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2
102. 기묘한 죽음.
102.
테세우스의 눈에 세밀하게 갈라진 무스타파의 등 근육이 눈에 선명하게 들어왔다. 테세우스는 지체없이 그곳에 검을 밀어 넣었다.
하지만 무스타파도 만만치 않은 자였다. 무스타파는 그 짧은 순간 도끼로 회오리를 그리듯 횡으로 붕붕 돌렸다.
테세우스가 내지른 검은 독사처럼 사나웠지만 회전력을 가미한 무스타파의 도끼질에 저만치 튕겨버렸다. 무스타파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회전력을 이용해 테세우스를 다시 공격했다.
후우우웅
육중한 도끼가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섬뜩하게 울려 퍼졌다. 이대로라면 무스타파의 매서운 도끼질에 테세우스가 금세 곤죽이 될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그 순간 테세우스는 양손의 검을 회전하고 있는 도끼의 궤적에 집어넣었다.
까드드득
채채챙
도끼와 두 자루의 검이 부딪치며 불꽃마저 튀겼다.
“으라아아아!”
무스타파가 괴성을 지르며 도끼를 쥔 양손에 힘을 더했다. 그의 단단한 근육이 불끈거리며 그 폭발적인 힘을 무스타파에게 전해줬다.
우뚝
그러나 그 모든 괴성과 힘이 무용하다는 듯 테세우스는 표정 하나 바뀌지 않은 채 무스타파의 회오리를 멈춰 세웠다.
무스타파의 움직임이 멈추자마자 테세우스는 앞으로 달려들며 세로로 세웠던 두 자루의 검으로 무스타파의 육중한 허벅지를 베어냈다.
스아악
무스타파는 기겁하며 몸을 뒤로 뺐다. 무스타파가 피하지 않았다면 허벅지의 근육이 날카로운 검날에 모조리 잘려나갔을 것이다. 하지만 무스타파도 두 허벅지에서 피가 튀어 오르는 것까지는 막을 수 없었다.
촤아악
무스타파의 살갗이 날카롭게 갈라지며 허연 속살이 모습을 드러내다가 이내 곧 붉은 피를 토해냈다.
섬뜩한 고통이 느껴졌지만 무스타파는 두 다리의 상처에 집중할 겨를이 없었다. 테세우스의 사나운 공격이 계속해서 이어졌기 때문이다.
허벅지를 베어낸 테세우스는 검을 내지른 그 회전력을 이용해 비스듬히 눕듯이 사선으로 빙글빙글 돌면서 무스타파를 공격했다.
무스타파는 변칙적이지만 하나같이 정확하게 자신의 급소를 노리는 테세우스의 공격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허겁지겁 뒤로 물러섰다.
그러는 사이 테세우스의 군단병들은 전사들을 더욱 빠르게 참살해가고 있었다. 전술과 전략마저 무시할 수 있는 용력이나 무용이 없다면 병사들의 전투는 전술과 전략과 조직력에 의해 그 승패가 결정된다.
세르토리우스 아래에서 단련된 이들은 어떤 전장에 내세워도 떨어지는 병사들이 아니었다. 더욱이 테세우스의 놀라운 무용에 사기마저 극에 달했으니 이들은 자신의 본래 기량보다 월등한 전공을 세우고 있었다.
이를 무스타파가 바로 잡아야 했지만 제 목숨을 부지하기에도 급급한 무스타파가 무슨 여력이 있어서 전황을 바로 잡을 수 있을까? 조금이라도 한눈을 판다면 독사처럼 매서운 테세우스의 검이 단숨에 생명을 취하고 말 것이다.
촤아악 촤아악
무스타파의 갑주와 몸에 검으로 인한 상흔이 계속해서 새겨졌다. 갑주는 갈가리 찢어졌고 무스타파 몸에서 튀어 오른 피는 두 자루의 검첨을 따라 그 궤적을 붉게 장식했다.
하지만 무스타파는 그 어떤 비명도 지르지 않고 이를 악물고 반격의 때를 기다렸다. 강할 때가 있으면 약할 때가 있고 약할 때가 있으면 강할 때가 있다. 크게 도약하기 전에 맹수는 몸을 웅크려 그 힘을 비축한다.
무스타파는 검상을 이리저리 입으면서도 냉정함을 잃지 않고 테세우스의 공세가 막바지에 다다라 그 힘을 잃어버리는 순간이 오기를 끈기 있게 기다렸다.
빙글빙글 돌면서 자신의 몸 이곳저곳을 헤집던 테세우스의 움직임이 멈춘 순간, 무스타파는 맹수가 웅크렸던 몸을 펴고 도약하듯이 뒤로 뺐던 도끼를 테세우스에게 휘둘렀다.
“으랴!”
까아아앙
까아앙
당연히 테세우스가 자신의 공격을 막았지만 조금 전과 달리 그것까지 예상한 무스타파는 연이은 공격을 통해 테세우스를 계속해서 몰아붙였다.
“으랴!”
쾅 콰광 쾅
모든 것을 쏟아내겠다는 듯 무스타파의 매서운 공격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하지만 테세우스는 두 자루의 검을 번갈아 가며 무스타파의 공격을 여유롭게 받아냈다.
쌍검을 사용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스스로 휘두른 검에 자신이 베일 수도 있으니 상당한 숙련도를 요구한다.
전장은 수많은 변수가 존재하는 곳이다. 그런 곳에서 자신의 검조차 예측할 수 없다면 대체 무엇을 믿고 전장에 서야 하는가? 게다가 사람 역시 변수가 많다. 검을 잘 다루는 자라고 실수하지 않던가?
변수가 많은 곳에서 저 스스로 불리한 변수를 만들어내면 생존확률이 급격하게 줄어들 것은 자명하니 일반적으로 생존확률이 더 높은 검과 방패, 더 나아가 창과 방패로 전쟁에 임하는 건 당연한 선택이었다.
하지만 변칙적인 움직임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녹여낼 수 있다면 그보다 위협적인 공격 수단도 드물다. 한 자루의 검을 막아도 다시 또 다른 검이 매섭게 짓쳐 드니 경험이 많은 자가 아니라면 먹잇감이 되어 전장 저편으로 사라지고 말 것이다.
공교롭게도 항우와 리처드 모두 양손에 무기를 들고 싸우는 것을 선호했다. 그 둘의 경험을 고스란히 이어받은 테세우스가 쌍검 따위를 다루지 못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설혹 실수하더라도 그 실수마저 적을 제압하는 변수로 변화시킬 수 있는 역량과 실력이 충만하다 못해 넘쳐났다.
테세우스와 전투를 치르는 무스타파는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한 사람과 싸우고 있지만 두 명, 그 이상과 전투를 치르는 느낌이었다. 지닌 바도 힘도 힘이지만 그 기술은 감히 따라 하지도 못할 정도로 대단했다.
혹 저자가 자신의 힘을 온전히 담아낼 수 있는 무기를 들었거나 자신을 죽이려고 마음먹었다면 훨씬 더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스쳐 갔다. 자존심 상하는 일이지만 무스타파는 그 자존심 때문에 현실을 외면하는 어리숙한 전사가 아니었다.
“죽어라!”
무스타파는 지금의 공세에서 놈을 쓰러뜨리지 못하면 자신이 쓰러진다는 절박함에 젖먹던 힘까지 다해서 테세우스를 몰아쳤다.
쾅 콰과광
테세우스는 왼손의 검으로 다시 무스타파의 공세를 받아내다가 무스타파의 힘이 약해진 것을 느끼고 무스타파의 검을 받아냄과 동시에 도끼를 걷어냈다.
차아앙
갑작스런 반격에 무스타파의 도끼는 그가 계산한 궤적대로 움직이지 않고 뒤틀렸다. 당연히 그것을 잡고 있던 무스타파의 균형 역시 뒤틀렸다. 무스타파가 그것을 깨닫고 도끼를 잡고 있던 한 손을 놓아 균형을 잡으려고 했지만 이미 테세우스의 검이 자신의 목젖 앞에 다가와 멈췄다.
테세우스가 멈추지 않았다면 그는 목에서 피를 흘리며 차디찬 바닥에 누워야만 했을 것이다. 무스타파는 씁쓸한 표정으로 도끼를 잡고 있던 왼손을 마저 풀었다.
어차피 힘이 풀려서 손이 덜덜 떨리는 상황이었다. 받아치는 힘이 어찌나 대단한지 방어가 곧 공격이나 다름없었다. 그것을 버티고 공격하다 보니 두 팔에 경련마저 일어나는 것 같았다. 온 힘을 다해 싸웠지만 힘과 기술 모든 면에서 자신을 압도하니 어떻게 대항할 방도가 없었다.
쿠웅
도끼가 바닥에 떨어지는 충격음과 동시에 그는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으며 고개를 숙였다. 죽이지 않았다고 반항해봐야 추해질 뿐이다. 그렇게 해서라도 살아날 방도가 있다면 그리하겠지만 그럴 수 있는 상대도 아니었다.
저 멀리서 로마의 군단병들이 몰려오고 있었고 그 모습에 그나마 함께하던 전사들 역시 겁에 질려 뿔뿔이 흩어진 지 오래였다.
“졌다. 죽여라.”
이대로 목을 치던 목 뒤로 검을 찔러넣든 그건 놈이 알아서 할 일이었다.
테세우스는 검을 겨눈 채 무심한 눈으로 무스타파를 바라보다가 지원병력을 인솔해온 센튜리온에게 말했다.
“병사들을 인솔해서 도망친 자들을 잡아 와라. 여의치 않으면 죽여도 상관없다. 무슨 말인지 알겠나?”
“물론입니다. 모조리 잡아 오거나 죽이겠습니다.”
센튜리온과 말에서 내리지 않고 그에게 군례를 표하며 적이 움직인 방향으로 말머리를 돌렸다. 그와 함께 온 병력들 역시 그의 지시를 따라 적을 추격하기 위해 이리저리 흩어졌다.
그런 뒤 테세우스는 무릎을 꿇고 앉은 무스타파에게 질문했다.
“넌 누구지?”
그러자 무스타파는 피식 웃음을 터트리며 대답했다.
“무스타파. 내 이름은 이미 듣지 않았나?”
이름을 묻는 게 아니라는 건 테세우스나 무스타파 모두 잘 알았다. 테세우스는 무스타파의 대답에 이대로 죽더라도 자신의 정체를 밝히지 않을 것을 알아차렸다.
“질문을 다시 하지. 누구에게 사주받았나?”
“사주? 사주라.. 그렇게 생각하고 싶다면 그렇게 생각하도록.”
무스타파의 대답에 아랑곳하지 않고 테세우스는 계속 질문을 던졌다.
“로마인가? 그도 아니면 술라의 사주를 받은 용병이더냐?”
그러자 무스타파가 웃음을 터트렸다.
“크크크크. 능숙하군. 능숙해. 하지만 쓸데없는 짓이다. 질문과 상관없이 내 반응을 살피려는 모양인데 시간 낭비하지 말고 죽여라.”
“살고 싶지 않은 건가?”
“헛소리를 하는군. 살고 싶지 않은 자도 있는가?”
‘이자가 세르토리우스를 암살하기 위해 술라가 용병으로 삼은 자라면 얼추 들어맞는다. 그것을 대비해서 히스파니아에서 그 전부터 암약해왔다면 말이야. 하지만 나는 그의 아들이다.’
로마의 습격이나 암살이 있을 것이라 대비하겠지만 시기적으로 너무 이른 때다. 더욱이 로마는 히스파니아에 아군이 상륙했다는 소식조차 듣지 못했을 확률이 높은데 암살자를 보냈다고? 백번 양보해서 그렇다 쳐도 인지도가 없다시피 한 자신을 칠 것이 아니라 몸을 숨겼다가 세르토리우스를 쳤어야 했다. 그리고 아마도 높은 확률로 암살에 성공했을 것이다.
아군은 습격을 시기상조라 여기고 있었고 무스타파 이자의 실력이라면 세르토리우스의 호위병을 참살하고 그의 목숨마저 빼앗기에 충분했으니 말이다.
‘혹 실수한 건가?’
자신이 이곳에서 죽는다면 세르토리우스는 오피다니 연맹이 반란을 일으킨 것이라 여기고 병력을 보내 이곳을 쓸어버릴 것이다. 혼란이 일어나면 그만큼 적진에 침투하기 쉬워진다. 마침 자신이 이곳에 나타났고 죽일 기회도 충분했으니 그래서 죽이려다가 실수한 건가? 그럼 얼추 자신을 습격한 이유가 들어맞는다.
‘그런데.. 그게 아닌 것 같단 말이지.’
그렇게 결론 내리면 명쾌해지지만 테세우스는 왠지 모르게 그게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어쨌든 이집트식 이름이다. 이런 실력이라면 굳이 로마 권력자의 용병 짓을 할 이유가 없어. 위험에 비해 얻는 대가가 미미할 테니.. 무엇보다 그가 이집트 출신이라면 근방에 위치한 셀레우코스 제국의 상황이 매우 혼란하니 그곳에서 활약하는 것이 더 수지맞는 장사이겠지. 내가 너무 많은 것을 고려해서 요점을 흩트리고 있는지도 모르지만 아무래도 미심쩍어. 군인도 아닌 용병이 의뢰인에 대해 충성을 다한다고? 황금을 좇는 용병이 목숨까지 걸고 충성을?’
그럴 가능성이 아예 없다고는 말하지 못하겠지만 일반적으로 그럴 리가 없었다.
“크크크. 그렇게 의심해라. 시기해라. 멸시하고 다투고 그렇게 멸망해라. 내가 말해줄 것은 이것뿐이니!”
무스타파의 눈에는 광기가 흘러넘쳤다. 테세우스는 그에게 어떤 대답을 이끌어내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마지막으로 더 질문을 던졌다.
“루기는 왜 죽이려고 했지?”
“루기?”
반문하는 그의 모습에 테세우스는 더 큰 의문에 휩싸였다. 화살은 분명 노파, 루기를 노렸다. 그건 우연히 날아온 화살 따위가 아니었다. 자신이 그 정도도 파악하지 못할까? 그런데 정작 습격을 주도한 무스타파가 그것을 모른다고? 그의 반응을 볼 때 거짓을 말하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무스타파의 입장에서 살펴봐도 노파를 하나 죽이려는 일이 무슨 비밀이라고 거짓을 말하겠는가?
“노파 말이다.”
“아아. 그 노인 말인가? 안타까운 일이야. 안타까운 일이지. 하지만 네게는 어떤 것도 말해주고 싶지 않군. 이거 죽음까지 가는 길이 너무 길지 않나? 살려줄 것이 아니라면 이만 끝을 내자.”
죽음 앞에서도 담담한 무스타파의 모습에 테세우스는 의구심이 더욱 커졌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자를 살려둘 수는 없었다. 위험한 자다. 수월하게 이기긴 했지만 그건 자신이니까 그런 것에 불과했고 무엇보다 그에 대해 파악하지 못하는 점이 너무 많았다.
“네 정체와 네 계획이 무엇이든 간에 죽음을 넘어서진 못할 터.”
죽은 자가 뭘 더 할 수 있단 말인가? 수하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 큰 힘이 될 것이로되 어딜 봐도 무스타파가 아군과 함께할 것 같지 않았다.
“네 좋을 대로 생각하도록. 자. 마무리 지어라. 전사여.”
무스타파는 비릿한 웃음과 함께 두 팔을 벌리며 테세우스에게 말했다.
‘일단 위협은 제거한다. 남은 건 그 후에 생각할 뿐.’
테세우스는 서늘한 눈으로 그 즉시 검을 휘둘러 그의 목을 베어냈다.
촤아아악
털썩
피가 분수처럼 솟구쳤고 아름답게 조각작품처럼 단련된 무스타파의 육체는 힘없이 모로 쓰러졌다. 그의 잘린 머리는 아무렇게나 수풀 저편에 나뒹굴었다.
테세우스는 그와 함께 남아있던 군단병에게 가볍게 말했다.
“살펴볼 것이 있으니 이 자의 시신을 수습하도록.”
“알겠습니다.”
군단병은 바짝 군기가 든 표정으로 절도있게 테세우스에게 군례를 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