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마 무신의 기억-5화 (5/298)

# 5

5. 로마라고? 그 로마?

5.

‘겁쟁이로 사는 것이 죽은 영웅보다 낫다’라는 말과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라는 말도 있다. 꼼짝없이 죽었다고 생각했는데 살아있으니 그것으로 위안을 삼고 있긴 하지만 이런 충격적인 경험을 ‘아하! 죽은 줄 알았는데 로마에 왔구나!’라고 아무렇지 않게 받아넘길 수 있을리 없지 않은가?

‘죽은 줄 알았는데 살아남았고 로마고 소년이고 노예가 될지 모를 상황이고 대충 그런 상황인가?’

서후는 눈을 감고 간략하게 자신이 처한 현실을 짚어봤다.

‘무슨 일이 발생했는지 알아내는 건 둘째 문제. 내가 최우선적으로 고려하고 해결해야 할 상황은 노예가 될지도 모르는 이 상황이다.’

로마에 대해서 잘 알지는 못했지만 노예가 어떤 존재인지는 잘 알고 있었다. 주인이 마음대로 고문하거나 죽여도 되는 존재가 노예였고 그 일을 문제 삼지도 않는 사회가 바로 로마이자 고대사회였다. 오히려 잔혹한 자들은 연회에서 그 일을 떠벌이며 자랑하기도 했다.

‘로마인의 잔혹함이야 콜로세움만 봐도.. 제길.’

콜로세움을 떠올리는 순간, 망할 놈의 테러범과 폭사한 기억이 생생하게 떠올라 절로 욕설이 흘러나왔다. 그것도 잠시, 서후의 머릿속을 스치고 가는 생각이 있었다.

‘잠깐만! 폼페이우스의 위세가 등등하다면? 시저는?’

해적주제에 정세에 박식한 편이니 서후는 드왈드에게 물어보기로 마음먹었다.

“혹 줄리우스 시저에 대해 들어봤습니까?”

“줄리우스 뭐?”

“아! 그러니까 율리우스 카이사르 말입니다.”

줄리우스 시저는 영문표기라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라 불러야 했고 역시 그렇게 말하자 드왈드가 그제야 알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 술라를 피해 소아시아로 도망쳤다는 그 카이사르를 말하는 거냐?”

드왈드는 서후의 말에 술라 펠릭스가 떠올랐다. 술라 펠릭스는 원체 유명한 작자고 수많은 학살로 로마시민들이 증오하던 인물이었기에 그가 하는 말과 행동은 언제나 이슈화되었기 때문이다. 당연히 그와 연관된 사건들도 덩달아 유명할 수밖에 없었다.

술라는 마리우스 지지자들과의 내전을 종결시키며 남은 정적 수백 명을 죽이거나 추방했는데 마리우스의 처조카이자 킨나의 사위였던 카이사르 역시 살생부에 올랐다. 카이사르는 자신의 유산과 사제직, 아내의 지참금으로 처형은 면했지만 술라가 아내 코르넬리아의 이혼을 요구하자 그것을 거부한 카이사르는 소아시아로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

드왈드의 말에 서후는 대략의 시기를 가늠할 수 있었다.

‘아직 술라가 살아있구나. 시저는 기원전 78년 술라가 죽은 후에 로마로 돌아왔다고 했으니 그 유명한 시저의 갈리아 정벌이나 삼두정치는 벌어지지도 않은 상황이다. 대략 기원전 81년에서 78년 사이에 위치한 년도겠군.’

얼추 들은 정보를 토대로 현재의 년도까지 파악하는 것에는 성공했지만 그건 별 의미가 없었다. 무슨 년도에 무슨 일이 발생한다고 꿰고 있어도 그 정보를 실제로 사용하는 일은 매우 지난한 일일 텐데 서후가 알고 있는 건 그저 큼직큼직한 사건들이 전부다. 그리고 그게 언제 어떤 식으로 발생하는지 알게 뭔가?

그나마 이 정보라도 알게 된 건 생애 첫 해외여행, 그래도 조금이라도 알고가야 더 보람차지 않겠나 싶어서 얼마간 공부 아닌 공부를 했기 때문이다. 사실 그보다는 사자심왕 리처드의 삶으로부터 로마에 대해 얻은 정보가 훨씬 더 많았다.

‘하아.. 이런 사실이 내게 무슨 의미가 있나.’

드왈드는 무슨 생각 때문인지 반색하며 그런 서후에게 되물었다.

“카이사르는 왜? 혹시 그 카이사르와 연줄이라도 닿아있는 거냐?”

“아.. 아니 그건 아니고.”

드왈드는 얼굴을 험상궂게 찌푸리며 으르렁거리듯 말했다.

“어이 꼬맹이. 무슨 꿍꿍인지는 모르겠지만 너 같은 꼬맹이를 죽이는 건 내게 일도 아니야. 나를 모욕하려는 거라면.”

드왈드 입장에선 그렇게 들렸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서후는 일단 그에게 사과했다. 안그래도 혈혈단신으로 놓인 판국에 괜히 적을 만들 필요는 없었으니 말이다.

“그럴 의도는 아니었습니다. 경황이 없어서..”

“흥! 됐다. 아까 말했듯 말이나 시키지 마라.”

*

크림색상의 토가(toga)는 언제나 데메트리우스의 마음을 들뜨게 만든다. 복잡하게 주름을 잡아야 하기에 불편할뿐더러 활동하기에도 튜니카(tunica)에 비해 훨씬 불편하지만 튜니카따위와는 비교할 수 없는 품격이 토가에 있었다.

튜니카 역시 클라비 장식으로 계급과 지위를 드러내어 착용했지만 튜니카와 달리 토가는 오직 로마시민만 입을 수 있는 권한이 있었다. 토가 비릴리스 내지 토가 푸라 라고 하는 아무 장식이 없는 토가가 바로 데메트리우스가 입고 있는 토가의 형태였다.

크림색상의 토가를 고집하는 이유는 자신의 부를 간접적으로 자랑하기 위함이다. 양털이 흰색만 있는 게 아니라 회색이나 갈색 등 다양한 색상이 섞여있기에 크림색의 토가는 여유가 있지 않고서는 자주 입을 수 없는 옷이기 때문이다.

비나 추위로부터 몸을 보호하기 위해 입는 라케르나(lacerna)나 팔리움(pallium)같은 겉옷을 착용하지 않은 이유도 바로 그 뿌듯함을 만끽하기 위함이었다.

그렇게 만족스런 표정으로 토가 비릴리스를 바라보던 데메트리우스의 표정에 언짢음이 내려앉았다. 황제나 성직자, 집정관들이 착용하는 토가 프라에텍스타나 황제나 개선장군이 착용할 수 있는 토가 피타, 그리고 황제, 점쟁이, 사제들이 예복으로 착용하는 토가 트라베아는 바라지도 않는다.

하지만 공직을 원하는 자들이 입는 토가 캔디다를 떠올리면 매번 기분이 좋지 않았다.

데메트리우스는 공직에 나갈 수 없는 해방노예였기 때문이다. 그건 마치 자신이 나아갈 수 없는 한계점과 지우고 싶은 오점을 자신 앞에 주욱 펼쳐놓는 듯한 기분이었다.

씁쓸하면서도 달콤한 포도주를 음미하던 데메트리우스는 대번에 기분이 상해서 자신의 노예 코락스를 불렀다. 그는 데메트리우스를 대신해서 노예거래를 맡고 있었다.

로마인들은 상거래를 천한 것으로 여겼다. 이는 상업이 다른 자의 돈을 가져오는 야비한 행동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이 때문인지 로마인들은 유대인들과 마찬가지로 이자를 금했다.

다만 이로 인해 속주 등에서 법망을 피한 일종의 유령회사들이 음성적으로 성행하기 시작했고 그로 인해 음성적인 거래와 거대제국을 대상으로 한 상거래를 뒷받침하기 위해 이자 지급을 허용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역시 제한했는데 기원전 88년, 이자는 법적으로 1%만 지급되도록 제정되었다.

어쨌든 부를 쌓는데 상거래만한 것이 어디 있겠는가? 그래서 로마인들은 노예를 자신의 대리삼아(노예를 해방시킨 주요 이유 중 하나, 명목상 자유민이니 꼬리를 자르기에도 좋았다.) 상거래를 실시하기 시작했다.

데메트리우스도 그런 구조 속에서 부를 쌓아 해방노예가 된 경우였고 이제는 그도 평판에 신경 쓸 시점이라 이번 거래를 마지막으로 코락스라는 노예에게 일임하고자 마음먹고 있었다.

“부르셨습니까? 주인나리.”

코락스는 자신이 거머쥔 행운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알았기 때문에 극도로 공손한 태도를 보이며 데메트리우스에게 고개를 조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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