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드우드-274화 (274/275)

274화

오늘은 중요한 날이다. 마침내 그날이 내 앞으로 다가왔다. 왕궁에서 진행되는 내 책봉식 겸 결혼식. 교단의 재산을 모두 회수하는 데 성공한 이후, 특별집행부는 해산 절차를 밟았다. 특별집행부를 구성하고 있던 모든 인력은 다시 평시에 자신들이 하던 업무로 복귀했다.

레드우드 영지에 머무르는 내 아버지 레온 레드우드와 데이먼 레드우드, 그리고 둘째 부인 제인은 사실상 영주성에 구금된 상황이다.

꼭 해야만 하는 일은 딱 하나를 제외하고 나면 모두 끝났다.

그리고, 나는 이 방에 정장을 입은 채 꼭 해야만 하는 마지막 일을 남겨두고 대기 중이다. 기다리고 있던 와중에 문이 열리고, 조심스러운 목소리가 들린다.

“마틴 레드우드 님, 준비가 끝났습니다.”

우선적으로 진행되는 건 내 책봉식이다. 오늘부로 쿠르스트 영지는 변경백령이 되고, 나는 변경백이 된다. 거기에 더해 레드우드 영지를 계승하며 백작위를 겸하게 된다.

“클로에는 어떤지 알 수 있나?”

내 말에 그가 웃으며 대답했다.

“두 눈이 맑아질 정도로 아름다우십니다. 하지만, 아시다시피 미리 볼 수는 없습니다.”

“젠장, 나도 알고 있어.”

나는 그렇게 대답하고 난 다음 심호흡을 한 번 했다. 사실, 변경백과 백작을 겸하게 되는 오늘의 책봉식은 나를 전혀 긴장시키지 않는다. 이미 세자에게 들어 알고 있었고, 미리 알고 있던 사실이 결과의 형태로 나에게 다가오는 것뿐이니까.

하지만, 클로에와의 결혼식은 이미 이렇게 될 걸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나 나를 긴장시키고 있다.

“그럼, 이제 가지.”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안내받아 도착한 곳에는 화려하게 장식된 거대한 문이 있었다.

절차는 이미 숙지하고 있다. 지금 내 앞에 서 있는 이 거대한 문을 넘으면 아래에 융단이 깔려있을 테고, 세자는 그 융단 너머의 계단 위에 마련된 옥좌에 앉아있을 것이다. 원래는 국왕이 직접 해야 하는 일이지만, 사실상 이미 국왕은 세자에게 대부분의 권한을 넘겨준 상태니까.

문 너머에서 웅장한 음악이 연주되기 시작한다. 나는 문 너머에서 잠깐 눈을 감은 채 그 음악을 듣기 시작했다.

“문 열겠습니다.”

나는 그 말에 눈을 뜨고 정면을 응시했다. 천천히 문이 열리고, 문 너머에서 희미하게 울려 퍼지던 음악이 선명하게 내 몸을 때린다. 바닥에 깔린 융단, 그리고 그 양옆에 서 있는 무수한 귀족들이 보인다. 천천히 걸음을 옮기기 시작하자, 음악은 나의 걸음에 박자를 맞추기 시작한다.

나는 옥좌가 서 있는 계단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한쪽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동시에, 연주되던 음악이 끝난다.

“마틴 레드우드.”

계단 위에서 세자의 목소리가 들린다.

“이 나라는 이미 그대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다. 실로 난국이라는 이름에 걸맞을 정도로 무수한 일이 있었지만, 그대는 파이크 왕국을 섬기는 귀족의 몸으로서 뭇 귀족들에게 모범이 되었고, 백성들에게는 왕국의 희망을 상징하는 존재가 되었다.”

“부족한 점이 많은 몸입니다. 과찬이십니다.”

내 말에 세자는 웃으며 말을 이었다.

“이 자리는 축복의 자리가 아니다. 나는 그대가 여태 동안 보여준 모습을 믿고 있다. 그렇기에, 나는 그대에게 더 무거운 짐을 지게 만들 것이다.”

사실, 정확히 이 자리에서 내가 무슨 작위를 받게 되는지 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은 모른다. 쿠르스트 영지의 크기를 생각해보면, 대부분 후작이나 백작 정도를 생각하고 있겠지.

“마틴 레드우드, 너는 이제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들고 당당히 서라!”

세자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자리에 모인 무수한 귀족들의 표정이 변하기 시작했다. 작위책봉식에서 작위를 받는 사람을 자리에서 일어나게 하는 경우는 없다. 최소한, 일반적인 작위라면 설사 공작이라 해도 무릎 꿇은 자를 일으켜 세우지 않는다.

“마틴 레드우드에게 쿠르스트 변경백령을 수호하는 변경백의 작위를 내리며, 또한 레드우드 백작령의 백작위를 겸하게 될 것이다. 이는 다만 권리가 아니라 또한 의무이니. 너는 어명을 삼가 받들어 국경을 수호하는 변경백으로서 밖으로는 국경 너머에 도사린 위협을 대비하고, 안으로는 국왕 폐하를 대리해 영지의 백성을 살피도록 하라.”

변경백, 거기에 더해 레드우드 영지까지. 이 자리에 참석한 귀족들의 표정에는 서서히 경악이라는 감정이 스며들고 있었다. 변경백이라는 자리가 가지게 되는 권리에 대해서 모르는 귀족은 아무도 없었다. 백작을 겸하는 변경백. 마틴 레드우드는 지금 이 자리에 모인 귀족 중 그 누구도 따라갈 수 없는 권력과 지위를 손에 넣었다.

“소인이 감히 받들기 과분한 영광입니다. 하지만, 어명을 받들어 이 한 몸 숨이 끊어질 때까지 어명을 받들겠나이다.”

세자가 계단을 걸어 내려온다. 동시에, 계단 옆에 대기하고 있던 자들이 커다란 함을 챙겨 든다. 세자가 손을 옆으로 내밀자. 함을 들고 있는 자가 곧장 무릎을 꿇고 함을 연 채 고개를 숙인다. 함 안에는 검이 한 자루 들어있었다. 세자는 그 검을 들어 내 어깨 위에 올렸다.

그 순간까지도, 나는 무릎을 꿇지 않고 있었다.

“이 왕국은 그대에게 기대하는 바가 크다. 실망시키지 않을 것이라 믿는다, 마틴 레드우드.”

검을 다시 함 위에 올린 세자가 나를 끌어안았다. 그리고 놀리는 것 같은 어조로 작게 속삭인다.

“솔직히 말해봐라. 이다음에 이어질 행사를 더 기대하고 있지?”

“부인하지는 않겠습니다.”

내 입장에서는 이 작위 책봉식보다는 이어질 결혼식이 더 긴장된다. 포옹을 푼 세자는 내 등을 몇 번 두들기고 나서 히죽 웃었다.

“그럼, 돌아가서 어머니와 잠시 이야기를 나누면서 시간을 보내도록. 이 장소도 다시 필요한 준비를 마쳐야 할 테니.”

“그리하겠습니다.”

말을 마친 나는 세자에게 인사를 하고 돌아갔다.

“변경백이라니, 축하한다. 하지만 권리에는 의무가 따라온다는 사실은 알고 있지?”

돌아온 방 안에는 로델린이 기다리고 있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로델린이 내 머리를 정돈하고, 옷태를 다듬어준다. 나와 마찬가지로, 내 어머니도 내가 변경백이 되었다는 사실보다는 그 뒤에 이어질 일에 더 집중하는 모습이다.

“좋은 모습을 보여줘야지.”

옷을 정리하던 로델린이 부드럽게 웃으며 나를 바라봤다.

“결혼이라니. 잘 돌보지도 못한 것 같은데 어느 사이엔가 이렇게 자라서, 평생을 함께할 반려를 데려왔구나.”

“클로에는 어머니에게도 잘할 거예요.”

로델린이 내 말에 고개를 저었다.

“그럴 필요 없다. 누가 뭐라고 해도, 나는 그 아이에게는 시어머니이지 않겠니. 며느리에게 있어 시어머니는 부담되는 사람일 수밖에 없어. 더러는 딸 같이 생각할 테니 어머니같이 생각해달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는 모양이지만, 나는 가식이라고 생각한다. 딸에게 밥을 해주는 어머니는 있지만, 며느리에게 밥을 해주는 시어머니는 없지 않니. 서로 조심할 수밖에 없는 관계야.”

나는 그 말에 낮게 웃음을 흘렸다. 그건 그렇지.

“쿠르스트 변경백령은 그 주인인 변경백을 맞을 준비가 되었단다.”

“감사합니다.”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렴. 서로 존중하고 사랑하면서.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이 별로 없어서 미안하구나.”

나는 그 말에 고개를 저었다.

“어머니가 저를 자랑스러워 하는 것 이상으로 저는 어머니를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어요. 그런 말씀 마세요.”

그 와중에 문이 열렸다.

“레드우드 부인. 행사 준비가 끝났습니다.”

그 말을 들은 로델린이 내 뺨에 키스를 한 번 해주고 문을 나섰다. 그렇게 나와 클로에의 결혼식은 시작되었다.

신랑 입장, 이라는 말과 함께 나는 천천히 깔린 융단 위를 걸어가기 시작했다. 책봉식을 위해 마련되었던 옥좌는 이미 치워진 상황이었고, 융단의 끝에 마련된 작은 단상에는 세자가 서서 다가오는 나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감사합니다.”

내가 고개를 숙여 세자에게 인사하자, 그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으로, 나는 뒤를 돌아 자리에 앉아있는 무수한 사람들을 향해 고개 숙여 인사했다.

이후, 신부 입장. 이라는 외침과 함께 음악이 연주되기 시작했다. 클로에는 고아였다. 원래 아버지나 집안의 웃어른이 신부를 데리고 나오는 것이 정석이었지만 그 역할은 알버트가 대신했다. 중간에 나의 안위를 더 중시 여겨 클로에를 포기하긴 했지만, 누가 뭐라고 해도 일단 고아인 클로에를 거두어들인 사람이니까.

“아.”

나는 몸을 돌려 다가오는 클로에를 보고 그런 소리를 냈다. 백색의 드레스를 입고 다가오는 클로에는 아름다웠다. 우리를 지켜보는 수많은 시선들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다. 심지어, 그녀의 손을 잡고 부축해주는 알버트마저 보이지 않을 정도였으니까.

마침내, 클로에가 내 옆에 섰다.

“그럼, 신랑과 신부는 서로 마주 보고 인사하세요.”

세자는 차분한 어조로 반존대를 사용했다. 이 나라의 모든 중대사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세자였지만, 최소한 이 순간만큼은 세자가 아니라 주례자다. 그리고, 이 장소의 주인공은 세자가 아니라 나와 클로에다.

서로 얼굴을 마주 본 나는 갑작스러운 어색함과 알 수 없는 기분에 약간 당황했다. 우리는 천천히 서로에게 인사했다. 세자는 그런 우리를 보고 있다 웃으며 말했다.

“다음은 예물 교환 시간입니다. 이 자리를 빌려서 서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 것 같은데. 앞으로 스스로의 결혼 생활이 어땠으면 좋겠다, 하는 다짐이나 바라는 점을 한번 말해주시죠.”

바라는 점이라. 나는 잠깐 클로에를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나는 다른 사람들의 기분을 더럽게 만들거나, 비꼬는 걸 잘하지. 그래서 반대로, 이런 식의 이야기는 많이 어색해.”

클로에가 희미하게 얼굴에 웃음을 띤다. 나는 그런 그녀의 표정을 보며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놓치지 않겠다, 벗어날 수 없다. 넌 내꺼다. 이런 식의 이야기는 한심하지.”

사람은 물건이나 포켓몬이 아니다. 가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놓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나는 손을 뻗어 클로에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준비했던 반지를 꺼내 클로에의 약지에 끼우며 말을 이었다.

“여태 동안 곁에 있어 줘서 고마워. 앞으로도 네가 곁에 있어 줬으면 좋겠어. 여기에 함께 서기까지 네가 항상 내 곁에 있어 줬던 것처럼, 앞으로도 그래 줬으면 좋겠어.”

내 말을 들은 클로에가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으로, 클로에가 입을 열었다.

“당신은 언제나 처한 상황 속에서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행동을 보여주었죠. 함께하기로 결정한 내 선택은 틀리지 않았어요. 앞으로도 그럴 거예요. 왜냐하면, 틀렸다는 생각이 들기 전에 함께 고쳐나갈 거라고 믿으니까. 항상 당신이 저와 함께 그래왔던 것처럼.”

마찬가지로, 클로에도 내 손을 잡고 약지에 반지를 끼워주었다.

서로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잠깐의 키스가 이어졌다. 이후, 세자가 입을 열었다.

“축하합니다. 두 사람이 함께 견뎌내야 했던 고난이 한둘이 아니었다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세자의 말에 나와 클로에는 세자 쪽으로 몸을 돌렸다. 세자는 나와 클로에와 한 번씩 눈을 맞춘 다음 말을 이었다.

“우선, 클로에 로니…… 아니, 레드우드 양에게는 미안하다는 말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군요. 앞으로 남편이 고생한다면, 그건 분명히 내가 시킨 일 때문일 테니까. 너무 원망하지는 말아줬으면 좋겠습니다.”

세자의 말에 클로에가 희미하게 웃음을 흘렸다. 그런 클로에를 보고 있던 세자는 시선을 돌려 나를 향해 윙크를 한다.

“너무 걱정하지는 말게. 제아무리 할 일이 많아도 함께 밤을 지낼 시간은 충분할 거야. 내가 설마하니 그 정도 배려도 안 해줄까 봐.”

나는 그 말에 하, 하는 소리를 냈다.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고 불안해하고 있었는데, 직접 약속까지 해주시니 그나마 다행입니다.”

내 말에 세자가 키들거리며 웃나 싶더니 이내 다시 표정을 가다듬고 나와 클로에를 바라봤다.

“많이 해줄 말은 없습니다. 두 사람은 잘살 거고, 행복할 겁니다. 내가 어지간해서는 이렇게 단언하지 않는데, 아무리 살펴봐도 두 사람의 부부생활에 걸림돌이 될 만한 게 보이지 않습니다. 참으로 훌륭한 부부가 될 겁니다. 앞길에 축복이 가득하겠죠.”

말을 마친 세자는 나와 클로에를 번갈아 안아준 다음 주례사를 마쳤다. 이걸로 공식적인 행사는 끝이다. 이후에 이어지는 일은 내려가서 찾아온 사람들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 결혼식이 끝나면 쿠르스트 변경백령으로 향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쿠르스트 산맥의 국경수비대로 끌려가면서 시작된 모든 일이 끝나게 되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