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마 무신의 기억-64화 (64/298)

# 64

64. 불의 아들.

64. 불의 아들.

콰아아앙

육중한 충돌이 일어남과 동시에 서후가 탄 퀸퀴림이 바다 위에서 출렁였다.

서후는 무심한 표정으로 흔들리던 배 위에서 균형을 잡다가 외쳤다.

“호라티우스!”

“예!”

“가자!”

“전군 돌격!”

“와아아아!”

곧 아우렐리우스 코타의 함선을 향해 사다리가 내려졌고 스쿠툼과 글라디우스를 든 백여 명의 병사들이 일제히 진격하기 시작했다.

챙 채챙 챙

서후는 날렵하게 생긴 한 자루 검을 들고 주변을 살폈다. 아우렐리우스 코타의 위치를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그때 세르토리우스의 함선 역시 코타의 함선을 들이받았다.

콰아아앙

콰지지직 콰직

그 충격에 코타의 퀸퀴림이 또다시 사정없이 부서졌다.

“돌격하라!”

세르토리우스의 우렁찬 목소리와 함께 사기충천한 그의 호위대가 함성을 지르며 코타의 함선 위로 쇄도했다.

“우아아아아!”

코타의 병사들 역시 정예병이었지만 전황이 크게 불리하다고 여겼기에 그들의 움직임은 크게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코타는 그 가운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병사들을 독려했다.

“겁먹지 마라! 여전히 우리 군이 놈들보다 우세하다. 배에 올라선 저놈들을 모조리 죽여라!”

쿵 쿵

코타군은 말없이 진형을 짜고 스쿠둠에 칼을 부딪쳐 대답했다. 당황했어도 이들은 로마군이다. 그들은 훈련받은 대로 침착하게 행동했다.

이윽고 서로의 검과 방패를 맞대고 선상 곳곳에서 전투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방패와 방패가, 검과 검이 부딪치는 소리, 호루라기를 통해 진형을 바꾸려는 소리, 지휘관과 병사들의 고함이 여기저기서 울려 퍼졌다.

배에서는 불길이 치솟고 눈앞으로 핏물이 연신 터져 나왔지만 전투의 흥분으로 인해 병사들은 눈앞의 적만 보일 뿐이었다.

서후는 전투에 참여하지 않고 병사들 뒤편에서 아우렐리우스 코타를 찾았다. 검을 들고 있지 않은 손에는 예의 슬링이 쥐어져 있었다. 어렵게 그에게 다가갈 필요도 없이 돌을 던져서 머리통을 깨부수면 간단하지 않은가? 그래서였다.

하지만 코타는 방패로 이뤄진 숲에 철저하게 보호받고 있었다. 그를 지키는 병사들은 무엇을 우선해야 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각 배로 나눠타고 있어서 그렇지 정예병은 코타 쪽이 우세했다. 해전이 아니라 육전이 벌어졌다면 당장에라도 코타의 병사들이 수적으로 압도하고도 남았을 상황. 심지어 세르토리우스와 서후의 전략이 성공적으로 통했음에도 병력의 우위는 여전히 코타 쪽에 있었다.

따라서 저들은 무리하게 세르토리우스군을 상대하려 하기 보다 다른 배의 병력이 코타를 지원 오기를 기다렸다.

‘별수 없군. 속전속결이다.’

병력의 우위야 어떻든 이미 전장의 기세는 아군에게 넘어왔다. 이런 상황에 머뭇거렸다가는 전황이 반전될 수도 있었다. 그럴 확률은 미약하지만 끝낼 수 있는 전투는 속히 끝내는 것이 현명하다.

붕부붕 휘리릭

서후는 자신이 나아갈 방향에 서 있는 코타군 병사의 머리를 향해 슬링을 던졌다. 멀지도 않은 가까운 거리라 서후가 날린 돌은 여지없이 병사의 머리통을 부숴버렸다.

머리뼈가 함몰된 병사는 침과 피를 동시에 흘리며 그대로 고꾸라졌다. 뒤에 있던 병사가 흠칫놀라며 그가 쓰러진 자리를 메우려고 이동했지만 그보다 서후가 빨랐다.

어느새 슬링을 던져버리고 양손에 검을 하나씩 쥔 서후가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가 병사들의 다리와 배를 베어버렸기 때문이다.

“크아아악!”

“으아아악!”

“이 쥐새끼 같은 애송이가!”

주변에 있던 병사가 방패로 그의 검을 받아낸 뒤 글라디우스로 그의 목을 매섭게 찔러왔다. 서후는 자신의 목이 꿰뚫리기 바로 직전 슬쩍 몸을 기울여 검을 피해내고 검을 내지른 병사의 손가락을 그대로 끊어버렸다.

촤아아악

“크아아악!”

손가락이 잘린 병사는 검을 떨굼과 동시에 고통에 울부짖었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서후는 매섭게 자신을 찔러오는 다른 병사들의 검을 양손의 검으로 빗겨 쳤다.

챙 채챙

근접거리에서 자신들의 공격을 모두 쳐낸 서후의 놀라운 모습에 병사들은 멍한 표정을 지었지만 서후는 그들이 마냥 그렇게 놀라게끔 내버려 둘 위인이 아니었다. 그렇게 멈칫하는 사이 서후는 그들에게 치명상을 입히거나 목숨을 끊어버렸다.

“이런! 테세우스! 홀로 그렇게 가면!”

호라티우스는 병사들을 지휘하다가 어느새 적의 틈을 파고들고 사라진 서후를 발견하고 대경하며 소리쳤지만 이미 서후는 적의 틈으로 파묻힌 지 오래였다.

“제길! 몰아붙여! 테세우스님이 위험하다!”

틀린 말이 아니다. 무모한 짓거리에 불과하다. 홀로 병사들의 틈 사이에 파고들다니. 이들은 도적들이나 해적들처럼 몇 명을 베었다고 겁을 집어먹고 물러나거나 도망치는 자들이 아니다.

오히려 검에 꿰뚫렸음에도 전의를 잃지 않고 불의의 일격을 날리는 자들이 코타군의 병사들이었다. 군단장을 호위하는 병사들이니 어련할까? 숙련된 전투기술로 단련된 그들과 근접전을 치르는 일은 서후라고 해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틈. 틈이 없다면 만들어 낸다.’

없으면 만들어 내면 된다. 왜 내겐 기회가 오지 않냐고 왜 내겐 행운이 오지 않는 거냐고 백날 울부짖으면 하늘에서 기회가 떨어지는가? 아니면 없던 행운이 생기는가?

지랄 같은 상황이라고 해도 솟아날 구멍은 있는 법이고 결국 그 기회는 없으면 약탈이라도 해서 쟁취하고자 하는 간절한 자의 손에 쥐어진다.

“으아아아아!”

서후는 크게 울부짖으며 양손의 검을 더욱 빠르게 휘둘렀다. 그의 검첨에서는 붉은 피가 솟아나는 것처럼 흘러나와 검의 궤적을 따라 이리저리 흩뿌려졌다.

팔과 다리가 끊어져 나가고 적들의 고함과 살의가 그의 온몸을 파고들었다.

서걱 스아아악

섬뜩한 순간도 여러 번 있었다. 그가 걸친 가죽 갑옷이 코타군 병사의 검에 형편없이 해어졌다. 맨몸으로 싸웠다면 과다출혈로 쓰러졌을지도 모를 정도로 섬뜩한 상흔이었다. 실제로 서후의 몸 이곳저곳에 상처가 새겨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치명상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 치열한 순간, 그것까지 계산하면서 싸운 것이다.

서후는 적병의 검을 다시 쳐냈다. 그러자 저들은 안 되겠는지 후열에 자리한 병사들이 물러서며 또 다른 방진을 형성했다. 마치 기계가 움직이는 것처럼 실로 유기적이고 체계적인 모습이었다. 그것이 끝이 아니라 방진의 양옆으로는 검으로 이뤄진 돌기가 서후를 갈아버릴 것처럼 짓쳐 들었다. 코타군이 서후를 죽이려고 든 모습이 바로 그러했다는 소리였다.

그때 서후의 뒤편과 반대편에서 우렁찬 함성과 함께 적병의 진형이 형편없이 무너져내리기 시작했다.

서후가 급히 눈을 들어 반대편을 바라보니 세르토리우스와 사비누스가 이끄는 아군이 적병들을 무참하게 베어 넘기고 있었다. 뒤에서는 호라티우스가 형형한 눈빛으로 병사들을 이끌고 서후에게 합류했다.

“테세우스! 이렇게 몸을 막 굴리면 곤란합니다.”

서후는 이렇다 할 대답도 없이 지척 거리에 자리한 아우렐리우스 코타를 바라봤다. 당황한 표정으로 주변을 살피며 뭐라고 계속 고함을 치고 있는 저자가 분명 아우렐리우스 코타이리라.

“호라티우스!”

호라티우스가 급히 서후를 바라보자 서후가 외쳤다.

“코타! 코타다! 가자!”

“제길! 전군 돌격 진형으로! 진격하라!”

“와아아아아!”

“와아아아!”

*

“막.. 막아라! 저들을 막아!”

사방에서 짓쳐드는 세르토리우스군의 공격에 아우렐리우스 코타는 극심한 두려움에 휩싸였다. 이번 토벌을 어떻게 해야 빨리 끝낼 수 있을까만 그의 머릿속에 있었을 뿐, 패배는 있지도 않았고 자신의 목숨이 위험하게 될 순간은 더더욱 없었다.

무엇보다 피를 뒤집어쓴 저 어린놈은 뭐란 말인가? 고작 소년 하나를 막지 못해 병사들이 픽픽 쓰러져나가니 코타는 자신의 두 눈을 믿을 수 없었다.

“아우렐리우스 코타!”

그때 살의가 가득한 거친 목소리로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척안의 사내가 코타의 눈에 들어왔다. 세르토리우스였다. 그의 척안을 보니 그제야 카이우스 안니우스의 당부가 마음에 와닿았다. 그가 척안을 가지게 된 이유가 무엇이던가? 흉포한 갈리아족과 싸우며 얻은 상처이자 훈장이 아니던가?

전선의 제일 앞에서 호위병들을 베어내는 솜씨를 보니 자신이 얼마나 안이한 생각으로 전투에 임했는지 뒤늦게 깨달았다. 코타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자신의 검을 들고 주춤거렸다.

파죽지세로 몰아치는 세르토리우스군의 공격에 진형이 무너진 코타군은 속절없이 무너져 내렸다. 서후는 코타군의 진형이 무너지자 재빠르게 코타에게 쇄도했다. 그가 코타에게 향할 수 있게끔 호라티우스와 병사들이 뒤를 받쳐줬음은 너무나 당연한 일었다.

“코타!”

“너. 너는?”

제법 탄탄한 몸을 가지긴 했지만 호리호리한 일개 소년에 불과했다. 하지만 코타는 결코 서후를 무시할 수 없었다. 그 소년이 곡식을 추수하는 농부처럼 용맹한 병사들의 목숨을 무참하게 거둬가는 것을 직접 목격했기 때문이었다.

“내.. 내 아무리 그래도 너 같은 어린아이에게 목숨을 잃을 것 같으냐?”

코타는 당황과 분노가 뒤섞인 표정으로 서후를 향해 들고 있던 검을 휘둘렀다. 그러나 기교도 기세도 없는 검으로는 서후의 옷자락도 벨 수 없었다. 서후는 가볍게 그의 검을 쳐낸 다음 단번에 그의 목을 쳤다.

촤아아아악

코타의 머리가 공중에 뜨기 무섭게 왼손으로 그의 머리칼을 잡아챈 서후는 코타의 머리를 번쩍 들고 우렁찬 목소리로 외쳤다.

“적장 아우렐리우스 코타! 나 테세우스의 손에 죽었다. 모두 무기를 버려라!”

그것을 확인한 세르토리우스군은 거센 함성을 질렀고 코타군은 무기를 내린 채 멍하니 서후를 바라봤다.

“와아아아아아!”

“와아아아!”

“테세우스!”

“테세우스!!”

적장 아우렐리우스 코타의 목을 벤 서후의 이름을 연호하는 소리가 카다스 해협 곳곳에 울려 퍼졌다.

대승. 그야말로 대승이었다.

*

로마의 갑옷 종류는 크게 세 가지다. 오래된 순서대로 나열하자면 로리카 스쿼마타, 로리카 하마타, 로리카 세그멘타타 순이다.

세그멘타타는 금속판으로 이뤄진 흔히 로마군을 떠올릴 때 연상하는 갑옷이나 이 시기에는 아직 개발되지 않았다. 하마타는 체인메일에 가깝고 스쿼마타는 비늘갑옷이라 보면 되었다.

정갈하게 머리를 빗은 스무 살 초반쯤 되어 보이는 사내가 로리카 하마타를 걸치고 군단병이 착용하는 짧고 폭이 넓은 단검, 푸지오와 중검인 글라디우스를 허리춤에 착용한 채 파피루스를 읽고 있었다.

이리저리 서성이며 글을 읽던 사내는 파피루스를 아무렇게나 책상에 내던진 다음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말없이 눈매를 좁히고 깊은 상념에 빠져있던 사내는 손가락으로 책상을 두어 번 치다가 입을 열었다.

딱 딱

“기이하군. 기이해.”

총기가 가득한 갈색 눈을 가진 청년은 잘 빗어넘긴 자신의 머리를 한번 쓸어올리며 다시 중얼거렸다.

“딕다토르를 자진해서 포기했을 때만 해도 술라 이자의 어리석음을 비웃었는데 이번엔 법적 자격이 없는 폼페이우스에게 개선식을 허락해줬다? 이걸 어떻게 해석해야 하지?”

그의 이름은 바로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로마와 이음동의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인물이었다. 그는 현재 아시아 총독 마르쿠스 미누키우스 테르무스 휘하에서 참모역할을 수행하고 있었다.

“건강에 문제가 있나? 아니면? 자신의 역할이 끝났다고 생각했기 때문인가? 만약 그렇다면 내 예상대로 그는 어리석은 자다. 공화정의 시대는 이미 그 끝을 맞이하고 있다. 억지로 시대의 흐름을 거스르려고 해봐야 결국엔 모두 헛된 노력에 불과하다.”

서신에는 술라의 행적들, 특히 어떤 법을 개정했는지에 대해 상세하게 나와 있었다. 카이사르는 그것을 읽는 순간, 술라가 무엇을 노리는지 알아차렸지만 이런 오지에서 그런 통찰이 무슨 의미가 있으랴? 또한 때가 이르면 굳이 자신이 나서지 않아도 다른 자들이 술라의 이 같은 정책을 무효화시킬 것이 뻔했다.

무엇보다 나서고자 해도 술라의 암수를 피해 아시아까지 도망친 자신이 대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용기와 만용도 구분하지 못할 카이사르가 아니었다.

쿵쿵쿵

그때 가볍게 문을 두들기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라티클라비우스(넓은띠 대대장)! 잠시 들어가 봐도 되겠습니까?”

카이사르는 차분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들어와.”

그러자 프레펙투스로 보이는 한 남자가 문을 열고 들어와 절도있게 군례를 표한 다음 용건을 밝혔다.

“거버너께서 이번 레스보스섬에서의 활약을 치하(致賀)하시고자 코로나 키비카를 수여한다고 하십니다. 축하드립니다. 카이사르님!”

떡갈나무 잎으로 만든 시민관은 전투 내내 전우를 구하고 물러서지 않은 자에게 수여되는 것으로 풀잎관 다음가는 귀한 훈장이었다.

“고맙다. 다만 이 같은 공은 결국 귀관들의 도움이 있었기에 세울 수 있었던 것에 불과하다.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

“여.. 영광입니다.”

전투에 잔뼈가 굵은 프레펙투스로 보이건만 새파랗게 어린 카이사르를 상당히 조심스럽게 대했다. 그가 미래에 일어날 일을 알기 때문에 카이사르에게 존경을 표한다고 볼 수는 없으니 카이사르의 배경이나 이곳에서 보여준 능력에 탄복한 것으로 보였다.

마리우스의 처조카이자 킨나의 사위이며 10대의 어린 나이에도 술라의 독재에 반기를 든 담력, 이곳에서 보여준 놀라운 군재(軍才)는 에니우스로 하여금 절로 고개를 숙이게 만들었다.

카이사르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에니우스에게 말했다.

“보아하니 바로 수여하시겠군. 이동하도록 하지.”

“따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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