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0
140. 함정.
140.
테세우스는 상세한 정황을 파악하기 위해 아흐모세를 만나러 이동 중에 있었다. 알렉산드리아를 눈앞에 두었을 때 이미 어스름한 저녁이었기에 이런저런 검문을 피해 도시로 들어오니 어둑한 어둠이 사방에 깔려있었다.
하지만 여느 도시나 마을 같지 않게 거리 곳곳에 불이 환히 밝혀졌다.
특히 파로스 섬 위에 자리한 등대 위에서 타오르는 불꽃은 알렉산드리아의 어둠을 산산이 깨뜨리는 주역 중 하나였다. 등대 최상층부에 위치한 커다란 반사경에 의해 반사된 불빛은 마치 레이져 광선처럼 멀리까지 나아갔다.
한낮에 햇빛 등을 받은 반사경으로 배를 비추면 불이 붙을 정도로 정교하게 만들어졌기에 알렉산드리아의 등대는 그야말로 밤하늘을 훤히 밝히고 있었다.
낮보다는 통행하는 사람이 확연히 줄어들기는 했지만 여전히 거리를 활보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하지만 통행하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호위병력을 대동하고 있었다. 다른 도시에 비해 치안이 잘 유지된 편이기는 하나 알렉산드리아의 밤 역시 위험하기는 매한가지였으니 말이다.
테세우스는 나디르를 캄바에게 보내 혹시 모를 일을 대비하도록 했다. 캄바를 만나기 전에 나디르는 바트로스를 만나 그가 알고 있는 정보나 진행 상황 등을 전해 들은 뒤, 상황에 맞춰 테세우스가 지시한 사항을 준비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테세우스는 홀로 아흐모세에게 향하는 중이었다. 아흐모세는 여전히 좁은 골목과 허름한 건물들이 즐비한 그곳에 거처를 마련하고 있었다.
그렇게 길을 따라 테세우스가 좁은 골목길에 접어드는 순간, 얼굴을 가린 자들이 순식간에 그의 앞뒤를 둘러쌌다. 얼굴은 볼 수 없지만 갑옷이나 옷 사이로 드러난 상체 근육이나 자신을 포위할 때의 움직임을 고려하면 상당히 잘 훈련된 전사들로 보였다.
테세우스는 몸의 근육을 이완시키며 언제든 저들의 목숨을 취할 만반의 준비를 마쳤다. 그가 적에 대해 대비해야지 라고 의식했기 때문이 아니라 저들을 맞이한 순간, 미처 의식하기도 전에 적을 상대할 모든 준비가 완료되었다.
일촉즉발의 순간, 눈만 빼곰이 내놓은 정체불명의 전사가 낮은 목소리로 테세우스에게 말했다.
“테세우스. 네가 테세우스가 맞나?”
“그렇다면?”
“따라와라. 너를 보고자 하는 분이 계신다.”
테세우스는 눈매를 좁히며 사내에게 말했다.
“기다릴 테니 데리고 와라.”
그러자 복면 속의 사내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감히!”
하지만 허리춤에 달려있는 검을 뽑지는 않았다.
“어처구니없군. 고작 도적떼를 토벌한 것으로 기고만장하는 건가? 운 좋은 줄 알아라. 폐하께서 너를 만나고자 하신 것이 아니라면 당장에라도 네 목을 베었을 것이다.”
테세우스가 도적떼를 어떻게 굴복시켰는지 목도했다면 결코 이런 말은 뱉을 수 없었을 것이다.
‘폐하?’
자신을 둘러싼 이들이 도적떼를 무시할 정도의 실력자들인 것은 맞다. 하지만 죽이고자 마음만 먹으면 이들의 목숨을 모조리 취할 수 있었다. 도발적인 언사를 뱉은 것에 대해 대가를 치르게 할 수도 있지만 의미없는 행동에 불과했다.
‘설마 프톨레마이우스가? 이건 예상치 못한 일이군. 프톨레마이우스가 사람을 보낸 모양인데······. 흠. 일단 만나봐야겠다.’
딱히 이들과 반목할 이유가 없었던 테세우스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며 그들에게 말했다.
“안내해라.”
테세우스의 말에 복면의 사내는 다시 눈살을 찌푸렸지만 별말없이 주변의 수하들에게 손짓한 뒤 테세우스에게 말했다.
“이걸 써라.”
사내가 건넨 것은 자신들이 쓰고 있는 것과 동일한 형태의 복면이었다. 테세우스는 멀뚱히 그것을 바라보다가 말없이 사내의 뜻대로 그것을 뒤집어썼다.
*
프톨레마이우스가 보낸 것으로 보였던 복면을 쓴 이들은 황당하게도 왕궁의 경계병을 피해 왕궁으로 잠입했다.
그 순간, 테세우스는 복면인들이 복면을 준 이유와 이런 식으로 자신을 안내하는 복면인들의 의도를 파악했다. 소문대로 뛰어난 실력을 지닌 것인지 가늠하기 위해서이리라. 그렇지 않다면 왕성의 경비병에 걸리게끔 내버려두면 될 일이니 말이다.
그러나 테세우스는 보란 듯이 왕성에 잠입했다. 미처 복면인들이 그의 행동을 따라잡지 못할 정도로 신속했고 저들의 불순한 의도를 파악한 테세우스는 일부러 저들을 위기에 몰아넣기도 했다. 저들도 실력이 뛰어난지라 별 문제없이 벗어나긴 했지만 이로 인해 복면인들과 테세우스의 관계는 더욱더 경색(梗塞)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프톨레마이우스를 만나기 전의 일을 그려보던 테세우스의 상념을 깨는 목소리가 있었다. 바로 프톨레마이우스 12세의 반문이었다.
“왜 대답이 없나?”
“제 생각이 뭐 그리 중요하겠냐만은 이집트의 왕께서 사람 하나를 만나는데도 세인의 눈을 두려하시는 분인지는 미처 몰랐습니다.”
“뭐라! 이 작자가!”
임호텝은 결국 참지 못하고 다시금 노호성을 터트렸다.
“하하하하.”
하지만 그의 분노는 이어진 프톨레마이우스의 웃음으로 인해 다시 유보될 수밖에 없었다. 임호텝은 사나운 표정으로 테세우스를 노려봤지만 더는 입을 열지 않았다.
“3년전쯤 왕위에 오른 선왕은 19일만에 왕위에서 쫓겨났지. 존경받는 왕비 베레네스를 살해했다는 이유로 말이야.”
프톨레마이우스 11세의 이야기를 거론하고 있었다. 프톨레마이우스 12세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입을 열다가 강한 눈빛으로 테세우스를 바라봤다.
“두려워해야지. 두려워해야 하고 말고. 듣기로 홀로 도적떼를 굴복시켰다고 들었다. 맞나?”
“그렇다고 대답한다면 믿으시겠습니까?”
테세우스의 대답에 프톨레마이우스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 부족해. 세간의 소문을 어찌 그대로 믿겠나? 임호텝.”
프톨레마이우스가 호위장의 이름을 호명하자 임호텝, 그는 물론 복면을 쓴 자들도 어느새 그의 주변을 둘러싸기 시작했다. 그 숫자가 대략 스무 명 정도 되었다.
“고대 이집트에는 특별한 전사들이 있었다. 혹독한 사막에서도 임무를 성공시킬 수 있는 체력과 전투기술을 갖추었으며 대대로 파라오(Pharaoh)의 호위임무를 맡는 탁월한 전사들이었지. 그들을 이집트인들은 메자이(Medjay)라고 불렀다. 관심이 있어 알아보니 누미디아 지방과 상이집트에서 유래한 자들로 여겨지더군.”
파라오라는 명칭은 고대 이집트의 최고 통수권자를 뜻하는 말로서 1왕조(BC150)까지도 통용되어 왔다. 원래는 큰 집이라는 뜻으로 이집트 왕의 궁정, 왕궁을 나타내는 말이었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왕과 동일시되었다.
이집트는 신정일치의 국가에 가까웠고 따라서 이 파라오는 호루스(이집트신:이시스와 오시리스 아들)의 현신으로 여겨졌다.
호루스는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는 편인데 보통 매의 머리를 한 남성으로 표현되나, 호루미오스라고 불릴때에는 사자의 외관을, 하르마키스라고 불릴때에는 스핑크스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호루스는 태양신 라와 결합하여 라-호라크티로 불리는 등 여러 신들과 융합하여 등장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집트를 상징하는 우제트의 눈은 바로 호루스의 눈을 뜻하기도 한다.
초기 왕조에서 파라오는 세 개의 이름(호루스명, 세지명, 비명)과 두 개의 여성이름을 지니고 있었다. 그 후에 골든 호루스명과 같은 총 세 개의 이름이 더 추가되는 것으로 보이지만 어쨌든 로마제국의 간섭을 강하게 받기 시작하며 파라오라는 용어 대신 프톨레마이우스라는 이름을 주로 사용하게 되었다.
메자이는 프톨레마이우스 12세의 말대로 20왕조(BC1189-1077)이후에는 출현하지 않는 자들이었다. 이들은 뛰어난 전사였을 뿐만 아니라 고대의 이집트의 경찰에 가까운 자들이었다. 그러나 BC77년, 현재는 현존하지 않는 이들이었다.
“나는 생각했다. 파라오의 강력한 검이었던 메자이들을 부활시킬 수 있다면 무력하게 세인들의 눈치나 보는 신세에서 벗어날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테세우스는 침묵을 지키며 프톨레마이우스를 바라봤다.
“메자이들에게 보고를 들었다. 보고를 들을 필요도 없이 무사히 내 앞에 당도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는 일이지만 말이야. 테세우스라고 했나? 나는 네가 마음에 든다. 나의 메자이가 되라.”
테세우스는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임호텝과 메자이들을 슬쩍 바라보다가 프톨레마이우스를 바라봤다.
“충성을 바치라는 말입니까?”
“바로 보았다.”
“히스파니아의 세르토리우스가 제 아버지입니다. 충성을 맹세할 까닭도 마음도 없지만 그럴 마음이 있다손치더라도 아버지의 허락없이는 불가합니다.”
“정녕 나와 동등한 위치에 서겠다? 그게 네 대답인가?”
테세우스가 대답을 하지 않자 프톨레마이우스는 비틀린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럼. 네 가치를 증명해봐라. 내가 여기서 널 죽이지 않을 이유를 말이야.”
스르릉 챙 채쟁
프톨레마이우스의 말이 떨어지자 임호텝과 메자이들이 흉흉한 기세를 피워내며 저마다 무기를 뽑아들었다. 테세우스는 프톨레마이우스를 일별하며 간단하게 대답했다.
“대신 이들을 죽이지 않는 것으로 왕께 우호를 표하도록 하지요.”
“이런 오만방자한 놈 같으니라고!”
테세우스의 말에 임호텝은 분노를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두 자루의 코페시를 현란하게 휘두르며 그에게 짓쳐들었다. 왕을 알현하러 가는데 무기를 허용해줬을 리는 없으니 현재 테세우스의 수중에는 무기 하나 없는 상황이었다.
임호텝의 체구만큼이나 커다란 코페시였기에 그 무게가 제법 나갈 것으로 보였지만 임호텝은 두 자루의 코페시를 자유자재로 다뤘다. 그의 공격은 뱀처럼 은밀하면서도 사자처럼 사나웠다. 왜 자신이 프톨레마이우스의 호위장인지를 보여주겠다는 듯 테세우스를 사납게 공격했다.
무기 하나 없는 테세우스였지만 그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임호텝의 공격을 피해냈다.
사아악 사악
유려하게 임호텝의 검을 피했지만 주변에는 극도로 단련된 이집트의 전사들이 함께 있었다. 사라진 메자이라는 이름을 프톨레마이우스에게 부여받은 전사들 말이다.
몸을 뒤틀어 피해내자마자 자신의 가슴팍을 노리고 날아드는 메자이의 날카로운 검을 발견한 테세우스는 발을 내질러 검을 내지르는 메자이의 오른쪽 다리를 걷어찼다. 힘이 제대로 실리지 않은 발차기라 테세우스의 발에 얻어맞고 저편으로 날아가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강철 몽둥이에 얻어맞은 것같은 격통이 뇌를 새하얗게 만들었다.
“크흑.”
결국 그 충격으로 메자이는 균형을 잃고 허물어졌지만 내리쳐지던 검은 여전히 테세우스를 향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기세를 잃었음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테세우스는 몸을 빙글 돌리며 그의 검을 빼앗아 든 뒤 등주먹으로 그의 면상을 후려쳤다. 다만 정신을 잃을 정도의 타격만 가했다. 그게 아니라면 등주먹에 얻어맞는 순간, 얼굴뼈가 부숴져 즉사했을 것이다.
무기가 없었지만 그의 온몸이 무기나 다름없었다.
테세우스는 정신을 잃고 스르륵 무너지는 메자이의 팔을 잡고 냅다 옆으로 던져버렸다. 정신을 잃은 메자이는 그대로 동료들을 덮쳤다.
그래도 동료애는 있는 모양인지 갑자기 날아오는 동료를 받기 위해 검을 치우며 그를 받아냈다.
우르륵
틈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빽빽하던 포위망의 한축이 순식간에 무너져버렸다. 테세우스는 그대로 땅을 박차며 검을 휘둘렀다.
메자이들은 테세우스의 검을 막으려고 했지만 그의 강한 힘이 실린 검을 받은 메자이들은 경악한 눈빛으로 테세우스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의 검과 부딪치는 순간, 손아귀가 찢어질 것같은 고통에 검을 놓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테세우스는 검을 잃은 자들의 가슴이나 얼굴 등을 발이나 손, 어깨 등으로 가리지 않고 가격하여 정신을 잃게 만들거나 전투를 지속할 수 없는 상태로 만들었다.
퍽 퍼퍽 퍼벅
육중한 소음이 쉴 새 없이 퍼져나왔고 그때마다 프톨레마이우스가 강력하다고 자부하던 메자이들은 테세우스의 강력한 무력에 맥도 추리지 못하고 차디찬 바닥에 몸을 뉘었다.
“이놈!”
이래저래 얽힌 상황이라 그 상황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임호텝이 노호성을 터트리며 다시 테세우스에게 짓쳐들었다.
테세우스는 자신의 복부를 향해 검을 내지르는 메자이의 팔을 잡아챈 다음 끌어당기며 어깨로 그의 가슴팍을 가격했다.
퍼억
상체에 강한 충격을 얻은 메자이는 숨이 막히는 표정으로 컥컥거리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 순간, 테세우스는 성큼 다가온 임호텝의 코페시를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