 수 있는 가장 튼튼한 동아줄이었다.

만약, 만약에.

마틴 레드우드가 정말로 이 서류에 기록해 놓은 것처럼 조사를 진행한다면 그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귀족들의 머리가 점점 더 복잡해지기 시작했고, 그런 그들을 바라보는 세자의 입가에는 독사와도 같은 짙은 미소가 깔렸다.

“나 또한 그대의 말에 동의하네. 마틴 레드우드가 보고서에 기록한 내용대로 조사를 수행한다면, 그가 어명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는 점은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테니까.”

귀족들은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빨리 돌아가서 레드우드 가문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파악해야 한다.

마틴 레드우드가 형식적인 조사를 하고 있다면 그야말로 더할 나위 없이 다행인 일이지만.

실제로 보고서에 기록된 것과 동일한 과정에 따라 자신의 가문을 조사하고 있다면, 빨리 대책을 세워야 한다. 가문의 영광을 위해.

“그럼, 소인들은 이만 돌아가 보겠습니다. 공사다망하신 와중에 이리 시간을 내어주시다니, 무한한 영광이었습니다. 세자 저하.”

귀족들이 인사하자, 세자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멀리 나가지는 않겠네. 살펴 가도록. 아, 그리고 보고서에 적힌 내용을 봐서 알고 있겠지만 레드우드 가문에 대한 조사는 오늘부터 착수할 예정이라 하더군.”

그 말을 들은 귀족들이 돌아가는 발걸음이 더 빨라졌다.

그리고, 그 시간 레드우드 가문의 영주성에서는 세자가 말한 것과 같은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네 녀석들이 감히!”

레온 레드우드는 영주성의 홀에 서 있는 병력들을 향해 분노가 한가득 담겨있는 고함을 지르는 중이었다.

“레드우드 백작님, 현 시간부로 영주성 내의 물자와 인력 출입은 제한됩니다. 필요한 문건을 확보하기 위해 꼭 필요한 일이라는 점을 양해해주시기 바랍니다.”

그 말에 레온 레드우드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녀석을 향해 외쳤다.

“이곳은 레드우드 가문의 영주성이다!”

“그렇습니다.”

차분한 목소리가 레온 백작의 귀를 때렸다. 곧이어, 그들과 동행한 감사청의 요원이 입을 열었다.

“조사를 시작한다. 현 시간부로 성 안의 사람들이 성 밖으로 나갈 수 없도록 조치하고, 마찬가지로 성 밖의 사람들이 영주성 내로 출입하는 행위 또한 금한다.”

“네 녀석이 그래도!”

그 말에 감사청의 요원이 서류를 들어 올렸다.

“특별집행부를 지휘하고 있는 마틴 레드우드로부터 내려온 지시입니다.”

“그럴 리가 없다! 아무리 그래도 그 아이 또한 레드우드 가문의 사람이야! 이럴 수는 없다. 이럴 수는 없어!”

말을 마친 레온이 급하게 옆을 돌아보며 말했다.

“마차를 준비해라, 내가 왕도로 가서 마틴을 직접 만나봐야겠다!”

“죄송하지만, 말씀드렸다시피 영주성 안의 그 누구도 밖으로 나갈 수 없습니다. 레드우드 백작님 또한 포함되어있습니다.”

그 말에 레온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 입 닥쳐라! 그렇다면 마틴 레드우드를 이리로 오라 하거라! 내 직접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를 해보겠다!”

“레드우드 백작님의 의사를 마틴 레드우드에게 전해드리겠습니다.”

말을 마친 감사청의 요원은 다른 인원들과 함께 빠르게 영주성을 뒤질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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