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마 무신의 기억-106화 (106/298)

# 106

106. 증가하는 위협.

106.

지난 1년간 소수스 마스타네소스는 결국 아스칼리스를 토벌하고 마우레타니아 왕위에 오른다. 하지만 그간의 내전으로 인해 국력이 형편없어진지라 로마와 세르토리우스 어느 한쪽에 가담하지 않고 균형을 지키려고 애썼다.

아닌 말로 세르토리우스든 술라든 병력을 보낸다면 간신히 얻어낸 왕권을 사수하는 것조차 어려워질 테니 당연한 선택이었다. 그로 인해 보쿠스 왕의 딸이자 마스타네소스의 누이 야스미라의 입지는 마우레타니아와 그 근방에 이르기까지 나날이 커졌다.

마스타네소스는 누이가 가진 영향력마저 모조리 흡수하길 원했지만 야스미라는 세르토리우스와의 우호의 상징이나 다름없었다.

마우레타니아가 로마의 지원이 올 때까지 세르토리우스의 공세를 버텨낼 수 있는 여력이 있다면 단숨에 진격하여 팅기스와 그 일대에 쌓인 부와 그 영향력을 모조리 삼키겠지만 나날이 강력해지는 세르토리우스의 위세를 고려하면 쳐들어오지 않기를 간청해야 할 판국이다.

마우레타니아 내에서 야스미라의 입지가 나날이 커진다고는 하나 그녀에게 병권이 있는 것도 아니고 있는 병력마저 자신의 명을 따르는 병사들이었으니 어차피 후 불면 날아갈 거품에 불과하다.

문제는 그 거품을 걷어내면 마주하기 싫은 맹수와 직접 상대해야 한다.

마스타네소스나 마우레타니아가 맹약을 맺은 것이 아니라 야스미라가 저들과 맹약을 맺었다. 야스미라가 사라지면 맹약도 사라진다. 그 말인즉 필요하다면 언제든 그 이빨을 마우레타니아에게 들이밀 수 있다는 소리다. 적어도 덫과 올가미를 온전히 갖추기 전까진 내버려 둘 필요가 있다.

야스미라만 놓고 본다면 어떤 위세나 힘도 없지만 그녀의 존재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까지 고려하면 결코 함부로 대할 수 없었다. 이것이 야스미라의 입지가 나날이 공고해지는 이유였고 세르토리우스의 영향력이 히스파니아는 물론 마우레타니아와 그 근방 일대까지 잠식했다는 방증이기도 했다.

세르토리우스는 켈티시 연맹을 쳐서 굴복시키고 베토네스 연맹의 신종을 받아냈으며 카르페타니 연맹을 연일 압박하고 있었다. 켈타이족은 흔히 로마인들이 야만인이라 부르는 족속이다. 이들이 로마인보다 지적능력이 덜떨어졌기 때문이 아니라 문제해결 방법이 대화보다는 대부분 피와 전투를 통해 이뤄지기 때문에 그런 이미지가 구축된 것이 컸다.

어쨌든 이러한 켈타이족을 정치적으로 압박했겠는가? 당연히 전쟁을 통한 압박이었다. 그게 아니라면 압박이라고도 생각하지 않을 문화권에 속한 족속이다.

그 가운데 테세우스와 악연으로 얽혀있던 메투리치족과 모니치족은 궤멸에 가까운 타격을 입었다. 머잖아 저들 부족의 이름은 역사 저편으로 사라지고 말 것이다. 카르페타니 연맹도 위태로운 판국에 각 부족의 일 따위 알게 뭔가?

어차피 수많은 이익 관계로 얽매인 연맹체계다. 각자도생(各自圖生)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니 카르페타니에 속한 부족들도 연일 세르토리우스에게 머리를 숙이고 들어오는 추세였다. 사실상 루시타니아 일대의 켈타이 연맹은 모두 세르토리우스에게 굴복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풍부한 보급과 양질의 무기, 철저한 훈련을 통해 완성된 무적의 군대. 무엇보다 주먹구구식의 통치가 아니라 제도화되고 일관된 통치체제 아래서 공명정대한 통치가 이뤄지니 켈타이족들이 그 앞에 엎드리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세르토리우스는 이것에 그치지 않고 더욱 원대한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로마에 입성할 수 없다면 로마가 인정할 수 있는 원숙한 체계를 갖춘 또다른 로마를 이곳에 건립하리라.

세르토리우스는 카르페타니 연맹을 완벽하게 굴복시킨 후 바에티카를 점령하고 로마의 제도에 따라 모든 것을 정비하고자 마음먹고 있었다. 이미 많은 부분을 추진하고 있었다. 그 일례로 켈타이 사회의 고귀한 가문, 즉 귀족층의 자녀들을 데려다가 로마식의 교육을 가르치고 있었다.

뿌리부터 로마인으로 바꾸기 위한 노력이었다. 이렇게 로마화 되면 이들 역시 로마의 한 축을 이룰 것이다. 그때가 되면 로마는 지금처럼 자신을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통치자로 우대하게 될 터, 로마를 무너뜨리지 않고도 로마의 품에 안길 수 있는 절묘한 방책이었다.

켈타이의 귀족들도 이를 반기면 반겼지 배척할 이유가 없었다. 이 시대 로마식 교육은 고급지식을 배울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편이었으니 켈타이인이라고 그것을 배척할 부모가 어디 있겠는가? 더욱이 로마가 강대국이라는 걸 모르는 켈타이인도 있던가? 따라서 이는 귀족들의 환심도 사고 아울러 자신의 목적까지 달성할 수 있는 일거양득의 방책이기도 했다.

카르페타니 연맹은 붕괴 직전이니 문제 될 것이 없고 이제 그 첫발을 디디기 위해 남은 건 바에티카 뿐이었다. 다만 이 기세라면 바에티카도 수월하게 점령할 수 있을 것으로 보였다.

켈타이 부족조차 세르토리우스의 기세를 읽고 머리를 숙이는 판국에 바에티카의 로마인들이 그것을 읽지 못할까? 투르둘리 연맹을 격파하고 켈티시 지역에서 세르토리우스군과 격돌해 대패를 당한 기억이 있는 바에티카였기에 영리한 자들은 벌써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테세우스는 오피다니 연맹을 장악한 후 어떤 전쟁에도 나서지 않았지만 세르토리우스가 장악한 전역에 걸쳐 그 명성을 떨치고 있었다.

테세우스는 오피다니 연맹을 장악한 후 이우리아 도시를 세우고 이곳을 외부 교역도시의 거점으로 만들었다. 내부장악력은 더 말할 것도 없거니와 나디르와 소우판, 야스미라 등을 비롯한 관계는 이 일대 해상 역시 완벽하게 장악하게 만들었기에 이 근방 무역을 주도하기에 조금도 문제 될 것이 없었다.

자유무역지대는 더욱 확장되었고 이 일대를 오가며 거래하는 상인들 사이에 테세우스의 이름을 모르는 자는 아무도 없을 정도로 명성을 떨쳤다. 아이러니하게도 전사로서의 테세우스보다 상인으로서의 테세우스의 이름이 더 높을 지경이었다. 하긴 정보에 민감한 상인들 사이에 알려진 이름이니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랬다.

테세우스는 오피다니 연맹뿐만 아니라 세르토리우스가 점령한 지역을 두루 다니며 물류의 흐름을 원활하게 만들 길을 닦았고 법 제도를 보다 체계적이고 공정하게끔 가다듬어 부정과 비리와 범죄를 저지른 자들은 가차 없이 죽였다.

교화시킬 여유도 없었고 보장도 없었기에 그 부분에는 한점의 자비조차 보이지 않았다. 어차피 모든 자를 안고 갈 수는 없다. 버릴 자는 버린다. 그게 싫다면 떠나거나 죽는 수밖에. 따라서 세르토리우스 휘하의 모든 사람들이 그를 두려워하면서도 존경하는 마음을 품고 있었다.

지난 1년간 체구는 더 커져서 이제는 190cm마저 훌쩍 넘어 2m에 가까워졌다. 당연히 힘과 민첩성, 전투기술 등은 예전보다 더욱 막강해졌다. 작은 산이 걸어 다니는 느낌이랄까? 오밀조밀 어떤 빈틈조차 없이 들어찬 근육은 그 자체로도 엄청난 위압감을 자랑했다.

대개 피를 봐야만 수그리는 족속이지만 테세우스를 뒤따르는 소문은 하나같이 무시무시했고 또 그 위압적인 모습을 본 켈타이인들은 감히 테세우스를 거스르지 못했다.

마찬가지로 테세우스의 명성만 듣고 찾아온 상인들은 자신의 머릿속의 모습과 그 모습이 매치가 되지 않아 당황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았다.

저들 머릿속의 테세우스는 학자풍의 호리호리한 늙은 사내이거나 살점이 두둑한 중년 사내인 경우가 대부분인데 직접 만나본 테세우스는 그 어떤 전사도 저리 가라 할 정도의 무시무시한 젊은 전사였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다시 말해 세르토리우스가 외부 확장에 주력하는 동안 테세우스는 내부에 분란과 문젯거리를 도맡아 모조리 처리해왔다는 소리였다. 내부의 안정과 외부의 확장이 맞물리니 세르토리우스군이 급격하게 팽창하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이렇듯 무시무시한 기세로 팽창해가는 세르토리우스를 무시할 자는 아무도 없었다.

내적외적 팽창의 주요 요인으로 세르토리우스의 전쟁 수행 능력과 테세우스의 내정 능력을 뽑을 수 있지만 사실 여기에는 한 가지 요인이 더 숨어있었다. 어쩌면 이 점이 가장 컸다.

그 요인은 바로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술라 펠릭스’다.

세르토리우스군이 1년간 별다른 문제 없이 팽창을 가속화 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술라가 지난 1년간 어떤 대응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술라가 로마의 군단을 더 보냈더라면 어쩌면 팽창은 꿈도 꾸지 못하고 방어하기에 급급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난 1년간 술라는 아우렐리우스 코타를 마지막으로 그 어떤 장군이나 군단도 히스파니아 지역에 지원하지 않았다.

세르토리우스나 테세우스 역시 그 이유가 매우 궁금했지만 한 가지 알아낸 사실은 술라가 모든 정치적 활동을 멈췄다는 점뿐이었다. 독재관의 임기마저 무제한으로 늘렸던 그 술라가 돌연 정계의 모든 활동을 접었다는 소식에 의심부터 들었지만 드러나는 결과 역시 그러하니 믿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그리고 오늘, 테세우스는 매우 놀라운 소식을 들었다.

“술라가 사망했다라..”

자신의 죽음을 예감했던 것이란 말인가? 그전에 세르토리우스를 처단하려고 했지만 상황을 보니 몇 년 내에 전쟁이 종결될 것 같지 않으니 뒷사람에 맡긴 것인가?

술라는 그야말로 폭풍 같은 삶을 살았다. 모든 것을 삼키는 폭풍처럼 삼키고 삼켰다. 그런 술라가 타계했으니 그가 삼켰던 모든 것이 봇물 터지듯 사방으로 터져나갈 것이다.

‘지난 1년의 고요함은 결국 폭풍이 일어나기 전날 밤의 고요함에 불과했나?’

어느 순간부터 로마의 시민권을 얻겠다는 생각도 사라졌다. 시민권을 얻고자 한 것은 안정을 위한 것이었는데 지금의 생활도 크게 나쁘지 않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 폭풍이 불겠군. 로마에서 불기 시작한 바람이 부디 이곳을 덮치지 않기만을 바라야겠군. 불가능한 바램이겠지만······.”

테세우스는 파도가 치는 항구를 바라봤다. 평화로운 일상이었다. 상인들은 고함을 치고 노예는 등짐을 지고 물건을 나르고. 복잡했지만 이상적인 광경도 아니었지만 적어도 이곳에는 활기가 넘쳐났다. 이 활기를 보고 있노라면 지난 1년의 노력이 헛된 것처럼 느껴지진 않았다.

모든 제도와 모든 법을 바꿀 생각은 애초에 없었다. 그건 불가능하다. 수십 세기의 변화 끝에 마련된 것을 자신 홀로 어찌 바꾸겠는가? 하지만 그래도 최소한의 인권은 보장하는 법을 구축하고자 노력했다. 이제야 간신히 그 터를 닦기 시작했다. 이대로 수년이라는 시간이 흐른다면 기초 정도는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전쟁이 발발한다면..’

모두 사라질 것이다. 제도가 남아있고 체계화된, 아니 혹 완전무결한 법이 있더라도 그것을 지킬 사람이 없다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이겠는가?

전쟁은 사람의 마음을 무너뜨린다. 야심과 야망과 욕망이 최선의 가치인 것처럼 포장하고 또 그렇게 스스로를 납득시킨다. 그게 최고의 가치가 되어버린다.

테세우스는 말없이 이우리아 도시를 바라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수밖에.”

주저앉는다면 도태될 뿐이니까. 멈춘다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을 테니까.

테세우스는 자신의 손에 들인 무지개색의 작은 금속을 바라봤다. 에고르가 지난 1년간 무스타파의 행적을 추적하고 추적하여 간신히 얻어낸 결과물이다.

고작 이것이 전부였다. 더 이상 파고들 어떤 정보조차 없는 셈. 무스타파의 정체는 여전히 알 수 없었고 그의 정체를 파악하려면 이 금속이 무엇인지부터 파악해야 했다.

어떤 금속인지 도무지 파악할 수 없었다. 파이살에게도 보여줬지만 그 역시 모르긴 마찬가지였다. 그렇다고 강도가 특별히 강하느냐? 그것도 아니었다. 상당히 가볍긴 했지만 흔한 강철보다도 무른 금속이었다.

더 연구해보면 다른 결과가 나올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이 금속에 대해 알고 있는 점이라고는 특이하게 무지개색의 금속이라는 점이 전부였다. 사실 테세우스에게는 이 점도 별로 특별할 것이 없었다. 색상이 무지개색이라는 것이 뭐 대단한 일이겠는가? 다채로운 빛과 색의 향연 속에서 살았던 기억이 있는 테세우스에게 말이다.

무엇보다 이제 무스타파의 정체따위는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지난 1년간 그와 연관된 자들이라곤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으니까.

테세우스는 말없이 손바닥 반절만한 무지개 금속을 품에 집어넣고 밀려오는 파도를 바라봤다.

“로마······.”

내부의 혼란을 잠재우기 위해 외부의 적을 이용하는 것보다 효과적인 방책이 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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