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마 무신의 기억-61화 (61/298)

# 61

61. 붉은 해전. --- 유료연재 시작입니다.

61. 붉은 해전.

팅기스로 돌아온 서후는 세르토리우스와 만남을 가지고 있었다. 케이프 스파르텔의 아래로 이동하니 암갈색의 울퉁불퉁한 동굴이 서후의 눈앞에 펼쳐졌다. 서후는 횃불을 들고 말없이 동굴로 진입하는 세르토리우스의 뒤를 쫓았다.

“헤르쿨레스의 동굴이라더군. 헤스페리데스의 정원에서 황금사과를 얻기 위해 헤르쿨레스가 잠시 머물다 간 곳이라고도 하고 그 헤스페리데스의 정원으로 가는 길을 막고 있는 거대한 산을 가르면서 카다스 해협과 함께 생성된 동굴이라고도 하더군. 신화를 말하지 않는 주민들은 이 동굴이 그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깊다고 말하며 그 가운데 어떤 이들은 지하에 카다스 해협을 가로지르는 길게 이어진 길이 있다고 믿기도 한다. 뭐 어쨌든.”

세르토리우스는 횃불로 동굴의 벽면을 휙휙 살펴보다가 묵묵히 서 있는 서후에게 말했다.

“네 생각은 어떠하냐?”

“제게는 그냥 아버지와 함께 처음 보는 동굴일 뿐입니다.”

세르토리우스는 그 말에 벽을 바라보던 시선을 서후에게 완전하게 돌린 다음 미미한 미소를 띠며 입을 열었다.

“보고를 들었다. 수고가 많았다.”

“아닙니다.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부분은..”

“위기 너머의 일을 예측하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움직이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대개는 문제 그 자체에 절망하며 좌절할 뿐이지. 그러니 네 조언을 들어보고 싶구나.”

“송구하지만 막강한 로마군을 막을 방책에 대해선 딱히 떠오르는 것이 없습니다.”

“그래도 육상전보다는 해전이 나을 것이라 여기고 적의 동태를 파악하기 위해 여러모로 예비한 네가 아니냐?”

“아군 병력이 워낙 열세이고 병력을 이 지역에서 보충한다고 해도 로마군을 상대하기는 어려우니 해전이 나을 것이라 여겼습니다. 배를 침몰시킬 수 있다면 많은 수의 병력을 수장시킬 수 있으니 최선까지는 아니더라도 차선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해군력 역시 적이 강하다는 점이겠지.”

“그렇습니다. 아군이 다수의 적을 상대하려면 폭이 좁고 수심이 비교적 낮은 카다스 해협에서 상대하는 것이 좋다고 여겼지만.”

“그냥 그대로 맞닥뜨려서야 육지전의 양상이나 다를 바가 없는 결과가 벌어지겠지. 저들의 배가 아군의 배보다 강력하니 오히려 아군이 몰살을 당할 수도 있는 노릇이고.”

“그렇습니다. 그렇다고 육전으로 이끌 수도 없는 노릇이니 현재로선 딱히 떠오르는 방법이 없습니다. 송구합니다.”

“네가 송구할 부분은 아니다. 누구라도 너와 같은 결론에 다다를 테니까. 나 역시 네가 얻은 정보를 듣기 전에는 비슷한 결론에 다다랐다.”

서후는 그 말에 눈을 빛내며 세르토리우스에게 물었다.

“방법이 있으신 겁니까?”

“카이우스 안니우스 그자가 병력을 이끌고 이곳으로 향한다면 방도가 없다. 비록 그가 기책에 능한 자는 아니나 반드시 이길 수 있는 전투에서 패배할 정도로 무능한 자가 아니니까. 하지만 다행히 술라의 견제가 우리의 숨통을 열어줬어. 나를 항상 견제하던 술라에게 이런 식으로 도움을 받게 될 줄이야.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지.”

서후는 세르토리우스 말에 문득 한 사람의 이름이 떠올랐다.

“아우렐리우스 코타를 염두에 두고 계신 겁니까?”

세르토리우스는 횃불 아래서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서후에게 대답했다.

“바로 보았다. 아우렐리우스 코타. 그자라면 방법이 있다. 코타 역시 무능한 자는 아니나 그는 명예욕과 권력욕이 강한 사람이다. 게다가 그는 약자를 경시하는 태도를 은연중에 지니고 있지. 코타에게 나는 발가락으로도 짓눌러 버릴 수 있는 나약한 존재에 불과할 것이다. 더욱이 아군이 처한 절대적 열세인 이 상황 역시 그의 방심을 이끌어내기에 충분할 것이야.”

서후는 그제야 세르토리우스가 무슨 전략을 쓰려는지 알아차렸다.

“유인책을 쓰려고 하시는 겁니까? 그것도 직접 미끼로 나서겠다는 말씀이십니까? 너무 위험합니다.”

“위험하지 않으면? 안전하게 도망이라도 치라는 말이더냐? 그러는 너는 왜 위험한 줄 알면서도 목숨도 아랑곳하지 않고 몸을 던졌느냐? 승리를 거머쥘 수 있는 길이 거기 있기 때문이 아니었느냐?”

“하지만!”

“어차피 이번 전투에서 승리를 얻지 못한다면 나의 운명은 여기까지인 것이다. 또한 먹음직스러운 미끼를 던져야 대어가 그것을 물지 않겠느냐?”

“······.”

서후가 침묵을 지키자 세르토리우스는 그의 어깨에 손을 가져간 다음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

“군단을 네게 맡기겠다.”

서후는 그럴 수 없다는 듯 강경한 어조로 말했다.

“그럴 수는 없습니다. 안 그래도 수적 열세에 처해있는데 그럼 저들을 무슨 수로 상대하시겠다는 말씀이십니까? 또한 군단병이 아니라면!”

“상대하지 않는다. 그것이 나의 전술이다. 나의 전술은 네가 얻은 정보를 바탕으로 한 것이다. 네가 얻은 정보가 거짓이더냐?”

“그건 아닙니다. 하지만!”

“나는 퀸투스 세르토리우스다. 나의 이름을 이을 네가 있다고 해서 이대로 순순히 죽어줄 내가 아니야.”

서후는 그의 결심을 돌릴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침묵을 지켰다.

“······.”

“헤르쿨레스 동굴이라. 신화가 사실인지 아닌지 그걸 누가 알 수 있으랴? 또한 이 동굴에 대한 여러 소문들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나 누군가에겐 이 모든 것이 틀림없는 사실일 것이다. 이 동굴의 이름이 아예 헤르쿨레스 동굴이라 명명되었듯 말이야. 마찬가지다. 이 전투를 시작으로 세인들은 세르토리우스의 이름을 우러러볼 것이다. 실제로는 약해도 저들은 강하게 볼 것이고 실제로는 보잘 것 없어도 저들은 우리를 두려워 할 것이다. 그리고 결국은 그것이 사실이 될 것이다. 반드시 그렇게 만들 것이야.”

세르토리우스는 그 말과 함께 횃불을 동굴바닥에 집어 던진 다음 어둑해진 가운데 서후를 바라봤다. 서후는 그의 형형한 눈빛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반드시. 승리하겠습니다.”

“그래. 그래야지. 하하하하하.”

세르토리우스는 동굴이 떠나가라 화통한 웃음을 터트렸다.

*

아우렐리우스 코타가 팅기스를 향해 해군을 움직였다는 소식을 듣기 무섭게 세르토리우스는 보유하고 있는 대부분의 3단 갤리선을 대동하고 알보란해로 향했다.

알보란해는 히스파니아와 아프리카 사이에 존재하는 바다로 카다스 해협과 지중해 사이에 자리한 바다이기도 하다. 대서양, 카다스 해협, 알보란해, 지중해 순이라고 보면 되었다.

세르토리우스가 거느린 트라이림의 숫자는 서른 척에 달했다. 3단 갤리선의 노는 170개 정도였기에 다시 말해 노잡이의 숫자만 5100명에 달한다는 이야기가 된다. 참고로 5단 갤리선, 퀸퀴림의 경우엔 270개에 달했다.

어쨌든 천 명가량의 군단병이 전부였던 세르토리우스가 짧은 기간 동안 거느리기엔 상당한 숫자가 아닌가? 5100명의 노잡이를 무슨 수로 구했단 말인가?

하지만 가만히 살펴보니 노 대부분이 배 안으로 들어간 채 전혀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그 대신 바람을 받은 돛이 찢어질 듯 팽팽하게 당겨진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세찬 바람을 받으며 다소 긴장한 표정으로 주변을 바라보던 사비누스는 세르토리우스에게 입을 열었다.

“레가투스께서 세운 카다스 해협을 이용한 전략이 탁월하니 지금이라도 배를 돌려서..”

“그럴 수 없다. 저들의 진격을 한꺼번에 허용한다면 그건 결코 효율적인 계책이 될 수 없다. 그러니 진실 같은 거짓으로 놈들의 눈을 현혹시키는 일은 반드시 필요하다. 저들이 효과적으로 속아 넘어가기 위해선 나 세르토리우스의 존재 역시 필수적이고. 그러니 더는 말을 말라.”

사비누스는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그나저나 준비는 완료했겠지? 또한 믿을 만한 자들로 선별했을 테고.”

“물론입니다. 이번 임무에 많은 보상을 내걸었고 믿을만한 자들로 선별했으니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임무를 완수할 것입니다.”

세르토리우스는 굳은 표정으로 세차게 불어오는 바닷바람을 느꼈다. 아스칼리스군이 비축한 식량과 재물의 덕을 크게 봤다. 다시 말해 이건 자신의 아들, 테세우스가 만들어준 절호의 기회다. 이 기회를 놓쳐선 곤란하다. 반드시 이번 전투에서 승리해야 한다.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다. 세르토리우스는 단호한 표정으로 말했다.

“지금쯤이면 알보란해로 들어섰을 것이다. 적을 발견하면 작전대로 진형을 정렬할 필요도 없이 그대로 돌격해라. 지금의 기세와 속력을 잃지 않게끔 적을 만나는 순간까지 전속력으로 항해한다. 말했지만 내가 이 배에 있음을 적들이 명확하게 알 수 있게끔 하라. 반드시!”

사비누스는 긴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

뿌우 뿌우우

밤이라 선장실에서 설핏 잠이 들었던 아우렐리우스 코타는 요란한 소음에 잠에서 깨어났다. 그가 깨어나기 무섭게 문을 열고 들어오는 자가 있었다.

“레가투스! 전방에 적입니다. 야밤이라 보이지 않았는데 트라이림 서른 척가량이 빠른 속도로 아군의 선단을 향해 돌진하고 있습니다.”

“뭐라?”

아우렐리우스 코타는 자신의 검과 투구를 들고는 부랴부랴 병사를 따라 갑판으로 올라갔다. 주변을 살펴보던 아울렐리우스 코타는 이미 상당히 근접해 있는 적의 선단을 바라보고 성을 내면서 소리쳤다.

“적이 이렇게 가까이 올 때까지 발견하지 못하고 무얼 한 것이야?”

“밤안개가 자욱한 데다가 저들이 별다른 불빛도 없이 항해한지라.”

야밤에 불빛도 없이 항해했다고? 그 무슨? 아우렐리우스 코타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반문하려고 했지만 자신이 보기에도 저들에게선 어떤 불빛도 발견할 수 없었다. 이곳의 수심이 깊긴 하나 암초가 아예 없는 것도 아닌데 걸리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저런 미친 짓거리를?

하지만 아예 불빛이 없는 건 아니었다. 한 척의 배만은 환하게 불을 밝히고 있었다. 그리고 아우렐리우스 코타는 오래 지나지 않아 저 멀리 새겨진 배의 문양과 위로 높게 솟은 군단의 상징을 알아봤다.

“퀸투스 세르토리우스!”

“예?”

“이런 머저리들 같으니라고! 이들은 퀸투스 세르토리우스의 군대다. 어서 저 배를 향해 총공격을 실시하라! 어서!”

부관은 미심쩍은 마음이 들었지만 아우렐리우스 코타의 성난 기세에 곧바로 주변의 배들에게 신호를 보냈다. 다른 배에 탑승한 지휘관들도 그 배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아봤는지 미처 신호가 떨어지기도 전에 전속력으로 그들을 향해 항해하기 시작했다.

조용하던 바다가 우렁찬 북소리와 트럼펫, 병사들의 고함으로 산산이 깨어졌다.

“와아아아아”

둥둥둥둥

퀸퀴림 20척과 트라이림 30척이 당장에라도 세르토리우스군을 부숴버릴 것처럼 매서운 기세로 몰아쳤다. 반면 세르토리우스군 쪽에서는 별다른 함성도 울려 퍼지지 않았고 근접전투 시 거의 반드시 사용되는 노들 역시 배 안으로 들어간 채 여전히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로 인해 아우렐리우스 코타의 군대는 더욱 의기양양하게 저들을 향해 배를 몰았다. 진형 따위는 고려하지 않았다. 아군의 군선이 저들을 압도하고 있는 데다가 저들 역시 진형을 아랑곳하지 않고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

“레가투스!”

사비누스가 다급한 목소리로 세르토리우스를 불렀다. 하지만 세르토리우스는 냉정한 표정으로 전장이 될 바다를 바라보다가 외쳤다.

“돛을 접고 속도를 줄여라!”

그러자 세르토리우스의 배에서 일제히 노가 나오더니 북소리와 함께 진행하던 방향 반대로 노를 젓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갑판에서는 팽팽하게 펼쳐져 있던 돛이 순식간에 걷어졌다. 그러자 선두에 서 있던 세르토리우스의 배는 다른 트라이림보다 뒤로 쳐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아우렐리우스 코타가 미친 듯이 소리쳤다.

“놈이 도망치려고 하지 않나? 놈을 추격해!”

그도 세르토리우스가 자신의 군대를 유인한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고작 서른 척의 배로 무얼 할 수 있단 말인가? 심지어 저들의 배 위에는 병사들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렇게 어리석은 놈을 봤나? 이런 놈을 조심하라고 그토록 신신당부했단 말인가? 카이우스 안니우스 그자는 역시나 자신의 성공을 경계하는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몰아쳐라! 몰아쳐!”

이미 승기를 잡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가 더 명령을 내릴 것도 없이 그의 모든 선단이 적들의 선단을 향해 거침없이 나아갔다.

그때 적의 거의 모든 배에서 불길이 치솟기 시작했다.

화르르르.

“부.. 불?”

“놈들의 배에 불이 붙었다.”

아무리 나무로 만든 배라고 해도 불에 잘 타지 않게끔 처리했을 텐데 어찌 저렇게 쉽게 불에 붙는단 말인가?

그러나 피하기엔 어차피 이미 너무 늦었다.

“젠장! 뚫고 나가!”

배를 얼마 잃더라도 그대로 밀어붙이면 놈을 잡을 수 있다. 아우렐리우스 코타는 눈앞에 거세게 일어나는 불길 따위 아랑곳하지 않고 병사들에게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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