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마 무신의 기억-123화 (123/298)

# 123

123. 대도서관.

123. 대도서관.

테세우스에 의해 갑판에 처박힌 샤파트는 머리가 박살날 것이 두려워졌다. 아닌 게 아니라 조금만 힘이 더 가해지면 자신의 머리는 한 줌의 핏물과 뇌수를 남기고 세상에서 영원히 그 종적을 감추게 될 것이 분명했다.

“머.. 머리! 머리!!”

샤파트의 급박한 외침에 발에 힘을 주던 테세우스는 발을 가만히 떼었다가 그의 옆구리를 발로 걷어찼다.

퍼억

쿠당탕탕

샤파트의 체구가 결코 작은 것이 아닌데도 그는 테세우스의 발길질을 이기지 못하고 저만치 나가떨어졌다.

“크으으윽. 쿨럭 쿨럭.”

피 가래를 뱉어내며 정신을 차리려고 했지만 온몸에서 느껴지는 충격에 샤파트는 도무지 정신을 차리기 힘들었다.

그 주변으로 테세우스의 병사들이 해적들을 억압하며 포박하기 시작했다.

“꿇어!”

“아.. 알겠습니다.”

“컥!”

머뭇거리는 해적들을 병사들이 강하게 후려치며 거칠게 말했다.

“못 들었나? 아니면 죽고 싶은 건가?”

“아.. 아닙니다.”

이런 비슷한 일들이 배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아직 전투의 여운이 가득했지만 이미 전투는 끝났다. 바로 테세우스의 승리로 말이다.

배를 타고 도망칠 수 있는 자들은 꽁지빠져라 도망쳤고 남은 자들은 테세우스의 병사들에 의해 빠르게 제압되고 포박되었다.

모조리 죽일 수도 있지만 그럴 바에는 노예로 팔아서 수익이라도 남기는 게 이득이었다. 사실 자신이야 아무래도 상관없다. 아니 그보다도 노예제도를 내심 껄끄러워하면서 그것을 사용해 이득을 남긴다면 자가당착(自家撞着)이나 다름없기에 오히려 죽여버리는 것이 깔끔했다.

그러나 자신이 껄끄럽다고 따르는 자들의 보상을 제한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자가당착이든 모순이든 그게 무슨 상관이랴? 제 목숨을 걸고 나를 위해 싸워준 이들에게 전리품이라도 하나 줘야 하지 않겠는가?

물론 그렇다 할지라도 마음이야 불편한 부분이 없진 않다. 하지만 테세우스가 이 시대에 전혀 동떨어진, 그런 어쭙잖은 이상 따위에 휘둘리는 사람은 아니었다.

샤파트는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할 고통 중에도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을 얼추 확인했다. 모를 수가 없었다. 이제 자신의 운명은, 아니 운명까지 갈 것도 없이 이제 자신의 목숨은 온전히 테세우스 저자의 손에 달려있었다.

“쿨럭 쿨럭.”

연신 피 가래를 토해내고 있는 샤파트 위로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두 번 묻지 않겠다. 말해.”

샤파트는 고개를 들어 테세우스의 눈을 바라본 순간,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을 듣기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라도 할 수 있는 자라는 것을 확신했다.

“아.. 아.. 알겠소. 다.. 다만 살려주시오. 저들처럼 노예로 삼아도 상관없으니 부디······.”

죽은 뒤에 부귀영화나 명예가 다 무슨 소용이랴? 자신이 그들에게 충성맹세를 한 것도 아니고 목숨을 구하기 위해서라면 말하지 못할 것도 없었다. 다만 처음에 버틴 것은 어떤 자존심을 세워보기 위한 알량한 술책이었는데 눈앞의 이자는 눈도 꼼짝 안 하고 목을 베어버릴 자다. 그전에 자신을 처참하게 고문하겠지.

테세우스가 미간을 좁히자 샤파트가 급히 말을 이었다.

“오해하지 마시오. 이.. 이는 내.. 내가 아는 정보로 거.. 거래를 하기 위함이 아니오. 셀레우코스! 분명 셀레우코스였소.”

테세우스가 의아한 표정으로 반문했다.

“셀레우코스?”

“이 일을 주동한 자들에 대해 알고 싶은 것이 아니오? 내게 이 일을 지시한 자는 셀레우코스의 암살자였소. 물론 정확한 정체는 나도 알지 못하오.”

그러자 나디르의 표정이 홱 변하며 샤파트를 쏘아붙였다.

“헛소리하지 마라. 셀레우코스의 암살자라고? 그들은 왕가와도 인연을 끊은 자들이다. 그런 이들이 왜 이곳에 모습을 드러낸단 말이냐?”

나디르는 과거 셀레우코스 제국의 장수였다. 그러니 셀레우코스 제국의 상황에 대해 이곳의 누구보다 정통할 수밖에 없었다. 왕가의 비밀스러운 조직은 셀레우코스 제국이 몰락함에 따라 제국과 벌써 전에 그 인연을 끊었다. 그런 이들이 왜 테세우스를 습격한단 말인가? 나디르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는 내용이었다.

“그걸 왜 나한테 묻는단 말이냐? 나는 내가 본 것을 말할 뿐이다. 내게 이번 습격을 제안한 자는 분명 셀레우코스 암살자의 복색을 갖추고 있었다. 그가 셀레우코스 출신인지 아닌지는 내 알 바도 아니었다.”

그렇게 대답하는 샤파트에게 테세우스는 서늘한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

“그가 누군지도 모르고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러자 샤파트가 즉시 대답했다.

“그가 누군지 알 필요가 있소? 그의 제안은 분명 내게 이로운 제안이었고. 무엇보다 그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나를 죽여서라도 해적들을 이용했을 것이오.”

테세우스는 눈매를 좁히며 샤파트에게 질문했다.

“더 자세하게.”

“상당한 힘을 가진 자들로 느껴졌소. 일례로 테세우스, 당신을 모기라고 비유하더군. 살점을 물어뜯는 귀찮은 모기라고 했소. 당신의 존재는 그들에게 그 정도에 불과했소.”

모기라.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하지만 세르토리우스를 등에 업은 자신을 모기로 비유했다? 게다가 이들이 짠 계획을 보면 자신의 능력을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는 자들이었다. 그건 뒤집어 말하면 저들의 세가 그 정도로 강하다는 소리가 된다. 그럼에도 테세우스는 혹시나 싶어 다시 질문을 던졌다.

“그림자회가 저들에게 의뢰했을 가능성은?”

“그림자회 따위가 저들을? 당신도 보지 않았소?”

확실히 그림자회가 주동자였다면 자신들을 희생물로 삼는 짓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건 더 거론할 가치도 없었다. 테세우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말했다.

“오늘 네가 부린 계책은 모두 그들의 지시에 따른 것이냐?”

“물론이오. 나는 고작 한 척의 배를 상대하기 위해 왜 이런 식의 번거로움을 자처해야 하는지 계속 의문이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확실히 알았다. 눈앞의 테세우스는 일반적인 방법을 통해서 죽일 수 없는 사람임을 깨달았다. 배를 침몰시켜서 수장시키는 것이 아니라면 혹 그럴지라도 확신할 수 없는 대상이 눈앞의 테세우스라는 작자였다. 샤파트는 한 가지 궁금함을 이기지 못하고 테세우스에게 질문을 던졌다.

“혹 바다에 상어가 없었소?”

그 말에 나디르가 놀란 표정으로 반문했다.

“상어?”

적을 상대하기 바쁜데 바닷속에 뭐가 있는지까지 무슨 수로 확인한단 말인가? 그런데 상어라고? 상어의 무서움을 나디르가 모를 리 없었다.

이에 나디르를 바라본 샤파트가 대답했다.

“저들은 상어를 유인하기 위해 계속 바다에 피를 뿌렸다.”

“뭐?”

깜짝 놀란 나디르가 반문할 때 테세우스가 무심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있었다.”

샤파트는 더욱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테세우스를 바라봤다. 바닷속에서 상어를 만나고도 멀쩡히 이곳까지 헤엄쳐 왔다고?

“그런데 어떻게?”

“그딴 건 중요한 게 아니고, 그것조차 놈들이 지시한 내용이겠군.”

“그.. 그것까지는 모르겠소. 저들은 당신의 시체 일부를 상어 밥으로 준답시고.. 흠. 내게 지시한 내용을 생각하면 그것조차 저들의 손길이 닿아있을 수는 있겠지. 하지만 나는 모르는 내용이오.”

‘이집트, 로마, 카르타고에 이제는 셀레우코스까지······. 무스타파와 연관이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상당히 광범위한 조직이로군. 놈들의 목적이 뭐지? 그리고 왜 나를 습격한 거지?’

모든 단체는 목적이 있다.

‘보아하니 점조직 형태로 이곳저곳에 나눠져 있기라도 한 모양인데 이런 단체가 유지되려면 그 목적은 더욱더 확고해야 한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왜 자신이란 말인가? 나디르에게 언급한 적이 있지만 자신의 이름은 로마에 전해지지도 않았을 것이다. 고작 그런 자신의 영향력이 껄끄러워서?

‘아니면 궁극적으로 나로 인해 강해질 내 아버지, 세르토리우스를 견제하기 위해?’

하나 이것도 명확하지 않다. 그럴 거라면 애초에 무스타파가 테세우스, 자신이 아니라 바로 세르토리우스를 노렸으면 될 일이다. 그의 무위와 당시의 상황을 고려해보면 이 일은 아마 반드시 성공했을 것이다.

물론 무스타파의 태도나 정황상 그가 어떤 철저한 계획을 가지고 자신을 노린 것으로 보이진 않았다. 어떤 목표를 이행하는 데 있어 자신의 존재가 걸리적거리니 간단히 치워버릴 요량으로 습격을 감행한 것으로 보였다.

‘어쩌면······.’

어쩌면 이 모든 것들이 놈들에겐 유희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자신의 입장에선 놈들이 뭔가 철저하게 계획하고 집요하게 자신을 노리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저들에겐 이 일이 어떤 비중조차 가지지 못할 가능성도 있었다.

일례로 모기라고 했던가? 모기를 잡는데 무슨 엄청난 계략이 필요한 건 아니지 않은가? 실제로 저들은 자신의 존재는 드러내지 않고 각 세력의 이해관계만으로 저들을 조종했다.

‘대체 종잡을 수가 없군.’

자신을 노리는 적이 있는데 그 적의 정체는 물론 저들의 목적과 자신을 노리는 이유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으니 가슴이 답답하기 이를 데 없었다. 짧은 시간 동안 수많은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갔지만 테세우스는 모두 털어버렸다.

‘상관없다. 이제부터 알아가면 될 일이고 뭐가 되든 하나씩 하나씩 부숴버리면 될 뿐이다.’

샤파트를 통해 알아낼 수 있는 사실은 이게 전부였다. 답답한 일이지만 그러니 더 질문할 것도 없었다.

“나디르.”

“예.”

“포박해라.”

“자.. 잠깐만.”

테세우스가 무심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자 샤파트가 고개를 조아리며 말했다.

“다.. 당신을 따르게 해주시오.”

테세우스의 눈빛이 달라지자 샤파트가 급히 다시 말을 이었다.

“지.. 진심입니다.”

테세우스는 샤파트를 매서운 눈빛으로 쳐다봤다.

“죽이지 않을 것을 약속했으니 죽이진 않겠다.”

따로 입을 열어 약속하진 않았지만 암묵적인 약속도 약속이었다.

테세우스의 사나운 기세에 샤파트는 입을 굳게 다물었다.

그런 뒤 나디르를 바라보며 말했다.

“포박해라.”

그건 곧 예정한 대로 노예로 판다는 소리였다. 나디르는 고개를 숙이며 단호하게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

알렉산드리아. 나일강 유역, 서쪽에 위치한 이곳은 본디 이집트의 작은 도시에 불과했다. 그러던 곳이 대도시로 변화할 수 있었던 이유는 알렌산드로스 대왕이 이곳에 도시를 세우기로 작정했기 때문이었다.

이곳에 도시를 세우기로 작정한 이유는 상업과 어업에 적합한 항구를 지녔고 선박들의 입출항이 자유로우며 지중해로의 진출 역시 쉽게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페르시아와의 전쟁에서 승리해 이집트를 수중에 넣은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건축가 디노크라테스에게 명령을 내려 알렉산드리아를 건설토록 했다.

건축가 디노크라테스는 바둑판 모양으로 도시를 설계하고 도시 전역을 그리스 고전 양식으로 장식했다. 하지만 정작 도시 건립을 명령했던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BC 323년에 완성된 도시를 보지 못하고 바빌론에서 열병으로 사망한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유체는 알렉산드리아에 매장되었지만 그의 유체는 현대에 이르기까지도 발견된 적이 없었다.

“이집트라고 해서 이집트 건축양식을 확인할 수 있을 거라 여겼는데 이곳은 그리스처럼 느껴지는군.”

“알렉산드리아는 그런 곳입니다. 하여 로마인이나 그리스인들도 이곳에서 다양하게 만날 수 있죠. 그래서 이곳에 찾아온 것이 아니십니까?”

테세우스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 자는 에부수스에서 만난 캄바라는 상인이었다.

“거래는 만족하는가?”

“왜 노예상으로 가장하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노예의 상태가 제법 괜찮았기에 나쁘지 않은 거래였습니다. 특히 상처 입은 해적 두목은 검투사로 팔면 돈 좀 꽤 만질 것 같더군요.”

테세우스는 알렉산드리아의 거리를 캄바와 함께 걸으면서 그에게 말했다.

“내가 손해를 감수했다는 건 알 것이오. 굳이 당신과 거래할 필요가 없었다는 것도.”

“물론입니다. 이곳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성심껏 돕도록 하겠습니다. 비단 오늘의 거래가 없었더라도 말입니다.”

캄바가 미소를 지으며 말하자 테세우스는 고개를 끄덕이다가 그에게 말했다.

“일단 알렉산드리아 대도서관을 보고 싶군.”

“대도서관 말입니까? 흐음. 그거야 뭐 어려울 것이 있겠습니까? 곧 준비시키겠습니다.”

테세우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알렉산드리아 곳곳을 뒤덥고 있는 고풍스럽고 아름다운 그리스 건축양식의 건물들을 바라봤다.

‘이곳이 알렉산드로스가 세웠다는 알렉산드리아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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