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마 무신의 기억-141화 (141/298)

# 141

141. 함정.

141.

챙 터억.

테세우스는 두 자루의 코페시 중 하나는 검으로 막아내고 한 자루는 손으로 임호텝의 팔을 잡아 막아냈다.

덩치만큼이나 힘이 제법이 있는 자였다. 하지만 테세우스의 힘을 받아내기엔 역부족이었다.

“이이이익!”

테세우스는 오만상을 찌푸리며 힘을 가하는 임호텝의 팔을 간단하게 뿌리친 후 주먹으로 그의 턱을 두어 번 후려갈겼다.

퍽 퍼퍽

처음에 얻어맞을 때 이미 정신을 놓았던 임호텝은 그대로 정신을 잃고 스르륵 무너져 내렸다. 테세우스를 둘러싸고 있던 나머지 메자이들 역시 정리되는데 걸린 시간은 한순간에 불과했다.

저들을 모두 물리친 테세우스는 프톨레마이우스를 무심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꾸우우욱

그러자 주변의 숨어있던 다른 병사들이 일제히 모습을 드러내며 그를 향해 활을 겨누었다. 상당히 위험한 상황이라 할 수 있었다. 아닌 말로 테세우스가 프톨레마이우스에게 달려든다면 현재 누가 그를 막을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테세우스는 프톨레마이우스를 해할 생각이 없었다. 여기서 자신이 프톨레마이우스를 해한다면 이집트와 로마의 연계를 강화시키는 행동밖에 되지 않는다.

챙그랑

테세우스는 빼앗았던 검을 바닥에 던져버리며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하는 프톨레마이우스에게 말했다.

“이미 아시겠지만 이들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뛰어난 전사들이지만 로마를 상대하기엔 턱없이 부족합니다. 로마를 상대할 수 없는 한 어떤 무력집단으로 이집트를 장악하는 일 역시 불가능에 가깝겠지요.”

테세우스의 말에 프톨레마이우스는 손을 들어 자신을 둘러싼 병사들을 물렸다. 활을 겨누고 있는 병사들이 머뭇거리자 프톨레마이우스는 눈짓으로 그들의 무기마저 모두 거두게 만들었다. 잠시 침묵을 지키던 프톨레마이우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 이렇게 되면 소문을 믿지 않을 도리가 없군. 참으로 탐나는군. 자네를 아들로 둔 세르토리우스가 참으로 부러울 지경이야.”

프톨레마이우스는 화려한 술병을 들어 빈 잔에 술을 채웠다.

쪼르르륵

“나와의 우호를 위해 죽이지 않았다라······. 마시게.”

테세우스는 그에게 성큼성큼 다가가 프톨레마이우스가 건넨 술을 단번에 비워버렸다. 주변의 병사들은 그가 다가오자 매우 긴장했지만 정작 가장 큰 위험에 처한 당사자라 할 수 있는 프톨레마이우스는 태연한 표정으로 그가 다가오는 것을 바라봤다.

프톨레마이우스는 가까이 다가온 테세우스를 바라보며 비틀린 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시험에 통과하지 못했다면 나는 자네를 죽였을 것이야.”

테세우스는 자신을 죽이려 했다는 프톨레마이우스의 말에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잠시 침묵을 유지하던 테세우스가 말을 꺼냈다.

“로마를 상대할 수 없고 이집트를 뜻대로 장악하는 것은 어려워도 저 한 사람을 죽이려 했다면 폐하께서 굳이 저를 만나실 필요도 없었을 겁니다. 폐하께서 제게 왜 무리한 요구를 했는지 명확하게는 알 수 없으나 한 가지는 알 수 있습니다. 폐하께서는 애초에 저를 죽일 생각이 없었습니다.”

아무리 허접스러워도 왕은 왕이다. 제집에서는 똥개도 절반은 먹고 들어간다는데 프톨레마이우스는 이집트의 왕이다. 그런 그가 자신을 죽이고자 했다면 번거롭게 이런 방식을 쓸 이유가 없었다.

“하여 내 수하들을 죽이지 않았다?”

“폐하의 적이 되고자 이집트를 찾아온 것이 아닙니다. 폐하께서도 그 사실은 짐작하고 계실 겁니다. 그러니 저를 만나고자 하신 것일 테지요.”

테세우스는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프톨레마이우스를 바라봤다.

프톨레마이우스는 회한 서린 눈빛으로 그런 테세우스의 눈을 마주하고 있었다. 이집트에 공화정이 세워지는 것은 막아야겠지만 로마의 지지가 없다면 작금의 왕조는 언제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다.

“으흠. 영리하군. 내 상황이 어떤지 알고 말을 꺼내는 것이겠지? 하나 착각하지는 마라.”

히스파니아가 점차 강력한 세력으로 부상하고 있다지만 결국 로마에게 토벌당할 공산이 크다.

오래된 일도 아니다. 폰토스 왕국 역시 미트리다테스 6세에 이르러 최전성기를 맞이해 팽창 정책을 펼치며 로마와 대립했지만 마리우스와 술라 라는 로마의 걸출한 인물들에 의해 결국 처참하게 패배했다. 이 시기 폰토스 왕국의 기세는 당금 히스파니아의 것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왕성했다.

그러니 로마의 편에 서서 테세우스를 처단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하지만 그 일로 자신이 얻을 것이 뭐란 말인가? 히스파니아와 척을 지는 것이 딱히 두렵지도 않지만 그럴 이유가 없다. 그래 봐야 작금의 구도에선 결국 공화주의자들의 힘을 더 실어주는 일만 될 뿐이다.

“예전에 비해 많이 쇠하였다지만 이집트를 경시할 수 있는 자가 있겠습니까? 로마인들도 이집트를 경시하지 않습니다. 저 역시 그렇습니다.”

테세우스의 말에 프톨레마이우스는 그를 유심히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결국 로마인들의 관심은 어떻게 해야 가장 효율적으로 이득을 창출 할 수 있을까에 있지 이집트에 공화정을 세우느니 마느니 하는 문제는 둘째 문제에 불과하다. 이곳에 공화정을 세우는 것보다 더 나은 이득을 자신을 통해 얻을 수 있다고 여긴다면 로마로부터 왕권을 보장받을 수 있을 것이다. 로마의 영향력에서 벗어날 수 없겠지만 어차피 지중해를 마주하고 있는 나라 중 로마의 간섭을 피할 수 있는 나라는 없다.

생각에 잠긴 프톨레마이우스에게 테세우스가 담담한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저를 만나고자 하신 이유는 혹여 이집트 내에 영향력이 높은 로마인들 때문이 아니신지요?”

자신의 마음을 예리하게 관통하는 테세우스의 말에 쓴웃음을 짓던 프톨레마이우스는 술잔의 술을 비운 다음 입을 열었다.

“허어······.”

잠시 탄성 아닌 탄성을 뱉던 프톨레마이우스가 마저 말을 이었다.

“자네도 모르지 않겠지만 내게는 두 가지 부류의 신하들이 있다. 한 부류는 이곳 이집트에 공화정을 세우려 하고 있고 또 한 부류는 옛 이집트의 영화를 찾기를 바라는 자들이지. 어느 쪽의 세력이 강한지는 내 따로 언급하지 않아도 알겠지.”

프톨레마이우스의 태도에서 그가 두 부류의 신하, 모두를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다는 것을 눈치챘다. 전자는 공화정을 세우려 드니 그렇다 쳐도 후자는 왜 그렇게 생각한단 말인가? 그 내용을 아예 짐작하지 못한 건 아니지만 프톨레마이우스의 내심을 들어보고 싶었다.

“어째서 후자에 힘을 실어주지 않으시는 겁니까?”

“후자에 힘을 실어주면? 정녕 몰라서 묻는가? 히스파니아에 온 전사 한 명도 내 뜻대로 할 수 없었다. 쓰라리지만 그것이 나의 현실이군.”

물론 테세우스가 예상외로 걸출했기 때문이지만 어쨌든 지금의 상황조차 프톨레마이우스의 계획대로 움직이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프톨레마이우스의 자조 섞인 미소에 테세우스는 입을 다물고 그의 말이 이어지길 기다렸다.

“내 편은 어디에도 없다. 공화정파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이집트파 역시 자신들이 권력을 잡기 위해 나를 이용하는 것일 뿐, 전자는 폐위를 뜻하고 후자는 허수아비를 뜻할 뿐이야. 물론 개중에는 내게 진심으로 충성하는 자들이 없지는 않지만 그게 전부일 뿐이지.”

물론 전자보다는 후자가 낫지만 후자에 힘을 실어줄 수도 없는 상황이고 그 후자에 속한 이들조차 온전히 믿을 수 없다는 뜻이리라. 프톨레마이우스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입을 열었다.

“히스파니아는 로마를 상대로 이길 수 있는가?”

“제가 이집트까지 발걸음한 이유가 그것에 있습니다.”

“이집트를 과대평가했군. 그게 아니라면 이집트를 파멸시킬 목적으로 발걸음했나?”

테세우스는 대답하지 않았다. 히스파니아를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이집트를 혼란에 휩싸이게 만들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침묵을 지키고 있는 테세우스를 바라보던 프톨레마이우스가 다시 말했다.

“나는 로마인들에게 재물을 많이 빌릴 생각이야. 아주 많이 말이야. 물론 모두 상환할 생각이지만 상환할 대상이 없다면 그건 나로서도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니겠는가?”

프톨레마이우스의 말에서 테세우스는 이미 그가 로마인들에게 많은 재물을 차용했음을 알아차렸다. 그가 이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까지도 말이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침묵을 지켰다.

“······.”

“허용하겠다.”

무엇을 말인가? 테세우스가 의아한 눈으로 프톨레마이우스를 바라보자 그가 입을 열었다.

“아울러 3개월간 알렉산드리아 항구에 봉쇄령을 내리도록 하지.”

‘봉쇄령이라······. 이렇게 되면 당연히 로마로 향하는 곡물선도 출항하지 못한다. 하지만 물류의 흐름이 끊어지면 이집트에 타격에 클 텐데? 게다가 그 후환은 어찌 감당하려고?’

바라마지 않는 제안이지만 선뜻 믿을 수 없는 제안이었다. 제 살 파먹기나 다름없지 않은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로군.”

틀린 말이 아니다. 이 순간만큼은 프톨레마이우스의 저의를 읽을 수 없었다. 따라서 순순히 인정했다.

“예. 그렇습니다.”

프톨레마이우스는 비틀린 미소를 지으며 테세우스에게 말했다.

“나는 현재 로마로 향하는 곡물을 관할하고 있지 않다. 이제 무슨 뜻인지 알겠나?”

“흠.”

침음을 삼키던 테세우스가 프톨레마이우스에게 질문했다.

“공론화할 수 있는 증거가 필요하신 겁니까?”

프톨레마이우스는 고개를 슬쩍 흔들은 뒤 대답했다.

“허어. 할 수만 있다면 내 아들로 삼고 싶군. 맞아. 네가 증거를 가져오면 대대적인 재판을 열 것이다. 저들이 로마인과 결탁해 저지른 비리에 대한 증거를 확보한다면 로마도 이 일에 개입할 수 없다.”

‘공화주의자들은 척결할 수 있겠지만 그렇다 해도 로마인들을 건드릴 수는 없다. 게다가 대개 척결한 공화주의자들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자들인 만큼 저들과 원한관계가 될 여지가 매우 높다. 간단하게 확실히 제거할 수도 없는 저들과 원한관계를 만들면 큰 우환이 될 여지가 높다는 소리다. 하지만 그 껄끄러운 로마인들은 내가 제거할 테니······. 완전히 새로운 판을 짜는 셈이로군. 교역이 동결되며 발생할 큰 문제들은 내 손에 죽을 로마인들의 재산으로 충당할 테고. 돈을 빌려준 로마인들은 프톨레마이우스의 목줄을 죄기 위해 스스럼없이 돈을 내어줬겠지. 그래도 왕은 왕이라 이건가? 자신의 약점을 이용해 이득을 취했어. 함부로 무시할 수 있는 자가 아니로군.’

이러면 프톨레마이우스의 결정이 이해가 된다. 하지만 테세우스는 더 깊이 생각해봐야 할 필요를 느꼈다.

‘봉쇄령은 로마를 향한 일종의 경제적 제재라 봐야겠지만 이를 통해 안팎으로 자신의 위치를 확고히 하겠군. 로마는 누구를 통해 이집트와 교역하는 것이 효율적인지 알게 될 것이고 이집트 내부에선 비리를 척결한 프톨레마이우스에 대한 칭송이 자자하게 될 터, 그가 확보한 재물은 이집트 내부의 상황이 어려울수록 빛을 발할 것이다. 물론 이 모든 제재는 일시적인 동결로 그쳐야겠지. 그가 말했듯이 로마를 적으로 두고 살아남을 수 없는 시대니까. 어쨌든 결국 이 모든 것은 프톨레마이우스가 얻을 이득일 뿐이다.’

히스파니아가 이 일을 통해 얻을 득실을 냉철하게 따져봐야 했다.

‘이집트의 곡물선이 출항하지 못한다면 로마는 식량문제에 봉착한다. 비축량이 제법 될 테니 당장 문제가 되지는 않겠지만 장기화 되면 될수록 극심한 식량난을 불러일으킨다는 걸 모를 로마가 아니야. 자연히 수많은 물자를 소모하는 전쟁을 꺼리게 될 터, 혹 전쟁을 일으켜도 단기전으로 끝내려 들 테니, 전쟁억지력은 물론 아군에게 큰 이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

하지만 왜 이 일을 히스파니아에 온 자신을 통해 하려고 한단 말인가? 프톨레마이우스가 키운 병력, 즉 새로이 설립한 메자이 등을 통해서 해도 되는 일이 아닌가?

반드시 따져봐야 했다. 이것이 핵심이다. 그가 자신을 애써, 어쩌면 번거로운 일이 발생할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 자신을 만나고자 한 핵심 말이다.

‘나름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현재 떠오르는 건 크게 두 가지 정도인가? 첫째 일이 틀어질 경우를 대비하기 위해, 둘째 토사구팽하기 위한 용도. 둘 모두 치명적인 위기로 다가올 수 있다.’

아울러 프톨레마이우스와 어떤 일을 논하기에 앞서 한 가지 염두에 둬야 할 사실이 있었다. 자신이라는, 즉 테세우스라는 존재가, 그 신분이 이집트 내에서 부각되지 않았다면 이 모든 일은 급진적이거나 과격한 방식이 아니라 점진적으로 매우 조심스럽게, 범위 또한 전체가 아니라 몇몇 인물들을 상대로 지지부진하게 이뤄졌을 것이라는 사실 말이다.

“폐하께서 그리해주신다면 감읍할 따름입니다. 하오나 히스파니아에 해가 되는, 아니 아버지의 이름에 먹칠을 하는 행동은 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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