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6
126. 대도서관.
126.
오리칼쿰(Orichalcum,라틴어), 오레이칼코스(ὀρείχαλκος,그리스어)는 흔히 오리하르콘이라 알고 있는 본래 명칭이다. 이 금속은 사라진 전설의 대륙, 아틀란티스 대륙에서만 생산되었는데 BC700년 전 시인, 헤시오도스의 시 ‘헤라클레스의 방패’ 등에서 헤라클레스의 정강이받이가 바로 이 오리하르콘, 즉 오리칼쿰제라고 했다.
이후로 오리칼쿰은 수많은 소설 등에서 절대로 깨지지 않은 전설상의 초금속으로 출현하는 경우가 많았다. 일단 아틀란티스 대륙 자체가 실존했는지 아닌지도 불명확하기에 오리칼쿰이 정확히 어떤 금속인지는 알 길이 없으나 황동이나 알루미늄을 오리칼쿰이라 여겼다는 설이 제법 유력했다.
물론 절대로 깨지지 않는 어떤 초금속일 가능성도 없지는 않다. 당시의 금속제련법을 기준으로 둔다면 비현실적인 이야기로만 볼 수는 없고 무엇보다 혹자가 말하듯 아틀란티스가 초고대 문명을 지닌 곳이었다면 그곳에서 생산된 오리칼쿰이 초금속이라는 것도 이상할 건 없었다.
하지만 오리칼쿰, 그러니까 갑자기 무슨 오리하르콘이라니? 그야말로 황당할 노릇 아닌가? 테세우스는 그저 말문을 잃고 경탄에 찬 표정을 짓는 도리안을 바라봤다.
“내 살아생전에 오레이칼코스를 보게 될 줄이야!”
도리안의 감탄사를 들은 주변의 학자들이 웅성거리며 몰려들기 시작했다.
“잠깐! 오레이칼코스라고? 아틀란티스의 오리칼쿰?”
“뭐? 오리칼쿰이라고?”
테세우스는 가장 무난하다고 여겼던 질문이 고즈넉하던 이곳 대도서관을 도가니처럼 들끓게 만들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오오오. 티마이오스, 크리티아스의 대화록에서 플라톤께서 언급한 아틀란티스의 증거가 여기 있다니! 게다가 그것을 내 눈으로 목격하게 될 줄이야!”
이는 플라톤의 자연학에 대한 대화편으로 티마이오스, 크리티아스, 헤르모크라테스 3부작으로 계획되었다. 하나 실제로 완성된 저작은 티마이오스뿐으로 주제는 물리학, 생물학, 천체학 등이었다.
어쨌든 플라톤은 이 두 대화편을 통해 아틀란티스에 대해 제법 상세하게 언급했다. 학자의 발언은 그것을 이르는 말이었다.
“저 무지개빛 금속은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영롱해지는 기분이오.”
모든 오리칼쿰이 무지개색은 아니었던 모양이지만 그중에 무지개색으로 빛나는 오리칼쿰이 꽤 많았다고 전해진다. 세상천지 어디서 무지개색으로 빛나는 금속을 찾아볼 수 있을까? 그렇게 만들고자 해도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따라서 테세우스의 손바닥에 놓인 이 무지개빛 정체불명의 금속은 대번에 저들에게 오리칼쿰으로 결정지어졌다.
“이럴 수가! 금속이 어찌 이리도 아름답단 말이오? 게다가 이 정교하게 계단을 이루고 있는 것을 보시오. 이는 황금으로도 사지 못할 보물 중의 보물이 따로 없소!”
점점 더 몰려드는 학자들과 저들의 격렬한 반응에 테세우스는 아차 싶었다. 이게 이렇게까지 사람들의 관심을 살 만한 요인이 될 줄 미처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조용히 업무를 보고 사라지려고 했던 테세우스로서는 낭패에 가까운 상황이었다.
아니 자신의 손에 있는 작은 금속이 오리칼쿰으로 예상되는 금속이라니? 그 누가 예상이라도 했겠는가?
“무려 9000년 전의 신비를 우리는 목격하고 있는 것이오! 그러니까 9000년도 더 된 사라진 전설의 대륙의 증거를 목도하고 있는 것이란 말이오.”
“오오.”
“9000년 전쯤 헤라클레스 기둥 뒤편에 큰 섬이 있었다. 이곳의 이름은 아틀란티스! 강력한 고대의 국가였다. 그러나 어느 날 격렬한 지진과 해일이 이곳을 덮쳤다. 결국 아틀란티스는 바다 아래로 사라지고 말았다. 섬이 가라앉을 때 휘몰아친 진흙 너울로 인해 누구도 항해할 수 없었으며 당연히 그 이후 누구도 섬을 찾을 수 없었다. 바로 그 아틀란티스의 증거를 우리가 발견한 것이오!”
우리가? 아니다. 이게 아틀란티스의 증거가 맞다면 테세우스가 발견한 것이지. 어찌 저들이 발견한 것이겠는가? 하지만 정작 테세우스는 학자들의 격렬한 반응에 말문을 잃고 그저 저들을 가만히 바라만 보고 있었다.
그렇게 도서관이 떠들썩해지고 플라톤이 아틀란티스에 대해 언급한 내용을 저마다 떠들썩하니 나누기 시작하자 도서관 한편에서 싸늘한 표정을 지은 학자들이 나타나 열광하는 저들을 향해 일갈했다.
“흥! 대현인 아리스토텔레스께서 말한 걸 잊은 모양이로군. 그것을 만들어낸 사람은 그것을 파괴하기도 하는 법이다. 아틀란티스라고? 흥! 고작 한 사람의 상상 속에 불과한 대륙 따위를!”
“플라톤은 부인할지라도 그의 스승 소크라테스도 부인할 수 있나? 나아가 그리스 7현인 중 한 사람인 솔론(BC630~560) 역시 부인할 텐가?”
아틀란티스는 솔론이 소크라테스에게, 다시 소크라테스가 플라톤에게 전한 이야기였다. 바로 그 점을 짚는 것이었다.
“아틀란티스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 어찌 그들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되는지 모르겠군. 플라톤의 스승이자 현인 소크라테스조차 아틀란티스를 가공된 이야기로 여겼고 솔론 역시 아틀란티스에 대한 이야기를 그리스의 한 늙은 사제에게 들었다고 들었다. 그게 벌써 수백 년도 더 된 일이다. 게다가 아틀란티스 멸망은 솔론이 있던 시대로부터도 다시 9000년 전에 일어난 일이 아닌가? 당장 어제 일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인간이 별도의 문서도 없이 9000년 전의 일을? 흥! 말도 안 되는 소리지. 비록 솔론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을지 모르나 늙은 사제의 말은 무슨 수로 믿느냔 말이다.”
“그렇게 볼 수도 있겠지만 늙은 사제가 단순히 지어낸 이야기로 보기엔 그 묘사가 너무 상세하오. 도시계획, 군사조직, 섬의 위치까지 상상 속의 이야기로 보기엔 너무 세심하게 묘사되어 있지 않소이까? 무엇보다 플라톤께서는 이 일에 자기 집안의 솔론과 크리티아스의 이름까지 걸고 사실이라고 강변했소이다.”
여기서 크리티아스는 플라톤의 대화편을 언급하는 것이 아니라 소크라테스의 제자이자 플라톤과 친척 관계였던 철학자를 이르는 말이었다.
아틀란티스를 주제로 두고 아리스토텔레스 학파인 소요학파와 플라톤 학파인 아카데메이아파가 첨예하게 대립했다.
이곳엔 푸뉘쿠스(페니키아)인 키프로스의 제논이 창설한 스토아학파나 에피쿠로스가 창시한 에피쿠로스 학파, 안티스테네스의 뒤를 이어 디오케네스가 창시한 키니코스 학파, 아리스티포스의 키레네 학파, 에우클레이데스의 메가라 학파 등의 계보를 이은 자들은 물론 이들 학파와 연관이 없는 학자들도 많았지만 그들은 흥미로운 시각으로 점점 더 열기를 더해가는 논쟁을 경청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다양한 사상을 가진 학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있기도 드문 일이 아닐 텐데 이를 통해 대도서관의 위상이 어느 정도인지 조금이나마 가늠해 볼 수 있었다.
테세우스는 뭔가 주객전도가 되어버린 상황을 반전시키고자 입을 열었다. 정작 이 금속이 무엇인지는 뒷전이고 아틀란티스가 실존했는지의 여부만 가지고 연신 토론하고 있지 않은가? 이대로 둔다면 한도 끝도 없이 논쟁만 벌일 가능성이 다분했다.
“일단!”
테세우스가 손을 번쩍 들고 입을 열자 저마다 목소리 높이던 학자들이 일제히 입을 다물고 그를 주시했다. 이 논쟁을 가져오게 만든 사람이 바로 테세우스였으니 말이다.
“이게 정말로 오리칼쿰인지 아닌지부터 확인하는 것이 우선이지 않나 싶습니다만?”
“틀린 말이 아니로군.”
“하긴 저 금속이 오리칼쿰이 아니라면!”
그러자 소요학파의 소속된 것으로 보이는 학자가 입을 열었다.
“오리칼쿰은 세상에서 제일 단단한 물질이라고 들었소. 들고 있는 금속의 경도는 어떠하오?”
테세우스는 그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흐물흐물할 정도로 무른 건 아니지만 이걸 오리칼쿰이라 여기기엔 너무 무릅니다. 오리칼쿰이 본래는 그렇게 단단한 금속이 아니거나 아니면 잘못 알고 있거나. 그도 아니면 제련방법에 따라 강도가 달라졌을 수도 있겠지요.”
테세우스는 말을 꺼내다 말고 경황 중이라 미처 떠올리지 못했던 사실을 떠올렸다. 이 금속을 발견한 것은 에고르다. 그 에고르는 자신의 명령을 따라 무스타파를 추적하다가 이 금속을 얻었다. 혹 이게 정말로 오리칼쿰이라면? 무스타파는 아틀란티스의 전설을 파헤치는 자들이 아닐까?
헤라클레스의 기둥은 카다스(지브롤터) 해협 동쪽 끝에 솟은 두 개의 바위를 말한다. 즉 히스파니아 지역과 매우 근접한 곳에 위치해 있었고 그 뒤쪽 바다, 곧 대서양에 아틀란티스 대륙이 존재했다면 무스타파가 히스파니아와 같은 오지를 특정 목적도 없이 헤맨 그럴듯한 이유가 될 수 있었다.
‘무슨 인디아나 존스도 아니고. 게다가 설혹 아틀란티스 대륙이 존재했다고 쳐도 지진과 해일로 바닷속에 영원히 가라앉은 대륙을 찾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다고? 아니 그 전에 가라앉은 대륙을 탐사할 능력은 되고?’
심지어 이 시대로부터 수천 년이 흐른 뒤에도 아틀란티스의 실존 여부가 확실히 밝혀지지 않았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했듯 가상의 대륙이거나 어떤 착각 등으로 빚어진 환상의 대륙이 아닌가로 굳혀지고 있는 추세였다.
‘하지만······. 아예 외면해버릴 수는 없는 내용이군. 아틀란티스라······. 허 참.’
테세우스는 이 내용을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한다는 사실 자체가 매우 황당했다.
그때 대뜸 도리안이 입을 열었다.
“금속을 내게 주시오. 내가 잘 아는 기술자가 있으니 그것이 정말로 오리칼쿰인지 알아보기에 충분할 것이오.”
그는 속으로 자신의 경솔함을 크게 탓하고 있었다. 테세우스가 난처해진 것 때문에? 그럴 리가? 보아하니 덩치 큰 저놈은 자신이 지닌 금속이 얼마나 대단한 가치를 지녔는지 몰랐던 모양인데 대수롭지 않게 평가하고 적당한 금액과 함께 금속을 넘겨받았다면 막대한 재력을 얻거나 잘 둘러대면 명성도 덤으로 함께 얻을 수 있었을 것이다. 도리안은 그게 너무 아쉬웠다.
저게 정말로 오리칼쿰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무지개빛을 지닌 금속이라는 것만으로 희소가치는 대단하다. 거기에 그럴듯한 전설을 양념으로 뿌린다면 예상대로 오리칼쿰이 아닐지라도 저건 오리칼쿰이 된다. 자신조차 혹하지 않았던가? 어차피 비교할만한 오리칼쿰이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아무튼 그때가 되면 부르는 것이 값이 될 것이다.
“무슨 소리! 내가 아는 기술자가 훨씬 더 뛰어나니 오리칼쿰인지를 알아보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오.”
“아.. 아니! 이 사람들이! 내게 주시오. 내게도 아는 자가 있으니!”
도리안의 말 한마디에 테세우스가 지닌 금속의 가치를 알아본 학자들이 저마다 목소리를 높여서 자신에게 맡겨달라고 외쳤다.
하지만 누구도 테세우스의 손에서 금속을 낚아챌 생각은 하지 못했다. 덩치를 보라. 자신들 모두가 달려들어도 몸 한 번 털면 후두둑 떨어져 나갈 덩치가 아닌가? 바로 그래서였다. 그게 아니었다면 당장에라도 손에서 빼앗아 갈 기세였다.
보물이 품에 있어도 그게 보물인지 알지 못하면 잡동사니에 불과하다. 딱 그 꼴이 아닌가?
그러나 테세우스가 보물을 알아보는 눈은 없었을지라도 눈치는 제법 빨랐다. 게다가 이것을 잡동사니로만 취급했다면 품에 지니고 다니지도 않았을 것이다. 일례로 무지개빛 금속은 테세우스도 본 적이 없는 금속이었다.
다 떠나서 자신의 목적과 하등 상관없는 일에 더 휘둘리는 것은 사양하고 싶었던 테세우스는 큰 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만! 이것이 정말로 오리칼쿰인지 아닌지는 저 스스로도 알아볼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니 그쯤 하시지요.”
이 금속이 실제로 뭐든 간에 오리칼쿰이라고 오해받는 것도 매우 부담스러운 일이다. 이 금속을 무스타파가 다른 곳에서 가져온 것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자신은 오리칼쿰을 히스파니아에서 얻었다.
사람들이 품고 있는 오리칼쿰에 대한 환상이 얼마나 대단한지는 이곳 학자들의 열광적인 태도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이것이 어떤 흐름으로 굳어진다면 히스파니아는 큰 역경에 처하게 될 것이다. 사람들의 욕망은 그 무엇보다 강력한 동력이 될 테니까. 따라서 어떻게든 이 오해를 무마시킬 필요가 있었다.
“게다가 이토록 무른 금속이 오리칼쿰이라니. 그걸 나보고 믿으란 말이오? 내가 아는 대장장이는 납의 일종이 아닌가라고 추측했소이다.”
파이살은 함부로 녹일 수는 없어서 단언할 수는 없지만 성질이 납과 비슷한 부분이 많다고 테세우스에게 언급했었다. 아닌 말로 이 금속이 오리칼쿰 비슷한 성질을 조금이라도 지녔다면 이렇듯 함부로 말을 꺼내지도 않았을 것이다.
‘색상만 화려하지 별 볼 일 없는 금속으로 여겼거늘, 오리칼쿰은 무슨? 제길.’
하지만 학자들은 도무지 납득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테세우스에게 말했다.
“납? 대체 어떤 납이 무지개색을 띠고 있단 말이오?”
“게다가 그 질서정연한 계단형 모습을 보시오. 그게 어딜 봐서 납이란 말이오?”
그때 창노한 음성이 대도서관에 울려 퍼졌다.
“신성한 대도서관에서 이 무슨 소란이란 말인가? 집회실이나 강의실이 따로 있거늘! 그 정도 분별력도 없단 말인가?”
모습을 드러낸 노학자가 단호하게 일갈하자 학자들은 찔끔한 표정으로 일제히 입을 다물었다.
“해산들 하라. 정 필요하다면 다른 장소를 이용하면 될 일이야!”
그러자 학자들은 노학자의 눈치를 살피며 삼삼오오 짝을 지어 흩어졌다. 테세우스에게 자신들을 찾아오라는 당부를 남기고 말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테세우스는 저들을 따로 만날 생각이 없었다.
테세우스는 노학자가 누구인지 알지 못했지만 그 뒤를 따르는 캄바의 모습에 이 노학자가 바로 캄바에게 학문을 가르친 스승이라는 것을 눈치챌 수 있었다. 노학자 아모시스는 주변을 주시하다가 테세우스에게 말을 건넸다.
“보아하니 자네가 바로 테세우스로군. 듣던 대로 가히 폭풍 같은 사내야. 그 폭풍이 이곳 도서관까지 흔들리게 할 줄은 미처 몰랐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