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5
145. 세르토리우스.
145. 세르토리우스.
예측컨대 바다 위에서 수평선을 바라보며 쉼을 취하고 있을 시점이었다.
그러나 테세우스는 흙먼지를 날리며 어디론가 달리고 있었다. 그와 함께하는 몇몇의 병사들을 제외하곤 나디르의 모습도 찾아볼 수 없었다.
두두두두
지금껏 계속해서 말을 달린 것인지 말들의 상태가 그리 좋아보이지 않았다. 혀를 길게 뺀 모양이 더 달리면 죽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아니나 다를까 테세우스는 저 멀리 시냇가를 발견한 테세우스는 말의 속도를 줄이며 휘하 병력에게 말했다.
“워. 워. 여기서 쉬었다가 이동한다.”
“알겠습니다.”
그야말로 메마른 황야나 다름없는 곳이었다. 배를 타고 히스파니아로 이동해야 할 테세우스가 왜 이런 곳에서 말을 타고 헤매고 있단 말인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이곳이 이집트라면 프톨레마이우스의 말을 정면으로 거스른 것이 되니 그와 적이 된다는 소리와도 같았다. 그러니 일단 이집트는 아닌 것으로 보였다. 주변에 그려지는 풍경들 역시 이집트의 것이라 보기는 어려웠다.
아니 사실 어떤 나라도 특정할 수 없었다. 주변에 보이는 것이라곤 메마른 땅과 바위 그리고 듬성듬성 솟은 풀들이 전부였으니 말이다.
테세우스는 지친 말에게 적당하게 물을 먹이고 자신은 주변의 나뭇가지를 모아다가 불을 지필 준비를 했다.
“저희에게 시키시면 될 일을. 어찌!”
그 모습에 병사들이 화들짝 놀라 테세우스를 만류했으나 테세우스는 되었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으며 입을 열었다.
“비록 내가 상관이기는 하나 나는 그대들을 부하라고만 생각하지 않아. 이해할 수 없는 명령에도 끝까지 따라주는 건 부하라고 해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지. 그런 이들에게 나 편하자고 허드렛일을 시킬 수는 없다.”
병사들은 뜨거운 눈빛으로 테세우스를 바라봤다.
“테세우스 님.”
“이번 일도 상당히 위험한 일이 될 수 있다. 그럼에도 선뜻 나의 뜻에 따라주었으니 물이라도 대접할 수 있게 가만히 거기 앉아 쉬었으면 좋겠군. 명령이라면 명령이야.”
“으흠. 알겠습니다.”
“그럼 물이라도.. 음? 물을?”
대답을 하던 병사들은 다시 의아한 표정을 지었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테세우스는 마른 나무에 불을 붙이고 그 위에 물을 담은 철 그릇을 올려 놓았다.
테세우스는 물이 끓을 때까지 기다린 후에 적당한 국자로 그것을 떠서 입으로 후후 불은 뒤 목을 축였다.
“설마 정말 물을 마시려고 그렇게 하신 겁니까?”
아직 여름은 아니지만 땡볕과 흙먼지를 헤치고 달리던 자신들이다. 뜨거운 물보다는 찬물이 낫지 않겠는가? 당장 음식을 하려던 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는데 어째서 물을 끓이고 있단 말인가?
“정말 급할 때는 별 수 없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물이든 뭐든 되도록 끓이거나 익혀서 먹는 것이 건강에 좋다.”
기생충이니 세균이니 하는 말은 꺼낼 필요도 없었고 이해시킬 자신도 없었다. 따라서 간단하게 말했다.
‘사람을 죽이면 기력이 회복이 되는 기이한 현상을 겪고 있으니 병에 시달릴 위험은 상대적으로 적겠지만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겠지. 어차피 말이 지친 탓에 이동할 수 없으니.’
“아. 그렇습니까?”
이들로서는 조금 황당하게 느껴질 법도 하건만 테세우스의 말이라면 죽쒀서 개를 주라 해도 따를 자들이라 그런지 저마다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말을 수긍했다.
테세우스는 식힌 물을 병사들의 수통에 나눠담게 하고 다시 물을 끓였다. 이번에는 말린 고기등을 넣고 캄바로부터 얻은 향신료와 소금을 풀고 팔팔 끓였다.
‘꿀꿀이 죽이나 다름없군.’
모양새는 그 모양이었지만 맛을 보니 먹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여행 중에 뜨거운 음식을 먹기란 쉬운 일이 아니니 뜨거운 국물이 있는 요리라는 것만으로도 병사들의 입맛을 돋우기에 충분했다.
“오우. 최곱니다.”
“끝내주는 맛입니다.”
그래봐야 말린 고기 불린 것에 미묘한 냄새가 풍기는 짭짤한 국물에 불과했다. 하지만 테세우스 본인조차 자신이 만든 요리를 맛있게 먹었으니 병사들이야 더 말할 것도 없었다.
그렇게 휴식을 취하다 보니 금세 사위가 어둑어둑해졌다.
“오늘은 여기서 쉬고 내일 다시 이동한다.”
병사들은 테세우스가 무엇을 찾아 이동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바로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메마른 황야라는 것을 제외하고는 상당히 평화로운 곳이었다. 이 지역은 사람들이 통행하지 않는 곳이라 그런지 도적들도 존재하지 않았기에 테세우스 등은 말을 달리면서 사람 비슷한 존재도 만나지 못했다.
그렇게 야영준비를 마치고 테세우스는 메마른 땅 위에 적당한 천을 깔고 누웠다. 땅에서 냉기가 올라올 것이기에 바닥에 그댈로 누워자는 건 그리 현명한 선택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육체가 대단하다지만 유한하기에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면 정작 필요할 때 문제를 일으킬 수 있었다. 따라서 테세우스는 나름 철저하게 관리하고 있었다.
그렇게 얼마나 눈을 붙였을까? 테세우스는 땅에서 느껴지는 진동에 눈을 번쩍 떴다. 눈을 뜨자 하늘을 가득 메운 별들이 그의 눈동자를 파고들었다. 하지만 그것을 감상하고 있을 여유는 없었다.
“모두 깨워라. 전투가 벌어질지도 모르나 지시가 있기 전에는 경거망동하지 말도록.”
테세우스는 자신을 바라보는 불침번을 보며 작게 말했다. 그러자 불침번을 서던 병사는 굳은 표정으로 급히 동료 병사들을 깨웠다.
잠시 뒤 테세우스는 많은 숫자의 무리가 자신들을 둘러쌌음을 확인했다. 그리고 그들 중 몇 명이 아군에게 향하는 것도 발견했다.
병사들은 이미 저마다 말 위에 올라 저들을 경계했지만 테세우스의 말따라 경거망동하지는 않았다. 테세우스 역시 마상에서 자신들에게 다가오는 정체불명의 무리를 바라봤다. 아니 정체불명의 무리가 아니었다. 이들이야말로 테세우스가 목표로 하던 이들이었다.
“베스티아인가?”
적당한 거리에 다가와 선 일단의 무리가 느릿느릿한 어조로 라틴어를 뱉었다.
“아니 내 이름은 베스티아가 아니라 테세우스다. 너희는 게툴리족이 맞나?”
그랬다. 이들은 베스티아가 만나려던 게툴리족이었다. 베스티아를 거의 만나자마자 죽여버렸기에 그의 정확한 계획은 알지 못하지만 문서의 내용을 살펴봤을 때 베스티아는 게툴리족을 용병으로 이용하려고 했다. 그 용도야 자신이 알 바 아니었지만 그 사실을 확인한 순간, 테세우스는 좋은 생각이 스쳐갔다.
“테세우스?”
게툴리는 북아프라가 내륙의 북쪽 지역을 장악하고 있는 유목민족이었다. 북아프리카의 무어인들은 크게 마우리, 마사에실리, 마실리, 게툴리로 나뉘는데 반유목민인 다른 족속과 달리 게툴리는 말 그대로 유목민 그 자체였다.
당연히 사납고 성정이 거센 이들로 같은 무어인들조차 꺼려하는 족속이었다. 상당히 넓은 지역을 점령하고 있지만 유목민의 특성상 어떤 특별한 거점을 두고 있거나 방대한 병력을 조직적으로 구축하고 있는 세력은 아니었다.
베스티아가 어떤 인연으로 게툴리족과 연락을 주고 받을 수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누미디아와 이집트 중간 지점에서 아프리카 내륙으로 들어간 이 지점에서 저들과 접선한 기록을 발견한 테세우스는 이들을 만나볼 요량으로 이곳까지 발걸음을 했다.
그 이유는 한 가지, 자신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미 로마의 토벌군이 히스파니아로 출발했다는 소식을 뒤늦게 들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당연히 모든 소식이 현대처럼 즉각적으로 퍼져가는 시대가 아니기에 테세우스가 지금이라도 들을 수 있었던 것은 어찌보면 천운에 가까웠다. 캄바와 거래하던 로마 상인이 때맞춰 이집트를 방문하지 않았더라면 테세우스는 히스파니아에 도착한 후에야 그 소식을 들었을 것이다.
소문이 사실이라면 로마군의 병력은 10만에 달한다. 아울러 폼페이우스가 에트루리아 지역의 반란군을 토벌했다는 소식을 겸해 들었다. 혹 폼페이우스가 이끄는 병력마저 히스파니아로 진격한다면 그 숫자는 거의 13만에 달할 것이다.
‘막대한 숫자다. 유격전을 펼치더라도 그만한 숫자를 단기간 안에 처리할 수 없을뿐더러 장기전이 되어도 문제다. 그 가운데 히스파니아의 기반 시설을 모두 무너질 테니 결국 로마가 승리하게 될 것이다. 이집트의 봉쇄령이 유효한 건 올해 겨울에서 내년 봄까지······. 로마의 저력이 이토록 대단하다면 이마저도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것도 그렇지만 아군이 패배를 몇 번 겪다보면 히스파니아의 다른 도시들이 다시 로마에 붙을 것이고 그리되면 상황은 더욱 악화된다.’
토벌군으로 무슨 10만이 넘는 병력을 보낸단 말인가? 그러고도 별 문제없이 다른 지역이 유지가 되니 테세우스는 현실적으로 다가온 로마의 저력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한 가지 다행인 것은 로마군은 기병의 활용도가 낮다는 점이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탈리아는 말이 많은 지역도 아니었기에 당연히 말을 능숙하게 다룰 수 있는 전사들도 거의 없었다. 그러다보니 보병전술 위주로 발전할 수밖에 없었고 그것은 현시대에서도 동일했다.
게다가 등자가 존재하지 않았기에 달리는 말 위에서 적을 요격하거나 전투할 수 있는 기병은 숙련된 기병이나 가능한 일이었다. 대개 로마의 기병대는 적의 퇴로를 끊거나 척후대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았다.
기병이 보병보다 막강한 병종은 맞지만 돌격력이 죽은 기병은 보병보다도 못하다. 경기병에 가까운 이들로 구성된 기병들은 군단병의 전술을 뚫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고 그렇게 돌격력을 잃어버린 기병대는 군단병에게 무참하게 도살당하는 경우가 많았기에 기병의 활용도가 그리 높지 않았다.
등자를 발명하고 그것을 통한 기병을 양성한다면 말이 달라지겠지만 등자는 언제 만들고 기병은 어느 세월에 육성해서 히스파니아를 쳐들어온 로마군을 상대하게 한단 말인가?
하지만 완벽한 유목민족이라면 말이 조금 달라진다. 이들은 마상전투에 능한 이들이다. 이들을 전력화할 수 있다면 작금의 상황을 타개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여겼다. 기병을 이용한다면 훨씬 더 효과적으로 유격전을 펼칠 수 있을 테니 그 이점이야 따로 언급할 필요도 없었다.
하여 테세우스는 불확실한 이집트행을 택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이들 게툴리족을 만나기 위해 무작정 이동했다. 이들이 도움을 줄지 아니면 자신을 배척할지 그건 테세우스로서도 알 수 없었다. 거인 로마를 어떻게든 상대해보고자 가용한 모든 것을 이용하려고 애쓸 뿐이다.
상황을 생각하면 최대한 빨리 히스파니아로 돌아가야겠지만 병력의 규모를 볼 때 전투는 하루 이틀 사이에 끝날 일이 아니었고 무엇보다 세르토리우스는 그리 호락호락한 인물이 아니었다. 이집트의 봉쇄령이 떨어지고 그 소식이 알려지면 그 기간은 더욱 늘어나게 될 테니 테세우스는 히스파니아행을 뒤로 하고 게툴리족을 만나기 위해 열 명 남짓하는 병사들과 함께 이곳까지 이동했다.
그리고 다행히 베스티아와 접점이 있던 게툴리족을 만났다. 자신이 만난 이들이 베스티아와 접점이 없던 게툴리족이라면 다짜고짜 자신들을 공격했을 것이다. 물론 그럴지라도 테세우스는 그 전장에서 살아남을 자신이 있었지만 그랬다면 함께한 대부분의 병사들은 죽음을 맞이해야만 했을 것이다.
물론 지금의 상황도 결코 안전하다고 볼 수는 없었다.
“우리와 약조된 자는 베스티아라는 자다. 테세우스가 아니라.”
라틴어를 뱉는 게툴리족이 적개심이 섞인 어조로 말을 뱉자 테세우스가 차분한 어조로 그에게 말했다.
“베스티아는 죽었다. 바로 내 손에 의해. 하지만 나 테세우스는 너희와 거래를 하기를 원한다.”
그러자 그 말을 알아들은 게툴리족의 인상이 변했다.
“베스티아가 죽어? 그것도 네 손에 의해? 게다가 거래라고? 네놈이 누군지는 모르지만 네가 거래하고자 하면 우리가 순순히 응해주는 그런 족속으로 보였나?”
게툴리족이 사나운 어투로 테세우스에게 소리치자 주변에서 흉흉한 기세로 테세우스를 노려보던 자들이 저마다 무기를 뽑았다. 이에 테세우스의 병사들은 굳은 표정으로 무기를 뽑고 다가올 전투를 준비했다.
하지만 자신들의 숫자는 13명에 불과했고 어둠 속에 모습을 감추고 있는 저들은 그 숫자도 파악하기 어려울 정도로 그 수가 많았다. 길보다 흉이 많은 전투가 될 것이 자명했다. 그럼에도 병사들은 두려움보다는 투기를 발하며 테세우스의 명령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렸다.
일촉즉발의 순간, 라틴어로 말하던 게틀리인에게 다른 게툴리족 사내가 무어라 말을 꺼냈다. 그러자 그 자의 표정의 공손하게 변하더니 그에게 자신들의 언어로 뭐라고 쑥덕거렸다. 딱 봐도 이 무리의 우두머리가 누구인지 짐작할 수 있는 광경이었다.
테세우스는 어떤 행동도 보이지 않고 가만히 기다렸다. 다만 그가 탄 말이 아직 잠에서 깨지 못한 것처럼 투레질을 하며 눈을 끔뻑거렸다.
푸르르륵 푸르륵
아무리 말이 달리는데 선수라지만 사흘을 내리달리다가 겨우 휴식을 취한 셈이니 피곤할만도 했다. 그렇게 고요한 적막이 흐르는 가운데 라틴어를 할 줄 아는 게툴리족이 다시 입을 열었다.
“히스파니아의 테세우스. 네가 히스파니아의 테세우스냐고 물으신다. 그러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