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
26. 금화를 든 소년.
26.
나디르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서후를 살펴보다가 서후에게 대뜸 질문했다.
“이곳까지 오면서 몇 번이나 싸웠지?”
서후는 간단하게 대답했다.
“대략 열 번 정도.”
“허. 대단하군.”
그 말에 자세르가 크게 놀라워했다. 무뢰배들은 대략 3~7명까지 패거리를 지어서 돌아다닌다. 주로 다섯 명가량이다. 그 말인즉 저 작은 몸으로 50명 이상 되는 거친 사내들을 베어 넘겼다는 소리였다.
나디르는 그 사실보다도 서후의 몸에 상처 하나 없다는 것을 눈여겨보고 있었다. 표범과 사자를 죽였다고? 그것도 소년이? 허풍에 가까운 소리다. 하지만 자신의 눈으로 확인한 것은 믿는다. 몇 번을 싸웠든 좁은 골목길에서 다수의 적을 맞아 싸우면서도 상처 하나 입지 않았다면 그건 진짜다. 단순히 운으로 비벼볼 만한 수준이 아닌 거다.
야경꾼들에게 쫓기고 있는 신세니 배신할 염려도 없고 거기에 탁월한 살인기술을 지닌 소년이라. 게다가 폼페이시의 무뢰배들이 날뛸 정도로 많은 재물도 보유하고 있으니 받아들이지 않을 이유가 없다.
“야경꾼들이 널 추격하고 있으니 위험수당이 붙는다. 널 도와주다가 걸리면 우리도 위험해.”
서후는 나디르라는 자가 왜 그런 말을 꺼내는지 알아차렸다. 자신이 들고 있는 금화 전부를 나디르에게 던졌다.
철그럭.
착
나디르는 왼손으로 날아오는 주머니를 받은 다음 그 안을 살펴봤다.
“백 아우레우스라.. 충분하군. 하지만 너무 쉽게 믿는 것 아닌가?”
서후는 말없이 그를 바라봤다. 나디르는 그게 무슨 뜻인지 잘 알았다.
“좋아. 좋아. 나도 널 속일 생각은 없어. 이래 봐도 거래는 확실하게 하는 편이니까. 다만 열 번이나 싸웠다면..”
삑 삐이익 삐빅
가까운 곳에서 호루라기 소리가 울려 퍼지며 소란이 일어났다.
“사람이 죽었다!”
”이거 깡패들끼리 싸움이라도 벌어진 모양인데? 상흔을 보니 우발적 살인 같지가 않아.”
“제길. 이 미친놈들! 바빠 죽겠는데 이놈들은 왜 오늘 같은 날에 지랄이야?”
“우선 내버려 둬! 아우레우스를 훔친 소년을 찾는 게 우선이다.”
고작 소년 하나를 찾지 못해서 헤매고 있는 상황이니 꼴이 말이 아니었다. 만약 소년을 찾지 못하면 자신들이 질책을 당한다. 거의 반드시 말이다. 따라서 야경꾼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더 필사적으로 서후를 찾아 헤매고 있었다.
나디르가 서후를 바라보며 말했다.
“서둘러야겠군. 한두 명이 아니라 수십 명에 달하는 사람이 길거리 쓰러져있다면 아마 지금보다도 더 많은 병력이 풀릴 테니까. 최악의 경우엔 레기온(군단병)이 움직일지도 모르지.”
군단병이 도시에 진입하는 경우는 드물지만 집정관이 명령을 내린다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그때 자세르가 나디르에게 말했다.
“크로아카(cloaca, 하수도)로 움직여야겠군.”
그 말에 나디르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시궁창에 처박히더라도 살려면 어쩔 수 없지. 따라와.”
“포튜나께서 자네들과 함께하시길!”
자세르에 말에 서후가 담담하게 대답했다. 포튜나가 뭔지는 몰라도 행운을 빌어준다는 건 알 수 있었다.
“감사합니다.”
*
드르륵
탁
맨홀 뚜껑 같은 것을 열고 바닥에 내려섰다. 지하수도였다.
“큭.”
서후는 지독한 냄새가 코를 찌르자 저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렸다.
화르르
그런 서후의 손에는 횃불이 들려져 있었고 그건 나디르 역시 마찬가지였다.
“긴장해라. 놈들이 너를 잡으려고 하는 거라면 지하수도 역시 장악했을 테니까. 물론 야경꾼들은 지하수도에 들어서지 않았을 거다. 그러기엔 너무 고귀한 자들이거든. 하지만 이 이상 시간이 지체되면 지하수도에도 들이닥칠 거다.”
서후는 옆에서 강처럼 흐르는 오폐수를 바라보다가 자신이 처한 상황과 별개로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2천 년도 넘는 시기에 하수도라니.. 그렇다고 이곳이 수도 로마도 아닌데..’
로마에는 크로아카 막시마(Cloaca Maxima, Tarquinius Priscus의 명령에 따라 BC 600 년 경에 건설)라는 거대한 하수도가 존재했다. 로마를 거쳐 티베르 강까지 이르는 대규모 하수도였다. 당연히 로마에 비할 바는 아니나 폼페이의 하수도 역시 놀람을 가져다주기에 충분했다.
횃불에 일렁이는 그림자는 빠르게 어디론가 향하고 있었다.
뚝 뚝 뚝
천장에서는 하수관을 따라 오폐물이 연신 떨어지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서후의 머리에 직통으로 떨어지는 경우도 여러 번 있었다.
그렇게 악취가 나는 하수도를 나디르를 따라 제법 이동했을 때 즈음 커다란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큭큭큭큭. 내가 뭐라 그랬냐? 서두르는 건 목숨을 위협받는 사냥감이지 사냥꾼은 서두르지 않는다고.”
“두목 말이 맞았습니다.”
“크크크.”
“이 썩은 내를 참은 보람이 있군요.”
“곧 금화로 목욕을 하게 될 테니 조금만 참아라.”
“아무렴요. 아무렴. 하하하하. 이곳에서는 시체 처리하기도 편하니 역시 두목은 대단하십니다.”
하수도의 길은 통행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보수공사를 위해 한 사람이 지나다닐 정도의 길이 양옆으로 나 있을 뿐이다. 그런 좁은 길 위에 얼핏 잡아도 20명에 달하는 자들이 검을 들고 나디르와 서후의 앞을 막아섰다.
나디르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이건 예상하지 못했군.”
장애물이 없을거라 생각한 건 아니다. 다만 많아야 7명 수준이라 생각했는데 20명이라니. 이건 꽤 위험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네놈은 자세르와 다니던 킬리키안이로군. 킬리키아 놈이 감히 우리의 금화를 탐내다니.. 후에 자세르에게 책임을 물어야겠어.”
샤악
나디르는 자신의 검을 뽑아 들면서 뒤에 선 서후에게 말했다. 그의 검은 페르시아인들이 사용하는 완만하게 칼날이 휜 삼쉬르(Samshir)와 매우 유사한 형태를 지니고 있었다.
“쯔. 도망쳐라. 죽는 것보다는 노예로 사는 게 더 나을 거다. 어떤 자에게 밉보였는지 모르지만 자세르가 말한 것이 사실이라면 널 죽이려는 건 아닐 테지. 반면 이놈들은 널 반드시 죽일 거다.”
서후가 말없이 그를 바라보자 나디르가 입을 열었다.
“그런 눈으로 볼 것 없다. 거래를 확실하게 하는 편이지만 목숨까지 걸면서 지키는 사람은 아니니까. 다만 네가 살아남아야 놈들도 손에 넣은 금화를 뱉을 것 아닌가?”
서후를 쫓아간답시고 병력이 분산되면 나디르 자신에게도 이득이었고 말이다.
스피로스는 그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도망치지 못하게 막아! 소년이 야경꾼에게 잡히면 금화가 아니라 우리 피로 목욕하게 될 거다!”
그러자 길 위에 서 있던 저들 가운데 반수 정도가 하수도로 뛰어들었다. 몸이 완전히 잠길 정도로 깊은 구역이 아니었기에 건너고자 한다면 충분히 건널 수 있는 수위였기 때문이다.
첨벙 첨벙
“이 새끼들이! 이 고생을 하게 만들어?”
발에 생생하게 전해지는 오물의 느낌에 오만상을 찌푸리던 무뢰배들은 그 분노를 서후와 나디르에게 풀었다.
서후는 품에서 두 개의 단검을 꺼내든 다음 나디르에게 말했다.
“노예가 되느니 차라리 죽겠다.”
“큭큭. 그래? 그럼 어디 실력 좀 보지.”
나디르는 그 말과 함께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무뢰배의 손을 베고 그대로 그의 목을 베어냈다.
“컥커컥”
첨벙
목이 베인 사내는 목을 붙잡은 채 그대로 하수도에 떨어졌다.
“이 새끼들이! 죽어!”
그때 서후가 하수도를 건너오는 자들을 향해 들고 있던 두 개의 단검을 집어던졌다. 대낮에도 피하기 어려웠을 텐데 횃불이 아니면 앞을 볼 수조차 없는 어둠 속에서 저들이 피할 수 있을 리 만무했다.
컥 커컥
서후는 저들이 쓰러지기도 전에 이미 하수도로 몸을 날려 다시 공중에서 두 발로 두 명의 도적들의 면상을 으깨놓았다. 그리곤 쓰러진 자들에게서 다시 검을 뽑아냈다.
퍽 퍼퍽
첨벙 첨벙
급소를 타격 당한 놈들은 경직된 채 그대로 앞으로 쓰러졌다.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상황에서 숨을 쉴 수 없는 물속에 처박혔으니 살아남기 어려울 것이다. 남은 동료들이 그런 것을 고려할 정도로 사려 깊은 자들도 아니었고 말이다.
나디르와 서후는 폭풍처럼 저들을 베어 넘겼다. 그 모습에 스피로스는 뭔가 일이 잘못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자세르와 함께 다니던 킬리키안이야 잘 싸울 것이라 예상하긴 했지만 저 소년은 뭐란 말인가? 그야말로 일격필살의 살인병기가 따로 없었다.
물론 킬리키안을 하수도에서 만날 거라 예상한 건 아니지만 킬리키안 한 놈을 상대하기엔 충분한 병력이었다. 그 증거로 킬리키안 역시 자신의 죽음을 암시한 말을 뱉지 않았나? 그런데..
“어.. 어.”
촤아아악
자신의 수하를 베고 어느새 자신의 앞까지 다가온 나디르가 미친 듯이 적을 베어 넘기는 서후를 힐끗 바라보며 스피로스에게 말했다.
“오늘 예상하지 못한 일이 많이 벌어지지? 사실 나도 그래.”
“자.. 잠깐! 비.. 비켜 줄 테니..”
“늦었어. 진작 그랬어야지.”
쉬이익
날카로운 파공음과 함께 스피로스는 자신의 시야가 온통 붉게 변하더니 이윽고 깜깜하게 변하는 것을 느꼈다. 제길. 이건 계획에..
털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