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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무신의 기억-2화 (2/298)

# 2

2. 로마라고? 그 로마?

2. 로마라고? 그 로마?

서후는 매우 당황했지만 마음을 가라앉히고 입을 열었다. 유난히 길고 길었던 잔혹한 꿈의 여파 때문인지 냉정함을 유지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여기는 대체 어딥니까? 아니 그보다 이 배는 어디로 향하고 있는 겁니까?”

그 말을 하면서 서후는 자신의 죽음을 떠올렸다. 콜로세움에서 분명 자신은 폭사 당했다. 그러니까 이게 무슨 소린가 하면 서후는 이탈리아 여행 중이었고 콜로세움 내부를 관광 중에 있었다. 그런데 웬 미친놈이 폭탄을 꺼내들더니 알라후 아크바르라고 소리친 후 누가 말릴 새도 없이 버튼을 누르는 것이 아닌가?

피하려고 했다. 피하려고 했는데 몸이 먼저 반응했다. 콜로세움이 뭔 좋은 곳이라고 갓난아이를 데리고 관람하러왔는지 모르겠지만 아이가 그 자리에 있었고 공교롭게도 그 미친 테러범과 자신이 가장 가까이 있었다.

무슨 대단한 영웅 나셨다고.. 자신이 한 행동이지만 서후는 스스로의 행동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쨌든 서후는 온몸을 날려서 놈을 미로처럼 이어진 바닥 아래로 밀쳤고 바닥에 떨어지는 충격과 함께 섬광이 번뜩이는 것을 목격했다.

그게 기억의 마지막이었다. 관광객이라도 많았으면 좀 덜 억울했을지도 모르겠다. 그 장소가 왜 하필 콜로세움이었는지도 모르겠고. 테러라는 심각한 범죄 앞에 그딴 건 별로 중요하지 않지만 말이다.

‘항우와 리처드 1세의 꿈이라..’

그건 꿈이 아니었다. 자신은 항우가 되었고 리처드 1세가 되었다. 엄밀히 말하면 항우가 되고 리처드 1세가 된 것이 아니라 어떤 가상체험을 하듯 그들 삶에 동화되어 지켜봤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겠다.

서후로서의 자각은 있었지만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그 모든 것을 겪어야만 했다. 기이한 현상을 겪고 있을 때는 참 지독한 가위에 눌렸구나라고만 생각했는데 항우와 리처드의 삶이 끝나자 꿈이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품었다. 꿈이 그렇게 길수도 없고 그토록 상세하고 생생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지독한 전장의 광기는 지금도 눈앞에 선연하다.

그 때문일까? 발에 쇠고랑쯤 찬 사실따윈 별로 대수롭지 않게 다가왔다.

‘항우와 리처드의 기억은 둘째 치고 나의 기억이 사실이라면 나는 죽은 게 확실하다. 다시 생각해도 참 어처구니없군.’

이렇게 죽을 줄이야. 돈이 많아서 이탈리아까지 여행 간 것도 아니다. 생애 첫 해외여행이었다. 그게 사후세계의 여행으로까지 이어질 줄이야. 분노보다도 허탈한 감정이 더 강했다. 어찌 보면 항우와 리처드 1세의 죽음까지 총 세 번의 죽음을 경험해본 셈이니 더더욱 그랬다.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을 강하게 인식했기 때문일까? 자신이 살아있다는 사실 자체가 황당하게 느껴졌다.

“여기가 어딘지는 나도 몰라. 바다 위 어딘가겠지. 향하는 곳? 역시 모른다. 다만 추측한다면 로마 정도가 되겠군. 배의 주인이 로마인이었으니까.”

“로.. 로마?”

이탈리아의 로마를 말하는가 했지만 일단 서후에 눈에 들어온 광경이 있었다. 철썩이는 파도소리와 함께 흔들리는 배의 구조를 보니 결코 현대의 배가 아니었다. 굳이 비교를 하자면 예전에 명작영화랍시고 방송사에서 틀어준 벤허에 나오는 배의 모습과 흡사하다랄까? 게다가 주종관계를 암시하는 주인이라는 표현과 더불어 이탈리아인이 아니라 로마인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았나?

서후는 말문을 잃었다. 로마.. 로마라고? 그러니까.. 그 로마?

서후는 혼란스러운 감정을 추스르고 다시 질문했다.

“제가 죽은 겁니까?”

그러자 흑인이 이상한 사람을 쳐다보는 눈빛으로 서후를 바라봤다.

“왜? 내가 죽은 사람으로 보이나?”

서후가 대답을 하지 못하고 멀뚱멀뚱 쳐다보자 흑인이 다시 말했다.

“이런 얼떨떨한 소년이 마르스와 헤르쿨레스의 가호를 동시에 받고 있는 사람이라고? 저명한 점성가라더니 어째 영 믿음이 가지 않는군.”

마르스? 헤르쿨레스? 로마시대인 이상 그들의 이름을 꺼내는 게 이상할 건 없지만 갑자기 그들의 이름은 왜 꺼내는 것이란 말인가?

“그건 또 무슨 소리입니까?”

“보아하니 바다에 표류하고 있었던 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모양이군.”

서후가 멍한 눈으로 드왈드를 바라보자 드왈드는 헛웃음을 터트리며 말을 이었다.

“바다에서 표류하고 있던 널 노예들을 시켜 건져낸 로마인이 배에 함께 타고 있던 점성가에게 너에 대해 알아봐 달라고 했다. 신들의 분노로 화를 입은 자라면 배에 들이는 것만으로도 같이 화를 당할 테니 그걸 알아보는 건 별로 놀라울 것도 없고. 그런데 그 점성가가 이것저것을 확인하더니 놀란 목소리로 마르스와 헤르쿨레스의 주시를 받고 있는 자라고 외쳤지. 신들의 주시를 받고도 살아남았으니 그 주시를 가호라고 여겼는데.. 음.”

서후는 이탈리아 가이드로부터 들은 것이 떠올랐다. 마르스는 본디 로마의 전쟁과 농업의 신으로 그리스의 전신 아레스와 동일시된 신이었고 헤라클레스(그리스어) 역시 헤르쿨레스(라틴어)라는 이름으로 자신들의 실정에 맞게 재구성된 신이었다. 헤라클레스는 동방으로도 전래되면서 지역특성에 따라 변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금강역사다.

‘그나저나 점성가라면 별을 보는 사람이니 마르스는 화성, 헤르쿨레스는 별자리 헤라클레스자리를 말하는 건가?’

고대인이라면 눈앞의 흑인처럼 놀라워했겠지만 서후는 화성이 어떤 것인지, 별자리는 그저 인간들이 하늘에 그린 그림일 뿐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마르스와 헤르쿨레스의 주시든 가호든 간에 우연찮게 주기가 맞아 들어간 것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별자리는 둘째 치고 마르스와 헤르쿨레스의 신화 역시 인간이 만들어낸 신화가 아닌가? 그러니 그게 뭐 대수겠는가? 현대인이 로마시대로 온 것보다 놀라울까?

“너 군신 마르스와 투신 헤르쿨레스가 누군지 모르나? 라틴어를 사용하는 것을 봐선 모를 리가 없을 텐데?”

흑인 드왈드는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는 서후에 모습에 기이함을 느끼고 질문했다. 서후는 드왈드의 질문에 자신이 지금까지 라틴어를 사용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어?”

“이거 참. 보아하니 몸만 비리비리한 게 아니라 정신도 약간 이상해 보이는데.. 이런 소년이 군신과 투신의 가호를 동시에 받았다고?”

고개를 설레설레 젓던 드왈드는 대뜸 질문을 던졌다.

“그나저나 난 드왈드다. 넌 이름이 뭐냐?”

서후는 황망한 가운데서도 입을 열어 대답했다.

“태서후..”

“뭐? 테세우? 테세우스라고? 너 그리스 사람이었냐? 아. 아니 그것보다 내가 알기로 테세우스라면 헤르쿨레스에도 비견되는 그리스 영웅으로 알고 있는데.. 그리스니 헤라클레스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너를 통해 거론되는 이름들이 어째 죄다 거창한 이름들뿐이..”

테세우스라니? 서후는 이름을 정정하려고 했지만 의미 없는 행동임을 자각하고 내버려두었다. 자신의 상황을 설명할 수도 없고 설명한들 믿기나 하겠는가? 공교롭게 이름이 비슷하기도 했으니 제 편할 대로 생각하게 내버려뒀다. 그때 배 저편에서 밑으로 걸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드왈드가 말을 멈춘 것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

삐걱 텅 삐걱

나무로 이루어진 계단이 자신을 짓누르는 존재에게 비명을 지르며 고통을 호소했다. 무생물이 비명을 지를 리는 당연히 없고 서후의 감정상태가 사물을 그렇게 바라보게 만들었다. 냉정함을 유지하고는 있지만 감정, 심리 그 모든 부분이 정상일리 만무했다.

사실상 죽음을 세 번이나 겪었고 타임슬립? 영혼이동?을 통해 전혀 알 수 없는 곳에 다다랐다. 냉정함을 유지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었다.

“바람이 죽었다! 북을 울려라!”

남자의 우렁찬 목소리가 울리자 북소리가 일정한 진동을 내며 울리기 시작했다.

둥 둥 둥 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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