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
33. 정의의 대가.
33.
키케로는 이마에서 흘러내리는 땀을 천으로 훑어내며 좌중을 살폈다. 집정관 메텔루스 피우스와 재판관들, 수많은 청중들의 시선이 일제히 자신을 향하고 있었다.
키케로는 있는 힘껏 소리를 끌어 올려 연설을 시작했다. 비록 그 목소리가 듣기 좋게 정돈되지는 않았지만 날카롭고 우렁찬 목소리가 바실리카를 울렸다.
“존경하는 집정관님과 판사, 그리고 시민 여러분. 오늘 이 신성한 법정에 저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가 선 것은 한 남자의 사연을 알려드리기 위함입니다.”
그러자 청중 가운데 몇 명의 사내들이 소리쳤다.
“그는 죄인이다!”
“재산을 움켜쥐려고 아버지를 살해한 중죄인이다!”
“옳소. 변호할 것도 없다. 죽여라!”
그들의 외침에 청중은 웅성거리며 저마다의 의견을 냈다. 대부분 앞서 외친 자들의 의견과 비슷한 내용이었다.
하지만 키케로는 조금도 당황하지 않았다. 저들은 로스키우스 아메리노가 죽기를 바라는 자들이 바람잡이로 세운 이들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런 공작이 이어질 것도 예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키케로가 다시 큰 소리로 외쳤다.
“맞습니다. 프로 로스키우스 아메리노가 자신의 아버지 섹스투스 로스키우스를 살해한 장본인이라면 그는 반드시 죽어야 합니다. 단!”
그는 말을 멈추고 날카로운 눈빛으로 좌중을 살폈다. 그의 그러한 태도는 좌중으로 하여금 그의 말에 더욱 빠져들게 만들었다.
“그가 유죄라고 판결 났을 때 그러합니다. 로스키우스 아메리노!”
키케로는 두려움에 찬 표정으로 안절부절못하는 로스키우스를 바라봤다.
“예? 예.”
“당신은 크리소고누스의 토지매매에 대해 부당하다고 소송을 넣었습니다. 맞습니까?”
“예. 예. 맞습니다.”
“왜 소송을 넣었습니까?”
“아.. 아버지의 토지는 250 탈렌트의 가치가 있습니다. 그런데 크리소고누스 그자는 2000 데나리우스에 토지거래를 완료했습니다. 이.. 이는 부당합니다. 무엇보다 아버지의 이름이.. 그 금지 목록에서 지워진 이상 그 재산상속권은 제게 우선권이 있고 토지매매의 결정권 역시 제게 있습니다. 그.. 그래서!”
술라는 정적들의 이름을 리스트를 만들어 기록했는데 그 금지목록에 포함된 이들은 사형 내지 모든 재산을 몰수당했다. 당연히 이 과정에서 온갖 비리가 발생했음은 말할 것도 없다.
로스키우스 아메리노의 억울함을 알고도 감히 사람들이 그를 도우려 하지 않은 것은 자신의 가문과 자신 역시 금지목록에 포함될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이리떼들이 달려들어 자신과 자신 가문을 무참하게 찢어버릴 것이다. 고로 그들이 비겁하다기보다는 그게 현실적인 판단이었다.
“잘 들었습니다.”
키케로는 늘어지려는 그의 말을 단호하게 끊어냈다. 그런 뒤 다시 좌중을 바라보며 말했다.
“길게 말할 것 없이 로스키우스 아메리노가 섹스투스 로스키우스를 죽였다는 근거가 희박합니다. 첫째, 그에겐 그럴 동기가 없습니다. 합법적으로 재산을 상속받을 수 있는 그가 굳이 아버지를 살해하는 파렴치한 짓까지 하면서 재산을 얻을 이유가 어디 있을까요? 먼저 그는 재정적으로 안정이 되어있을뿐더러 재정적 파탄에 몰려있다고 해도 자신의 아버지를 살해하는 일이 가당키나 하겠습니까? 로스키우스 아메리노를 보십시오. 시시비비를 가리는 법정도 두려워 안색이 창백하게 질린 저자가 아버지를 살해할 수 있는 자로 보입니까? 게다가 얼마 전까지 그의 아버지는 높으신 분의 금지목록에 포함된 이름이었죠. 금지목록에 포함된 자의 재산은 국가의 소유입니다. 아무것도 얻지 못할 것이 뻔한데 그가 왜 아버지를 살해하겠습니까?”
그러자 다시 청중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키케로의 말이 맞다. 그는 합법적인 상속권자다. 재정적으로도 풍족하다. 그런 그가 왜 아버지를 살해한단 말인가?
“허튼소리! 섹스투스 로스키우스는 금지목록에 포함되기 전에 살해당했다. 그러니 그의 살해동기는 충분히 성립될 수 있다.”
바람잡이의 목소리가 다시 울려 퍼졌다. 그러나 키케로는 도리어 진한 미소를 띠며 입을 열었다.
“맞습니다. 섹스투스 로스키우스가 금지목록에 포함되긴 했으나 그는 금지목록에 포함되기 전에 죽임을 당했고 최근에 들어서야 그 금지목록에서 풀렸군요. 그리고 아주 공교롭게도 크리소고누스는 그런 그의 토지를 값싼 가격에 매입했고 말입니다. 피소(被訴)된 대로 로스키우스 아메리노가 제 아버지를 죽였다면 자신의 몫도 찾아 먹지 못하는 실로 멍청한 사람이 아닙니까?”
키케로는 어조를 더욱 날카롭게 가다듬었다. 지금까지는 방어에 치중했다면 이제는 공격을 퍼부을 시점이다. 적을 함락시키는 방법은 대개 방어보다 공격이 옳다. 적절하게 방어했으니 이제는 적진을 함락시킬 시간이다.
“섹스투스 로스키우스는 로마의 한 연회에서 돌아오다가 무뢰배들에게 살해당했습니다. 그런데 이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그와 친족관계 있던 로스키우스 마구누스 역시 그날 연회에 같이 있었다는 사실 말입니다. 제가 알아보니 실로 공교롭게도 그는 섹스투스 로스키우스와 토지분쟁으로 얽혀있는 관계였습니다. 그리고 섹스투스 로스키우스가 살해되었다는 소식을 알린 자는 아이러니하게도 로마에 있던 사람도 아니라 아메리아에 있던 로스키우스 카피토였습니다. 이 자도 섹스투스 로스키우스와 분쟁관계에 있던 친족이었죠. 참으로 공교롭지 않습니까?”
키케로의 날카로운 발언에 좌중은 쥐죽은 듯이 고요해졌다.
“여러분도 지금 들어서 알겠지만 섹스투스 로스키우스의 이름은 그가 죽은 후에 금지목록에 포함되었습니다. 죽기 전이 아니라 죽은 후라는 점을 유의해주시기 바랍니다. 왜 죽은 후에 금지목록에 이름이 포함되어야 했을까요? 대체 왜? 금지목록에서 섹스투스 로스키우스의 이름을 제외되었을 때는 왜 그들이 아니라 크리소고누스라는 해방노예가 이득을 본 것일까요? 그들과 크리소고누스는 대체 어떤 연관이 있는 걸까요?”
키케로는 적진을 점령한 정복자의 미소를 띠며 말을 이었다.
“로스키우스 아메리노. 이자가 바로 섹스투스 로스키우스의 합법적 후계자이기 때문이지요. 더는 말하지 않겠습니다. 그럴 필요가 없을 것 같군요.”
키케로가 판단한 일의 전말은 이러했다.
로스키우스 마구누스가 섹스투스 로스키우스를 죽이고 로스키우스 카피토와 힘을 합쳐 재산을 가르기로 했다. 하지만 그러기엔 걸림돌이 있었다. 합법적 후계자인 그의 아들 로스키우스 아메리노 말이다.
그들은 모든 재산을 가로채기 위해 술라의 해방노예 코르넬리우스 크리소고누스에게 말을 전해 금지목록에 섹스투스 로스키우스를 포함시켜 그의 재산을 국고로 빼돌렸다. 술라가 자신의 정적을 제거하거나 자신에게 이득이 되는 행동을 하면 적절한 보상을 내려주기에 그것을 기대하고 한 행동으로 보였다.
자신들이 예상한 보상보다 작기는 했지만 어쨌든 보상을 얻었는데 로스키우스 아메리노가 부당함을 이유를 들어 소송을 넣은 것이다. 일이 깔끔하게 되려면 그가 죽어야 한다. 아울러 아버지를 죽인 죄까지 뒤집어쓰고 죽는다면 이보다 깔끔할 수가 없다. 로스키우스 아메리노가 누명을 쓰게 된 이유다.
이 모든 일을 파악하고도 키케로가 이쯤에서 말을 멈춘 것은 더 이야기를 꺼내게 되면 술라를 직접적으로 적대하는 결과를 낳기 때문이었다. 누명을 벗기는 것에 족하다. 게다가 자신이 이미 술라를 거스르는 표현을 많이 썼다. 그 증거로 그와 한편인 집정관 메텔루스 피우스의 표정이 썩 좋지 않았다.
재판의 결과는 키케로의 변론이 끝난 후 이미 정해진 것과 같았다. 당연히 프로 로스키우스 아메리노는 무죄로 판결이 떨어졌다. 그리고 그 결과 술라의 압제에 대항해 목소리를 높인 자로 키케로는 로마에서 크게 명성을 떨치게 된다.
하지만 키케로는 바실리카에서 돌아오자마자 식은땀을 흘리며 자신의 시종 티로에게 말했다.
“여행준비는?”
“이미 모두 완료했습니다.”
“서둘러 그리스로 가자. 거기서 요양도 할 겸, 나의 부족한 웅변술과 철학을 가다듬어야겠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술라의 보복을 피해 그리스로 간다는 걸 키케로는 물론 티로도 모르지 않았다. 아니 조금이라도 식견이 있는 자라면 오늘의 재판으로 명성을 크게 얻을 키케로가 왜 로마를 떠나는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동기야 어쨌든 정의를 수호했건만 그 대가는 목숨의 위협이었다.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
촤아아아
서후는 바람을 맞으며 광활하게 펼쳐진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몸은 좀 괜찮. 뭐.. 괜찮은 것 같군.”
나디르는 상처 하나 없이 매끈한 서후의 몸을 보고 내심 혀를 내두르며 입을 열었다. 그와 전투를 치른 자가 한두 명이 아니었거늘.. 황당할 따름이었다.
하지만 서후에겐 간단한 일이었다. 백 명이든 천 명이든 혹 만 명이라 할지라도 한 번에 그를 둘러쌀 수 있는 숫자는 4~10명 정도다. 단순히 10명가량을 상대하는 정도가 아니라 매우 유기적이고 복합적인 형태로 전투가 이루어지겠지만 결국은 그것의 반복이다.
저들이 정규병이었고 창이나 활과 같은 무기가 동원되었다면 말이 달라지겠지만 저들은 도적떼에 불과했고 서후는 능히 그것을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을 지녔다. 그리고 그 결과는 보다시피 저들의 몰살이었다.
서후는 다가온 나디르를 힐끗 바라본 뒤 다시 바다를 보며 말했다.
“알고 있었나?”
“거센 파도 앞에 작은 조각배는 부서지기 마련이다.”
마음에 들지는 않아도 혼자 뭘 어떻게 할 수 있는 일들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있었다. 나디르의 모습이 현실적인 대처방법이다. 따라서 서후는 그런 나디르의 태도를 나무라지 않았다. 다만 자신은 카르타고와 비슷한 일이 벌어지면 동일하게 행동할 것이다. 그 일로 죽게 되더라도 말이다.
“카르타고에 눌러앉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그럴까도 생각해봤지. 하지만 네가 죽인 히밀코는 푸뉘쿠스인이야. 우티카의 권력층과도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자였다. 그렇기에 카르타고에서 막강한 권력을 휘두를 수 있었던 것이기도 했고. 내가 네 덕에 그 자리에 앉는다면 나쁘진 않겠지만 쯔. 좋지도 않지.”
일단 자신의 힘으로 쟁취한 자리가 아니다. 또한 자신은 킬리키아인이라 히밀코처럼 우티카와 긴밀한 관계를 구축할 수도 없다.
무엇보다 카르타고가 폐허라고 해도 결국 이권이 몰릴 수밖에 없는 지역이다. 로마가 언제까지고 내버려 둘 것 같지도 않고 그전에 앞서 패권을 잡기 위해 곧 암흑가들의 전쟁이 치열하게 벌어질 것이다. 서후가 곁에 있다면 모를까? 자신 혼자 힘으로는 그 파도에 휩쓸려 사멸할 확률이 매우 높았다.
따라서 재물과 구역을 재분배하고 저들이 질시하지 않을 정도의 재물을 챙겨 카르타고를 떠났다. 누가 권력을 잡던지 훗날 자신들을 적대하지 않을 수 있도록 말이다. 서후가 극심한 두려움을, 자신은 기회를 줬으니 경원시하며 최소한 먼저 적대하려 들지는 않을 것이다.
인신공희는 앞으로 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말을 남기긴 했으나 그건 저들의 선택이다. 다만 저들의 기색을 볼 때 당분간 토페트에는 얼씬도 하지 않을 것으로 보이긴 했다. 그게 얼마나 갈지 모르겠지만.
“그런가?”
서후의 무미건조한 대답에 나디르는 그를 가만히 바라봤다.
“폭풍이 덮치지 않는다면 이삼일이면 피티우사에 도착할 수 있다. 다만 네가 폭풍이니 또 다른 폭풍이 다가올 것 같지는 않군.”
나디르는 의미심장한 발언을 남기고 그를 혼자 내버려 뒀다. 나디르를 제외하고는 그에게 말 하나 건네는 이가 없었다. 그저 두려운 눈빛으로 힐끔거리며 서후를 바라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