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2화
레온 레드우드, 내 아버지가 나를 보고 싶다는 모양이다. 보고를 전해 받은 나는 쯔, 하고 혀를 찼다. 이 친구가 누구를 오가라 하는 거야. 나는 서류를 살피며 입을 열었다.
“나를 보고 싶다면 아버지가 직접 오시면 되겠군.”
내 대답을 들은 감사청의 요원이 살짝 조심스러운 어조로 입을 열었다.
“하지만, 그랬다가는 공정성에 대해서 이런저런 이야기가 나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공정성이라. 나는 그 말에 입맛을 다시며 대답했다.
“공정성에 대한 의문이 표시되는 건, 내 아버지가 나와 만난 다음 레드우드 가문의 영주성에 대한 조사 일정이나 과정, 또는 조사 결과가 변했을 때나 가능한 일이지.”
게다가, 아버지가 자식 만나겠다고 오는 건 그렇게 대단한 일도 아니다. 물론, 그 대단하지도 않은 일을 하필 이제서야 하는 내 아버지도 참 대단하긴 하네.
“오시겠다고 하셨으니 나도 필요한 조치를 취해야겠지.”
나는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 입을 열었다.
“타고 오는 마차는 치안대에서 준비하도록. 마차는 기사 세 명과 말을 탄 병사 이백오십의 호위를 받고, 중간에 한 번도 멈추지 않는다. 마차에 탈 수 있는 건 오직 내 아버지인 레온 레드우드와, 데이먼 레드우드에 한정해. 이동 중에 필요한 물자는 전부 감사청의 감시하에 준비하도록 하고, 내 아버지와 데이먼 레드우드는 입고 있는 옷 한 벌 이외에는 어떠한 개인화물도 마차에 싣는 걸 허용하지 않는다.”
말을 마친 나는 깃펜에 잉크를 묻혀 서류에 체크하며 말을 이었다.
“아버지의 왕도 방문은 이 조건하에서만 허락한다. 왕도에 도착하면 즉시 특별집행부의 건물로 모셔. 건물 밖으로 나가는 건 허락하지 않는다.”
“그럼, 그렇게 전달하겠습니다.”
일 처리 자체는 안정적으로 진행되는 중이었다. 왕국 안에 자리 잡은 교회가 건물 안에 보관 중이던 재산은 착실히 회수되는 중이었고, 계속해서 보내지는 보고서를 통해 교단에서 열심히 숨겨놓은 재산은 찾아내면 회수하고, 찾아내지 못할 것 같으면 이후 할당될 예산을 깎아버리는 식으로 진행 중이다.
동시에, 교단과 연이 있던 귀족들은 실버휘슬 남작을 시발탄으로 빠르게 병력을 동원해 조사에 착수하는 중이다.
“대충 진행 속도를 고려해보면 한두 달 정도는 걸리겠는데.”
뭐, 그 정도면 빠르게 끝나는 편이라고 해야겠지. 일이 느리게 처리되었으면 내년까지 가야 할 수도 있다 생각했으니까. 말이 특별집행부지, 까놓고 말해면 임시부서 같은 거다. 해야 할 일을 빨리 끝내고 해산하는 편이 모두가 보기에 흡족하다.
“이 새끼는 구속해야 할 것 같은데.”
말이 보육원이지, 이건 유치장보다 더하잖아. 애들 150명이 감자 15알로 어떻게 버틴다는 거야. 보육원장이 예수님이라도 되는 건가? 막 빵 다섯 개랑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정도는 우습게 먹여 살릴 수 있는 모양이지? 그럴 능력이 있으면 종교를 하나 세워야지 왜 보육원장을 하고 있는 거야.
게다가, 해당 지역 교단에게 지원금을 받을 때는 이 식사에 대한 예산으로 감자 다섯 포대를 살 수 있는 값을 잡았다. 당연히, 사라진 감자들은 빛나는 론도화의 형태를 하고 사제들과 보육원장의 주머니 속으로 들어갔겠지.
내 말을 들은 감사청의 사람이 질문을 던졌다.
“감사청으로 넘길까요?”
나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야겠지. 그리고, 실제 사용 금액과 예산으로 잡아놓은 금액의 차액을 계산해서 돈 뱉으라고 해.”
“돈이 없다고 하면…….”
“알잖아? 이후 할당될 예산을 까야지. 어차피 감자 15개로 150명의 아이를 먹여 살릴 능력이 있는 친구들이니까, 잘 살 거야.”
내 말에 직원이 피식 웃음을 흘린 다음 경례를 하고 서류를 챙겨 밖으로 나갔다.
잡아넣어야 할 새끼들은 감사청과 세자에게 보고한다. 사회정의 실현은 감사청과 세자가 알아서 할 일이다. 그 친구들이 열심히 사회정의를 위해 일하는 사이, 우리는 그 친구들의 주머니를 열심히 털어 국고로 밀어 넣는다.
일을 착착 진행되고 있었다. 그 와중에 문이 열리고 특별집행부에서 일하고 있던 친구 중 하나가 서류 봉투를 하나 나에게 조심스럽게 내밀었다. 봉투는 촛농으로 봉인되어 있었고, 그 위에는 옥새가 떡하니 찍혀있다. 봉투 위에는 마틴 레드우드 이외의 사람은 열지 말라는 경고문이 적혀 있다.
“세자 저하신가?”
내 말에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공손하게 양손으로 그 서류를 받아들고 봉투를 열어 내용을 확인했다.
“좋아, 일단 하운 교단에서는 항복 의사를 표시했군.”
나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하운 교단의 교황이 세자에게 친서를 보냈다는 내용이었다. 이번에 파이크 왕국에서 일어난 일은 전적으로 그 책임이 파이크 왕국의 하운 교단 대주교에게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사과한 모양이다.
이어서, 하운 교단에서는 파이크 왕국에서 대주교와 세자가 맺었던 네 인장 조약을 인정하며, 이에 따라 마틴 레드우드에 의한 오해로 물의를 일으킨 하운 대주교의 처우는 전적으로 파이크 왕국에게 맡긴다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었다.
다만, 이 일에 대한 대외적인 공론화는 피해달라는 당부도 있었다. 파이크 왕국에서 교단이 위세를 잃는 건 어쩔 수 없으니 버림패로 포기하고, 다른 곳이 흔들리지 않도록 수습하겠다는 거겠지.
쉽게 말해, 백기를 든 거다. 교황 입장에서도 일이 이렇게 굴러가 버린 이상 어쩔 수 없었겠지. 누가 뭐라고 해도 태초마를 제거하기 위해 동분서주한 자를 악마와 계약했다는 식으로 몰아붙여 버렸으니까. 그 원죄가 있는 이상 제아무리 교황이라 해도 파이크 왕국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대대적인 교단 털이는 막을 도리가 없다.
물론, 세자 또한 하운 교단의 교황이 친서까지 써가며 항복 의사를 표시한 이상 교황이 당부한 것처럼 왕국 안에서의 폭풍으로 끝내줘야 할 것이다.
만족스러운 결과다. 어차피 파이크 왕국도 미치지 않고서야 세 개의 교단을 상대로 글로벌적인 공세를 펼칠 생각은 없었고, 내 딱 찍어서 조지겠다고 마음먹은 대상 또한 딱 파이크 왕국의 세 대주교까지였으니까.
“한 명이 이렇게 나온 이상…….”
일리온 교단과 바레스 교단의 교황도 유사한 내용의 항복 선언을 할 확률이 높다.
“밤이 되면, 하운 교단의 대주교를 바로 포박해서 특별집행부로 끌고 와. 포박 후 이송하는 과정에서 관련이 없는 인물들에게 들키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를 기울이고.”
세자가 굳이 나에게 이런 편지를 보낸 이유는 하나다. 하운 교단의 대주교를 구속하라는 뜻이다. 하운 교단의 교황이 이렇게 나오기 전까지는 그냥 구경하고 있었지만, 친서를 보내 손절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면 이제는 구경하고 있을 필요가 없다.
“그…… 알겠습니다.”
내 지시를 들은 사람들이 바로 필요한 준비를 하고, 치안대에 연락을 취했다. 그 뒤로 시간이 지나 밤이 되었다. 다른 사람들을 모두 돌려보낸 다음 방 안에서 쉬고 있으려니 노크 소리가 들렸다.
“누구?”
내 말에 조심스럽게 문이 열렸다. 두건을 눌러 쓴 친구였다. 손에는 큰 상자 하나를 들고 있었다.
“칼라인 윈터베인 백작께서 보냈습니다.”
칼라인 윈터베인. 세자가 찍어준 인물들 중에 하나다. 대충, 저 상자 안에 뭐가 있을지 짐작이 되는군.
“윈터베인 백작님께서 무슨 일이 있어 나에게 사람을 다 보내셨을까.”
내 말에 그가 들고 있던 상자를 열었다.
“밤늦게까지 일하신다는 이야기를 듣고, 고생하시는 와중에 원기 회복을 하시라고 다과를 조금 보내셨습니다.”
상자 안에는 작은 금괴 모양으로 노랗게 구운 디저트용 빵이 스무 개 정도 들어있었다.
“다과라.”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고 과자 하나를 들었다. 과자답지 않게 묵직한 무게가 느껴진다. 안에 들어있는 게 밀가루와 달걀 같은 게 아닌 모양인데. 살짝 힘을 주자 빵의 겉이 부스러지며, 안에 숨어있는 금괴가 누런빛을 흘린다.
“빵에 이물질이 들어있는데.”
내 말에 그가 웃으며 대답했다.
“때론 빵보다는 함께 담은 마음이 더 중요한 법 아니겠습니까.”
마음이라. 나는 그 말에 허어, 하는 소리를 내고는 녀석을 바라봤다.
“나는 뇌물을 싫어하는 사람이 아니야.”
“그렇다니 다행입니다.”
나는 툭 하고 빵으로 코팅한 금괴를 상자 안에 다시 집어넣고 말을 이었다.
“하지만, 아무 뇌물이나 막 받아먹지는 않지.”
뇌물은 강력하다. 삐걱거리는 인간관계에 금이라는 윤활유를 칠해주면 순식간에 다시 매끄러워지곤 하니까. 내 말에 그가 대답했다.
“문제없습니다. 철저하게 준비했습니다.”
나는 그 말에 얼굴을 구겼다.
“아니 인마. 너무 푼돈이라는 뜻이야. 사람이 뇌물을 받는 이유가 뭔데. 뇌물은 항상 받았을 때 잃게 되는 것보다 더 많이 챙겨줘야 하는 법이라고.”
매월 수천만 원씩 버는 회사 CEO에게 100만 원 정도 뇌물로 먹이고 회사 팔아달라고 하면 그걸 누가 받아먹고 해주냐. 그거 받아먹었다가 걸리면 100만 원 때문에 매달 꼬박꼬박 나오는 수천만 원을 잃게 되는데. 그런 사람에게 뇌물을 먹이고 싶다면 한 30년 치 연봉 정도는 가져와야지.
“적다고 하시면 더 마련해 보겠습니다.”
“그래야지. 내가 이걸 받아먹었다가 걸리면 잃게 될 건 쿠르스트 산맥의 영지에서 나오는 모든 수입, 지금까지 쌓아온 공적, 세자 저하의 신뢰, 왕궁 기사단장과 감사청장 및 치안대장이 내린 좋은 평판이야.”
나는 말을 마치고 나서 상자를 검지로 툭툭 쳤다.
“그걸 고작 금괴 몇 쪼가리로 어떻게 해보겠다는 건 너무 날로 먹겠다는 생각 아니냐? 세상 어떤 바보가 이런 푼돈 받자고 그걸 포기해?”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고 방 안을 슥 훑었다.
“이 방을 가득 채울 정도로는 가져와라. 고작 이런 콩알만 한 금조각 몇 개로는 어림도 없으니까.”
자식이, 돌돔을 낚고 싶으면 성게를 가져와야지. 싸구려 플라스틱 미끼로 뭘 어쩌겠다는 건지 모르겠네.
“알아들었으면 꺼져.”
말을 마친 나는 손을 휘휘 저었다. 세상에는 가끔 되도 않는 거래를 하려고 드는 양아치들이 있어서 큰일이라니까.
“마틴 님.”
“나는 말로 해서 알아듣는 친구들이 좋아. 주먹 나가기 시작하면 피곤하거든. 그래도 챙겨온 정성이 있으니 붙잡지 않고 보내주는 거다. 더 말 붙이면 그땐 붙잡아서 감방에 밀어 넣을 테니 각오해.”
내 말에 녀석은 하려던 말을 멈추고 인사를 한 다음 상자를 챙겨 돌아갔다. 나는 녀석이 돌아간 문을 바라보다가 혀를 찬 다음 다시 시간을 확인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내궁에 마련된 방으로 향했다.
“이거 봐요.”
클로에는 쌓여있는 편지들을 가리키고는 기가 막히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건 다 뭔데?”
“초대장의 형식을 한 애원이요. 제발 식사 한 끼 하자는 이야기를 구구절절이도 써놓았던데요.”
나는 그 말에 머리를 벅벅 긁었다.
“아주 그냥, 죽을 때가 되니 살려고 발악들을 하는군.”
나는 그 편지들의 봉투를 슥 살피고 나서 잠깐 고민하다가 수정구를 손에 쥐었다.
― 뭐야, 자려고 하는데.
“세자 저하, 저는 이제 막 내궁에 돌아왔는데 어찌 먼저 침소에 드시는 겁니까.”
내 말에 세자가 어이없다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 뭔 소리야. 자네가 늦게 퇴근하는 게 내가 자는 것과 뭔 상관이라고. 자네가 내 첩이라도 되는 건가?
무슨 개똥 같은 소리를 하고 있는 거야. 쉰내 나는 삼십 대 남자 주제에.
“저에게 편지가 참 많이 왔습니다. 귀족들이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내용이었습니다.”
― 이야, 요즘 잘나가는군그래. 그 이야기를 나에게 하는 이유는?
나는 그 말에 부드러운 어조로 대답했다.
“적당히 넘어가 줄 귀족들을 몇 명 찍어내 주시면, 용돈 벌이라도 좀 해볼까 하는데 괜찮겠습니까?”
― 이런 망할, 지금 이 나라 세자를 앞에 두고 뇌물 좀 받아먹고 싶은데 사람 좀 가려달라는 부탁을 하는 거냐.
나는 그 말에 으음, 하는 소리를 냈다.
“그냥 받아먹는 것보다는 세자 저하께서 알고 계시는 편이 더 좋지 않겠습니까? 기왕에 받아먹는다면 윗사람도 알고 있는 편이 더 깔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모르는 것보다는 알고 있는 편이 더 좋지.
― 망할 자식 같으니라고. 대놓고 당당하게 말하니 더 미친놈 같구나.
그 대답을 들은 나는 잠깐 침묵하다가 이내 입을 열었다.
“혹시, 안 됩니까?”
― 받은 뇌물 중 절반은 나에게 다시 뱉어라. 너만 챙겨 먹을 생각은 아니겠지.
“감사합니다.”
받아먹어도 좋다는 대답을 한 세자는 약간 뜸을 들이나 싶더니 귀족 몇 녀석의 이름을 나에게 불러주었다. 이름을 기억해둔 나는 편지를 뒤져 세자가 말한 이름의 귀족 몇 명을 따로 빼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