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7
137. 갈림길.
137.
테세우스의 모습에 놀라긴 했지만 마적들은 그동안 살아온 행적이 있었다. 따라서 테세우스의 말에 따르는 마적은 눈에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시카와 살아남은 몇 명의 수하들 역시 테세우스의 말을 따르지 않았다. 다만 다른 마적들처럼 테세우스를 향해 질주하는 것이 아니라 속도를 늦추며 상황을 살피고 있었다.
테세우스도 말을 뱉기는 했지만 도적들이 자신의 말을 따를 것이라 생각하고 뱉은 것은 아니었다.
아닌 말로 도적질이 나쁘지 않다는 걸 몰라서 도적질하는 도적도 있던가? 안다. 다 아는데 항상 그 어긋난 욕망이 문제인 거다. 그럼에도 본인이 악한 짓을 하다가 잡히거나 죽임을 당하면 본인의 욕심을 탓하는 것이 아니라 남탓을 한다는 점이 아이러니하지만 아무튼 말 한 마디로 멈출 이들 같으면 애초에 도적질을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게다가 마적이라면 이들은 어쩔 수 없이 도적이 된 자들도 아니다. 물론 개중에는 어쩔 수 없이 도적이 된 자들이 있을 수 있겠지만 적어도 이제는 그렇지 않다. 일례로 타고 있는 말만 가져다 팔아도 정상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자들이다. 그럼에도 이들은 마적의 생활을 지속했다.
이들의 절대가치는 힘이다.
힘을 가진 자는 약탈을 해도 된다. 힘을 가진 자는 약자를 압제해도 된다. 정의와 법? 자비심이나 공정심? 그런 건 약자들이나 보호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들이다. 자신들은 강자이기에 마음껏 약탈해도 된다. 그렇기에 모헵의 잔혹한 행위에도 이들은 반발하지 않았다. 그건 강자의 권한이며 자신들 역시 그 자리에 올라서면 그렇게 행할 것이니까.
이들, 마적과 같이 약탈하는 일에 기꺼이 동참한 자들은 도적 중에서도 악랄하고 잔혹하다. 모헵이 시카가 두려움을 느낀다는 사실에 의아함을 느낀 건 그런 점도 있었다.
약탈을 하다보면 살인은 비일비재로 일어나고 목숨이 위험한 순간도 무수히 많이 겪는다. 당연히 두려운 순간이지만 그 순간이 지나면 두려움이 아니라 적개심을 품는 것이 일반적이다.
시카 역시 잔인한 놈이고 어지간한 전투로는 겁을 집어먹는 자가 아니다. 그럼에도 두려워하는 것이 선연하게 느껴지니 모헵은 수하를 잃은 사실에 분노하면서도 그 점이 의아했던 것이다.
모헵은 테세우스가 기상천외하게 움직이며 수하들을 살해하는 모습에 시카가 왜 두려움을 느꼈는지 조금이나마 이해가 되었다. 확실히 지금껏 경험해보지 못한 전투능력을 소유한 자였다.
“그러나 그뿐이다. 혼자서 뭘 할 수 있다고. 흥! 상관없으니 말도 같이 노려!”
모헵의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선두에서 달리던 마적들이 세 갈래로 갈라져 테세우스를 추격했다.
테세우스가 두 마리 말을 달리게 하고 그 위에서 선 채로 버티고 있기는 하나 고삐로 제어하고 계속해서 말을 달리게끔 독려하지 않는 이상, 빠른 속도로 계속해서 나란히 달리는 것은 불가능한 일에 가까웠다.
쐐에에엑
왼쪽, 중앙, 오른쪽, 그렇게 세 갈래 중 가운데의 선두에서 달려오던 마적이 테세우스를 향해 투창했다.
하지만 테세우스는 눈 하나 깜작하지 않고 날아오는 창을 받아내며 방향을 바꿨다. 마적이 던진 창은 테세우스의 손을 거치며 마치 기억자 형태로 굽어지더니 이내 곧 왼쪽 옆으로 쇄도하던 마적의 옆구리에 틀어박혔다.
푸우욱
“커허허헉!”
마적은 그대로 말에서 떨어져 이리저리 바닥에 튕겨나갔다.
텅 터텅
테세우스는 창의 방향을 뒤틀며 얻은 회전력을 거스르지 않고 몸을 앞으로 돌려앉았다. 두 마리 말 중 왼쪽 말 위에 앉은 그는 바람에 의해 이리저리 흔들리는 고삐를 잡아챘다.
히이이잉
고삐를 잡은 테세우스는 말머리를 왼쪽으로 틀었고 얼룩덜룩한 털을 가진 말은 울음소리를 내뱉으며 테세우스가 의도한 대로 왼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방향전환이 이뤄져야 했기에 그 가운데 말의 속도가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다그닥 다그닥
이에 정면과 오른쪽에서 추격하던 마적떼들이 그를 스쳐서 지나갔다. 왼쪽의 마적떼 역시 그를 스쳐가긴 마찬가지였기에 테세우스는 완벽하지는 않지만 저들의 뒤를 잡을 수 있었다.
마적들은 테세우스를 스쳐감에 따라 말의 속도를 늦추느라 잠시 멈칫거렸고 테세우스는 그 찰나에 도리어 말을 재촉해서 저들 속으로 파고들었다. 정확하게는 본래 자신의 왼쪽으로 짓쳐들던 20명 남짓되는 마적떼를 파고들며 코페시로 저들의 육체를 무참하게 갈랐다.
“으아아아악!”
“크허허헉!”
아차하는 사이에 추격하는 상황에서 추격당하는 상황으로 변했고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자신들을 공격할 줄은 몰랐기에 마적떼들은 크게 당황한 표정으로 허둥지둥 테세우스의 공격을 막으려 들었다.
그러나 작정하고 달려든 테세우스를 막을 방법같은 건 없었다. 피와 육체가 이리저리 튀어오르고 마적떼들은 고통섞인 단말마를 뱉는 것이 전부였을 뿐이다.
순식간에 좌익의 수하들이 이렇다 할 대응도 못하고 전멸당하는 것을 본 모헵은 분을 이기지 못하고 수하들에게 소리쳤다.
“이런 병신들이! 따라와!”
그리곤 테세우스의 측면을 향해 쇄도했다.
측면으로 쇄도해오는 마적의 숫자가 한둘에 불과했다면 말의 방향을 틀거나 신출귀몰한 몸놀림으로 어떻게 피해냈겠지만 측면을 빼곡이 메우고 달려들었기에 어디로 피할 공간이 딱히 없었다. 공간은 물론이거니와 몸을 피할 시간적인 여유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이대로라면 검이 아니라 말에 받혀 죽을 판이었다.
두두두두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말의 무리를 본 얼룩무늬 말의 눈동자가 심히 흔들렸다. 아는 것이리라. 이대로 받히면 죽음을 면치못할 것을.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미안하다.”
짧은 순간이지만 자신을 태운 말이었다.
하지만 말을 구하자고 목숨을 위태롭게 만들 수는 없었다. 엄밀히 말해 그건 비효율적이고 결코 현명한 행동이라 말할 수 없었다. 말을 지키기 위해 테세우스가 이 전장에 선 것은 아니지 않은가?
따라서 테세우스는 굳은 표정을 지으며 짧게 말한 뒤 그대로 말의 등을 박차고 날아올랐다. 다만 테세우스는 말등을 박차기 전에 들고있던 코페시로 타고 있던 말의 목을 베어버렸다.
촤아아악
테세우스가 휘두른 코페시는 매우 신속하게 말의 목을 베어버렸기에 얼룩무늬 말은 고통에 휩싸일 새도 없이 죽임을 당했다. 결국 앞다리와 뒷다리 모두 힘이 빠진 얼룩무늬말은 달리던 와중에 그대로 주저앉았다.
테세우스는 말이 쓰러지기 전, 즉 다리 힘이 아직 남아있을 때 말등을 박차고 코앞까지 다가온 모헵 등을 향해 몸을 날렸다.
쿠궁 쿠구궁
히이이잉 히이잉
바닥에 쓰러지던 얼룩무늬 말에 부딪쳐 여러 마리의 말과 마적들이 크게 다쳤다. 테세우스가 얼룩무늬 말의 생명을 거둔 것은 최소한의 자비였다. 지금과 같이 충돌한다면 죽음을 면치 못하긴 마찬가지인데 끔찍한 고통 끝에 생을 마감해야 했을 테니 말이다.
허공으로 도약한 테세우스를 가만히 두고 볼 마적들이 아니었다. 창이나 투척무기를 지니고 있는 마적들은 저마다 테세우스를 향해 무기를 집어던졌다.
하지만 테세우스는 무심한 눈빛으로 코페시를 휘둘러 창이나 단검 종류의 무기를 쳐냈다. 쳐내지 않은 무기는 몸을 뒤틀어 피하기도 했다.
그런 뒤 테세우스는 자신을 향해 쇄도하던 말의 머리를 발로 밟으며 타고 있던 마적들의 목을 코페시로 쳐버렸다.
히이잉
머리가 밟힌 말은 그 충격에 울부짖으며 머리부터 땅에 처박혔다. 그 결과가 어찌되었음은 따로 말할 필요도 없었다.
그것이 끝이 아니라 테세우스는 말과 말 사이를 도약하며 짧은 순간에 일곱 명에 달하는 마적의 목숨을 빼앗았다. 위험천만한 곡예를 펼치며 달려가는 그 끝에는 모헵이 자리하고 있었다.
다른 마적들은 모를 지라도 테세우스에게 노려지고 있는 모헵은 그 사실을 모를 수가 없었다.
“산개! 산개하라! 이 병신들아!”
실로 무시무시한 놈이었다. 달리는 말과 말 사이를 뛰어다니며 사람을 벤다고? 이 같은 광경은 상상으로도 생각해보지 못했다. 말 위에 앉아서 가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닌데 달리는 말 위를 평지를 달리듯 뛰어다닌다고? 그것도 자신을 죽이려는 적을 상대로?
모헵은 모골이 송연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는 그제야 시카가 느낀 두려움의 근원이 무엇인지 알아차렸다. 무슨 수를 쓰더라도 이길 수 없는 절대강자의 향기가 저 사내에게 흘러나왔다. 백명이 아니라 그 열 배가 있어도 자신들로서는 결코 상대할 수 없는 절망에 가까운, 어떤 천재지변에 가까운 존재 말이다.
모헵은 그렇게 명령을 내리며 자신 역시 말머리를 틀어 마적들에게서 벗어나려고 했다. 그토록 든든하던 수하들이 절망과 죽음을 가져오는 자의 징검다리가 될 줄 누가 알았으랴?
그러면서 모헵은 시카를 찾았다. 시카는 어디에서도 발견할 수 없었다. 그 순간, 저만치 도망치는 몇 명의 마적들이 눈에 들어왔는데 모헵은 직감적으로 그들 중 하나가 시카임을 알아차렸다.
“이.. 이 새끼가!”
절망을 몰고 온 주역이라 할 수 있는 새끼가. 자신만 몸을 내뺐다고? 모헵은 황당함과 억울함에 시카에게 극심한 분노를 느꼈다. 그러나 그 분노가 길게 가지는 않았다. 어느새 다가온 절망이 자신을 죽음으로 이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테세우스는 지금까지처럼 말없이 코페시를 휘둘렀다. 모헵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검을 들어 코페시를 막았지만 예의 지금껏 대부분의 마적들의 경우에도 그랬듯 테세우스의 코페시는 모헵의 방어마저 아랑곳하지 않고 그의 목을 날려버렸다.
촤아아악
모헵은 황당함과 억울함. 분노가 섞인 표정을 지으며 죽음을 맞이했다. 그 표정이 남아있는 머리는 허공을 치솟았다가 마적들이 타고 있는 말발굽이 이리저리 치이다가 이내 곧 머리가 산산이 박살나버렸다. 그야말로 참혹한 죽음이었지만 그의 죽음에 애도를 표하는 자는 어디에도 없었다.
구심점이 되던 모헵이 이렇다 할 대응도 하지 못하고 처참하게 죽임을 당했다. 중간 대장 역할을 하던 시카는 벌써 전에 사라지고 없었다. 이에 마적들이 택할 태도는 한 가지였다. 저들은 두려움에 질려 테세우스에게서 벗어나고자 뿔뿔히 흩어졌다.
테세우스는 모헵을 죽인 후에도 미처 도망치지 못하고 주변에 남아있는 마적들을 모조리 쳐죽였다. 그런 뒤 땅 위에 사뿐하게 내려서며 놀란 메뚜기떼처럼 사방으로 흩어지는 마적들을 훑어봤다.
이제 저들은 전령이자 공포의 앞잡이가 될 것이다. 이제 이 일대에 거주하는 도적들은 알게 될 것이다. 자신들이 기준으로 삼았던 약육강식의 논리가 얼마나 처절하게 자신들을 압박해 올 것인지에 대해 말이다.
테세우스 앞에 엎드리는 자는 살겠고 엎드리는 않는 자는 오늘처럼 모조리 죽임을 당할 것이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엎드리는 자나, 엎드리지 않는 자나 이제 도적의 삶은 끝났고 자신이 저지른 대가를 어떤 식으로든 치르게 될 것이다.
‘도적에게 베풀 자비따위는 없다. 칼날 속에 갈아넣을 뿐이다.’
테세우스는 무심한 눈으로 처첨한 몰골로 너부러져 있는 시신들을 바라보다가 저 멀리 아직도 그늘 밑에서 쉬고 있는 갈색말로 다가갔다.
*
일주일, 일주일도 채 걸리지 않았다.
테세우스가 파라이토니온 지역과 알렉산드리아를 경계로 한 지역의 도적들을 토벌하는데 걸린 시간 말이다. 심지어 그 모든 일을 테세우스는 홀로 해냈다. 죽이거나 굴복시키면서.
바트로스는 그 모든 일을 알렉산드리아 등지에서 목이 터져라 외쳤고 이집트 사람들이나 로마인들 마저도 테세우스라는 자가 도적들을 토벌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소문만 듣고 있는다면 그리스의 영웅, 테세우스의 업적도 저리가라 할 업적이었다. 홀로 그 지역의 모든 도적들을 토벌하다니 그게 사실이라면 신화속의 영웅이 현세에 출현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따라서 그 소문을 곧이곧대로 믿는 권력자들은 전무하다시피 했다. 전공부풀리기 같은 평판 작업은 권력자라면 누구나 하는 일이었으니까. 무엇보다 사실, 도적떼따위를 누가 처리했든 저들에게는 큰 관심사도 아니었다.
하지만 일반 백성들은 달랐다. 퀸투스 세르토리우스 테세우스라는 이름이 저들 머릿속 깊숙이 박혔다. 누구도 해결해주지 않는 실질적인 위험을 제거해준 은인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테세우스에 대한 소문은 확대 생산되었고, 그가 원래는 마르스나 헤르쿨레스의 아들이었다는 등, 아니면 테세우스가 되살아왔다는 등의 허무맹랑한 이야기도 퍼져나갔다. 황당한 소문이지만 그런 이야기가 퍼져나간다는 사실은 실제로 그렇게 믿는 자들이 있다는 소리와도 같았다.
그러나 이 소문이 퍼져나감에 따라 위기감을 느끼는 권력층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은 이집트의 실권자들이 아니라 이집트에 거주하는 로마인들이 대부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