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마 무신의 기억-138화 (138/298)

# 138

138. 갈림길.

138.

저들이 위기감을 느낀 것은 다름이 아니라 최근 명성이 높아지고 있는 테세우스라는 자가 퀸투스 세르토리우스 테세우스로 로마의 적인 세르토리우스의 아들이라는 소문이 있었기 때문이다.

헛소문으로 치부하면 될 일이지만 실제로 세르토리우스에게 테세우스라는 아들이 있다는 소식을 확인한 로마인들은 테세우스를 죽이라고 연일 이집트 권력층에 압박을 가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미 민심을 잃은 이집트 왕조가 소문이 퍼지다 못해 확대, 재생산되고 있는 테세우스를 죽이려 든다면? 그때는 어떤 일이 발생하겠는가?

멋모르는 자들은 로마인의 입맛대로 테세우스를 죽이려고 들었겠지만 정세에 대해 조금이라도 파악하고 있는 자는 테세우스를 죽이는 일이 단순히 사람 하나를 죽이는 것이 아니라 지금껏 쌓인 민중의 분노를 폭발시킬 수 있는 도화선이 될지도 모른다는 것을 직감하고 있었다.

게다가 들어보니 평범한 신분도 아니었다. 히스파니아를 장악한 세르토리우스의 아들이라는 소문이 있었다.

아니 확실했다. 그것이 아니라면 이집트 내의 로마인들이 테세우스를 죽이라고 압박할 까닭이 없었으니까. 로마인들은 영웅을 좋아한다. 또한 그 영웅들이 자신들의 검투장에 서는 것을 좋아한다. 테세우스가 로마의 적이 아니라면 굳이 그를 배척할 이유가 없었다.

그러니 민심은 차치하더라도 히스파니아와의 관계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히스파니아를 장악하며 로마의 군단을 몇 번이나 물리친 세르토리우스다. 게다가 마리우스파니 술라파니 하는 문제로 로마의 적이 되기는 했지만 그 둘이 모두 사망한 이상, 이해관계나 상황이 바뀌면 세르토리우스가 로마의 주역이 될수도 있는 노릇이다.

현 로마는 안팎으로 상황이 어지럽지 않은가? 얼마든지 가능성이 있는 추측이다. 물론 히스파니아보다 현재 로마의 정권을 잡고 있는 자들의 세가 막강하기는 하지만 적으로 만들기엔 매우 부담스러운 상대임은 틀림이 없었다.

아모시스는 아흐모세와 함께 테세우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혹.. 소문을 들으셨습니까?”

아흐모세의 질문에 아모시스는 표정을 굳히며 말했다.

“물론이네. 정말 대단한 수완이야. 도적을 이용해 민심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네. 심지어 그 시간이 일주일도 채 걸리지 않았으니. 군대를 보내도 그보다 시간이 많이 걸렸을 것이야.”

“······.”

아흐모세는 그저 침묵을 지킬 뿐이었다. 아모시스는 다시 감탄하며 입을 열었다.

“정말 대단한 사내로군. 정말 대단한 사내야. 어쩌면 이곳 알렉산드리아를 세운 알렉산드로스 대제와 같은 자를 우리가 마주했던 것일지도 모르겠군.”

아흐모세는 역시 혀를 내두르며 입을 열었다.

“도리어 숨겨야 할 자신의 신분을 이런 식으로 이용하다니······. 놀라울 따름입니다. 민심과 자신의 신분을 십분 활용해 이집트 내 로마인들과 자신의 대결로 간단하게 정세를 재편해버렸습니다. 게다가 제가 보기엔 심지어 본래 그런 계획으로 이집트에 온 것 같지도 않았습니다. 저희와 관계가 틀어지자마자 그런 구상을 했다는 것 자체가 소름이 끼칠 정도입니다.”

아모시스는 고개를 주억이며 말을 이었다.

“정세를 읽더라도 자신이 해야 할 바를 정확히 알기란 어려운 법이고 알더라도 그것을 성공시키는 건 또 다른 문제일세. 그러나 자네 말대로 테세우스, 그는 그 모든 것을 번개같이 끝내버렸군. 그가 구상한 그림을 읽지도 못했으니 우리는 이제 그의 재편한 판에서 놀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어버렸어.”

전장에서 명성을 얼마나 날렸든 정치적인 문제에서는 바보가 되는 장군들을 여럿 봐왔다. 적당히 띄워주고 적당히 명예심을 충족시켜주면 그것으로 만족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더욱이 테세우스, 그는 혈기가 왕성한 나이가 아닌가?

그런데 그 짧은 순간, 상대방의 패를 읽고 자신의 패를 감출 방법까지 고안해내다니. 아모시스는 테세우스에게 크게 한 방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자신이 테세우스를 얕잡아 봤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거 참. 헛 살았군. 헛 살았어. 세상이 어떤 식으로 돌아가는지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으니.”

심지어 그는 가장 먼저 공략해할 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꿰뚫고 있었다. 미미하여 누구도 신경쓰지 않지만 결집되었을 때는 그 어떤 것보다 파괴적인 힘을 발휘할 수 있는 민심. 그것도 이집트의 민심을 타국인인 테세우스가 얻게될 줄은 누가 알았으랴? 그리고 이것을 실제적인 힘으로 이끌어 낼 수완이 그에게 있었을 줄은 또 누가 알았으랴? 테세우스를 얕봐도 한참 얕봤던 것이다. 그것이 못내 쓰라렸다.

아흐모세의 말대로 세르토리우스의 신분은 테세우스의 약점이었다. 민심을 얻기 전에 그것을 드러냈다면 그는 사냥당하는 처지에 놓였을 것이다. 히스파니아에서 추궁해와도 우리는 모르는 일이라 발뺌하면 그뿐이다. 그런 자가 있었는지도 몰랐다고 말이다.

하지만 민심을 얻은 지금은 그것이 불가능하다. 테세우스를 적으로 돌리면 마침내 물이 끓어오르고 말 것이다. 그것은 거센 물결이 되어 나일강이 이집트를 뒤덮듯이 이집트 전역을 뒤덮을 것이다. 프톨레마이우스 왕조가 전복될 수도 있다는 소리다.

일반 백성도 아는 테세우스의 신분을 이집트 왕조가 몰랐다? 말도 안 되는 소리 아닌가? 테세우스는 약점이라 할 수 있는 것을 도리어 강점으로 만들어버렸다.

아흐모세는 침묵을 지키고 있다가 아모시스에게 말했다.

“이집트 외부의 테세우스와 로마인. 그리고 이집트 내부의 저희와 극로마주의자의 대결구도로 굳어지겠군요.”

“딱히 그렇다고 볼 수도 없다네. 테세우스가 민심을 얻고 무장세력까지 손에 넣은 이상.”

“음?”

테세우스가 도적들을 토벌했지만 어느 기점에 다다라서는 그가 모습을 나타나기만 해도 테세우스라는 위명에 공포를 집어먹고 모조리 굴복했다. 그렇게 테세우스에게 굴복한 도적들의 숫자가 얼마나 되는지도 알 수 없었다.

그것을 간과하고 있었던 아흐모세는 입을 떡하니 벌리며 아모시스를 바라봤다.

“만약 이집트 왕조가 그를 적으로 규정한다면?”

“테세우스는 이집트 왕조를 적으로 돌릴 걸세. 그것만으로도 이집트는 그야말로 대혼란에 빠지겠지.”

“그렇게까지야 되겠.. 으흠.”

고작 도적떼가지고 뭘 하냐고 묻는다면? 현재 민심을 등에 업은 것이 테세우스라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비록 민심은 바람과 같지만 그것이 거센 불길이 되어 테세우스 위에 얹혀지면 그는 충분히 이집트를 전복시키고도 남을 자다.

지금이라도 왕조 타도를 부르짖는다면 그에게 감명받은 꽤 많은 자들이 그에게 합류할 것이다. 이집트가 먼저 그를 적으로 규정한다면? 민중은 자발적으로 그에게 합류하게 될 터, 당연히 후자의 여파가 훨씬 더 막강할 것은 자명한 일이었다.

무엇보다 흐름을 만들어낼 수 있는 테세우스라면 아모시스의 말이 허황된 추측이라 보기도 어려웠다. 이미 테세우스라는 이름은 그가 한 행적보다 더 부풀려지고 있었다. 민중의 대변자라는 말도 심심찮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아흐모세. 자네도 알지 않나? 돈으로 매수된 웅변가들이 지금도 광장에서 테세우스의 행적에 대해 과장해서 늘어놓고 있음을 말이야. 그는 그런 사내야. 실력도 실력이지만 그것을 어떻게 포장해야 하는지를 정확하게 알고 있어. 그런 자에게 보다 확실한 명분이 주어진다면? 거기에 더한 무력과 자금력이 더해진다면? 그 이후의 일을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으흠.”

침음을 삼키던 아흐모세는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심각한 표정으로 아모시스에게 말했다.

“그럼 그를 서둘러 제거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를 죽이려는 로마인들과 힘을 합쳐서.”

“이상한 소리를 하는군. 로마인들은 이미 관계를 돈독히 하고 있는 이집트인들이 있는데 구태여 우리와 함께 할 이유가 뭐겠는가? 설혹 테세우스를 처리한다고 쳐도 그 후에는 어쩔 셈인가? 세르토리우스의 잔당을 처리한다는 명목 하에 이집트 내 로마인들의 입김이 더욱 강해질 것이고 그 흐름은 결국 프톨레마이우스 왕조의 몰락을 가속화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야. 그것이 뜻하는 바가 무엇인지는 자네도 모르진 않을 걸세.”

“아모시스님의 말씀은 테세우스와 손을 잡아야 한다는 뜻입니까? 테세우스는 어쩌면 이집트 내의 공화주의자들보다 훨씬 위험한 인물일지도 모릅니다.”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우리에게 남은 선택지는 존재하지 않네. 테세우스와 손을 잡으면 그나마 우리의 입지가 남아있을 가능성이라도 있지만 그를 배척하면 우리에겐 미래가 없네. 그가 굴욕적인 조항을 우리에게 강요할지라도 일단은 받아들여야만 하네. 그래서 서두에 말하지 않았나? 테세우스, 그가 재편한 판에서 놀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했다고. 다만······. 아직 사람을 보는 내 눈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면 그에게 야심은 별로 없어 보였네. 자네 또한 말하지 않았나? 테세우스가 이 모든 것을 처음부터 계획하고 이집트에 온 것같지는 않다고.”

“그건? 음. 예. 일단 저는 그렇게 느껴졌습니다.”

“그것에 기대보는 수밖에. 아니 도리어 그가 왕조를 전복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면 그게 우리의 기회가 될 수도 있겠지. 어쨌든 이래저래 현재로서는 그의 뜻대로 움직이는 수밖에 없네.”

“무슨 뜻인지 알겠습니다.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아도 로마인들의 싸움이라 규정하고 관망하는 것으로 결론지을 가능성이 높겠지만 그 부분에 대해 대신들에게 은밀히 알리도록 하겠습니다.”

아모시스는 다소 지친 얼굴로 아흐모세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건 자네 뜻대로 하게나.”

*

척박한 지대가 나디르의 눈앞에 펼쳐졌다. 말을 타고 이동하는 나디르를 앞을 가로막는 자들이 있었다.

모두 흉흉한 기세를 가진 사내들, 곧 도적떼들로 보였지만 나디르는 검집의 검을 뽑지 않았다. 저들을 이끄는 자가 테세우스라는 것을 이미 확인했기 때문이다. 아니 파라이토니온 지역과 알렉산드리아를 경계로 한 지역에서 도적질을 하면 테세우스에게 굴복한 도적들이 가만히 두지 않으니 이 지역을 오가는 통행인들이 빠르게 늘고있는 추세였다.

“테세우스님.”

“나디르.”

나디르는 테세우스를 바라보다가 대뜸 말했다.

“믿지 못한 것은 아니지만 무모했습니다. 테세우스님. 이곳은 타지입니다.”

자신을 질책함이 아니라 염려해서임을 알기에 테세우스는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언제나 안 그랬나? 아무튼 어떻게 되었나?”

테세우스는 나디르를 만나자마자 본론으로 들어갔다.

“일단 달변가들이나 웅변가들을 매수하여 소문을 퍼트렸습니다. 다만······. 소문이 생각 이상으로 빠르게 퍼졌습니다. 혹 예상하신 겁니까?”

테세우스는 가타부타 대답하지 않고 다른 말을 꺼냈다.

“그래봐야 소문일 뿐이다. 한 순간에 스러질 수 있는 그런 종류의 것에 불과하지. 인위적으로 부풀릴 수 있다면 인위적으로 축소할 수도 있는 법이야. 그런 것에 불과하지. 그런 것에 휩쓸리면 곤란해.”

“음. 하지만 이 기세를 이어갈 수 있다면······.”

테세우스가 피식 웃으면서 나디르에게 말했다.

“이집트를 전복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나디르가 침묵으로 긍정을 표하자 테세우스가 입을 열었다.

“나디르, 자네도 잘 알 텐데? 역사가 오래된 나라의 저력을 말이야.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나 내가 소문을 퍼트린 이유는 이집트를 전복하기 위해서가 아니야. 이집트 내의 로마인을 말소하기 위함이지. 히스파니아는 로마 하나만으로도 벅차다. 이집트까지 적으로 돌릴 수는 없어. 그나마 우호적인 세력에게 이집트의 정권을 맡기는 것이 현실적인 방안이겠지.”

“아흐모세라는 작자를 말하는 것입니까? 듣기로 그는 테세우스님을 이용하려고 들었습니다만?”

“그의 입장에선 당연한 태도야. 물론 그렇다고 그 행동을 용납한다는 뜻은 아니지만.”

나디르는 테세우스의 뜻을 알아들었다.

“저들을 어떻게 이용하려 하십니까?”

“내가 이용하고 말 것도 없이 이미 내 예상대로 움직이고 있을 거다. 이집트 내 로마인들의 움직임은 어떻지?”

“용병들을 모집하고 누미디아 지역에 주둔한 레기온이 움직일 기미가 보이고 있습니다. 저들이 한꺼번에 움직이면 상당히 위험한 상황에 처할 수 있습니다. 저들이라고 해봐야.”

나디르는 도적들을 힐끗 바라보며 마음에 차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세르토리우스 휘하의 강군들을 봐왔던 나디르로서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건 상황이 어떤 식으로 돌아가는지 생각해보도록 하지. 그나저나 히스파니아에서 들려온 소식은 없나?”

“아직까지는 별다른 소식을 전해 듣지 못했습니다.”

“음. 로마는?”

“폼페이우스와 카툴루스가 레피두스와 에트루리아의 헤르미니우스 군대를 토벌하는데 성공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으흠. 그랬군. 그럼 조금 더 공격적으로 나올 수 있겠군.”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일단은 추이(推移)를 좀 더 관망한다. 로마를 치든, 이집트를 치든, 아니면 히스파니아로 돌아가게 되든 가타부타 결정이 나겠지.”

나디르는 테세우스의 말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지만 마지막 히스파니아로 귀환하는 것은 은연중에 배제했다. 테세우스가 그가 별다른 성과없이 귀환한다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어울리지 않는 결과였고 지금껏 자신이 봐온 모습도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전에 제거할 자들은 일찌감치 제거해야겠다.”

테세우스의 날카로운 눈빛에 나디르가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

“복안을 말씀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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