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6
146. 세르토리우스.
146.
세르토리우스의 전술은 간단했다.
적이 밀고 들어오면 피한다. 적이 휴식을 취하면 공격한다. 식수와 식량을 공급받지 못하도록 보급선을 끊고 적들이 그것을 막기 위해 병력을 움직이면 다시 빈틈을 찾아 그곳을 유린한다.
말은 쉽지만 그것을 실제로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다.
하지만 세르토리우스와 그의 군대는 칼로 베듯이 정확하게 그 일들을 수행했다. 이에 메텔루스 피우스는 세르토리우스군과 제대로 싸워본 적이 단 한번도 없었다.
싸우려고 달려들면 도망치고 휴식을 취하려고 들면 와서 유격전을 펼치고 아군의 보급선은 번번히 끊어지고 그것을 보강하기 위해 병력을 보내면 그 틈을 노려서 보강한 아군을 궤멸시키고 그야말로 신출귀몰 그 자체였다. 일이 이러하다 보니 메텔루스 피우스는 대군을 이끌고도 더 이상 진격하지도 후퇴하지도 못하는 진퇴양난의 상황에 빠졌다.
지금까지 입은 피해를 합치면 전투에서 패배를 당한 것과 비등할 정도의 피해를 입었다.
게다가 세르토리우스군은 지치지도 않는지 지금도 그 일을 쉴 새 없이 반복하고 있었다. 메텔루스 피우스의 토벌군은 자신들의 전략은 펼쳐보지도 못하고 세르토리우스군의 계책을 부랴부랴 뒷수습하기에 급급했다.
메텔루스 피우스의 포룸 카스트룸에서는 연일 이 일을 타개하기 위해 지휘관들의 회의가 열렸지만 탁상공론에 불과했다.
“이런 식으로 계속 전투가 지속된다면 아군이 버티지 못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차라리 후퇴하여 마르쿠스 도미티우스 칼비누스와 합류, 타라코 지역을 먼저 함락시키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 아닐까 싶습니다.”
“저들이 노리는 것이 그것일지도 모릅니다. 아군이 이대로 후퇴하면 저들은 후퇴로를 쫓아 또다시 군대를 보내 올 것이니!”
“지금 적에게 겁을 집어먹은 것이오?”
“내 말은 그런 뜻이 아니지 않소! 이대로는 아군의 피해만 가중될 뿐이오. 병사들의 사기도 나날이 바닥을 치고 있소. 이곳 토레툼 지역은 적진 깊숙한 곳이라 할 수 있고 아군은 이곳 지형을 알지도 못하는 상황이라 번번히 습격을 당하느라 제대로 휴식도 취하지 못하는 상황이 아니오? 일정부분 피해를 입더라도 지금은 후퇴하여 군을 재정비해야 할 때가 맞소!”
“음.. 저도 후퇴에 찬성합니다.”
“후퇴라니! 말도 안 되는 제안입니다. 적은 기껏해야 2만도 채 되지 않소. 차라리 총 공세를 펼쳐서!”
“찬성합니다. 군을 정비하여 총공세를 펼치면 적들도 혼비백산하여 달아날 것이오!”
“허튼소리! 총공세를 펼치는 것까지 그렇다쳐도 대체 어디로 총공세를 펼칠 것이오? 적은 거점이랄 것이 존재하지 않소. 우리가 섣불리 총공세를 펼친다면 저들은 점거한 거점을 내어주고 전투를 피할 것이오. 그런 다음 아군의 보급로를 완전히 장악하겠지. 그때는 어떻게 할 것이오? 음식과 물을 먹지 않고 버틸 수 있는 군인도 있소?”
바로 그렇기에 메텔루스 피우스는 함부로 저들을 향해 진격하지 못했다. 이곳은 산세가 제법 험하고 앞뒤를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로 수목과 수풀이 우거졌기에 무작정 진군을 한다면 아군은 길을 잃고 숲을 헤매게 될 것이다.
반면 적들은 이곳의 지형을 꿰고 있다. 그런 곳에서 무작정 진격을 한다? 자살행위나 다름없었고 병사들을 죽음의 구렁텅이에 밀어넣는 행위밖에 되지 않는다. 답답하다고 무작정 군을 움직일 수는 없다. 그런 짓을 했다간 최악의 패배를 당하고 말 것이다.
그때 포룸 카스트룸에 급히 들어온 전령이 있었다.
“레.. 레가투스!”
전령의 다급한 표정을 본 한 지휘관이 메텔루스 피우스를 대신하여 입을 열었다.
“무슨 일이냐? 말하라!”
“칼비누스. 마르쿠스 도미티우스 칼비누스께서 타라코 지역에 적의 함정에 빠져 대패를 당하고 전사하셨습니다.”
“뭐.. 뭐라?”
“지금 뭐라고?”
“무슨 말도 안 되는!”
3개 군단이 1개 군단을 이기지 못하고 대패를 당했단 말인가? 메텔루스 피우스의 포룸 카스트룸에 모인 지휘관들은 정신이 아득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메텔루스 피우스 역시 참담한 심정을 느끼긴 마찬가지였다. 거짓이라 매도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이 솟아올랐다. 하지만 이처럼 중대한 사안이 거짓으로 보고될 리가 없었다. 따라서 메텔루스 피우스는 마음을 다잡고 지휘관들을 보며 말했다.
“타라코 지역을 점령하는 것이 실패했다면 이곳 토레툼 지역은 사지나 다름없다. 후퇴한다.”
“레가투스!”
“이견은 용납하지 않는다. 지금껏 나는 제장들에게 계책을 수립할 시간과 권한을 충분히 주었다.”
메텔루스 피우스의 사나운 기세에 반발하려던 지휘관들은 굳게 입을 다물었다. 무거운 분위기가 포룸 카스트룸을 덮을 때 한 지휘관이 메텔루스 피우스에게 질문했다.
“하면 아군은 타라코 지역으로 이동합니까?”
메텔루스 피우스는 잠시 고심에 잠겼다. 발렌티아로 후퇴할 것인지 아니면 타라코를 점령할 것인지 속에서 의견이 분분했다. 타라코를 지키고 있는 병력은 1개 군단으로 세르토리우스의 부하 루키우스 히르톨레이우스라는 자가 이끌고 있었다. 이번에 칼비누스에게 승리를 거두고 그의 목숨마저 취한 장본인이었다.
1개 군단에 불과하니 몰아붙이면 된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 틈을 과연 세르토리우스가 두고 볼 것인가? 세르토리우스가 전부가 아니었다. 저들과 손을 잡지는 않은 것으로 보이지만 북쪽 나르보에는 폼페이우스를 피해 도망친 페르페르나가 주둔하고 있었다.
저들 모두를 합쳐도 아군의 숫자보다는 적지만 만에 하나를 고려한다면 불확실성이 높은 타라코보다는 주둔 병사가 거의 존재하지 않는 발렌티아를 택하는 것이 현명한 판단이라 생각되었다.
메텔루스 피우스는 인상을 찌푸리며 결정을 내렸다. 어쩌다 자신이 이 지경까지 몰렸단 말인가? 하지만 감정을 앞세워 결정을 내리기엔 그간 자신이 쌓은 경험이 있었다. 따라서 메텔루스 피우스는 분을 억누르고 고개를 저으며 입을 열었다.
“아니다. 발렌티아로 이동한다. 그곳에서 군을 정비한다.”
타라코를 점령하면 그곳을 아군의 본진으로 삼을 계획이었다. 본진으로 삼음과 동시에 세르토리우스를 동시에 밀어붙일 생각이었는데 아무래도 전쟁이 장기화되게 생겼다. 하지만 섣불리 군을 움직여 패배를 당하는 것보다는 백배 천배 나은 결정이었다.
타라코 점령이 어려워졌으니 해로를 다른 지점에서 확보해 두어야 한다. 육로를 통해 군을 이끌고 히스파니아에 당도하기는 했으나 보급물자는 아무래도 해로를 통해 수송받는 것이 훨씬 빠르고 효율적이었으니 말이다. 타라코 점령이 무산된 이상 후퇴는 선택사항이 아니라 필수사항이었다.
*
테세우스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에 라틴어를 쓰던 게툴리족이 우두머리 사내에게 자신들의 언어로 뭐라 답했다. 그러자 그 사내 역시 그에게 짧게 뭐라 답했다.
통역사 역할을 하고 있던 사내가 다시 테세우스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프레디에 님께서는 네가 테세우스라는 것을 입증하길 원하신다.”
“입증?”
테세우스가 반문하자 저들의 우두머리, 프레디에가 입을 열었다.
“잔데르.”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잔데르는 급히 다시 그를 바라봤다. 그런 그를 향해 프레디에라는 사내가 뭐라고 길게 말했다.
“몇 년 전 아스칼리스의 명장 익티다르와 파드와를 암살한 소년이 맞냐고 물으신다.”
잔데르의 물음에 테세우스 고개를 끄덕이자 그가 다시 말을 이었다.
“마사에실리 족에서도 명성이 자자하다고 들었다. 네가 정녕 그토록 뛰어난 전사라면 전투로써 너를 증명해봐라.”
테세우스는 무심한 표정으로 잔데르를 바라보다가 뒤편에 선 프레디에를 바라봤다.
“증명? 증명이라. 내가 테세우스라는 것을 증명한다면 너희는 내게 무엇을 증명할 텐가?”
그 말에 프레디에가 짤막하게 입을 열었다.
“게툴리.”
테세우스는 프레디에의 대답에 피식 웃은 다음은 말에서 내려 허리춤의 무기를 모두 풀어냈다.
털썩 털썩
“테세우스 님!”
“대기하고 기다려라.”
“하오나!”
“두 번 말하게 만들지 마라.”
“······.”
이 시대는 아니 모든 시대는 스스로를 증명해야 한다. 그게 세상이다. 안타까운 일이다. 스스로를 증명할 수 없다면 사람이 사람임에도 인정해주지 않는 세상이니 말이다. 하지만 뭘 어쩌겠는가? 주어진 환경 속에서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테세우스의 모습에 잔데르는 미간을 좁히며 그에게 말했다.
“맨손으로 우리 게툴리족을 상대하겠다? 우리를 우습게 보는 것이냐? 스스로의 실력을 너무 과신하는 것이 아니냐?”
“내가 무기를 들고 싸우면 너희는 죽는다. 적어도 나를 시험하려고 한 장본인은 확실하게 죽겠지.”
“뭐라? 으드득! 건방진 놈! 볼 것 없다. 쳐라!”
잔데르가 인상을 팍 쓰며 명령을 내리자 저 뒤편에서 말을 탄 게툴리족이 기괴한 비명을 지르며 황야 위에 선 테세우스를 향해 질주했다.
두두두두두
“히히히히!”
“키야아아아!”
게툴리족은 눈알을 희번덕거리며 테세우스를 노려봤다. 그 눈빛에는 살기가 가득했다.
두두두 두두
검과 창을 들고 미친 듯이 쇄도했지만 테세우스는 바닥의 흙을 한 줌 쥐어 양손으로 비빈 다음 손뼉을 치듯 가볍게 털어냈다.
탁 탁
히이이이잉
어느새 자신 앞에까지 말이 다가왔는지 말 울음소리가 지척에서 울려 퍼졌다. 테세우스는 양손을 가볍게 내밀더니 질주하는 말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 모습에 그것을 지켜보던 모든 게툴리족이 테세우스를 비웃었다. 비웃지 않은 사람은 테세우스와 함께 한 13명의 병사들이 전부였다. 도리어 저들은 기대에 찬 눈빛으로 테세우스를 바라보고 있었다.
턱 주우우욱
“히이이이잉! 히잉!”
테세우스는 달려오는 말을 정면으로 잡아서 멈춰 세우고야 말았다. 물론 말의 돌격력으로 인해 일정부분 뒤로 밀리는 것까지는 어쩔 수 없었지만 질주하던 말을 아무런 피해도 없이 힘으로 멈춰 세웠다는 사실은 그것을 지켜보던 모두를 얼어붙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저들의 놀람은 이제 시작에 불과했다.
테세우스는 말이 거의 멈춰서자마자 그대로 자신의 어깨를 말의 앞다리 아래 배부분으로 밀어넣고 말의 배를 받치고 슬쩍 들어올렸다가 옆으로 쓰러뜨렸다.
말의 목을 부수거나 훌쩍 들어올려서 넘겨버릴 수도 있었지만 말에게 딱히 부상을 입히고 싶지 않았던 테세우스는 말 위에 타고 있던 게툴리족이 낙마할 수 있게끔 말을 옆으로 쓰러뜨리기만 했다.
그런 뒤 테세우스는 바닥을 박차고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그 높이가 말을 타고 있는 게툴리족 머리에 이를 정도로 날아올랐는데 이쯤 되면 도약이 아니라 공중부양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테세우스는 그대로 양발을 길게 뻗어 양옆으로 달려오는 게툴리족의 가슴팍을 거의 동시에 걷어찼다.
파박
털썩 털썩.
눈 깜작할 사이에 세 명의 게툴리족이 정신을 잃고 바닥에 쓰러지자 비웃음을 지었던 게툴리족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테세우스는 공중에서 가볍게 제비돌기를 하며 바닥에 착지했다. 그런 뒤 주변을 살펴보며 말했다.
“왜 못할 것 같은가? 너희가 있으나 없으나 나는 테세우스다.”
테세우스의 패기에 모두가 입을 다물고 그를 바라봤다. 혹자는 감탄의 시선으로, 혹자는 적의의 시선으로, 혹자는 경계의 시선으로 바라봤지만 테세우스는 오연히 서서 그들을 주시했다.
짝 짝 짝
그때 적막 가운데 박수소리가 울려 퍼졌다.
“과연 소문대로군.”
그는 이들 게툴리족 지도자로 보이는 프레디에였다. 두세 번 박수를 치던 프레디에는 냉정한 눈빛으로 테세우스에게 말을 꺼냈다. 테세우스는 프레디에라는 자가 라틴어를 알고 있다고 추측했었는데 그의 추측대로 그는 유창한 라틴어 실력을 자랑했다.
“실력을 보니 그 테세우스가 맞는 것 같군.”
프레디에는 베스티아의 일이 정확히 어찌된 것인지 내심 궁금했지만 이미 사망한 자의 내용은 더 들을 필요가 없었다. 따라서 거두절미하고 테세우스에게 입을 열었다.
“그래 히스파니아의 테세우스! 너는 우리에게 뭘 보장해줄 수 있지? 설마 우리의 주요고객을 죽인 분께서 그런 제안도 가지지 않고 우리와 만남을 가지고자 한 것은 아니겠지?”
테세우스는 자신이 쓰러뜨린 말을 일으켜세우며 다독이면서 대답했다.
“그게 궁금해서 말이야.”
“뭐?”
프레디에는 황당하다는 눈빛으로 테세우스를 바라보며 반문했다.