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마 무신의 기억-10화 (10/298)

# 10

10. 화산.

10.

폼페이가 휴양지이긴 하나 이곳은 요새도시에 가까웠다. 그도 그럴 것이 폼페이 시 위로는 베수비오 산이, 아래로는 라타리 산맥이 자리하고 있었기에 이곳에 요새를 세우면 적의 포위공격에 대항하기에 용이할뿐더러 이 근방 해안선 전체를 방비하는 효과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고로 폼페이 시는 바다로부터 400m 떨어진 높은 지대에 자리하고 있었고 그 아래로 항구가 펼쳐진 모습이었다. 휴양도시 중 하나인 네아폴리스(Neapolis, 현 나폴리)처럼 해안선을 따라 형성된 도시가 아니었다.

동맹시 전쟁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라 그런지 폼페이 시를 둘러싸고 있는 성벽과 그 위에 병사들의 모습이 삼엄하기 그지없었다. 그만큼 안전한 도시라는 소리였다.

서후는 폼페이의 모습에 도시 전체가 살아 움직이는 것 같은 착각을 느꼈다. 잘 닦인 도로를 따라 사람들이 분주하게 걷고 있었고 이륜 전차나 말을 탄 사람들도 자주 지나갔다. 저 멀리 아치형의 수도교도 눈에 들어왔다.

다른 수많은 제국 중에서도 로마 제국이 가장 위대한 제국이라 일컬어지는 이유는 바로 이 도로와 수로 때문이라 할 수 있었다.

제국을 관통하는 수많은 도로는 군대이동은 물론 물류와 정보를 신속하게 교류할 수 있게 만들었다. 로마도로는 단순한 통나무길에서 포장도로까지 다양하였는데, 포장도로의 경우 잡석을 깐 노반(路盤)을 깔고 밑에 층을 두어 돌과 잡석 사이로 물이 빠져나가 진창길이 되지 않도록 막았다. 도로의 유형 역시 다양했는데 용도에 맞게 건설되고 사용되었다.

얼마나 튼튼하게 만들었는지 이탈리아의 간선 국도 중에는 로마의 가도 위에 아스팔트만 깔고 사용하는 것이 있을 정도다.

그런 도로보다도 위대하게 여겨지는 건 바로 수로다. 로마의 수도교는 경이로울 정도다.

고대의 도시는 반드시 수원지를 끼고 있다. 4대 문명의 발상지(이집트, 메소포타미아, 인더스, 황하) 모두 강을 근원으로 하고 있다는 점만 봐도 그렇다.

그러나 로마의 수로는 이 한계를 뛰어넘게 만들었다. 물이 나지 않는 곳에도 수도교만 건설하면 얼마든지 풍족한 물 자원을 공급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이건 정말 획기적인 기술이 아니라 할 수 없었다. 우기에 범람하는 홍수로부터도 안전하게 재산을 보호할 수 있었으니 그 이점은 일일이 나열할 필요도 없다.

수로를 건설하기 전 수원지로 가서 수질검사를 했으며 그 지역 주민들의 건강상태까지 조사했다. 그렇게 건설된 로마의 상수도는 공중목욕탕, 공중화장실, 분수, 사유지 등에 공급되어 다양한 형태로 쓰였고 심지어 남거나 더러워진 물은 하수도를 통해 도시 밖으로 빠져나갔다.

주로 아치형의 수도교를 떠올리기 쉬우나 대부분의 수도교는 땅 아래로 지나가게끔 건설되었다. 땅 아래로 흐르는 수도교를 검사하고 수리하기 위한 점검구도 존재했고 침전조와 거대한 급수탱크까지 존재했다.

이런 경이로운 건축물을 건설할 수 있게 만든 건 다름 아닌 로마의 건축기술 덕분이다. 초창기에는 그리스 지역보다 건축기술이 떨어졌지만 포추올리 주변의 적녹색 토양, 즉 푸테오라눔의 발견으로 엄청난 건물을 다양하게 만들어낼 수 있었다.

푸테오라눔을 석회와 반죽해서 바다에 던져 넣으면 바위보다 단단한 돌덩어리가 된다. 이 로마의 천연 콘크리트는 '포졸리나'라고 해서, 금이 가거나 훼손되면 그 부분에 규산칼슘이 생성되서 틈이 매워지는 장점까지 갖추고 있었다.(비잔틴 문명 이후 상실되었다가 1800년대 인공 포졸란 시멘트로 복원.)

바로 이 천연 시멘트로 수천 년이 지난 후에도 무너지지 않는 뛰어난 건축물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이다. 아무튼 이 도로와 수로는 로마의 혈관과 같았다.

호객행위를 하는 상인과 수많은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로 인해 떠들썩했지만 그 모든 광경보다 서후의 마음을 사로잡는 산이 있었다. 저 멀리 하늘을 향해 치솟아있는 베수비오 화산이었다. 마치 도시가 살아있는 것처럼 여겨질 정도로 생동감 넘치는 이곳을 영원히 침묵하게 만든 그 산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화려한 광장에서는 공직에 나가길 원하는 시민들이 사람들 앞에서 열띤 웅변을 펼치고 있었다. 그것을 경청하는 사람도 있었고 야유를 보내는 사람들도 있었다.

“여전하군. 이곳은.”

데메트리우스가 도시의 열광된 분위기에 활짝 웃으면서 말했다. 그 말에 베루스가 대답했다.

“아폴리나레스와 노나에 카프로티나에 축제는 지났지만 넵투날리아는 아직 준비 중이라고 합니다.”

로마는 신들의 이름을 딴 축제를 거의 1년 내내 벌이다시피 했는데 축제의 수만 근 서른 가지는 되었다. 10월, 11월을 제외하고 매달 평균 서너 개 이상의 축제를 벌였고 8월 달에는 축제가 무려 6개는 되었다. 베루스가 7월 23일에 열리는 넵투날리아를 거론한 것을 봐선 현재 7월인 모양이었다.

“그럼 적당하군.”

“넵투누스의 화를 입은 자를 구했지만 그 자를 다시 넵투누스의 축제를 기념하게끔 하신다면 넵투누스께서는 데메트리우스님에게 많은 축복을 내리실 겁니다.”

“하하하. 그게 그렇게 되나? 항해 가운데 화를 입을 일이 적어진다는 건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군. 다만 메르쿠리우스(Mercurius, 상업의 신, 헤르메스)의 기념일을 놓친 것이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로군.”

“마이우스의(5월, 여신 마이아의 달) 메르카토룸 콜레기움 역시 메르쿠리우스를 기념하는 날이었고 그때 제물을 성대하게 바쳤으니 그 점은 심려치 않으셔도 될 듯합니다.”

메르쿠리우스 제사는 3월 15일에, 메르카토룸 콜레기움은 5월 15일에 열리는 상인의 날이자 상인조합 창립기념일이었다. 로마인들 가운데는 미신을 신봉하는 사람들도 꽤 많았는데 데메트리우스가 바로 그런 인물 중 하나였다.

“하긴 그럴 수 없는 상황이었으니.. 들었나? 자네는 넵투날리아 축제를 기념하는 검투대회에 서게 될 걸세.”

데메트리우스는 자신이 제공한 검붉은 색상의 튜니카를 입고 있는 서후를 바라보며 말했다. 서후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데메트리우스는 그 모습에 기분이 상했지만 어차피 죽을 놈이니 더 신경 쓰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나름 살아남을 궁리를 열심히 하고 있겠지만 데메트리우스는 서후를 살려둘 마음이 없었다. 불안한 요소를 남기느니 그럴 바엔 죽이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고 무엇보다 귀족가의 자제가 피구덩이 속에서 처참하게 죽는 광경을 보고 싶었다. 뭐 어차피 자신이 구한 목숨 아닌가?

저 무미건조한 표정에 공포가 서리는 모습을 지켜보고 말리라. 데메트리우스는 악의서린 미소를 지었다. 그러니 그때까지는 희망을 짓밟을 필요가 없었다.

“사실 검투대회는 카푸아 쪽이 훨씬 화끈하지만 폼페이도 나쁘진 않을 걸세. 자세한 건 뭐 코락스가 안내해 줄 거야. 부디 내 재물을 가져갈 수 있기를 바라네. 코락스!”

데메트리우스의 부름에 코락스가 서후를 검투장으로 안내했다. 데메트리우스는 진한 웃음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아는가? 신들의 주시를 받은 자들은 대부분 비참한 죽음을 맞이했다는 걸. 자네의 운명은 어디까지인지 지켜보도록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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