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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우드-272화 (272/275)

272화

가게 주인이 반지를 꺼내는 모습을 지켜보던 나는 말을 걸었다.

“모두 가게에서 제작한 겁니까?”

“그렇습니다.”

나는 반지들을 살펴보기 시작했고, 그런 나를 지켜보던 노인이 조심스럽게 질문을 던진다.

“혹시, 반지의 용도가 어떻게 되는지 감히 여쭤봐도 괜찮겠습니까?”

나는 그 말에 웃으며 대답했다.

“결혼 예물입니다.”

내 대답을 들은 노인의 표정이 살짝 변했다. 그래, 뭐…… 어차피 준비하기 시작하면 나와 클로에 사이의 관계에 대한 소문이 퍼져나가는 건 순식간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전에 왕도에 머무를 때는 연기였긴 하지만 벌여놓은 일들이 있었으니까. 어차피 들킬 거라면 괜히 안 들키기 위해서 기를 쓰느니 차라리 당당하게 밝히는 편이 좋다.

내 대답을 들은 보석상이 꺼내놓은 보석들을 살피다가 이런, 하는 소리를 냈다.

“결혼반지라면 이런 것들보다는 역시 다이아몬드를 주인공으로 삼아야겠지요.”

말을 마친 그는 뭔가를 꺼내 들었다.

“이런 건 어떠십니까?”

나는 천천히 반지에 박힌 다이아몬드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1캐럿에 무색, 다이아 안에 들어있는 이물질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백금으로 만들어진 링의 중앙에 박힌 1캐럿의 정사각형 모양의 프린세스 컷 다이아몬드는 마름모 형태로 자리 잡고 네 개의 발로 고정되어 있다. 그 마름모의 두 꼭짓점을 각각 1부에서 2부 사이로 보이는 크기의 다이아몬드들로 감싸듯이 장식했다.

당연하다는 듯이 여섯 개의 작은 다이아 또한 같은 수준의 품질이고, 컷팅도 훌륭하다. 하나하나가 그냥 뽑아서 새로운 반지를 만들어도 손색이 없을 것 같은 품질이다.

이 가게 주인이 자기는 최고품질만을 고집한다고 호언장담한 이유가 있군. 젠장, 이거 돈이 아주 단단히 깨질 것 같은 느낌이다. 역시 챙길 수 있는 돈은 챙겨놓는 게 정답이었어. 역시 결혼은 돈 먹는 하마라니까.

“물론, 지금 보여드린 물건은 어디까지나 견본품일 뿐입니다. 결혼과도 같은 큰일이시고, 사회적인 지위도 작지 않으신 분으로 보이시는데, 저희로서도 이런 물건을 추천해 드릴 수는 없죠.”

뭐 인마? 지금 나한테 이거보다 더 비싼 물건을 팔 생각인 거냐.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별다른 대꾸를 하지 않았다. 그래도 기왕이면 결혼반지인데 여력이 된다면 좋은 걸 하고 싶은 마음도 있으니까.

“사실, 저는 주문 제작으로 하시는 편이 어떨까 하고 감히 추천해보고 싶습니다.”

주문 제작이라. 간단하게 말하면 조립 컴퓨터 같은 거다. 링을 잘 만드는 곳과 좋은 보석을 보유하고 있는 곳, 그리고 세공을 잘하는 곳과 디자인을 예쁘게 뽑는 곳들이 서로 협업해서 장신구를 뽑아내는 거다. 슬프게도 조립 컴퓨터와는 다르게, 장신구는 주문 제작을 하면 그 가격이 마법같이 확 뛰어오르게 되는 감동적인 부작용이 있다.

“그럼 그렇게 부탁드리지요.”

“알겠습니다. 아, 신부의 손가락 사이즈가…….”

나는 그 말에 짤막하게 대답을 돌려줬다. 눈대중으로도 어느 정도 맞출 수 있지만, 거기에 더해 손을 만져 본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 그 정도면 손가락 사이즈 정도는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지. 내 대답을 들은 그가 종이 위에 이런저런 내용들을 기입하고 나서 나에게 인사를 했다.

“우선은, 반지 디자인이 완성되고 나면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저기…… 어디로 서신을 보내면 좋을지.”

“내궁에 머무르는 마틴 레드우드에게 보내면 될 겁니다. 잘 부탁드리지요.”

내 말에 노인이 역시, 하는 표정을 짓고 나를 바라보다 인사했다.

“결혼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평생 단 한 번인 편이 좋은 소중하고 행복한 추억을 기념할 소중한 물건을 저희에게 맡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실망시키지 않겠습니다.”

평생 단 한 번인 편이 좋다라. 결혼식이 가지는 의미는 저 이상으로 좋게 표현할 자신이 없다.

반지로 끝나는 게 아니다. 성공리에 결혼식을 끝내기 위해 준비해야 할 일은 한두 가지가 아니니까. 초대장도 만들어야 하고…… 장소는 어차피 변경백으로 임명되는 자리가 곧 내 결혼식장이니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좋겠지. 그 이외에 생각해둬야 하는 건 결혼식에 사용할 드레스와 반지를 제외한 기타 장신구, 내가 입을 옷…….

그 이외에 기타 등등.

“다 돈이군.”

구체적으로 얼마를 사용해야 할지 모르겠다. 게다가 드레스 같은 경우에는 나 혼자 정하는 게 아니라 클로에와 함께 정해야겠지. 번화가에 서서 이런저런 고민을 하고 있는 와중에 사람들이 흘긋흘긋 나를 바라본다. 그 시선을 무시한 채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생각하고 있으려니 근처로 다가온 치안대의 병사가 나에게 경례한다.

“마틴 레드우드 님. 특별집행부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그래?”

내 말에 치안대 병사가 고개를 끄덕이고 말을 이었다.

“지시하신 조치를 모두 취한 다음, 특별집행부에서 대기 중이라고 합니다. 거기에 더해, 클로에 로니세라 경도 임무를 무사히 마치고 귀환했다는 말도 전해달라 했습니다.”

내가 지시한 조치를 모두 끝냈다는 건, 나와의 짧은 교전 끝에 참담하게 패배한 녀석들을 의사에게 넘겨 치료받게 하고, 일리온 교단과 바레스 교단의 대주교도 확보했다는 뜻이겠지.

“고맙네.”

인사를 한 나는 즉시 특별집행부가 자리 잡고 있는 건물로 향했다. 건물 앞에 선 나는 잠깐 그 건물의 모습을 바라보다 작게 웃음 지었다. 이제, 여기에서 해야 하는 일도 거의 다 끝나가는구나. 대주교의 신원을 확보하는 데 성공한 이상, 더 이상 걸리적거리는 일은 없다.

“한 달.”

늦어도 한 달 안에 내가 왕도에서 해야 하는 모든 일은 끝날 것이다. 그러고 나면 변경백 겸 백작의 자리에 오를 것이고, 동시에 클로에와 결혼식을 마치겠지. 나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돌아오셨습니까.”

근처에 있던 병사들이 나를 보고 재빠르게 인사한다.

“전 대주교 두 명은?”

그들은 구속과 동시에 대주교로서의 지위를 잃게 되었다. 당연히 대주교가 아니라 전 대주교다.

“지금 임시 구금실에 대기 중입니다.”

“내 방으로 올려보내 줘. 구속은 풀지 말고.”

“네, 바로 이행하겠습니다.”

대화를 마친 나는 내가 일하는 방에 들어갔다.

“오셨어요? 중간에 자리를 비우셨다고 들었는데.”

문을 열고 들어가자 클로에가 나에게 인사를 건넸다.

“잠깐 사고 싶은 물건이 있어서.”

내 말에 클로에가 아하, 하는 소리를 내고 주전자를 들어 올렸다.

“차 한 잔 드릴까요?”

“그래줘.”

주르륵, 하는 소리와 함께 잔에 찻물이 차오른다. 클로에가 찻잔을 나에게 건네주면서 말했다.

“그래서, 뭘 사러 가신 거예요? 설마하니 새 검이 필요하신 건 아닐 테고.”

“반지.”

내 말에 클로에가 자신의 잔에 차를 따르다 고개를 들고 나를 바라봤다. 나는 그런 그녀를 보다가 턱짓했다.

“차, 넘친다.”

내 말에 클로에가 황급히 주전자를 바로잡았다. 넘치기 직전까지 찻잔에 차오른 찻물을 조심스럽게 마신 클로에가 말을 이었다.

“결혼반지라니…….”

“아직 산 건 아니야. 반지 디자인이 완성되면 연락을 준다고 했으니, 그때는 같이 가서 네가 마음에 드는 디자인으로 골라.”

내 말에 클로에가 찻잔을 손에 들고 가만히 멈춰선 채 잔을 바라보며 말했다.

“맞춤 반지는 딱 한 쌍 만드는 것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가격이 엄청난 걸로 알고 있어요. 결혼반지라는 게 마음이 중요하지 비싼 걸 할 필요가 있나요, 라고 말하고 싶지만…… 모르겠어요. 차마 그 말이 나오질 않네요. 평생 제 손에 끼워져 있을 특별한 물건이니까.”

결혼을 위해 준비한 화려한 드레스는 한 번 입고 나면 그 이후에는 입는 경우가 없다. 좋은 음식과 모여있는 사람들의 축하도 그 순간뿐이다. 결혼하고 나서 언제나 지니고 다니는 물건은 결국 반지다.

“아, 근데 제 손가락 사이즈는 어쩌죠.”

클로에의 말에 나는 손을 내밀며 대답했다.

“내밀어봐.”

내 말에 클로에가 순순히 손을 내밀었다. 그 손을 잡아 살펴본 다음, 나는 종이를 찢어 클로에의 약지를 감은 다음 잉크로 종이 위에 길이를 표시했다. 그다음 작은 자를 꺼내 확인했다.

“제대로 맞췄네. 걱정하지 않아도 될 거야.”

손에 힘을 풀었지만, 클로에가 잡고 있어서 손이 놓이지 않았다. 나는 다시 손에 약간 힘을 주었다. 클로에가 입을 열었다.

“대주교는 전부 구속되었으니, 특별집행부가 해산할 때까지 얼마 안 남았네요.”

“내 책봉식과 결혼식을 함께 진행하는 게 어떠냐고 세자 저하께서 말씀하시던데. 주례를 부탁해 봤는데 흔쾌히 허락해주시더라.”

내 말에 클로에가 놀란 기색으로 대답했다.

“세자 저하께서 직접? 게다가 두 행사를 같이 진행한다면 사적인 행사지만 국고의 지원을 받을 수도 있겠네요.”

이야기를 들은 클로에도 빠르게 그런 계산이 선 모양이다. 세자가 했던 말을 유사하게 반복한다.

“그래도 준비해야 할 일이 많을 거야. 특별집행부의 일도 완전히 끝난 게 아닌데 결혼식 준비까지 같이해야 하니까.”

“이런 식으로 바쁜 거라면 평생에 한 번 정도는 대환영이죠.”

대답을 돌려준 클로에는 잠깐 고민하나 싶더니 대답했다.

“드레스는 비쌀 필요 없어요. 어차피 결혼식 때 한 번 입고 말 물건인데. 부질없잖아요.”

“결혼식은 우리 둘 사이의 행사이긴 하지만, 그래도 보는 눈이 많을 거야.”

“일정 이상의 격식을 차려야지. 결혼식 전에 진행될 책봉식에서 나는 귀족들 중 누구도 비벼 볼 수 없는 자리에 오르게 되잖아.”

내 말에 클로에가 그래도…… 라고 말을 하려고 하자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냥 핑계고, 내가 그러고 싶어서 그러는 거야.”

내 첨언을 들은 클로에가 희미하게 웃으며 대답한다.

“사실, 제 입장에서는 그게 더 듣기 좋네요.”

“그렇다니 다행이네.”

클로에는 잠깐 마주 잡고 있는 손을 바라보다가 차분히 대답했다.

“처음 쿠르스트 산맥에서 첩보국의 임무 때문에 마주하게 되었을 때는 이렇게 될 줄 몰랐어요.”

“후회하는 거야?”

내 말에 클로에가 즉시 고개를 젓는다.

“그럴 리가 있나요. 전 재수 좋은 년이에요.”

“나는 재수 좋은 놈이지.”

내 대답을 들은 클로에가 큭큭거리며 웃나 싶더니 말을 이었다.

“아직 특별집행부에서 해야 하는 일이 남아있는 건 알고 있지만, 결혼식 전까지 억지로라도 시간을 쥐어 짜보죠.”

“그래야지, 결혼식 준비도 가볍게 생각할 일이 아니니까.”

“그것도 같이 진행하는 건 당연하잖아요. 거기에서 더 시간을 쥐어 짜내 보자는 거예요.”

그렇게 쥐어 짜낸 시간을 어디에 쓸 생각일까.

“일적인 관계로 시작된 인연이었잖아요. 결국, 지금까지 함께 보낸 시간이 많았다 해도 전부 일 이야기뿐이었고. 결혼이 약속된 남녀가 함께할 수 있는 일이 어디 그런 것만 있나요.”

그래, 사실 나와 클로에가 필요에 의해 뭔가를 함께 해야 했던 시간은 있었지만, 함께 있고 싶어서 보낸 시간은 없다. 왕도에서 연인처럼 시간을 보낸 적은 있지만, 그건 연기 중이라고 하는 부담감과 다른 사람들의 눈을 속여야 한다는 의무감 때문에 했던 일이어서 그런지 머릿속에 남아있는 게 없다. 사실, 해야 하니까 한 일들이 다 그렇게 머릿속에서 지워지곤 하지.

“생각을 좀 해봐야겠네.”

“저도 이것저것 생각해볼게요. 뭐, 연극 같은 거라도 한 번 보러 갈까요? 최근에 공연하는 연극이…….”

고민하는 클로에를 보고 있던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손은 여전히 잡은 상태였다.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클로에가 나와 시선을 마주친다.

“저기.”

클로에가 뭔가 말을 하기 전에 먼저 내 얼굴이 클로에와 가까워지는 게 빨랐다. 나와 클로에의 입술이 서로 부딪치며, 그녀는 하려던 말을 다시 삼켜야 했다. 갑자기 이루어진 일에 몸에 힘을 꽉 주고 있던 클로에는 시간이 좀 지나자, 몸에서 힘을 풀었다.

키스가 끝난 다음 클로에가 후우, 하는 소리를 낸 다음 고개를 숙인다. 귀까지 시뻘겋게 달아올라 있다. 얼굴이 후끈거리는 걸 보면, 아마 나도 비슷하지 않을까.

“함께 지낸 시간이 많은데 해본 일이 적다면, 많은 걸 빠른 시간 안에 해보는 건 어때?”

내 말에 클로에가 대답 대신 제안을 한다.

“오늘부터는…… 저기, 한 침대에서 잠들고 한 침대에서 일어나 보는 건 어떨까요. 그……러니까. 많은 걸 빠른 시간 안에 여러 번 하기 위해서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는 그릇이나 핥고 양초나 빠는 정도로 끝나지는 않을 거다. 설사 그렇게 끝날 분위기라고 해도 내가 그렇게 끝내지 않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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